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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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노란물결] #3. 단원고4.16기억교실을 다녀오다

[4월의 노란물결] #3. 단원고4.16기억교실을 다녀오다

5년 전 그 날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기억하고 싶어 경기도 안산시에 위치한 단원고4.16기억교실을 찾아갔다. 지하철을 타고 1호선 온수역에서 4호선 고잔역까지 가는데 1시간, 지하철에서 내려 단원고4.16기억교실까지 걸어가는 데 10분이 걸렸다.

 

단원고4.16기억교실은 단원고등학교의 교실이 부족해져 안산교육지원청 별관 건물로 옮겨졌다. 단원고 교실을 그대로 복원했기 때문에 희생자들이 지냈던 교실의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건물 1층에서는 방명록을 작성하고 짐을 보관할 수 있었으며, 방문객들이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도록 노란 리본 스티커와 팔찌 등이 마련되어 있었다. 복원된 교실과 교무실을 둘러보기 위해 위층으로 올라갔다.

 

조심스럽게 들어간 교실은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조용했다. 서른 개가 넘는 책걸상, 칠판지우개 자국이 하얗게 남아있는 칠판과 그 옆 게시판에 붙어 있는 각종 안내문까지. 여느 교실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이 평범한 교실에는 ‘있어야 할’ 사람들이 없었다. 교실에 있어야 되었던 학생들이 없었고, 교과서와 필기구도 없었다. 빈자리에는 없어야 했던 물건들과 문구들이 가득했다. 유품과 꽃다발, 추모 편지들이 책상에 있었다. 선생님의 판서로 가득 채워져야 할 칠판에는 희생자들을 향한 추모 문구가 빼곡하게 쓰여 있었다.

 

책상에 놓여 있는 유품과 편지를 보며 이곳에 앉아 있던 학생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누군가는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를, 또 다른 누군가는 유치원 교사를 꿈꿨다.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은 저마다 다른 꿈을 꾸던 평범한 학생들이었다. 유품과 함께 책상에 놓여 있는 추모 노트는 희생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였는지를 알려주었다. 노트를 한 장씩 넘겨 읽으며 희생자의 가족, 친척, 지인 등이 쓴 편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미어져 편지를 읽지 못하고 노트를 덮었다.

 

3층에는 희생된 교사들이 사용하던 교무실도 복원되어 있었다. 교무실의 분위기 역시 무거웠지만 교실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학생들을 끝까지 지켜주다가 함께 세상을 떠난 11명의 교사들, 그들의 희생을 모두 담기에는 교무실이 한없이 좁아보였다.

 

3층 복도 끝에는 4.16기억저장소 사무실이 있었다. 인터뷰 요청을 위해 조심스럽게 들어가니 안에 계신 분들께서 웃으며 맞이해주셨다. 흔쾌히 인터뷰에도 응해주셨다. 사무실에 계신 분들을 대표해서 인터뷰를 하기로 한 양옥자 씨가 장소를 옮기자며 앞장서서 사무실을 나섰다. 양 씨를 따라 향한 곳은 2학년 7반 교실이었다. 교실 맨 앞 복도 쪽 자리에 앉은 양 씨는 웃으면서 말을 꺼냈다.

“여기가 우리 아들 자리에요.”

양옥자 씨께서는 단원고4.16기억교실의 업무를 돕고 계신다.

양 씨는 실무 담당자가 아니라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유가족이었다. 유가족으로서 단원고4.16기억교실을 찾아온 방문객들을 안내하거나 실무 담당자들의 업무를 돕고 있었다. 양 씨는 아들의 자리에 앉아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알’은 회대알리의 질문, ‘양’은 양옥자 씨의 답변이다.

 

알: 먼저 간단히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양: 저는 사단법인 4.16가족협의회 소속이자 기억저장소 단원고 2학년 7반 故허재강 학생 엄마입니다. 지금은 4.16기억저장소 운영위로서, 단원고4.16기억교실에서 예약 방문객 분들을 안내하거나, 실무진 분들을 도와드리고 있어요.

 

알: 단원고4.16 기억교실은 어떤 곳인가요?

양: 단원고4.16 기억교실은 아이들이 사용하던 교실을 2017년에 안산교육지원청으로 이전해서 복원해놓은 곳이에요. 4.16생명안전공원이 건립되지 않아서 우리 아이들을 추모할 곳이 따로 마련되어있지 않아요. 아이들이 안산 하늘공원, 서호추모공원 등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데, 그나마 우리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추모하기 가장 좋은 곳이 단원고4.16 기억교실이라고 생각해요. 단원고4.16 기억교실이 실제로 아이들이 머물렀던 자리를 복원해놓은 곳이다 보니 이곳에 오면 아이들을 느낄 수 있어요. 그래서 이곳에 오신 많은 분들께서 교실을 둘러보거나 준비된 영상을 보시고 많이 울고 가세요. 그럴 땐 마음이 아프지만, 저희들은 항상 방문객 분들께 감사하면서 기쁘게 안내하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단원고4.16기억교실은 참사 현장이라고 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많은 분들께서 이곳을 방문해주시면 좋겠어요.

 

알: 단원고4.16기억교실은 언제부터 언제까지 운영하나요?

양: 여기는 연중무휴고요. 주말하고 공휴일은 아침 10시부터 5시까지 평일은 9시부터 6시까지 운영해요. 언제든 누구나 오셔도 되고요. 학생들 같은 경우는 단체로 예약을 하고 방문하시는 것도 좋아요. 단체로 예약해서 방문하면 안내도 받고, 영상도 시청하면서 희생된 단원고 학생 261인이 아닌, 한 사람 한 사람을 느끼고 기억할 수 있어요.

 

알: 본인에게 있어서 단원고4.16기억교실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양: 어떤 의미가 있기보다는, 저 같은 경우는 집에 있으면 꼼짝을 안 해요. 근데 이곳에 나오면 ‘여기가 내가 나오는 곳, 내가 나와야 하는 곳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나 다른 유가족들께는 단원고4.16기억교실이나 가족협의회가 나와서 숨을 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처럼 느껴져요. 여기 나오지 않으면 집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하루 종일 움직이지를 않거든요.

 

알: 단원고4.16기억교실을 먼 곳처럼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양: 이곳을 먼 곳이라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마음이 아파서 못 오겠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분들은 기다려줘야죠. 지금 그 아픈 마음을 가지고 이곳을 방문해달라고는 하고 싶지 않아요. 언제든 좋으니 그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실 때 이곳을 찾아오시면 되고요. 그냥 우리 아이들을 만난다 생각하시고 오시면 될 것 같아요.

 

알: 마지막으로 자유롭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양: 많은 분들께서 단원고4.16기억저장소가 국가의 지원을 받아 운영된다고 생각하고 계시는데 이곳은 여러분의 후원금에 의존해 운영되고 있어요. 그런데 점점 후원해주시는 분들이 줄어들면서 지금 재정상으로 조금 힘들어요. 대한민국에서 기억저장소를 지원해주지 않으니까 여러분들이 많이 후원해주시면 좋겠어요. 전문가이신 실무자 선생님들께서 여기 오랫동안 있어야 되잖아요.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여러분이 도움을 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 아들 잘생겼죠?”

 

인터뷰가 끝난 후, 양옥자 씨는 앉아 있던 자리에 놓인 액자를 들어 보이며 웃었다. 사진 속에는 양 씨를 꼭 빼닮은 故허재강 학생이 활짝 웃고 있었다. 인터뷰가 끝난 후에도 양 씨는 한참 동안 자리를 뜨지 않고 말없이 아들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양 씨의 말대로 단원고4.16기억교실은 후원을 통해 운영되고 있다. 누구나 단원고4.16기억교실을 직접 방문하거나 4.16기억저장소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후원자가 될 수 있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전화나 4.16기억저장소 홈페이지를 통해 문의할 수 있다. 지금도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은 누구든, 언제든 단원고4,16기억교실을 방문해주기를, 후원을 통해 앞으로의 활동에 힘을 실어주기를, 무엇보다도 희생자들을 기억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단원고4.16기억교실 위치: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적금로 134

4.16기억저장소 연락처: 031-410-0416

4.16기억저장소 홈페이지: http://416memory.org/

 

취재=김영건 기자, 이의진 기자, 이지원 기자

글=이지원 기자
사진=김영건 기자
속기록 정리=강누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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