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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계 사각지대, 불안정 고용 노동자를 아시나요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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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뒷면에 잊혀지는 삶이 있다

 

방송계 사각지대, 불안정 고용 노동자를 아시나요 ①

 

2018년 전체 방송 산업 규모 합산 매출액은 17조 3,057억 원이며, 방송 콘텐츠는 한류의 주역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그 화려함 뒤에서 고군분투하는 불안정 고용 노동자들은 스스로의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방송산업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현장 스태프들은 맺고 있는 계약의 종류와 관계없이 ‘노동자’라고 정의하는데, 방송계에는 수많은 비정규직, 계약직, 특수고용자가 복잡하게 뒤섞여있다. 프리랜서라 불리는 불안정 고용 노동자들은 근로계약도 제대로 맺지 못한 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의 ‘근로자' 범위는 매우 협소하여 대부분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 故이재학 PD는 CJB 청주방송에서 14년간 한번에 많으면 8개의 프로그램을 연출하며 엄청난 노동량을 짊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부당해고를 당했다. 그는 청주방송에서 정규직과 협업하고, 때로는 행사 프로그램의 예산을 책정하는 정규직의 소관도 맡으며 정규직과 다름없이 일해왔다. 하지만 청주방송은 그가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그의 노동자성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여전히 불안정 고용 노동자는 사회안전망 안에 들어오지 못한 채 방송계 사각지대에 대거 포진되어있다. CJB 청주방송 이재학PD 사망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명예회복, 비정규직 문제해결을 위한 충북대책위원회 (이하   CJB 청주방송 故이재학PD 대책위)는 이번년도 1월 故이재학PD 1주기를 맞아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략 1주일간 진행되는 추모주간은 아직도 합의를 이행하지 않은 이두영 의장의 원죄와 끝나지 않는 청주방송의 문제를 선포하기 위해 이루어졌다. 충북대책위는 2020년 노동실태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현 방송계의 현실을 드러냄과 동시에 故이재학PD 사망사건은 부당한 노동형태의 일부일 뿐, 방송계 사각지대에는 다양한 요인의 문제들이 얽혀있음을 밝혔다.

 

 

 

2018년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방송업이 ‘근로시간 및 휴게시간의 특례' 업종에서 제외되며 주말 노동시간을 1주일 노동시간 계산에 포함시켜 50인 이상 사업장까지 주당 52시간을 준수해야 한다. 하지만 2019년에 실시된 방송제작 노동환경 실태조사 결과는 법적 의무가 준수되고 있지 않음을 드러낸다 (방송현장 노동안전실태조사 결과 보고서, 2021). 방송노동자의 최근 프로그램 제작의 일주일 평균 노동시간은 58.8시간이었으며, 기술/촬영 직군에서 종사하는 이들은 6-7일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방송노동자에게 52시간 이상 근무를 시키는 경우 업무 종료부터 다음 날 출근까지 11시간 이상의 휴게 시간을 제공하는 제도 또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응답이 무려 74%이었다. 방송 노동자의 권리는 우리가 상상했던 것 그 이상으로 침해당하고 있었다.

그들이 꼽은 방송계의 주된 문제점은 노동량에 비해 적은 임금이 1위, 사회안전망의 부재가 2위였으며, 고용불안 그리고 장시간 노동이 뒤를 잇따랐다. 위 결과는 방송계 노동현장에서 만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이며, 프리랜서라 불리는 불안정 고용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 겪는 문제점에 앞서 노동자성 불인정이라는 문제부터 맞서야 한다. 

 

이러한 문제들의 시작점은 무엇일까. 방송계는 노동자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권리를 지켜주지 않고, 노동자는 자신의 권리인 노동자성을 직접 증명해내고 인정받아야만 한다. 하지만 ‘고용 방식'에서부터 불안정 고용 노동자들은 대부분 근로계약서 대신 용역계약을 체결하고, 외주제작사와 팀 단위로 도급 계약을 체결한다. 용역계약, 업무위탁계약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을 증명해내지 못하고, 이는 곧 열악한 노동환경과 혹독한 노동 방식으로 연결된다. 그들의 계약은 근로기준법에 적용을 받지 않아 제작비의 일부로 취급당한다. 부당해고, 낮은 임금, 그리고 노동시간 초과는 이로 인해 야기된 문제들이다. 그때그때 현장에 따라 일정이 세워지기 때문에 불규칙하게 일하는 방송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에 비해 2~4배 높지만, 외주 제작사 다수가 법적으로 안전보건관리체제로부터 배제되어 있어 장시간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보호하지 못한다. 외주제작 중심의 제작 환경이 보편화되어 있는 방송산업에서, 방송법과 문화산업진흥기본법에는 제작 스태프의 권리 의무에 대한 법적 관계를 규율하고 있지 않아 촬영 중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책임소재는 불분명하다. 

 

방송 산업의 특성상 ‘현장 일정이 매일 다르고 프로그램 촬영 때문에 시간이 없다'는 명분으로 기법 상에 있는 3개월 단위의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유연근무제'를 악용한다. 방송 프로젝트 제작의 단계별, 촬영 일정과 촬영장 소별에 따라 고용관계가 복잡하다는 점을 악용하여 많은 방송 노동자들은 제작에 투입되어 일을 시작하고 나서야 계약서를 쓴다. 그 계약서조차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창의적인 콘텐츠로 대중과 소통하고자 했던 그들의 삶이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성 인정'이 어려워 마땅히 호소할 데가 없다. 비록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판례가 늘어나는 추세라지만, 여전히 같은 고용방식을 통해 용역계약이나 업무위탁계약 작성을 고수하고 있어, 문제의 본질이 해결되기는 어렵다. 방송계 불안정 고용 노동자들의 높은 ‘불안정성'을 살피기 위해서는 고용 방식의 부당한 형태부터 뜯어봐야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게 얽혀있는 본질적인 문제임에도 그동안 단순히 ‘비정규직'으로 포괄 짓고 동어반복에 그친 기존 보도로 인해 여태 그 복잡성이 명확히 풀어지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현장의 구체적 문제점들에 대해 파악하기보다 하나의 문제로 뭉뚱그려 문제를 다뤄오며 방송계 사각지대를 자연스레 단순화하며 실질적인 분석을 하는데 어려움을 주었다. 

 

따라서 이번 프로젝트 <방송계 사각지대, 불안정 고용 노동자를 아시나요>는 ‘방송 산업의 특성상’, ‘방송 제작현장 관행이 그러해서'와 같은 납득하기 어려운 명목으로 인해 가려져온 방송계 사각지대의 상호작용을 구체화하고자 한다. 나아가 “불안정 고용 노동자"는 지금까지 수면 위로 떠오른 비정규직의 문제점과는 또 다른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그들이 위치한 사각지대의 여러 양상을 당사자의 목소리를 통해 비추고자 한다. 

 

이제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나,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고 있는지, 얽히고 얽힌 복잡성 뒤에 “불안정 고용 노동자”의 본질적 문제점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찰이 절실한 상황이다. 불분명한 권리관계 및 노동 관계망의 분석을 한 곳에 결합하여 이 구조적 문제가 방송 콘텐츠에 대한 무책임과 방송 노동자들의 존재적 가치에 미친 영향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