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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 김기석 총장 입장문 톺아보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김기석 총장 입장문 톺아보기

6월 3일, 느티 아래와 굴다리 게시판에 김기석 성공회대학교 총장의 입장문이 부착됐다. 5월 31일 김 총장과 학생 대표들이 나눈 대화를 문서 형식으로 발표해 달라는 학생 측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학교 본부의 대표인 총장이 학교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설명하는 건 긍정적이다. 학교가 주요 문제로 꼽혔던 ‘불통’을 신경 쓰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입장문은 학생 측의 주장에 공감하면서도 학교 측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학교가 학생 측의 요구를 수용하려 노력했지만 현실적인 제약으로 잘 안 되어 학교 측도 답답함을 느낀다는, ‘호소력 짙은 글’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호소력 짙은 입장문 속에는 학우들의 의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혹은 임의로 무시하는 듯한 내용들이 있다. 누가 그랬던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학생들이 잘못한 건가요?

 입장문의 첫 소제목 “학교 당국을 믿어주시기 바랍니다.”를 시작으로 총장은 학교가 지금까지 학생들을 위해, 학교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강조했다. 동시에 학교를 강도 높게 비난하는 일부 학생들 때문에 학교의 명예가 실추되고 있다며 정당한 비판인지 성찰하라고 역설했다. 지금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학교와 학생 간 갈등의 원인을 학생들에게 떠넘기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준비가 부족했던 학부제 개편, 일방적인 전공 폐지 발언 등 학내 갈등의 주요 원인이 학교에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원인과 책임이 어디에 있든”이라며 갈등의 핵심을 회피하며 학교가 행정, 의사소통 과정에서 일으킨 갈등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내용이 없다. 학교 본부는 “총장으로서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 “학생들의 우려와 불안감을 인식한다.”며 ‘도의적 책임감’을 드러내는 단 두 문장에 책임을 묻어가려 한다. 그러면서 학생들의 날선 목소리를 비판하며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라고 할 수 없다. ‘인권과 평화’를 지향하는 성공회대학교의 명예는 학생들에게 잘못을 떠넘기는 학교가 실추시킨다.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건가요?

 총장은 입장문을 통해 “전공폐지를 인위적으로 추진하지 않겠다.”, “학생들이 학과제와 학부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 “총학생회와 정례적인 소통을 통해 학사제도를 논의하고 ‘반영’하겠다.”며 학생들이 요구한 교육권 일부를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강사법에 따라 학교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겠다.”, “복사점, 문구점과의 상생을 모색해왔다.”며 인권과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학교를 언론과 일부 학생들이 부당하게 비판한다고 유감을 표했다.

 하지만 총장이 학교가 노력한다고 제시한 근거와, 언론과 학생들이 비판하는 지점은 전혀 다르다. 총장은 성공회대가 외래교수들에게 국내 사립대학 최고 수준의 대우와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외래교수 개인에 대한 대우와는 별개의 문제다. 지난 학기 대비 이번 학기에 수업을 맡은 외래교수는 26명이나 줄었다. 1인당 강의 수 역시 2014년 이후 최저로, 외래교수의 생존권과 학생들의 교육권이 침해 받았다. 기사와 대자보를 단 한 번도 읽지 않은 게 아닌 이상, 학교의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비판 논거를 의도적으로 뭉갰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외래교수 임의 조정을 중단하라'는 학생 측의 요구에 대한 명확한 대답은 없다. “강사법을 준수하겠다.”는 공허한 대답만이 남았다. 공허한 학교의 설명을 납득하라는 건 학생들을 기만하는 것에 가깝다.

 복사실, 문구점 문제 역시 학생 측의 비판을 회피한 채 학교의 입장만 나열하고 있다. 총장은 “학교의 이윤 추구로 인해 발생한 사안이 아니다.”, “수의 계약은 학교가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자신도 더불어 숲 정신에 따른 상생을 바라고 있다.”며 학교의 사정을 이해하고 협조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총장의 설명은 학생들의 의문을 해소할 수 없다. 학교가 이윤 추구가 아닌 복사실, 문구점과 상생할 의도였다면, 공개입찰 배점기준에서 소상공인이 기업을 상대로 불리할 수밖에 없는 임대료의 배점이 왜 가장 높았는지 설명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는 답변을 보며 학교를 이해하길 바라는 건 욕심이다.

 

사진=신서영 기자

 총장은 학생들의 비판을 왜곡하며 학교의 책임을 은폐했고, 학교의 노력을 강조하며 학생들에게 신뢰를 부탁했다. 학생들은 다시금 학교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학생들이 날선 비판을 하게 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학교는 치열한 반성과 면밀한 대책을 세우고 있는가?”

“학교는 학생들의 요구를 전면적으로 수용할 생각이 있는가?”

“학생들은 언제까지 학교를 믿고만 있어야 하는가?”.

 

학교의 행동이 정말로 선의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억울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의도가 좋더라도 비판에 대한 해명이나 실질적인 대응책에서 미숙한 부분이 너무나도 많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성공회대가 정말로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지향하고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한 학생과의 의사소통을 바란다면, 학생들의 비판에 귀 기울이고 학생들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글=박상혁 기자

사진=신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