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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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특집]터미널에 색을 입히다

버스 터미널은 어떤 곳일까? 사람들은 내가 탈 버스를 무료하게 기다리거나 바쁘게 움직인다. 사람은 많아서 정신없고, 주변은 신경 쓸 틈 없다. 승차장과 주차장은 버스로 가득하다. 버스는 매연을 내뿜으며 꽉 막히는 터미널을 빠져나가기 바쁘다. 그래서인지 터미널을 떠올리면 뭔가 삭막하거나 답답한 이미지가 생각난다.

천안터미널은 조금 특별하다. 버스 노선이 많고, 전국에 몇 없는 백화점이 있어서 특별한 것은 아니다. 천안터미널은 천안역 근처에서 1989년에 현재의 신부동으로 자리 잡는다. 창조주 다음으로 위대하다는 건물주는 새로 지은 터미널 앞 광장에 거대한 설치미술 작품을 공개했다. 처음 본 사람들은 ‘저게 뭐하는 짓인가?’나 ‘그냥 심심해서 한번 해봤나 보다.’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건물주는 광장에 ‘아라리오광장’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꾸준히 설치미술 작품을 전시했다. 그렇게 해서 오늘날에는 30개 가까이 되는 작품이 아라리오광장을 빽빽이 채운다.

천안터미널 건물주인 김창일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세계 100대 미술품 컬렉터일 정도로 많은 미술품을 수집했다. 그는 예술을 언제 어디서든 접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로 광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덕분에 사람들은 이곳에서 잠깐의 여유와 예술을 즐길 수 있게 되었고, 일부러 광장을 찾으러 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도심 속 또 다른 사막이 될 수도 있는 공간은 오아시스가 되었다. 기자는 이 색다른 공간에 있는 작품 중 몇 개를 독자 여러분께 소개해드리고자 한다.

사진출처=천안시청  (사진출처=천안시청)

#1 그대는 하늘 나라로

아마 다른 지역에서 천안행 고속버스나 시외버스가 터미널에 도착할 쯤이면 제일 먼저 보게 되는 작품이다. 계단이 하늘을 향해 뻗어있다. 어렸을 적에는 ‘저거 떨어지면 어쩌지?’라는 쓸데없는 상상을 하고는 했다. 이 작품이 설치된 건물은 아리라오 갤러리로 터미널 건물주가 소유한 화랑이다. 외장은 산화철로 만들어 독특한 느낌을 주고, 벽 정면에는 평범한 사람은 앉을 수 없는 의자를 설치했다. 사실 작품보다는 장식에 가깝다.

 

#2 천안터미널과 함께한 27년

작품명 : 수백만 마일-머나먼 여정(Millions of Mile) | 작가 : 아르망 페르난데스( Armand Fernandez) | 제작연도 : 1989 | 재료 : 철 | 크기(너비×폭×높이) : 6×6×20m

천안터미널에서 가장 먼저 전시된 작품이면서, 가장 높은 작품이다. 재료는 폐차의 차축을 활용했는데, 1,000개에서 딱 하나 모자란 999개를 쌓았다고 한다. 희망과 무한한 가능성을 상징하면서 미완의 미를 보여준다. 차들이 많이 드나드는 터미널이라는 공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3 경쾌한 춤사위

작품명 : 줄리아(Julia) | 작가 : 키스 해링(Ketih Haring) | 제작연도 : 1987 | 재료 : 철에 도색 | 크기 : 290×226×380cm

단순한 낙서 문화였던 그라피티를 미술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예술의 대중화를 이끈 것으로 유명한 키스 해링의 작품이다. 그림이 단순하면서도 아기자기한 게 특징인데, 줄리아는 그림보다 훨씬 더 단순하다. 마치 신난 사람이 춤추는 듯한 모양이다.

 

#4 따끈따끈한 신상

작품명 : 매니폴드(MANIFOLD) | 작가 : 코헤이 나와(名和晃平) | 제작연도 : 2010~2013 | 재료 : 알루미늄에 도색 | 크기 : 16×12×13m

아라리오 광장에서 가장 최근에 들인 작품이다. 신상답게(?) 특별히 백화점 영업시간 중 밤에 조명을 비춰준다. 낮에 봐도 예쁘지만, 밤에 보면 더 예쁘다. 외형은 원소 등의 물질이 한꺼번에 융합되어 폭발적으로 부풀어 오른 것을 묘사한 것이고, 특히 환경오염의 위험성을 강조한 작품이다. 작품 장소는 건물 정문 앞이다. 정문으로 들어가거나 광장을 거니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이 작품으로 들어가게 된다. 예술 작품을 거리 두고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가까이에서 접하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5 소녀는 왜 인형과 통을 들었을까

작품명 : 채리티(Charity) | 작가 :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 제작연도 : 2002~2003 | 재료 : 청동에 아크릴로 도색 | 크기 : 243.6×243.6×685.8cm

살아있는 현대 미술의 전설, 데미안 허스트가 만든 작품이다. 그는 데뷔 때부터 줄곧 주로 죽음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에 파격적인 미술의 선두주자로 꼽혔는데, 정작 이 작품은 소녀가 물건을 끌어안는 다소 평범한 모습이다. 하지만 소녀상을 자세히 보면 오른 다리는 수족 비슷한 게 채워져 있고, 바닥에는 커다란 공구가 있다. 이 작품의 이름은 채리티(Charity). 그렇다면 소녀가 왼손에 들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6 티끌모아 작품

작품명 : 통제선(Line of Control) | 작가 : 수보드 굽타(Subodh Gupta) | 제작연도 : 2008~2010 | 재료 : 스테인리스와 주방 도구, 철골 구조물 | 크기 : 5×5.4×5.4m

평범한 것에서 새로운 것이나 의미를 짜내는 것은 어렵다. 작품에 쓰인 재료는 실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버려진 쇠그릇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작품 모양이 버섯 모양일까? 작가는 인도 사람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전 세계에서 전쟁 위험이 큰 곳 중 하나로 유명하다.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이곳일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도와 파키스탄은 서로를 견제하기 위해 핵을 몇십 개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소한 일상과 공적인 것은 서로 이어져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7 빨간 가방 앞에서 보자

작품명 : Image2 | 작가 : Ci Kim | 제작연도 : 2001 | 재료 : 철에 도색 | 크기 : 256×102×280cm

천안에서 이 작품의 제목은 몰라도 이 작품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일명 ‘빨간 가방’. 정작 이 작품의 이름은 Image2. 한때 빨간 가방은 만남의 장소였다. 10년 전만 해도 천안에는 소위 놀 곳이 터미널 주변밖에 없어서 자연스레 인파가 많이 몰리는데, 빨간 가방은 한눈에 띄기 때문에 주로 작품 앞을 약속 장소로 정했다.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 이 작품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터미널 건물주다. 그는 작품 수집만 아니라 자기가 직접 작품을 만드는데, Ci Kim이라는 이름을 쓴다. 작가는 현대인의 욕망을 표현했다고 한다.

 

#8 하늘에 꽃이 피다

작품명 : 꽃의 마음(Heart of the Flower) | 작가 : 최정화 | 제작연도 : 2007 | 재료 : 스테인리스, 섬유강화플라스틱 | 크기 : 2×2.5×18m

광장에서 여유롭게 자리를 지키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이 작품은 좁은 공간에 자리 잡았다. 마치 콘크리트에서 피어난 잡초를 보는 느낌이다. 알록달록한 꽃 장식품과 달리 뾰족하게 솟은 쇠기둥은 긴장감을 주는 듯하다. 작가는 이질적인 재료를 한 작품 안에 담음으로써 현대인의 상실감을 표현했다고 한다. 2006 광주비엔날레에 출품했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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