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아침을 거르면 편의점에서 두유를 사서 마신다. 두유를 고를 때 선택의 순간이 찾아온다. 팩으로 살까, 병으로 살까. 선택 장애가 있는 나지만, 보통 쉽게 병에 든 두유를 선택해왔다. 아무래도 고소한 두유가 눈에 직접 보이는 게 식욕을 북돋았다.
병 두유는 팩 두유보다 비싸다. 그런데 양은 똑같다. 게다가 병 두유에는 부유물을 없애기 위해 화학물질을 첨가한다. 나는 단지 투명하게 보인다는 이유 때문에 몸에 안 좋고 같은 양인걸 더 비싼 돈을 주고 사 먹어 온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는 가급적 팩 두유를 사 먹고 있다.
이것이 투명함의 가치다. 숨김없이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기 때문에 같은 양에 화학첨가물도 들어 있지만 더 비싼 값에 팔릴 수 있다. 척박한 세상에서 믿을 수 있다는 점은 큰 가치를 가진다.
너무 탁해서 눈을 가늘게 떠도 속을 볼 수 없는 아사달 연못을 보면, 괜히 세종대 본부가 떠오른다. 우리 학교에서는 투명함의 가치를 찾아보기 힘들다. 기자들이 학교에 정보를 공개해달라고 청구해도 돌아오는 답은 비공개, 비공개, 비공개. 만나주지도 않는다. 학교는 프라임 사업을 진행할 때도 사업계획서 내용을 학생대표들에게조차 알리지 않았다. 뒤늦게 학과가 개편된다는 내용을 공지 받았을 뿐이다.
세종알리에서는 지난 3월 카드뉴스로 학과구조 개편에 대해 보도했었다. 그런데 해당 학과 학우들의 반응은 의외였다. 자신의 과가 폐과된 후 새로 신설된다는데 자신들이 피해를 보지 않을 것임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내용을 알아보니 그럴 만했다. 바뀌는 커리큘럼은 기존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내용을 더 배울 수 있도록 구성돼 있었다. 폐과로 인한 피해가 학생들에게 돌아가지 않도록 꼼꼼히 방안을 마련해두었다. 해당 학과 학생들은 이 내용을 학과 교수들에게 설명을 들었기에, 우리 보도에 동요하지 않았다.
학과구조 개편은 몇몇 예체능 학과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부분 학과가 인원이 감축됐다. 하지만 우리 학생들은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다. 왜 우리는 학과가 이전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무 설명도 듣지 못해야 하나.
학생들은 바보가 아니다. 충분히 설명만 된다면, 자신들에게 유리한 사업을 반대하지 않는다. 학교는 굳이 사업 내용을 비공개하면서 불필요한 반대를 만들어 냈다. 혹시 공개되면 누구라도 반대할 만큼 잘못된 내용이라도 있는 것일까. 이렇든 저렇든 공개해서 해결해야할 일이다. 투명함의 가치를 우리 학교에서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