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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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무처에 포스트잇이 붙은 이유 - 일본어통번역학과 분반 개설 제도 문제

 

  지난 11일 글로벌캠퍼스 백년관에 위치한 교무처장실 문에 수많은 포스트잇이 붙었습니다. 일본어통번역학과(이하 일통과) 학생들이 붙인 포스트잇입니다. 이날 일통과 학생들은 학교의 일방적인 학사제도 변경 통보에 항의하고자 침묵시위를 진행했고, 일본어통번역 전공생과 이중전공생 143명의 서명이 적힌 서류를 교무처와 학사종합지원센터(이하 학종지)에 전달했습니다.

 

교무처장실 문앞에 붙은 일통과 학생들의 항의 포스트잇 [사진 = 방진희 기자]

 

  항의의 원인이 된 학사제도는 분반 개설 제도입니다. 지난 9월 개강 이후 일통과 학생들은 전공과목들의 분반 개설이 어려울 것이라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수강신청기간과 수강정정기간에 일본어통번역 전공과목을 신청한 학생 수를 파악한 후 일통과 학과장 교수가 학사종합지원센터에 분반 개설을 요청했는데, 분반이 필요한 11개 강좌 중 3개 반만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지난 1학기까지는 분반 요건이 충족되면 모든 강의가 추가로 열렸으나 교무처가 아무 공지 없이 2학기부터 분반 규정의 해석을 달리 하면서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교무처 “수강정원 한 반 아닌 강좌 전체 학생 수가 원칙” … 분반 기준 2학기 변경

 

  분반 개설 제도는 특정 강좌의 수강 정원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추가로 반을 개설하는 제도로, 현재 학교 규정에는 “수강정원 140% 이상일 때 분반”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다만 ‘수강정원’의 기준이 명확히 나타나 있지 않아 지난 1학기까지는 해당 기준을 한 강좌의 ‘한 반 학생 수’로 해석해 왔습니다. 그러나 2학기 개강 후 글로벌캠퍼스 교무처는 ‘수강정원 140%의 기준은 강좌 전체 학생 수로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하면서 제도를 바꿨습니다.

통번역대학 과목별 수강정원 [출처 = 학사종합지원센터 규정]

 

2018-2학기 '일본어원서강독' 수강생 현황

[출처 = 한국외대 '강의시간표' 페이지]

 

  학종지가 분반 허용이 불가하다고 답변한 일통과의 8개 강좌 중 하나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일통과의 2학년 전공필수 과목인 [일본어원서강독]은 학종지 규정에 따르면 ‘한 반’ 당 수강정원이 20명으로 정해져 있으며 총 3개 반이 열립니다. 이를 ‘한 반’ 기준으로 해석하면, 3개 반 중 수강정원 20명의 140%인 28명을 넘는 반은 모두 분반이 가능합니다. 이때 수강정원은 수강신청 때 설정되는 제한 인원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수강신청 제한 인원이 ‘없음’으로 설정되어도 28명 이상의 학생이 한 반에 몰리면 분반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32명이 듣고 있는 금요일 1,2교시 수업 분반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기준인 ‘한 강좌의 전체 수강인원’을 적용하면 분반은 불가능합니다. 수강정원 20명씩 3개 반이 개설되니 [일본어원서강독] 강좌의 전체 수강정원은 60명이고, 60명의 140%인 84명 이상의 학생이 해당 강의를 신청해야만 기존 3개에서 4개로 강의가 늘어나게 됩니다. 현재 [일본어원서강독]을 듣는 전체 학생 수는 61명으로 140% 미만이기 때문에 분반이 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얼핏 보면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기준을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실제로는 차이가 큽니다. 기존에는 인원이 몰린 한 반에 대해 분반을 해줌으로써 전체적으로 학생 수가 고르게 나누어졌습니다. 그러나 바뀐 해석을 적용하면 84명의 학생을 넘지 않는 이상 분반이 불가해 수업 별로 학생 수의 균형이 깨집니다. 실제 2018년 2학기 [일본어원서강독] 3개 반의 학생수는 32명, 18명, 11명으로 불균등하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강독을 비롯해 회화, 작문, 번역, 독해 등의 강좌가 많은 언어학과의 특성상 교수 한 명이 담당하는 학생 수가 적어야 수업의 효율성이 높아질 텐데, 분반 개설이 허용되지 않으면서 32명의 학생이 몰린 강의는 그만큼 비효율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상대적으로 숫자가 적은 반으로 학생들이 옮겨가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제도 변경 사실이 개강 이후에 학생들에게 알려졌다는 사실입니다. 수강신청을 한 일통과 학생들은 당연히 개강 이후 분반이 될 것이라 믿었을 텐데, 시간표가 완성된 상황에서 분반이 안된다고 통보를 받으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위에서 예시로 들은 [일본어원서강독]은 3개 반이 각각 금요일 1,2교시, 월요일 7.8교시, 금요일 3,4교시에 열리기에 시간을 쉽게 바꾸기 어렵습니다. 수강신청과 정정기간이 끝난 상황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결국 불이익은 학생 개개인이 감당해야 합니다.

 

  분반 개설 기준의 변경과 관련해 일본어통번역학과 학생회는 교무처장, 학생처장, 학사종합지원센터장 등과 지난 10월 1일 면담을 진행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글로벌캠퍼스 전종섭 교무처장은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보다 원칙적인 제도를 시행하기 위해 분반 개설 기준을 바꾼 것”이라 말했습니다. 또한 “각 반마다 학생 수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학생들도 경쟁을 위해 더 열심히 수업을 듣게 되고, 학교의 전체적인 발전을 위해 작은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학생들 간의 경쟁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하지만 언어학의 특성상 학생들 개개인의 언어 실력에 편차가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공정한 경쟁인지 의문이 듭니다. 소수 강의로 진행되면 교수님들이 학생 개개인의 실력을 판단하기 수월할 것이고, 학생들 역시 피드백을 받기 좋은 환경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학사종합지원센터 내부 규정에 따르면 회화, 작문, 문법, 통번역 실습 등 대부분의 전공과목의 수강정원은 15~20명인데, 이는 학교 역시 소수 강의가 통번역대 학생들의 수업 환경에 도움이 됨을 규정을 통해 인정했음을 증명하는 대목입니다. 결국 교무처의 해석과 학사종합지원센터의 규정이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학생들만 피해를 본 것입니다.

 

학교-학생대표간 학사제도 관련 논의 계획 … 날짜는 미정

 

11일에 이어 15일 추가 항의시위를 진행하고 있는 일통과 학생들

(사진제공 = 황동현 일통과 학생회장)

 

  무엇보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외대의 학사행정에 깊이 뿌리 박힌 ‘선 조치 후 통보’입니다. 이미 2014년 상대평가 전면 시행 통보(일명 상평통보) 논란과 재수강 횟수 제한을 일방적으로 통보한 이후, 학교가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학사제도 변경을 통보한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2학기 수강신청을 앞두고 통번역대 학생들에게 분반 개설 제도가 바뀔 것이라는 공지만 했다면 학생들이 충분히 이에 대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제도 변경 사실을 학교차원의 공지가 아닌 학과장의 설명을 통해서야 전달받았다는 점에서, 학생들을 대하는 학교의 인식은 변하지 않았음을 비판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침묵시위를 진행하는 황동현 일통과 학생회장

[사진 = 방진희 기자]

 

  지난 11일 항의방문을 주도한 황동현 일통과 학생회장은 규정 변경에 따른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와 더불어 학교 측의 행정 태도 를 문제 삼았습니다. 이어 “이번 분반 문제는 일본어통번역학과는 물론 통번역대학 전체의 문제”라 말하면서 “통번역대 재학생들이 매 학기 내는 400여만 원의 등록금 가운데 언어 실습비로 40여만 원이포함돼 있는데, 통번역대의 메리트인 소수 인원 수업을 제공해주지 않는다면 등록금들이 과연 어디에 쓰이는지도 의문이 든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 글로벌캠퍼스 교무처는 총학생회와 각 단과대 학생대표들, 그리고 캠퍼스 보직 교수들이 함께 자리를 만들어 분반 문제를 비롯한 학사 제도 관련 논의를 진행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황동현 학생회장은 이에 대해 “자리를 마련하겠다고만 했지 일정이 잡히지 않았고 실제 논의가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습니다.

 

  이번 일통과의 항의방문은 비단 통번역대 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학사제도와 관련해 학교가 일방적인 통보를 계속한다면, 양 캠퍼스의 모든 학과 역시 언제든 이런 문제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무처가 학생들과 논의 자리를 만들겠다고 밝힌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하지만 논의에서 다뤄질 안건과 날짜를 이른 시일 내에 확정해 진행하지 않는다면 학교의 학사제도 운영에 대한 학생들의 불신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하루빨리 학생대표들과 처장단이 자리를 마련해 일방통행이 아닌 상호 합의를 토대로 학사행정을 운영하길 기대합니다.

 

한달수 기자(hds80228@naver.com)

방진희 기자(genie95062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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