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4 (화)

대학알리

한림대학교

[기고] 아프리카 케냐에 살기

저는 한림대학교 영어영문학과 2학년을 마치고 1년 휴학 중에 있는 이진석이라고 합니다. 오랜만에 한림대학교 소식을 페이스북에서 접하게 되어 ‘한림알리’에서 독자기고를 받는다는 소식에 좋은 기회인 것 같아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2016년, 이 학교에 들어와 2년 동안 공부하면서 많은 친구들과 함께 좋은 추억을 쌓기도 하고, 또 저의 실력을 늘릴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학업 중에 개인적인 어려움도 있기도 했지만 그 기간 동안 몸과 마음 건강하게 마칠 수 있게 되어 감사했습니다.

제가 들려드릴 이야기는 위의 제목과 같이 ‘아프리카 케냐에 살기’입니다. 네, 맞습니다. 현재 저는 아프리카 케냐에서 1년 동안 자원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들려드릴까 합니다.

2학년을 마친 지난 2017년, 저는 휴학을 신청하고, 정들었던 학교와 기숙사를 떠났습니다. 원래 계획은 국방의 의무를 완수한 뒤 다시 학교에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시기에는 제가 어디로 가서 2년 동안 국방의 의무를 할까? 라고 고민했었는데, 저는 이 때 아버지로부터 한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혹시 너, 1년 동안 아프리카에 갈 생각이 없니?”

순간, 놀랐습니다. 아프리카라니. 갑자기 왠 아프리카일까? 다시 저는 고민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1년? 저는 그 고민을 한 한 달 정도 한 것 같아요. 그 이유는 아프리카는 못 사는 곳, 기아와 질병으로 고생하는 곳 등등 그 동안 접했던 정보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기 전까지도 저는 계속 고민했어요. “갈까? 말까? 갈까? 말까?” 처음에는, “그래. 가지 말자”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 속에서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저는 그 때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무엇을 결정하기가 쉽지가 않았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끝에, “그래! 한 번 아프리카에 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라고 마음을 먹고 아프리카행을 택했고 올해 2월 19일, 한 살 터울 동생과 함께 아프리카 케냐로 날아갔습니다.

약 13시간 비행 끝에 도착한 아프리카 케냐. 낮선 땅에 처음 발을 들인 순간, 여기가 아프리카인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프리카는 한 내 나이 40대에 올 것 같았고, 생각조차 못했는데, 22살에 여길 오다니. 꿈인가 라고 생각하는 찰나에 비자를 발급받고, 짐도 찾아 공항을 빠져나왔습니다. 아마 현지 시간으로 오전 5시 즈음 된 것 같아요. 거기서 한 선교사님을 만났고, 자가용으로 약 5시간(실제론 2시간 - 볼 일이 많았음) 주행 끝에 지금 제가 머물고 있는 조이 홈스에 도착하게 됩니다.

케냐와 한국의 시차는 6시간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이 오후 6시이면 케냐는 오후 12시입니다. 쉽게 말하면, 한국이 밤이라면 케냐는 한 초저녁이 되고, 한국이 새벽이면 케냐는 밤입니다. 즉, 만약에 모두가 잠을 자고 있노라면 그 때 저는 저녁을 먹고 있습니다. 그래서 카카오톡을 할 상대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지요. 낮과 밤이 바뀌니 각국의 생활 패턴이 달라서 조금 애를 먹곤 했습니다.

시차 적응이 완료되기까지는 한 8일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잠도 잘 안 오고, 불안감까지 거쳐서 엄마한테 보고싶다고 전화를 한 적도 있었죠. 시차 적응을 하는 것이 저에게는 첫 번째 숙제였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그 뒤로는 나아져서 괜찮아졌습니다.

적응 기간 뒤 제가 할 수 있었던 일은 ‘한국어 교실’ 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고 한국에 대한 것들을 알려줌으로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그런 역할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소규모로 진행되었는데 사실 잘 되지가 않았습니다. 제가 한국어를 가르친 시간대가 오전 11시부터 11시 40분, 총 40분 동안 진행했는데 이 시간이 학교 쉬는 시간이었고, 처음에는 아이들이 잘 오다가 나중에는 한 5명만 올 정도로 미약해져서 많이 힘들었지요. 처음 생각은 ‘아... 내가 잘 못 가르쳐서 그런 건가?’, ‘아이들이 흥미가 없는 걸까?’ 라고 자책하기도 했지요. 요리조리 최선을 다해 한국어 교실을 운영하려고 했지만 무언가 부족해, 무언가 잘 안 되고 있어 라는 생각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 갔을 때 ‘안녕하세요!’ 라고 말하는 아이들을 보면 어느 새 힘들었던 건 사라지고 입가엔 웃음이 번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으며 달려와 보니 어느 덧 학기가 끝나고 방학을 맞이했습니다. 그 때가 5월 초순 쯤 되었습니다. 방학 때는 ‘무얼 해 볼까’ 라고 생각하려던 찰나에 7,8학년을 상대로 영어를 가르쳐달라는 제안을 받고 곧바로 들어갔습니다. 케냐는 영어를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주 언어는 스와힐리어입니다. 영어권 국가라 모든 사람이 이 언어를 잘 사용할 것 같지만, 사정으로 인해 교육을 잘 받지 못했던 사람은 잘 구사하지 못합니다. 이에 고학년이어도 다른 학년의 아이들보다 잘 구사하지 못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저학년 친구들은 한 달 동안 진행되는 방학을 집에서 보냈지만, 고학년 친구들은 방학에도 학교에 나와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래서 영어 과목을 맡게 되어 기본적인 것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배운 영어의 다양한 쓰임새, 품사, 문장 형식 등등 이것을 한국어 버전이 아닌 영어 버전으로 가르쳐야 한다니 여간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 마디로 영어를 영어로 가르친다는 것! 처음에는 버벅거려서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차츰차츰 시간이 지나니 어느 새 익숙해졌습니다. 더불어 7,8학년 친구들과도 친밀하게 지낼 수 있었고요! 한 번은 수업이 끝나고 학급을 돌며 하이파이브를 했었는데 정말 즐겁고 재미있었습니다.

방학이 끝나고 6월이 되었습니다. 이 때 저는 비자를 재발급받기 위해 다시 케냐를 떠났습니다. 응? 무슨 이야기냐고요? 케냐는 한 번 비자를 발급받게 되면 3개월입니다. 거기서 한 번 연장할 수 있어요. 그러면 6개월이 되는데, 이 기간 뒤에는 연장 신청을 할 수가 없게 되어 해외에 나갔다 들어와야 합니다. 정리하면, 케냐 체류 기간은 최대 6개월이고 여행 뒤에 다시 비자를 신청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 이 때 무엇을 했을까요? 6월 1일부터 6월 15일까지 요르단과 이스라엘을 여행하며 고대 유적을 돌아보게 됩니다. 많은 여행객을 만나면서 추억도 쌓았고요. 특히 이스라엘에 머물 때 같은 방을 썼던 일본 친구 쇼야와 함께 놀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 친구 지금 잘 지내나 모르겠네요.

1차 여행 뒤 다시 케냐로 돌아왔습니다. 아이들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 같아서 바로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이번에는 첫 과정보다는 대폭 달라졌습니다. 하나의 학급에서 4~7학년, 4개 학급의 친구들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특정 아이들에서 이번에는 학급의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소개해 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한국어를 가르칠 때마다 느꼈던 건 단 한 가지였습니다. ‘언어를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를 뛰어넘어 아이들과 관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라는 사실. 그래서 이번 두 번째 과정부터는 언어를 가르치면서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봐 주며 가는 것을 목표로 삼아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노력만큼 그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지요.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않거나 학급 친구를 존중하지 않는 모습이 보이면 혼을 내기도 했지요. 그럴 때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조금만 더 이해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 다음 날 수업에 들어가면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날엔 저도 어찌 해야 할까 라는 마음이 들어 그냥 가르치다 돌아가기도 했었죠. 지금도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조금 더 넓은 마음으로 대했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래도 학교에 갈 때마다 밝은 웃음으로 인사하며 저에게 서슴없이 다가와주는 아이들을 보면 웃음이 나옵니다. 이런 게 선생님의 매력이겠죠? 때론 선생님의 말 한 마디 때문에 학생들과 서먹해지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를 허물없이 웃으며 대하는 거. 아이들이 기 죽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걱정이 되었지만 아이들은 곧바로 저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그렇게 오래 가진 않는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쉬곤 했지요.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갔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했던 시간, 같이 축구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납니다. 지난 9월, 저는 한 번 더 케냐에 나갔다 들어오게 됩니다. 이번엔 한 달 동안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유럽에 한 5일 즈음 있다 보니 집이 그리워집니다. 케냐가 그리워지고, 함께 했던 이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사무쳤습니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여행을 마치고 10월 11일, 케냐에 다시 왔습니다. 돌아온 후에, 수업을 진행하려 했더니 며칠 후면 방학이 시작된다는 소식에 아쉬웠습니다. 5일 전인 10월 24일, 방학식과 졸업식을 끝으로 2018년 케냐의 정규 학기는 이렇게 모두 끝이 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함께 했던 순간들을 회상하며 한편으론 뿌듯했지만 다시 아이들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 속으론 눈물을 훔치기도 했습니다. 학교 앞뜰에서 작별 인사를 건네고 한 학년 한 학년 찾아가 같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진짜 작별을 고했습니다.

글을 쓰는 현재 이 순간, 2018년 10월 29일. 어느 덧 10월의 마지막을 향해, 11월의 초입을 향해, 그리고 2018년의 끝을 향해 시간은 계속 달리고 있습니다. 시간이 참 빨리 가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도 잘 모르겠네요. 아프리카라는 거대한 대륙 속에 있는 케냐. 아프리카의 관문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 곳에서 지난 긴 세월 동안 아이들의 안식처와 놀이터가 되어 준 조이 홈스에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또한, 아프리카 생활을 잘 할 수 있게 도와 준 모든 이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이제 2개월 후면 한국으로 귀국합니다. 모두들 많이 보고 싶습니다. 한국은 많이 춥다고 들었는데 몸과 마음이 따뜻한 겨울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저의 글을 읽어 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 영어영문학과 이진석 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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