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2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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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대학교

[알권리]

"쟤들 때문에 주차를 못하잖아!"

시위하는 노동자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

 광주광역시에 첫 눈이 내렸다. 서울보다는 조금 늦었다. 길거리에 쌓이지 않을 만큼 적은 양이었지만, 본격적으로 겨울이 시작됐음을 알 수 있었다.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졌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근무지인 주민센터를 나갈 일이 없기를 기도했다. 신을 따로 정하지 않아서 그랬나. 공무원 둘과 함께 수급자에게 전달할 쌀과 이불을 받으러 구청으로 이동했다.

 

 구청 지하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낯선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일렬로 서있었다. 지나가던 공무원 두 명은 피켓 내용을 읽기 전 부터 난색을 표했다. 피켓 내용은 이렇다. 저들은 환경미화원이며, 구호의  내용은 기본급 차별시정 권고안 이행과 토요근무 가산수당 미지급을 규탄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 언뜻 보기에는 충분히 요구할 만한 내용인데, 왜 공무원이 질색하는지 궁금했다. 내가 모르는 저들의 음모라도 알고 있나? 남들에게 무지막지한 피해를 끼치고 있는 건가? 뭐라도 이유가 있겠지 싶어 궁금했다. 그래서 물어봤다.

 

"원래 휴일에 일하면 추가수당 줘야 하지 않아요?"
"야, 우리도 휴일에 추가수당 못 받고 일해."
"그럼 공무원도 추가수당 달라고 요구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우리는 가노비(家奴婢)야, 가노비. 노비가 무슨 추가수당이야."

그 때 옆에 있던 다른 공무원이 일갈했다.
"아이씨, 쟤들이 우루루 몰려와서 차 대니까 우리가 주차할 곳이 없잖아!"

 

 발언 하나하나가 당황스러웠다. 자신의 직업을 노비라 비하하고, 공무원도 추가수당 못 받는데 환경미화원이 추가수당을 왜 받아야 하냐는 것, 저들의 집회가 우리에게는 단순 민폐란 것. 아무리 노동권 교육이 부실한 대한민국이라지만, 노동을 존중하는 성공회대를 벗어나 노동자와 집회를 바라보는 우리나라의 민낯을 깜빡이 없이 마주하자니 내가 다 부끄러웠다. 그들과 동등한 관계였다면 자리를 박차고 뭐라 말해보려고 애썼겠지만, 나는 의무복무 중인 '공익'이다. 공무원들의 업무를 보조하는 역할이었으니 마음을 추스려야만 했다.

 공무원들이 먼저 볼 일을 보는 동안 집회 사진을 찍으러 구청을 나왔다. 바람이 유달리 쌀쌀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구호를 멈추고 회의를 위해 옹기종기 모였다. 주동자로 보이는 한 환경미화원은 마이크를 끄고 맨 목소리로 발언을 시작했다.

“아이고 추워가지고 말도 제대로 안 나오네요. 3주 동안 하니까 레퍼토리도 떨어지고.. (후략)"

 미화원들은 자신들이 겪는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추위를 버티며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저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잠깐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무심히 지하주차장을 들어가고 나오는 자동차들과, 환경미화원을 급 낮은 직업으로 바라보는 저급한 시선, 집회를 주차공간을 앗아가는 민폐라는 피해의식뿐이었다.

 

 사진: 유성기업

 얼마 전 유성기업 집단폭행 사건이 큰 이슈였다.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이 유성기업 임원을 폭행한 사건을 두고 '민주노총을 대표로 한 노조의 폭력성이 적폐'라며 반노조성향의 언론과 정당, 시민들이 노조를 향해 '융단폭격'을 했다. 그러나 나는 2016년 4월, 대학생이 된지 얼마 안 됐을 무렵 세월호 추모 집회를 참여하며 보았던 유성기업 노조탄압 규탄시위를 아직도 기억한다. 직장 폐쇄, 용역 파견, 조합원 해고 등 숨 막히는 노조탄압에 조합원의 43.3%가 중증우울증 진단을 받고, 한 조합원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동자가 회사 임원을 폭행하기까지 8년간 죽음의 기로를 걸어왔음에도, 무심한 사람들은 그들의 고통에 무심하다 그들이 남에게 입힌 피해에만 주목할 뿐이다.

  노동권에 관심 없는, 적지 않은 사람들은 노동자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집회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갑’에게 목소리가 닿지 않아 사람들에게 하소연 하는 ‘을’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평소에는 을의 외침을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을의 발악이 타인에 입히는 피해에만 주목하고 있지는 않은가. 조금만 시선을 달리 하면 그들 또한 누군가에게 을일 수 있으며, 집회 참여자들이 실패하면 똑같이 갑의 부당함에 굴복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갈 수록 추워질 전망이다. 하지만 춥다고 집회를 멈출 사람들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피켓을 든 손이 꽁꽁 얼기 전에 광주광역시와 환경미화원간 협상이 타결되길 바란다. 갑의 무시도, 사람들의 멸시도 서러운데 날씨까지 무시하면 너무하지 않겠는가. 정당한 대우 받으며 노동한 임금으로 보일러 빵빵하게 틀고 친구들과 맥주 한 잔 하는 저녁이 있는 삶을 모두가 영위할 날이 오길 바란다.

 

글 = 박상혁 기자 (qkrtkdgur9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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