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3 (수)

대학알리

세종대학교

더 랍스터, 외로움에 물든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하여

첫 장면에서부터 주인공은 아내에게 이별 통보를 받는다. 곧 자신이 키우던 개와 함께 한 호텔에 끌려가게 되는데, 그곳의 특이한 점은 한 가지, 주어진 기간 동안 자신의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이 되어야한다는 것. 짝을 찾아 다시 커플이 되거나, 평생 동물이 되어 살아가거나.

오로지 ‘사랑’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에서, 주인공은 애써 사랑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주인공뿐만이 아니다. 다들 그렇게 한다. 해야만하기 때문에. 공장에서 찍어내듯 생성되는 사랑은 대량 생산된 불량품과도 같다. 어긋난 순간, 그들에겐 상처, 불신 그리고 죽음이 독처럼 퍼진다. 이런 이상한 사회의 호텔에 들어온 첫 날, 그는 어떤 동물이 되고 싶냐하는 질문에 거리낌 없이 대답한다.

“랍스터요.”

호텔에선 모두가 하나같이 같은 처지에 놓인 상대를 찾는다. 코피를 자주 흘리는 그녀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벽에 코를 박거나, 사이코패스인 그녀를 위해 자신도 감정이 없는 척하거나. 주인공이 살고 있는 사회 내에 공통점이 존재해야지만 상대방과 사랑할 수 있다는 통념이 존재한다. 사실 이는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모습을 조금은 과장되게, 거울 비추듯 보여줄 뿐이다.

이참에 스스로에게 물어 보자. 우리는 왜 나와 비슷한 사람을 찾는가? 그들이 날 이해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해받길 원하는가?

애초에 우리가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 책이 보내는 대답

1. 김연수_소설가의 일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모른다, 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2. 한병철_에로스의 종말

그에게 세계는 그저 자기 자신의 그림자로 나타날 뿐이다. 그는 타자의 타자성을 인식하고 인정할 줄 모른다. 그는 어떤 식으로든 자기 자신을 확인하는 경우에만 의미가 존재한다고 느낀다. 그는 자기 자신의 그림자속을 철벅거리며 나아가다가, 결국 그 속에서 익사하고 만다.

내가 갈망하는 타자, 나를 매혹시키는 타자는 장소가 없다. "아토포스로서의 타자는 언어를 뒤흔든다. 그에 관하여, 그를 두고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수식어는 틀리고, 통스러우며,서투르고, 민망하다..."

‘할 수 있을 수 없음’이 에로스의 핵심적인 부정 조동사다. 에로스는 그 모든 것의 실패이다. 우리가 타자를 소유하고 붙잡고 알 수 있다면, 그는 더 이상 타자가 아닐 것이다. ‘가지다’, ‘알다’, ‘붙잡다’는 모두 할 수 있음의 동의어이다.

 

 

* 이번 ‘이 달의 책’ 코너에서는 영화 <더 랍스터>가 던지는 질문을 책 두 권을 통해 풀어나가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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