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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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대학교

[알권리] 당신이 절대로 택배 상하차 알바를 해선 안 되는 이유

당신이 절대로 택배 상하차 알바를 해선 안 되는 이유

오늘 받은 택배, 이렇게 오는 겁니다

 

“씨X 사회주의가 답이야!”

 택배 상하차 알바를 하던 중 나에게 시비를 건 고참에게 외쳤다. 이 날 나는 12시간을 일했고, 일당으로 98,000원을 받았다. 최저임금으로 따지면 대략 8100원. 2018년 법정최저임금을 살짝 웃도는 수준이었다. 내가 저 말을 한 것은 내가 정말 사회주의를 좋아한다기보다는, 도저히 이 돈을 받고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난 강원도에서 19살 때까지 평생을 살다, 20살에 대학에 입학하며 처음으로 서울에 살게 되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좋았다. 부모님으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운 삶과, 서울이라는 도시가 주는 문화적 혜택. 그러나 그 모든 것에는 돈이 들기 마련이었고, 이번 여름 방학 때는 알바를 꼭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8월 말에 일본 리츠메이칸 대학교에서 열리는 대학생 교류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일본행 여비를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바를 구하는 건 쉽지 않았다. 일단 나는 군대를 다녀오지 않아 점주들이 고용하고 싶어 하지 않았고, 둘째로 국회 연수나 학보사 워크샵 등 다른 중요한 대외활동 일정들이 방학 동안 불규칙하게 잡혀 있어 알바를 선뜻 구하기 어려웠다. 결국 알바를 미루다 일본으로 출발하기 며칠 전에야 상하차 알바를 하게 되고 말았다. 이 때는 몰랐다. 이게 내 인생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실수가 될 줄은.

 

 내가 맡은 일은 '교통정리'였다. 컨베이어 벨트 여러 개가 맞물리는 곳에서 택배들이 뒤엉켜 벨트 아래로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할 만 한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쌀 포대 여러 개가 한 번에 쏟아져 나오자 생각이 달라졌다. 어찌어찌해서 쌀 포대들이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가도록 하긴 했지만 같은 상황이 수십번씩 반복됐다. 그럴 때 마다 '말도 안 되는' 임금을 받으며 '말도 안 되는' 일을 요구받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문제는 업무강도 뿐만이 아니었다. 현장에서 일하는 고참들도 아르바이트생들을 괴롭게 했다. 보통 40대 정도 된 '아저씨'들이었다. 그 중 빨간 티셔츠를 입은 아저씨는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줄을 똑바로 맞추라 화를 냈다. 내가 지시 받은 업무 내용은 오로지 컨베이어 벨트 여러 개가 하나로 모이는 지점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것이었다. 줄을 맞추는 것은 40대 정도 된 '초록 셔츠'의 일이었음에도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마다 '빨간 티셔츠'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반말을 하며 욕설을 쏟아냈다.

 

 그러나 이것은 곧 있을 일에 비하면 정중한 편이었다. 어떤 지역으로 가야 할 택배 트럭이 아직 오지 않아 발송될 물량을 컨베이어 벨트 근처에 쌓아놓아야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고참'들은 어리고 경험 없는 동료들에게 이 일을 맡겼다. 나와 내 또래처럼 보이는 사람은 사방이 컨베이어 벨트로 둘러싸인 고립된 공간에 들어가 그 안에 상자를 쌓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상자들이 우리의 키 만큼이나 높아졌다. 그럼에도 그들은 계속해서 쌓기를 요구했다. 나는 사람이 다칠 수도 있으니 그만 멈춰야 한다고 소리쳤지만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그 때 내 머리 위로 상자 하나가 떨어졌는데, 다행히 크기도 작고 무게도 가벼웠다. 별다른 상처는 없었지만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다.

 

 그리고 택배 쌓기가 끝났을 때, 쌓아놓은 택배를 싣고 갈 트럭이 도착했다. 그 때부터는 상자를 내리는 일이 시작되었다. 이번엔 주황색 티셔츠를 입은 고참이 나에게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라가 상자를 내리라고 지시했다. 난 안전상의 이유로 그럴 수 없다고 했다. 분명 안전교육 자료에는 컨베이어 벨트에 접촉하지 말라는 경고가 있었지만, 이미 택배 상자를 쌓으며 수 십 번이나 그 위험을 감수하던 차였다.

 그러나 그 '주황색 티셔츠'는 내 멱살을 잡으며 “죽을래?” 라며 주먹을 들어올렸다. 다행히 날 치지는 않았다. 내가 그 사람보다 머리 하나 더 컸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내가 이 일을 거부하자 그는 계속 고성을 질러댔다. 나도 소리를 치며 맞설 수 밖에 없었다. “그 나이 되도록 이런 일이나 하고 있냐?”, “노조 만들 배짱도 없어서 이딴 일 애들한태 시키고 앉았냐?”며 모욕적일 말을 해댔다. 그래야만 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내 멱살을 놓더니 자기가 하던 일로 돌아갔다. 그리고 더 이상 아무도 나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이 없었다. 난 그 자리에 한참을 멀뚱멀뚱 서 있다가 휴게실로 가서 노트북을 켜고 잡다한 소일거리를 했다. 업무시간 종료까지는 3시간 정도 남아 있었다. 하지만 8100원의 시급을 받으며 이런 일을, 이런 취급을 받으며 할 수는 없었다. 나는 합당한 노동의 대가를 챙기는 셈 치고 휴게실에 앉아 업무시간이 끝날 때 까지 에어컨 바람을 쐬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난 시급 10900원을 챙겼다.

 

 휴게실에 앉아있는 동안, 30대 정도 된 분이 오셔서 말했다.

“이 곳은 지옥이다."

 정말 맞는 말이었다. 택배 상하차장은 여러 착취가 동시에 벌어지는 곳이었다. 택배사는 싼 값에 택배를 운송하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터무니 없이 적은 임금을 주고, 터무니 없이 많은 일을 시킨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렵고 힘들고 위험한 '3D 업무'는 나처럼 어리고 사회경험이 없는 20대 초반 청년들에게 맡겨진다.

 

 휴게실에 앉아 있을 때, 우연히 페이스북으로 뉴스를 접했다. 대전의 한 택배 상하차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23살 대학생이 컨베이어 벨트에 감전되어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해당 택배사에서는 충분히 안전점검을 했다며 발뺌했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죽은 사람이 나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해졌다. 충분히 안전한 환경을 제공했다는 택배사의 말에 분노와 슬품이 뒤섞인 눈물이 맺히기도 했다. 일을 시작할 때 내가 들은 말은 “조심해라”라는 네 음절이 전부였고, 안전 교육은 휴게실 벽에 조그맣게 적힌 것을 내가 스스로 찾아 읽은 것 뿐이었다.

 

 끝으로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에게 절대 상하차 알바를 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용돈이 급한가? 그러면 부모님한태 말해라. 부모님이 부담스러우면 동기나 선배, 후배한태라도 빌려라. 이 곳은 흔히 말하는 거대자본에 의한 노동착취가 이루어지는 동시에 젊은이들에 대한 기성세대의 착취가 동시에 벌어지는 곳이다. 제발 최대한 이 곳에서 멀리 떨어져라.

글 = 엄재연 기자 (eomzkxm@naver.com)

사진 = 강성진 기자 (helden00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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