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금)

대학알리

이화여자대학교

5월 스승의 날 특집: 역사교육과 오영찬 교수님 인터뷰

스승의 날 특집 이화의 인기 교수님 인터뷰 역사교육과 오영찬 교수님 (aka 오블리)

학창시절이라는 청춘의 향기가 가득한 시기, 각자 기억하고 싶은 은사 한 분씩은 있지 않을까. 알아볼 수 없는 글씨가 가득한 초등학생 시절 일기장에 애정 가득한 코멘트를 써주셨던 선생님이 기억난다. 또, 흔들렸던 그 시절, 방황이 끝날 때까지 옆에 계셔주시겠다던,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셨던 선생님이 떠오른다. 기자들은 5월의 이름을 빌려 은사님들을 추억해보면서 이화의 벗들에게는 어떠한 은사님들이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이대알리는 5월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지난 4월 22일 하루 동안 ‘이화의 벗들이 이야기를 듣고 싶은 교수님’이라는 주제로 제보를 받았다.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매력 넘치시는 이화의 교수님들, 그리고 관련된 에피소드에 대한 제보가 넘쳐났다. 그 가운데 ‘좋아요 수’를 가장 많이 받으셨던, ‘중년미 폭발’, ‘미모 리즈’, ‘반전매력’ ‘오블리(오영찬+러블리)’라는 키워드로 요약되는 오영찬 교수님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학생들이 교수님을 애정 섞인 호칭 ‘오블리’(오영찬+러블리)라고 부른다는 걸 알고 계신가요? 교수님께서 생각하시기에 교수님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요?

네. 들어는 봤어요. 제일 어려운 질문이다. 잘 모르겠어요. (굉장히 부끄러워하심.)

맘에 드세요?

그냥 쑥스럽죠.

수업 중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강력한 에피소드는 없는데 1학년 ‘한국사제문제와역사교육’ 수업이 신경이 많이 쓰여요. 전공 필수라서 역사, 사회, 지리 전공으로 나뉘는 사회과교육과 80명이 다 듣는 수업인데, 학생들이 뭘 아는지 뭘 모르는지 모르겠어요. 저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돼서 기억이 잘 안 나거든요. 때에 따라서는 학생들이 모를 거로 생각해서 막 설명을 많이 해줬는데 보면 다 알고 있어요. 또 잘 알 거로 생각해서 설명을 잘 안 하고 넘어갔는데 의외로 하나도 모르는 거야. 표정을 보면 설명을 한참 하는데 다 아는데 자꾸 설명하는구나 하는 게 느껴지고, 알 거라고 생각을 하고 설명을 안 하고 훅 넘어갔는데 보니까 표정이 다 모르는 표정인 경우도 있고. 그게 1학년 수업이 참 힘든 것 같아요. 

학교에서 교수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공간이 있다면 어디인가요?

포관에서 공대까지 올라가는 오르막 있죠. 나는 그게 좋아요. 가끔 논문 쓰다가 안 풀리면 거기 오르막을 올라가요. 요즘 공사 차량이 많이 왔다 갔다 해서 아쉬운데 차가 안 다니면 한적하잖아요. 그쪽으로 올라가면, 일단 올라갈 때 속도를 낼 수가 없으니까 올라가면서 생각을 정리하기에 되게 좋은 길이에요. 산책 삼아, 머리가 복잡하고 생각이 정리가 잘 안 될 때 거기를 올라가면서 좀 생각을 정리를 많이 해요. 의외죠? 교육관, 인문관 쪽이 다 보이는 뷰도 좋아요. 한 번 해보세요. 목적을 가지고 급하게 올라가면 힘이 드는데, 그렇지 않고 목적 없이 생각 정리하기 위해서 혼자 걸어야 좋아요. 요즘은 공사 차량 때문에 공기가 안 좋고 소음이 많아서 사색이 깨져서 안 좋지만 사대 샛길로 해서 포관 앞으로 저는 많이 다녀요.

교수로 오시기 전 중앙박물관 학예사로 계셨는데, 학예사로 사는 삶과 교수로서의 삶을 비교한다면 어떤가요?

제가 10년 넘게 박물관에 근무했는데 박물관에 97년에 들어가서 우리 대학에 2012년에 왔거든요. 박물관은 워낙 일이 많으니까 학문적으로 저절로 쌓이기는 하는데 자기를 축적할 여유는 없다보니 뭔가 내가 소진된다는 느낌도 들고 엄청나게 힘들어요. 대신 매일 하는 일들이 새로우니까 박물관은 되게 신나고 재밌었죠. 제 경우에는 외규장각 의궤, 북한 문화재 전시도 해서 북한도 10번 넘게 왔다 갔다 했었고, 금강산 호숫가에서 삼겹살도 구워 먹고 평생 할 수 없는 좋은 경험들을 많이 했어요.
대학 같은 경우에는 박물관과 비교하면 routine 하니까 좀 지루한 감이 있죠. 여기는 조용히 연구하고 교육하는 곳이니까 막 신나고 급하게 돌아가면 안 되잖아요. 하지만 좋은 게 자기 축적의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으니까 연구하면서 나 스스로 쌓아가는 느낌이 계속 들어요.
바로 대학에 온 것보다 거친 들판에서 사회 경험을 세게 하고 대학을 오니까 인생을 두 번 살아보는 것 같아 나로선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가지고 있는 경험들을 학생들하고 나눌 수 있으니까 그것도 재밌죠.

설렘과 불안이 공존하는 이화인들을 위해서 학생들이 가장 기쁠 때 기억했으면 하는 한 가지, 그리고 힘들 때 기억했으면 하는 한 가지가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학생들이 취업경쟁과 학점경쟁 속에서 매우 힘들어하는데 학점에 너무 신경을 안 쓰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학점이 사회에 나가면 별로 쓸 데가 없어요. 학점이 되게 절대적일 거 같은데 살다 보면 학점이 고등학교 때 성적과는 달리 절대적이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1학년 세미나 학생들에게, 내가 해놓고도 참 괜찮은 말 같은데 (웃음) 초, 중, 고등학교까지의 인생이 답이 정해진 객관식 인생이라면(학교에서 선생님이 시키는 것, 집에서 부모님이 시키는 것대로 하면 되는 인생), 사회에서의 인생은 답이 없는 주관식 인생이라 말해요. 가장 쉬운 예로, 남자. 결혼 상대를 정할 때 얼굴 잘생긴 사람, 인간성 좋은 사람, 학벌 좋은 사람 여러 조건의 남자가 있지만 다 만족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있더라도 그 사람이 본인을 좋아하는 건 또 모르는 거고요. 본인도 학벌도 좋고, 인간성 좋고, 대인 관계 모두가 다 좋은 것이 아니고요. 직장도 어떤 직장이 좋은 직장인가도 사람마다 다 다르죠. 월급 많이 주는 직장이 좋은 사람도 있고 ‘사’자 달린 직업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요. 대학생활은 대학 졸업하고 사회에 나갈 주관식 인생의 과도기라고 생각해요. 객관식 인생을 빨리 버리고 주관식 인생으로 갈 준비를 하는 시기. 그걸 잘하는 사람은 사회에 나갔을 때 더 만족스럽고 행복하게 살 수 있고, 그게 준비가 안 되고 여전히 대학 때도 학점이라는 객관식 기준을 가지고 뭔가를 하려는 사람은 대학 다닐 때 학점은 높을지 모르겠지만, 사회에 나갈 준비는 부족한 거죠.

어떤 경험을 쌓는 게 주관식에 대처하는 좋은 방법일까요?

그건 주관식이기 때문에 답이 없어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책을 읽고 하는 다양한 경험을 해야겠죠. 무엇보다 자기 그릇에 뭔가를 채워 담으려고 하지 말고 사람의 ‘그릇’을 키우는 과정이 필요해요. 내가 생각하면서도 늘 학생들에게 얘기해주는데, 참 맞는 말 같아.
또 하나 내가 학생들한테 자주 해 주는 말이 있는데, 사람들이 자꾸 미래에 행복이 있을 거로 생각해서 행복을 좇아가기만 하는데 그게 어떻게 보면 어리석은 것 같아요. 취직하면 행복한 게 아니라 전에 박카스 선전처럼 그때그때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 진짜 행복한 사람이에요. 근데 모든 사람은 본인이 지금 행복하다는 것을 몰라요.

교수님은 지금 행복하세요?

행복하지 않지만(웃음) 행복하다고 느끼려고 노력하면서 살아요. 항상 감사하면서 살려고 하고 지나고 보니까 내가 늘 과거가 행복했더라고요….

 

한 시간 좀 넘게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우리 벗들이 교수님을 그리고 교수님의 수업을 왜 좋아하는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사투리 섞인 억양의 목소리, 교수님의 경험을 담아 전해주시는 진심 어린 이야기, 농담을 던지고 쑥스럽게 웃으시는 모습까지. 어느새 기자는 교수님의 팬이 되어 교수님의 세미나와 수업이 듣고 싶어졌다.

인터뷰의 끝자락에 교수님이 말씀해주셨던 우리의 삶과 행복에 대한 이야기들이 잊히지 않는다. 현재의 행복함을 느끼는 것, 당장 느끼지 못하더라도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삶, 그리고 그 삶의 그릇을 넓히고 채우기 위한 대학생활. 교수님의 말씀처럼 눈앞의 것을 좇아가고 정해진 것에 익숙해지는 것보다 주관식 인생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을 보내고 그 속에서 나의 행복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마지막으로 이대알리의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시고,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재미있게 전해주신 오영찬 교수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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