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2 (금)

대학알리

세종대학교

이해 안 되는 '한국 현대사의 이해'

우리 학교는 지난 2013년 ‘한국현대사의이해(이하 현대사)’라는 과목을 개설하고 이를 중핵필수선택(중선)과목으로 지정했다. 이와 같은 방침에 따라 13학번 학생부터는 이공학 계열 학생들을 제외하고 이 과목을 반드시 수강해야 한다.

과목을 운용하고 있는 교양학부의 이태하 학부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학생들이 문사철(文史哲)과 같은 인문학적 소양을 키울 필요가 있고, 기업체에서도 한국사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세계사, 서양철학, 글쓰기 수업과 함께 이 과목을 개설했다.”고 말했다.

역사를 둘러싼 갈등이 어느 때보다 첨예해진 요즘, 우리 학교의 현대사 수업은 이러한 목표를 잘 실현하고 있을까? 본지는 강의 개설 3년째를 맞이하여 이 과목을 점검해 보기로 했다.

 

강의 요목에 ‘5·16 군사혁명’

 

우리 학교는 매년 초 ‘세종요람’을 펴내고 있다. 세종요람은 학칙부터 학교 조직도, 전임교원 전공분야, 입학 연도별 교육과정, 강의 요목까지 우리 학교의 A부터 Z를 총망라한 책이다. 그 책에 수록된 현대사 설명은 다음과 같다.

♦2016년도 세종요람에 실린 '한국현대사의이해'

 

2014년부터 실린 위 설명은 지금까지도 동일하게 이어지고 있다. 무려 3개년 간 5·16을 군사혁명으로 기술한 것이다.5·16을 둘러싼 사람들 간의 논쟁은 지금도 적지 않지만, 법적으로는 5·16은 ‘군사정변’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1993년,1995년, 2003년에 ‘5·16은 쿠데타’라고 결정하였고 대법원 역시 2011년에 같은 판결을 내렸다. 뿐만 아니라 김영삼 정권때인 1994년 6월, 교육부는 5·16을 ‘군사정변’으로 바꾸기로 결정하고 현재까지 역사 교과서 집필 과정에 이와 같은 기준을적용하고 있다.

적어도 대한민국은 다섯 차례에 걸쳐 ‘5·16은 군사정변’임을 확인한 것이다. 즉, 학교의 이름을 걸고 나오는공식 문서에 실린 이 같은 서술은 우리나라의 견지와는 동떨어진 셈이다. 이에 대해 이태하 교수는 “요목을 쓸 때는 대학 강의의 특성상 항상 이런 저런 어려움이 따른다”며 “전반적으로 수정이 필요하기는 하다”고 말했다.

 

뉴라이트 계열 집필진 다수 참여

 

2013년 강의 시작부터 이번 학기까지의 모든 현대사 수업에서 공통적으로 쓰인 교재는 지난 2013년 2월 세종연구원(이사장 주명건)에서 펴낸 <한국현대사>이다. 본지가 2013-1학기부터 올해 1학기까지 현대사 수업을 담당한 교수 10명의 강의계획서 42건(외국인 학생 대상 강의 제외)을 전수 조사한 결과, <한국현대사>는 모두 주교재 또는 과제도서로 선정되어 있었다. 학교에서 이 책을 수업 교재로 지정했느냐는 본지의 질문에 이태하 교수는 “학교에서 나온 책이 있으니 (담당 교수들이) 참고하는 차원이었을 것”이라며 “(책을 지정할 경우) 교권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 (이 책을 교재로) 지정하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한편 본지 취재 결과 책 공동 집필자 16명 가운데 몇 명은 부적절한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거나 뉴라이트 계열의 인사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난 해 8월 13일 <중앙일보> 시론을 통해 “광복절은 대한민국 건국을 기념하는 날”이라며 “오는 8월 15일은 광복 70년이 아니라 ‘해방 70년, 대한민국 건국 67년’을 기념하는 광복절이 되어야 한세종알리-2016 4월호-인쇄용.indd 19 2016-04-05 오전 1:56:40다”고 주장했다. 뉴라이트 계열을 중심으로 나온 ‘8·15 건국절’ 논리와 매우 유사하다. 뿐만 아니라 이 교수는 지난 2007년엔 백범 김구를 “살아생전 대한민국 체제에 반대한 사람”이라고 표현하는가 하면 뉴라이트 계열 ‘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를 감수한 경력도 있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는 앞서 등장한 교과서포럼의 공동대표를 맡으며 뉴라이트 운동의 최전선에 서 왔던 인물이다. 특히 박교수는 2012년 7월 1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5·16을 혁명으로 얘기하는 것은 조금도 과장되지 않은 것이며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5·16이) 민주주의의 보루를 형성하는 데도 큰 기여를 했다”고 말했다.

유영익 한동대 석좌교수(제12대 국사편찬위원장 역임)는 대표적인 ‘이승만 찬양론자’다. 그는 2012년 2월, ‘제12회 이승만 포럼’에서 “후진국에서의 독재는 사실상 불가피한 것이 아닌가”라며 “이승만은 세종대왕과 거의 맞먹는 DNA를 가졌다”고 발언했다. 게다가 그는 지난 1996년 8월 <한국논단>에 ‘이승만 : 그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으로 게재한 글에서 한국인을 “짐승 같은 저열한 상태에 빠진” 존재로 묘사하기도 했다.

 

 

그밖에도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대안교과서 필진으로 참여했고, 강규형 명지대 교수는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이 다수 참여한 ‘한국현대사학회’의 창립준비위원과 섭외이사로 활동한 전력이 있다.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는 2004년 11월<동아일보> ‘뉴라이트, 침묵에서 행동으로 - (4) 소장 학자들도 나섰다’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뉴라이트 학자로 소개된 적이 있고, 계간 <시대정신>(2015년 8월부터 격월간으로 전환)의 발행인으로 이름이 올라와 있는 김세중 연세대 전 교수는 2004년‘자유주의연대’에서 출발한 뉴라이트 계열 ‘시대정신’의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16명의 저자 가운데 절반에 육박하는 7명이뉴라이트 진영과 직간접적으로 연계가 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저자들이 단순히 뉴라이트 진영의 인사라는 이유만으로는 비판할 수는 없겠으나 우리나라 역사를 두고 해당 진영에서 나왔던 발언들이 논란을 일으킨 적은 적지 않았다. 특히 식민지 근대화론 같은 주장이 뉴라이트를 중심으로 강하게 나왔었는데, 이러한 역사 인식에 대해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는 2008년 3월<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학자들의 신식민주의 사관이 유입되는 것”이라며 거세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와는 별개로 공동저자이면서 현재 우리 학교 재단인 대양학원의 이사로 재직 중인 주명건 세종연구원 이사의 경우,2004년 교육부 감사에서 교비 113억 원을 부당하게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 당시 재단 이사장직에서 물러난 전례가 있다.2011년 6월, 재단 이사회는 주 이사장을 학교 이사로 선임하려 했으나 교육부에서 승인을 내주지 않아 복귀 시도가 무산됐었다. 이에 2년 후인 2013년 6월, 재단 이사회는 주 이사장을 다시 재단 이사로 선임하였고 교육부도 재단 결정을 승인했다.

 

내용 서술 상의 불균형

 

<한국현대사>의 머리말에는 다음과 같은 주장이 실려 있다. 이 주장을 보면 이 책의 성격 및 논지 전개가 어떤 식으로 이뤄질지 쉽게 알 수 있다.

“국가 최고 지도자가 반체제적 역사관을 공공연히 옹호하게 되자 좌편향적 역사관을 가진 학자, 교육자, 문화계 종사자들은 크게 고무되어 더욱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현대사 왜곡의 폐해는 한층 심화 확대 재생산되는 악순환을 낳았다.”

우리나라 역사를 다룰 때마다 좌우 양 진영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점이 바로 현대사 부분이다. 특히 이승만박정희 두전직 대통령을 둘러싼 양측의 견해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이는 지난 해 가을 정부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전환을 추진하면서 현재 전국의 중고등학교에 보급된 검정 교과서들이 편향되었다고 주장한 근거로써 활용되기도 했다.

이 책의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에 관해 서술한 부분은 한 눈에 봐도 두 정권을 옹호하는 양이 압도적으로 많다. 먼저 이승만 정권(1948~1960)을 서술하는 부분을 살펴보면, 이승만의 업적에 대해서는 ‘괄목할 만한’, ‘획기적인’과 같은 어휘를 사용하거나 번호까지 매겨가며 설명하는 집필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의 독재나 ‘발췌개헌(1952)’, ‘사사오입개헌(1954)’과 같은 사건들은 짤막하게 서술하는 데 그쳤다.

박정희 정권(1961~1979)을 부분을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긍정적인 서술, 박정희 전 대통령을 두둔하는 서술은 열두 페이지에 걸쳐 있는 반면에, 박정희 정권을 비판적으로 서술한 부분은 단 두 페이지에 지나지 않았다. 단순히 쪽수로만 따져도‘긍정론’이 ‘비판론’에 비해 6배나 더 많은 것이다. 내용적으로도 박정희 정권의 산업화는 집중적으로 다루면서도, 산업화 과정에서 벌어진 ‘전태일 분신자살 사건(1970)’ 등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기 위해낸 책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한 쪽으로 쏠려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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