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9 (목)

대학알리

한국외국어대학교

[알리 WEEK 5일차]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팬이었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행복 중 단연 으뜸은 사랑의 감정이다. 사랑에는 다양한 유형이 있다. 부모, 형제자매간의 사랑, 친구 간의 사랑... 그중에서도 누군가의 ‘팬’으로서 느끼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누구나 한 번쯤 살아가면서 스타를 좋아하고 팬이 된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기자 역시 특정 가수의 팬으로서 열심히 팬 활동을 한 경험이 있다. 그들의 앨범을 구매하고 사진과 영상을 보며 마무리하는 하루는 행복 그 자체였다.

 

팬덤이 뭔데?

 팬덤은 열광자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 ‘fanatic’의 ‘fan’과 ‘영지(領地) 또는 나라’라는 의미를 가진 접미사 ‘dom’의 합성어로, 특정한 인물을 열성적으로 좋아하거나 몰입해 그 속에 빠져든 집단을 의미한다. 이러한 팬덤이 팬 활동을 하는 것을 흔히 ‘덕질’이라 칭하는데, 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심취해 그와 관련된 것을 하는 행위를 이르는 말이다.

 ARMY(방탄소년단 팬덤; Adorable Representative M.C fot Youth: 청춘을 위한 사랑스러운 대변인) 양회연씨는 덕질 4년 차에 접어들었다. “좋아하게 된 순간 제가 놓친 과거 앨범들은 전부 샀어요. 지금도 사실 앨범 사고 콘서트 가려고 일 년 반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네요...” 그녀가 그동안 최애 멤버에게 써온 조각 편지도 1130개에 달한다. 거의 모든 콘서트와 팬미팅을 다니며 모은 티켓 컬렉션도 만들었다. 

 “특히 작년엔 마음먹고 연말 무대들을 열심히 갔어요. 골든디스크, 서울가요대상, 가요대전, 멜론뮤직어워드 등이요. 콘서트랑 팬미팅까지 해서 12월과 1월 두 달 동안 방탄소년단을 9번 봤을 거예요. 1년에 가족들도 그렇게 못 보는데요.”

 

 

 

 

 

 

 

덕질 왜 하냐고? 너도 일단 해

그런 거 왜 하냐는 시선도 존재한다. 팬덤 문화라기보다는 팬덤 활동이나 존재 자체를 못마땅하게 보는 이들도 많다.

 22세 I씨는 자신이 덕질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솔직히 연예인이 팬들의 진심을 다 알아주지도 않는데 그렇게 시간과 돈을 써가며 헌신하는 게 저는 이해가 되지 않아요. 그 돈으로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이 본인에게 더 유익하지 않을까요?”

 그는 특히 아이돌 팬덤을 비관적으로 바라보았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아이돌은 뭔가 십 대들이 좋아할 만한 외모에, 음악적으로 수준이 낮거나 유치하다고 느끼거든요. 아이돌의 팬 연령층이 대부분 어린것도 그렇고, 특정 팬덤이 유난스러운 행동을 했던 사건들도 꽤 있잖아요. 그래서 전 아이돌 팬덤을 좋게 보지는 않아요.”

 그러나 덕질은 누군가의 인정이나 이해를 바라고 하는 행동이 아니라 그냥 좋아서, 어떻게 보면 우리를  위해서 하는 활동이다. ARMY 양회연씨는 팬덤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 조금 다른 차원의 행복을 느꼈다고 한다. “처음으로 느낀 아가페랄까요. 절대적인 사랑이라는 뜻이잖아요. 어떠한 목적을 두고 방탄소년단을 사랑하는 게 결코 아니니까요. 그들을 좋아하지 않았던 때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정말 제 삶의 이유이자 원동력이자 제 행복의 척도가 됐어요.”

 실제로 그녀는 팬덤 활동을 시작하며 새로운 인연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방탄소년단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이들과 함께 덕질을 하는 것 이상으로 현실에서도 함께 시간을 보내는 친구로 발전했다. 같은 가수를 향한 사랑으로 뭉친 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고, 양회연씨의 일상을 보다 풍부하게 해주는 존재가 되었다.

덕질도 사랑일까?

 물론 ARMY 양회연씨에게도 ‘걔들이 뭐길래 그렇게 좋아해?’라는 주위의 우려 섞인 목소리를 견뎌내야 하는 시기가 있었다. 그때 그녀의 지인이 소개해준 가수 타블로의 말이 한편의 큰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누군가를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한 순간 마주친 것만으로 사랑하게 됐다는 꿈같은 이야기는 믿어주면서,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에서 한 번 본 것만으로 사랑에 빠졌다는 얘기는 비웃다니 말이 안 되죠.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도 사랑이에요. 사랑은 평등한 겁니다.'

 세상엔 수많은 모양의 사랑이 존재하고, 그 어떤 사람도 타인의 감정과 마음을 재단할 권리는 없다. 단순히 화면 속 연예인이라고, 특히 춤추고 노래하는 아이돌이라고 그들에 대한 사랑을 이상한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일은 섣부른 판단이다. 양회연씨는 덕질을 무조건적으로 배척하는 이들에게 애니메이션 ‘웨딩 피치’에 나온 대사를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사랑의 멋짐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해요"라고... 그녀는 마지막으로 이 말을 덧붙였다. “사랑은 정말 아름다운 감정이잖아요. 그 마음은 분명 오래오래갈 거예요.”

덕질은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이다

 꼭 아이돌뿐만이 아니라 스포츠 등에도 팬덤이 있듯이, 본인이 최선을 다해 좋아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인생의 원동력이 된다는 그녀의 말처럼,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알아주지 않아도 좋다. 그들을 좋아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기쁨이기 때문이다.

 요즘 팬덤 내에서 유행하는 말이 있다. ‘어덕행덕’, 즉 ‘어차피 덕질 할 거 행복하게 덕질 하자’라는 말이다. 자신이 좋아서 스스로 연예인에게 진심을 다하는데 왜 타인의 시선에 주눅 들어야 하는 걸까. 비뚤어진 사랑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팬 활동이 아니라면, 덕질은 개인의 자유이자 행복할 권리 중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존중받아야 할 고귀한 감정이다. 팬덤 활동도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현상이다. 사랑의 대상이 연예인, 특히 아이돌이라는 이유로 손가락질받는 것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에게 타인의 사랑을 함부로 판단할 자격이 있는가?

  ARMY 양회연씨는 지인들 사이에서 방탄소년단의 팬으로서 매우 유명하다. 그녀의 SNS에는 방탄소년단과 관련한 팬 활동이 사진으로 많이 남겨져있다. 멤버의 생일마다 케이크를 사서 친구들과 함께 축하를 하거나, 지  하철 역의 생일 광고 앞에서 찍은 사진들 등... 그녀의 당당하고 행복해 보이는 게시물들을 보며 주위의 친구들이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녀 덕분에 연예인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당당히 밝힐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뿌듯하다는 양회연씨. “저는 제가 팬으로서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자랑스러워요. 부끄럽지도 않고요. 부끄러워하게 만드는 사회가 잘못된 게 아닐까요?”

 

 

 

 

 

 

 

 혹시 당신도 어떤 이의 팬이 되었다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길 바란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또 그 사랑을 당당히 표현할 줄 아는 당신이야말로 행복한 사람이니까.

 

 

 

정주현 기자(bovendewolken2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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