2024.07.13 (토)

대학알리

한국외국어대학교

[알리 WEEK 7일차] 레인보우 시그널

(출처: 워싱턴 대학교)
 

기자는 작년 초 많은 화제를 모으며 방영되었던 tvN 드라마 ‘시그널’의 열혈팬이다. 드라마 속에서 현재와 과거는 무전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어져, 결코 풀리지 않을 것 같던 미제(未濟) 사건을 해결하는 실마리를 만들어간다.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는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동정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아직 그 어떤 성소수자도 큰 용기가 없고서는 쉽게 스스로를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한국에서 성소수자는 마치 투명인간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기에 마치 ‘우리’와는 매우 먼 거리에 있는 사람들인 듯 느껴지곤 한다. 그래서 외대에 존재하는 성소수자 분들이 직접 필진으로 참여해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레인보우 시그널’이라는 연재물을 제안하게 되었다.

이 ‘레인보우 시그널’이라는 연재물이 시작된 지 반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본래 외대알리를 애독해주시던 독자 여러분들에게는 나름 익숙하겠지만, 인터넷으로 다시 인사드리게 되었다. 처음 기획하던 때처럼, 이 기획이 벽장 속에 갇혀 전달하지 못하는 이들의 마음을 전달해주는 드라마 ‘시그널’ 속 무전기 같은 존재가 되기를, 그리고 지금 그 무전기를 집어 든 독자 여러분에게 그 마음이 온전히 전달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글은 외대알리의 편집과정 없이 독자의 송고를 바탕으로 이뤄졌습니다.)

 

1.

연하킬러 / 연하가 최고, 연하에게 인기있는 애교 많고 연하 같지만 어른스러울 땐 어른스러운 언니^^ 그렇지만 현재 품절 상태로 재입고 예정은 없음.

나는 커밍아웃 왕이다. 요즘은 거의 오픈게이라고 할 수 있다….는 아닌가?(웃음) 어쨌든 아마 외대에 있는 퀴어 중에는 커밍아웃 상위권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에 알고 있는 사람만 10명남짓이다. 누군가는 대단하다, 용기있다, 이 정도면 오픈하고 다니는게 아니냐고 말하지만 아마 내가 먼저 여자를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흔히 이쪽 세계에서 말하는 ‘일스(티가 안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왜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아웃팅과 관계 단절의 위험을 무릅쓰고 커밍아웃을 했을까. 내가 내 자신 그 자체라는 것을 알리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자신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숨기고 왜곡하고 싶지 않았다. 퀴어로 존재하는 ‘나’를 숨기고 거짓말로 무장해 나 맘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 것이 지치기도 했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고 그렇게 줄줄이 태어난 거짓말들을 다 기억하고 말을 맞추기 것이 어렵기도 했다. 그렇기에 나는 대학 입학 후 첫 커밍아웃을 나와 가장 막역하게 지내는 동기들에게 했다. 정말 많은 고민과 걱정이 들었지만 그래도 내가 솔직하게 나를 드러냈을 때 그들이 나를 밀어내거나 괜찮은 ‘척’하지 않을 사람들이라는 걸 믿었다. 사실 첫 커밍아웃도 아니어서 대단하지도 않을 줄 알았는데 뭐……음 모든 커밍아웃들이 대단히 떨렸다!

학교 앞 카페 반할라였다. 술을 먹고 커밍아웃한 후에 이런건 맨정신에 해야겠다!라고 생각해서 정말 아예 대낮에 맨정신에 커밍아웃을 한 적이 한번 있었다. 그냥 정말 아무렇지 않게 ‘나 사실 여자를 좋아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커밍아웃’이라는게 몇 번을 해도, 결심하고 입 밖으로 내려면 미칠 것같이 떨리고 긴장되는 일이라 커피를 마시다가 커피를 토하다 못해 심장까지 토해버리는 줄 알았다.

‘나 할 말 있어’로 말문을 연 나는 한참동안 갑자기 밀려오는 걱정과 불안에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상대방의 표정 하나하나까지 다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혹시 남친이 생겼냐며 CC냐며 물어보는 얼굴을 보니 더 그랬다. 그렇지만 결과는 다행하게도 여지껏 들었던 사람들이 그랬듯이 ‘아 그래? 뭐 어때.’였다. 너무 긴장을 했는지 안심을 했어도 커피를 마시는 손이 덜덜 떨렸다. 나는 더 이상 소중한 사람에게 나를 속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어쩌면 사회에서 약점이 될 수 있는) 내 그런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준 동기가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너는 모르겠지만 난 아직도 고마워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요즘들어 더 나아가서 생각을 한다. 내 커밍아웃을 받아준 사람에게 고마워하지 않는게 자연스러운 세상이라면. 커밍아웃을 하는 내내 마치 죄를 짓는 기분, 고해성사를 하는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있다면. 이성애자들이 굳이 나는 이성애자야!라고 말하지 않아도 이성애자임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처럼 퀴어들도 그럴 수 있다면. 내가 여자친구의 얘기를 할 때 (퀴어프렌들리한) 친구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다면. 그렇다면 정말로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커밍아웃을 하지 않아도 될 날이 오길 바라며 나는 오늘도 유리벽장 안에 들어간다.

 

2.

필명: 연애 공백 1년 / 소개: 솔로가 최고입니다(진지)

친구 두 명이 나에게 아웃을 했어. 당시 기분이 어땠냐면 생각보다 엄청 놀랍진 않았어. 내가 예상을 하고 있었단 건 전혀 아닌데 말이야. 놀라긴 했는데 충격까진 아니었던 것 같아.

하루는 MT날 밤이었는데, 친구(A)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좀 취해있는 상태였어. 그래서 둘이 술 깨러 나갔다가 그 친구가 좋아하는 사람 얘기를 먼저 꺼냈지. 그러고는 커밍아웃을 했어. 그 전까지는 이 친구가 짝사랑을 하고 있고, 그것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는데 그걸 아는 상태에서 그 대상만 공개되니까 뭔가 좀 자연스럽게 느껴진 것 같아. 그러곤 둘이서 연애상담 비스무리하게 얘기를 나누고선 돌아갔으니까. 그 이후에는 딱히 별 말도 안 했고 사실 내 머릿속에서 좀 잊혀져 갔던 것 같아. 아, 그런데 그 친구는 아마 이불킥을 했을지도 몰라.

그 다음 번에는 친구(B)나 나나 둘 다 좀 힘든 시기였나, 그랬던 것 같아. 그런데 그 날은 유독 친구가 힘들어하는 게 눈에 보였어. 그래서 어디 자리잡고 앉아서는 그냥 뭐랄까 신세 한탄 같은 걸 하고 있었어. 그러다간 정적이 있었는데, 그러더니 정말 갑작스럽게 커밍아웃을 했지. 뭔가 힘든 이유가 있는데 자꾸 뭔지 얘길 안하고 한숨만 푹푹 쉬다가 얘길 꺼낸 것 같아 아마.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는데 내가 대충 눈치로 알아들었지. 예상을 전혀 못했던 것에서 오는 놀람은 있었지만 생각보다 충격은 아니었어. 그렇게 가만히 듣다 보니까 동성애자로서 힘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더라. 스스로 인정하기까지의 과정과 연애를 마음껏 자랑할 수도 없는 그런 상황들, 그리고 너무 당연스럽게 사회에서 통용되는 편견들. 난 정말 그 입장에서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는데 말이지.

솔직히 많은 사람들은 친구가 커밍아웃을 하면 친구 사이가 어색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더라고. 그런데 우린 그런 게 전혀 없었던 것 같아. 그 친구들이 나뿐만 아니라 몇몇 친구들한테도 아웃을 했는데, 그냥 우리끼리 있으면 농담도 하고 별명도 부르고 하는 분위기야. 다만 개인적으로 좀 어려운 점이 있다면 우리끼리는 터놓고 얘기하는 게 많아서, 가끔은 말실수를 할까 봐 여기에 있는 누가 알고 누가 모르는지를 계속 확인하게 되더라고.

오글거리긴 하는데, 친구들의 커밍아웃 후 내가 바뀐 점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관련 이슈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거? 사실 그 이전엔 아예 관심 자체가 없었거든. 아 그리고 주변에 동성애자가 있다는 사실보다는, 그냥 어디에든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계기가 되었어.

얼마 전에 그 친구 중 한 명이 그런 말을 하더라. ‘주변에 얘기할 사람이 있다는 게 진짜 좋은 일인 것 같아.’ 그 말은 나한테도 정말 고마운 말이었어. 그렇지만 연애하느라 바빠서 잘 보이지도 않는 이 친구들 혼 좀 나야 해~

 

최서진 기자(​sinnarri972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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