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2026 대학언론인 콘퍼런스: 도약' 행사의 일환으로 기고된 전직 대학언론인 활동 수기입니다. 프롤로그 맑고 파아란 하늘에 한두송이 피어난 순백의 매화 한두송이를 발견한 2월 마지막주 대학언론인 네트워크 후배들을 광주 전남대 근처에서 만났다. 10여년 넘게 대학언론의 제 역할을 위해 동분서주,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열정과 정성이 30여년 전 전대신문과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 집행부 활동과 오버랩 됐다. 지천명 나이대의 절반을 지나면서도 살아온 삶 전체의 원동력과 저력을 배우고 익힌 시기가 언제였냐고 물으면 단연코 그 시절을 꼽는다. 아무리 달라지고 다른 각도의 어려움이 있는 시대 상황에도 끊임없는 도전과 용기, 공익을 위한 처철한 몸부림과 관계 맺기에서 다져지는 인격 수양과 내공은 사서라도 경험해야 자신을 버티는 진짜 힘이 된다는 사실인 것 같다. 다시 그 시절을 반추하며 패기 넘치는 청년 후배들을 만나 힘을 얻는다. 1990 대학 1학년 과에서 여러 활동을 하다 11월 전대신문 수습시험에 응시했다. 자연대 쪽에서 5·18 광장에 울려 퍼지는 신디 연주 소리의 파동을 느끼면 왠지 뭔가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묘한 기분을 떨칠 수
*본 기사는 '2026 대학언론인 콘퍼런스: 도약' 행사의 일환으로 기고된 전직 대학언론인 활동 수기입니다. 들어가며 살아오며 단체다운 단체에 속한 적이 적기에, ‘활동 수기’라는 것을 처음 써 봅니다. 돌아보는 글을 쓰려니 어쩐지 묘한 기분입니다. 못다 한 일들, 그것보다도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일이 생각나 마음이 무겁습니다. 또 저는 짧은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지금은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기에,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어떤 것을 얻어갈 수 있을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용기를 주거나 격려하는 글을 꾸며내기보다 솔직한 이야기들을 솔직히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청탁받은 원고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성주의를 공부하고 대학언론에서 활동한 이야기를 활동 수기로 써 달라. 사실을 말하자면 선뜻 쓰기 망설여지는 주제였습니다. 저는 여성주의 공부를 비롯한 사회학 공부에서 손을 놓은 지 한참이 되었고, 대부분의 이론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니까요. 특히나 남성인 제가 부정확한 기억으로 여성주의와 관련해 쓰는 것이 부적절하다고도 생각했습니다. 다만 한 번쯤은 정리하고 싶었던 이야기이기도 하고, 이곳에서 토해내는 것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으므로 간략히 정리
*본 기사는 '2026 대학언론인 콘퍼런스: 도약' 행사의 일환으로 기고된 전직 대학언론인 활동 수기입니다. 저는 2012년부터 2013년까지 경북대신문에서 학보사 기자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경북대 복현교지에서 편집위원과 고문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지금도 언론과는 무관한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당연하게도 저는 본디 기자를 꿈꾸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학부와 대학원 시절 대학언론의 현장은 즐거웠습니다. 취재를 하고 글을 쓰며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과정은 그저 즐거웠습니다. 그래서 처음 수기를 써 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적지 않게 고민했습니다. 많은 대학언론인들이 말하는 ‘사명감’이나 ‘맞서 싸울 용기’가 제게는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학보사와 교지는 결이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 학내 공식이라는 타이틀과 주간 교수가 없다는 점에서 교지가 좀 더 자유롭긴 하지만, 그렇다고 고충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2014년 복현교지에서 활동하던 시절, 예산도 인력도 늘 부족했습니다. 교지 발간이 학생회비로 운영되다 보니 전학대회에서 매 학기 인준을 받아야 했으며, 매 학기 살얼음판을 걷는 듯했습니다. 몇 안 되는 교지 편집위원들이 취재나 글뿐만
*본 기사는 '2026 대학언론인 콘퍼런스: 도약' 행사의 일환으로 기고된 전직 대학언론인 활동 수기입니다. 내가 잘난 줄 알았다. 대학언론에서 무려 해직당한 뒤... 중략, 시사IN 대학기자상 수상. 대학알리 입성에 대학언론인 네트워크라는, 이름도 참 긴 비영리단체 대표! 멋있지 않은가, 남 글에 지적하고 내 글에 자뻑하는 삶. 자세히 말해볼까. 대학 1학년에 장학금 비리를 폭로하는 기획 기사를 써냈다. 단과대학 회장과 부회장이 합심해 몇천만 원의 장학금을 학생으로부터 빼앗았다. 취재해 보니 단과대학 수준이 아니었다. 총학생회에서 조직적으로 해오던 짓이었다. 총학생회 자체가 거대한 사기였다. 이 기사를 내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신문이 발행되던 날 모든 가판대에서 신문을 훔쳤다. 그 단과대학 회장이 트럭을 몰고 캠퍼스를 누볐다더라. 지역 신문은 물론 한겨레에서도 내게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냐"고. 나도 몰랐지. 내 역작이 그렇게 사라질 줄은. 시사IN 대학기자상에 출품했는데, 놀랍게도 최종 후보까지 갔다. 떨어졌는데 아쉽지는 않았다. 나는 대학언론 소속이 아니었거든. 혼자 취재하다보니 동료 기자들과의 갈등이 많았다. "허락도 없이 취재하냐"는 편집국장,
*본 기사는 '2024 대학언론인 콘퍼런스: 불씨' 행사의 일환으로 기고된 전직 대학언론인 활동 수기입니다. 저는 2009년 대학에 입학한 후 학보사에서 3년을 마쳤고, 미디어센터 간사를 1년간 맡으면서 대학생활 대부분을 대학언론과 동고동락한 평범한 대학언론인 출신 직장인입니다. 사실 제 개인적인 이력은 여러 언론에 노출된 다른 대학언론 활동가와 달리 이렇다 할 직접적인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습니다. 학보사 기자라는 대학언론인 신분에 어울리지 않게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을뿐더러 정작 임기를 마친 학보사가 폐간될 뻔한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이러한 아픔을 공공연하게 자랑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이유가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번 기회로 옛날을 회고하며 졸고를 작성하다 보니 한때 제가 관리했던 커뮤니티에서 활동했던 여러 대학언론인의 이름이 다시금 스쳐 갑니다. 제가 만든 '전국 대학생 학보사기자 페이스북 모임' 페이스북 그룹은 여러 대학이 조직적으로 기획한 게 아닌 단순한 계기로 시작되었습니다. 과거 1980년대부터 2000년대 학번 현직들이 사용하였던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이하 전대기련)의 인터넷신문이자 홈페이지인 Unews(유뉴스)는 제가 학보사 기
*본 기사는 '2024 대학언론인 콘퍼런스: 불씨' 행사의 일환으로 기고된 전직 대학언론인 활동 수기입니다. 대학언론을 위해 많은 일을 했지만 돌아보면 후회뿐이었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이것밖에 못 했다는 후회. 하지만 극복했다. 실패했지만 이것보다 잘할 수도 없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나는 학보사에서 3년, 대학언론협동조합에서 5년, 20대의 8년을 대학언론으로 채웠다. 학보사에서 편집장을 하면서 총장, 주간교수와의 편집권 갈등을 겪었고 퇴임한 이후 비슷한 사정의 친구들과 함께 2013년 5월, 대학언론협동조합(현 대학알리)을 창업했다. 대학의 예산과 검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탐사보도 하는 독립언론을 확산하고자 프랜차이즈 사업 ‘N대알리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한국외대에서 ‘외대알리’를 시작으로 성공회대 ‘회대알리’, 세종대 ‘세종알리’, 이화여대 ‘이대알리’, 서울시립대 ‘시대알리’, 한림대 ‘한림알리’, 단국대 ‘단대알리’ 등을 창간 지원했고 연합 인터넷 언론사 ‘대학알리’를 창간했다. 대학언론협동조합은 소속 기자들에게 미디어와 경영 교육을 제공했고 광고영업과 각종 지원사업을 통해 발행비를 지원했다. 각 알리 경영팀은 개별 상권에서 각자 광
*본 기사는 '2024 대학언론인 콘퍼런스: 불씨' 행사의 일환으로 기고된 전직 대학언론인 활동 수기입니다. 무덤덤해지는 상황은 두렵다. 이 때문에 대학언론에 투신했다. 스무 살, 평소와 다름 없이 오전 9시 강의를 듣기 위해 학교 셔틀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는 보통 강의 시작 3분 전쯤 도착했다. 나를 비롯한 차에 탄 사람들은 지각할까 제각기 강의실로 달려갔다. 분명히 학교 행정의 문제가 맞다. 학생을 배려하지 않은 것이다. 버스를 함께 탄 어느 이가 언성을 높이며 불만을 말하기 전까지는 이게 문제라는 인식도 하지 못했다. 이제껏 나 역시, 그 누구도 학교 측에 개선을 요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고는 소시민적으로 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대학언론을 시작한 계기다. 만물에 무덤덤해지지 않으리라. 이런 마음으로 동아대학보 기자가 됐지만 모든 것이 어려웠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짓눌리던 나는 학업과 대외활동, 대학기자 활동을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었지만 그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무거운 짐이었다. 특히 학보 기자 활동은 기획 회의, 취재, 기사 작성, 조판이라는 사이클을 매달 반복하다 보니 가장 고된 일이었다. 이 시기를 지나 우리 손으로 만든 신문이 나오
*본 기사는 '2024 대학언론인 콘퍼런스: 불씨' 행사의 일환으로 기고된 전직 대학언론인 활동 수기입니다. 눈떠보니 대학언론인 늦깎이 대학 언론인이 되었습니다. 대학 언론은 무릇 무엇인가를 지적하고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주제넘게도(당시 학교 관계자 표현에 의하면) 학교 예산에 관한 대담을 진행하는 팟캐스트를 제작하고 학생자치기구인데도 잘 알려지지 않은 조직에 대한 탐사보도를 위해 학보사와 합동 취재도 시도했습니다. 모두 예상하신 데로 금방 들통 났습니다. 언론 3사(학보사, 영자신문사, 방송국) 합동 워크숍에서 학교 측 관계자에게 공개적으로 당한 면박과 비난을 훈장으로 얻고 그만두었습니다. 애초에 학번에 맞지 않는 특별대우였으니 조용히 떠나주는 게 남은 구성원에게 덜 피해 가는 방법이었습니다. 이것저것 도전해보았기에 짧지만 아쉽기보다는 함께해준 동료들에게 미안했고 누군가를 원망하지는 않았습니다. 눈감으니 독립언론인 복잡한 이슈들에 관심 끄고 살자니 생각지도 못 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모교가 어느 날 교육부의 정부 재정지원 제한 대학이라는 처음 듣는 희한한 타이틀을 얻었는데 아무도 책임 있는 설명이 없었습니다. 모든 학우가 사태의 본질은 모른
*본 기사는 '2024 대학언론인 콘퍼런스: 불씨' 행사의 일환으로 기고된 전직 대학언론인 활동 수기입니다. 차종관이 퇴임한다기에 축하한다고 했더니 관짝에 들어가 있던 나를 끄집어냈다. 벌써 10년 전 이야기다. 인간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의도적으로 상실해 자신을 보호한다고 한다. 더듬어도 기억이 잘 안나는 걸 보니 학보 생활이 고통스러웠단 증거다. 그러게 왜 학보를 해서.. 모든 문제는 마감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것은 진리다 배재신문은 혼자 운영됐다. 들어가보니 국장이 없었고, 너 국장하라길래 수습도 없이 1학년 국장이 탄생했다. 선배 그게 뭐죠? 먹는건가? 발행 간격은 격주였고, 대판 4면을 혼자 썼다. 조판도 직접 했다. 데스킹도 내가 보고, 원고도 내가 작성하고, 디자인도 내가 짜다 보니 조판 프로그램인 인디자인에 바로 기사를 갈겨 넣었다. 미쳐 돌아간 거다. 당연히 퀄리티는 조악했고, 문장은 길었다. 여러 학보사의 기자를 만났다. 벤치마킹하려고 갔더니, 학보사가 얼마나 힘든지만 들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이걸 계속 해야하나 고민하며 마감을 치다가, 당연히 정신이 나가기 시작했다. 원래 마감 앞두고 하는 딴짓이 가장 재미있는 법. 하라는 마감은
*본 기사는 '2024 대학언론인 콘퍼런스: 불씨' 행사의 일환으로 기고된 전직 대학언론인 활동 수기입니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그것을 말할 권리는 내 목숨을 걸고 지킬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Voltaire) 평전에 수록된 위 한 문장은 2010년도 초반의 대학언론을 가장 잘 표현하는 문구라고 생각합니다. 대학본부의 편집권 침해에 대항하던 어느 학보사의 결단 저는 2011년에 대학에 입학한 후 교내 학보사에 입사해 정기자로 활동했습니다. 학보사실 한쪽 벽에는 졸업한 선배들이 붙여놓은 “자유언론 정론직필”이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붙어있었는데, 새내기였던 제 눈에도 제법 멋있어서 볼 때마다 자부심에 가득 차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학보사 기자실 문을 열었는데, 당시 편집장이었던 선배가 벽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울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찌할 바를 몰라 조용히 문을 닫고 도망갔어요. 그 다음날 편집장이 긴급회의를 소집했고, 우리가 다함께 밤새워 작성했던 몇몇 기사들이 우리가 작성한 대로 발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전했습니다. 기사에 거짓말이라곤 단 한 마디도 쓰지 않았는데 기사를 갈아엎
*본 기사는 '2024 대학언론인 콘퍼런스: 불씨' 행사의 일환으로 기고된 전직 대학언론인 활동 수기입니다. 대학 언론도 언론이다. 2020~2021년에 몸담던 숭실대학교 신문사 숭대시보도 언론이었다.1 당시엔 숭대시보를 향한 전방위적 탄압이 이어졌었다. 기자 해임, 기사 수정 압박, 예산 삭감, 배포 중지 등 그야말로 ‘언론 탄압 집합체’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의 상황을 되짚으며, 향후 이와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아야 함을 전한다. 1) 기자 전원 해임 2021년 숭실대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로 인한 극도의 혼란기였다. 대학생들이 캠퍼스로 등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여느 대학보다 일찍 대면수업을 하는 ‘대면 수업 선도대학’ 타이틀을 거머쥐려 했기 때문이다. 그 야욕이 졸속행정을 낳고, 학생들의 혼란만 키웠다. 2021년 7월 7일(수)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1,200명을 넘어서며 4차 유행이 본격화되자, 숭실대 총학생회는 7월 26일(월)에 ‘2021학년도 2학기 전면 비대면 수업 요청’ 공문을 발송했다. 이에 대학 측은 29일(목) ‘2학기 개강 후 첫 5주’동안은 비대면 수업 진행을 결정한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