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어떤 소리도 다 들을 수 있다.
노래소리, 악기 연주소리, 잡담소리, 소근대는 소리, 이 모든 소리를 한꺼번에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우리학교에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잔디광장을 지나 지하로 연결된 계단을 따라 한참 내려가면 등장하는 미지의 공간. 이 곳은 중앙풍물패 연습실을 포함해 새물결, 오디오필, FA, 외인부대 등 많은 음악동아리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다. 이곳에 가면 어떤 소리도 다 들을 수 있다고 해서 찾아왔다고 인사를 건네니 한 동아리원이 웃으며 문을 열어준다. 그 웃음의 의미를 알아차리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곳은 마치 최신식돌비사운드를 탑재한 음향시스템이 갖춰진 듯여러 동아리방에서 나오는 소리가 여과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음악동아리에게 합주 연습은 필수인데, 이 소리들이 너무나 생생하게 다른 동아리방으로 흘러 들어가 결국 모든 동아리방의 소리가 물아일체의 경지를 이루는 지경이 된 것이다.
(지하3층 동아리방의 모습, FA, 외인부대, 노래나래, 맥박 등 음악동아리들이 줄지어 있다. )
( 학내 소음에 관한 수많은 제보들, 비단 동아리방 뿐만 아니라 여러 부분에서 문제제기가 되고 있다.)
얼마나 방음이 안되길래? 그래서 직접 체험해봤다.
#상황1 : 조용한 가운데 옆 동아리방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음
목소리가 들린다. 너의 목소리가 들린다. 들리는 정도가 아니라 대화의 내용까지 엿들을 수 있다. 옆방 사람들의 은밀한 비밀까지 모두 알아내고 싶다면 이곳으로 오라.
#상황2 :일렉기타와 드럼연주를 시작함
한 동아리방에 들어가 일렉기타와 드럼연주를 부탁해보았다. 그리고 소음측정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소리의 정도를 측정했다. 결과는 85데시벨, 좁은 공간에서 밴드 연습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일반적으로 나올 수 있는 음량이다. 다음으로는, 벽 하나를 건너서 옆동아리방으로 건너가 똑같은 조건으로 측정해 보았다. 결과는 83데시벨, 큰 차이가 없었고 실제로 들리는 소리도 매우 크게 들렸다. 일반적으로 지하철 내에서의 소음이 80데시벨, 시끄러운 공장 안과 굴삭기 소음이 90데시벨정도다. 결국 한 동아리에서 합주를 시작하는 순간, 옆 동아리에서는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누거나, 회의를 하는 등의 일상적인 동아리활동이 매우 어려워진다. 밴드 동아리들이 줄지어 모여있음을 감안하면 이는 더 큰 문제가 된다.
(음량을 직접 측정한 모습, 소음측정어플 sound meter ver 1.6.6을 기준으로 하였다)
#상황 3 :두 동아리가 동시에 연습을 시작함
옆 동아리에서 연습을 시작했다. 연습을 하려면 자기 악기와 같은 밴드원들이 내는 소리를 자세히 들어야 하는데, 옆 동아리에서 흘러나오는 합주소리가 너무 커서 어쩔 수 없이 여기서도 음량을 키워야 한다. 이쪽에서 음량을 키우자, 저쪽에서도 음량을 키우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경쟁하자고 하는건 아니었는데. 이미 데시벨 측정은 의미가 없을 정도로 소리가 커진 상황. 그래도 어쩌겠는가, 연습은 해야한다.
그렇다면 동아리원들이 느끼는 불편은 어느 정도일까? 그래서 직접 만나보았다.
다음은 지하캠퍼스 지하3층에 있는 외대 통기타 동아리 노래나래 회장과의 인터뷰.
Q. 현재 동아리방의 방음 정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A. 방음이 거의 안되는 상태다. 속닥속닥 거리는 소리도 옆방에 들린다.옆방에서 합주연습을 위해 소리를 키우면 우리도 연습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소리를 키워야 한다.
Q. 실질적으로 동아리활동에 제약이 되는 부분이 있는가
A. 아무래도 옆동아리에서 큰 소리가 나면 연습의 효율성이 떨어진다.공연이 다가오면디테일한 부분도 맞춰봐야 하는데 그 부분이 어렵다. 하지만 음악동아리들이 모여있고, 서로 어쩔 수 없이 소리를 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피해를 받는다, 소음이다” 이렇게 표현하긴 어려울것 같다. 다만 방음 자체가 아예 안되다 보니까 서로 감안을 해야하는 상황이다.
Q. 방음 문제로 인해 동아리들 간에 마찰이 생긴적은 있었는가
A. 방음이 안되다 보니 말소리도 들리고, 연주가 그대로 들리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없진 않았다. 하지만 다들 연습을 해야 하고, 밴드부들끼리 암묵적으로 서로 이해하는 부분이 크다.
Q. 방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체적인 노력을 한적이 있는가
A. 다른 동아리에서는 자비를 들여서 벽에다가 무얼 붙이고 한다던데, 그 효과는 크지 않다고 들었다. 건물 자체가 이렇게 지어진 입장에서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자치공간을 제공할 때 그것에 맞는 환경까지 조성해 주는 것이 학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학교가 영리단체는 아니지 않는가.
노래나래 회장을 포함해 지하3층에서 활동하는 동아리원들을 만나본 결과 의견은 대체로 일치했다. 모두 방음문제에 대해 문제를 느끼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해결방안이 마땅치 않고, 같이 음악을 하는 동아리이기 때문에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의견이었다. 풍물패의 사정도 비슷했다. 꽹과리, 북, 장구소리가 크기 때문에 연습과정에서 새어나가는 소리에 대해 내부적으로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들 마땅한 대책을 찾긴 어려워 보였다. 단지 그들은 정상적인 동아리활동을 할 뿐인데, 자신들이 하는 활동이 다른 동아리에게서는 하나의 제약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곳이 지어졌던 그 시절로 되돌아가보자.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무엇일까? 현재 지하캠퍼스 동아리방은 2012년 노천극장이 철거되고 노천지하에 있던 동아리방이 이전되는 과정에서 생기게 되었다. 이전 과정, 설계 등에 대한 사실관계 파악 및 학교의 입장을 듣기 위해 학교 시설관리팀과 건설기획팀에 직접 찾아가 보았다.
< 시설관리팀 >
Q. 노천극장 지하에서 현 위치로 동아리방을 이전할 당시 현재 동아리방이 있는 구역이 원래는 강의실이 배정되는 자리였고, 추후 계획이 바뀌면서 가벽을설치해 동아리방을 만들었다는 말이 있다. 사실관계와 부합하는가?
A. 사실과 다르다. 동아리방이전시소리나는 동아리는 지하3층으로 배정하기로 처음부터 되어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Q. 방음 문제에 대해서 학생들이 시설관리팀에 개선 요구를 하거나 문의를 한 적이 있는가?
A. 동아리방을 이전하고 난 뒤 총학생회와 동아리연합회 요청에 따라 중앙풍물패 연습실에 추가적으로 보완조치를 한 적이 있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문의를 받은 바 없다.
Q. 동아리방 이전 후 밴드 동아리와 풍물패가 일렬로 늘어서 있는 지하3층 구간에 대해서 방음 관련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A. 노천 지하에 있을때에도 비슷한 문제는 있어왔다. 지금 문제와도 크게 다르지 않는다고 본다.
Q. 학생들이 계속해서 불편을 호소한다면, 학교측에서 현실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대책이 있는가
A. 건축할때 아예 처음부터 구조적으로 결정된 부분이기 때문에 추후에 보완한다는 것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른다. 자칫하면 비용만 많이 들고 학생들이 요구하는 수준은 달성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Q. 동아리방의 총체적 구조를 바꾸지 않더라도 벽에 흡음재를 추가로 덧댄다든지 하는 수준의 대책은 나올 수 있는 것 아닌가?
A. 흡음재의 경우 대부분 화재에 매우 취약하다. 소방검열이 나올 경우 바로 철거명령이 나올 수 있다.
Q. 불연재로 쓸 수 있지 않는가?
A. 그렇다 해도 학생들이 원하는 일정 수준을 달성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든다. 한정된 예산과 인원에서 모든 부분에 예방조치를 할 수는 없다. 시설관리팀에서는 학생들의 즉각적 요구가 있을 경우 다방면으로 적극 응대하려 노력하고 있다.
< 건설기획팀 >
Q. 지하캠퍼스 밴드 및 풍물패 동아리방의 방음실태를 확인한 결과 일부 동아리방에서는 말소리가 그대로 들릴 정도로 방음이 취약하다. 동아리방 사이의 벽은 어떤 재질로 만들어졌는가?
A. 말소리가 들린다고? 그럴리는 없다. 울림이 큰 악기를 연주하게 되면 일정부분 소음은 나올 수밖에 없다. 언급한 동아리방 사이의 벽은 흡음재가 들어간 석고보드로 되어있다. 통상적인 수준이다.
Q. 직접 확인한 결과 건설기획팀에서 알고 있는수준보다는훨씬 방음문제가 심각하다. 구조적 문제는 없는 것인가?
A. 공사 초기 설계시동아리방 배정이 어느정도는 되어있었지만 면적, 동아리의 수 등 자세한 사항이 확정된 상태는 아니었기 때문에 무작정 완벽한 설비를 할 수는 없었다. 방음문제는 정도의 문제라고 본다. 어디까지 학교에서 해줄것이냐의 문제이다. 기본적인 시설을 해주고, 사용함에 있어 문제점이 발생한다면 차후 대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물론 재정적인 여력이 부족하다는 점도 있다.
Q.그렇다면 초기 설계단계와 비교해 동아리방이 합쳐지거나 나눠져서 배정된 사례도 있는것인가?
A. 큰 방을 두개로 나누어 배정한 곳도 있다. 일반적으로 소리가 안넘어가게끔 천정 위에 슬라브까지 벽재를 다 세우는데, 그렇게 나뉜 공간은 그런 부분이 빠져있을 수도 있겠다. 지하3층 동아리방이 애초에 동아리방을 염두로 설계된 것은 맞지만, 음악 및 풍물 동아리에 특화돼서 설계된 것은 아니다. 그런 동아리방의 경우 문제가 될 경우 별도에 시설투자가 이루어져야 되지 않나 생각한다.
Q. 완벽한 방음은 아니더라도 현실적인 보완대책이 필요한 것 아닌가?
A. 적정한 투자를 통해 감안해서 시공을 했는데, 만족도에 차이라고 본다. 다만, 지은지 5년이 되었는데 이것이 이슈화되고 있다는 것은 처음 들었다. 방음수준이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 심각한지는 잘 모르겠다. 현실적으로 벽을 허물거나 하는 것은 어렵고흡음재를 붙이는 정도가 가능한 수준의 대안이라고 본다.
Q. 건설기획팀에서 관련 문제에 대해 추후 확인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A. 관심을 가지고 확인을 하겠다.
학생들의 목소리가 모이고 있지 않다.
지하캠퍼스 동아리방 설계시 입주할 동아리에 관한 자세한 부분들이 협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초기설계가 이뤄졌고, 풍물 및 음악 동아리가 작은 벽을 두고 밀집되어 있는 까닭에 많은 동아리원들이 불편을 겪고있다. 하지만 취재 과정에서 학교측과 학생들이 느끼는 방음 수준에 대한 의견차가 상당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훕스라이프, 대나무숲 등 다양한 커뮤니티에서 이러한 문제가 제기되었으나 대부분 한번의 불평, 작은 푸념으로 끝나 버렸다. 동아리방 안에서는 같은 처지의 동아리끼리의 상호 배려와 존중이라는 좋은 명분아래 모두가 참고 견뎌야 했던 일이다. 학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수 있는 동아리연합회는 관련 문제에 대해서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동아리원들의 요구를 전동대회 등을 통해 듣고 있다고 했다. 다만, 방음 문제보다도 실제로 활동하기도 어렵고 정주하기 어려운 사회과학관 지하의 동아리들과 물이새는 국제학사의 동아리 등 시급한 부분에 우선순위를 맞추고 있다고 한다. 지하캠퍼스 문제도 당연히 추가로 진행해야할 사안이라고 인식하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덧붙였다.
이 모든 일들이 어쩔 수 없고, 견뎌야만 하는 일일까?
알리는 이번 취재과정을 통해 방음 정도의 심각성을 직접 확인했고, 다양한 동아리원들을 만나 그들이 동아리생활에 불편을 겪고 있음을 확인했다. 또한 학교의 시설관리팀과 건설기획팀을 찾아가 이러한 사실을 알렸고, 학생들의 요구가 있을 경우 흡음재를 붙이는 등 현실적인 추가 보완대책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음을 확인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각 동아리들이 서로를 배려하며 동아리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고, 동아리연합회에서도 이 사실을 인지하고 노력하고 있음을 알았다.그리고 사실관계와 각자의 입장을 묶어 여러분에게 전달한다.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하는 불편일까, 스스로 찾아야 하는 권리일까. 그것이 이 기사를 읽는 독자들에게 던지는 마지막 물음이다.
현우식 기자 inspiredw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