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정부에게 등록금 동결을 풀어달라고 한다. 정부는 등록금을 동결하라 강제한 적이 없다. 상한선만 제시했다. 고등교육법 제11조 10항에 따르면, 직전 3개 연도 평균 소비자 물가상승률의 1.5배만 안 넘는다면 얼마든지 등록금을 올려도 된다. 대학이 말하는 동결 해제란 국가장학금II 유형 참여 자격을 완화해달라는 얘기다. 국가장학금II 유형은 한국장학재단이 대학에 차등 지원하는 장학금이다. 한국장학재단이 대학이 학생의 금전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평가해 지급한다. 정부는 등록금을 동결하거나 인하한 대학만 국가장학금II 유형에 참여할 수 있게 제한했다. 이를 통해 등록금 인상을 간접적으로 규제했다.
대학이 등록금 인상을 요구한다는 기사에는 ‘14년째 동결’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2008년에 국가장학금이 도입되고, 2012년에는 국가장학금II 유형 지급이 시작되었다. 이후 지금까지 등록금을 올리지 못했으니 14년째 동결되었다는 계산이다. 인상을 주장하는 이들은 그 사이의 물가상승률과 인건비 상승을 감안하면 등록금을 올려야 한다 말한다.
원래도 부담스럽고 지금도 비싸다
문제는 14년 전부터 지금까지 등록금은 여전히 비싸다는 점이다.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이 반값등록금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2008년 2월에는 등록금넷이 발족해 반값등록금 이행을 요구했고, 학생사회와 정치권에서는 대학생의 등록금 부담을 줄이겠다는 논의가 이어졌다. 그 사이 대학 등록금은 꾸준히 올랐다. 김상희 당시 민주당 의원이 2011년에 공개한 ‘학생 1인당 등록금 변동 추이’에 따르면 대학은 2001년부터 2010년까지 꾸준히 등록금을 올렸다. 9년간 국립대학교 평균 등록금은 82.8%, 사립대학교는 57.1% 올랐다. 2001년 국립대의 1년 등록금 평균 금액은 243만1100원, 사립대는 479만7100원이었다. 2010년에는 국립대가 444만3800원, 사립대는 753만8600원으로 올랐다. 같은 시기 소비자물가는 31.5% 올랐다. 자장면값은 47.3%, 라면값은 56.2% 올랐다 . 여러 대학이 물가상승률을 바탕으로 등록금 인상을 주장한다. 정작 대학은 국가장학금 II유형 도입 전까지 물가상승률 보다 가파르게 등록금을 올려왔다.
그렇게 오른 등록금은 지금도 학생들에게 부담스럽다. 공공데이터포털이 올해 8월에 공개한 학자금대출 통계 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학자금 대출은 58만 2481건이 이루어졌다. 학자금대출 사업 이용은 2014년 96만 6547건을 기록하며 정점을 찍고 현재까지 줄고 있다. 대출 건수는 줄었지만 상환이 문제다. 올해 10월, 더불어민주당 서동용 의원이 한국장학재단에서 제출받아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학자금 대출을 6개월 이상 갚지 못한 장기연체자가 늘었다. 올해 8월 말 기준으로 대학생과 대학원생의 장기연체 건은 10만 9086건이다. 금액은 1,796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연말과 비교했을 때 2,185건, 금액은 16억원 늘었다. 졸업 후 학자금 대출을 다 갚지 못한 이들도 늘고 있다. 2019년에 졸업한 대학생 중 학자금 대출을 계속 갚아야 하는 이들은 138,585명이었다. 이듬해에는 140,331명으로 늘었으며, 지난해에는 189,410명에 달했다. 서 의원은 코로나19 이후 높은 등록금과 생활비 부담 때문에 청년들의 학자금 대출이 늘어났다 지적했다.
국가장학금 수혜자는 꾸준히 늘었지만, 등록금 부담은 여전하다. 올해 8월 한국장학재단이 공개한 장학금 통계 정보에 따르면 국가장학금 시행 첫해였던 2012년에는 259만 7634건의 장학이 이루어졌다. 지난해에는 315만 7209건까지 늘었다. 예산이 늘어 가능했던 일이다. 도입 첫 해인 2012년 1조 7500억원으로 시작한 예산은 올해 4조 6567억원으로 확대됐다. 하지만 학자금대출을 받은 학생들의 빚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국가장학금을 신청하는 학생들도 수혜 여부를 걱정한다. 인터넷에는 한국장학재단이 수혜 여부를 가리는 소득 집계 방식을 분석한 글이 다수 올라와 있다. 일부 학생들은 소득분위를 낮추는 법을 공유한다. 등록금에 대한 부담을 떨치지 못한 학생들 사이에서 편법이 떠돈다.
고등교육에 누가 더 투자해야 하는가
한정된 예산을 두고 학생들이 ‘수혜 방법’이라는 자구책을 찾아 나서고 있다. 한국이 고등교육에 투자하는 금액이 적어서 그렇다. 교육부가 지난달 3일에 공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지표 2022 결과 발표’에 따르면 정부지출이 가장 적은 교육 과정은 고등교육, 대학이었다. 정부는 초등교육에 1만 3341달러, 중등교육에 1만 7078달러를 지출했다. OECD 평균 금액인 9,923달러, 11,400달러를 상회하는 금액이다. 이 중 정부가 지출한 비율은 90.4%에 달한다. 민간은 9.6%만 낸다. 반면 고등교육에는 정부가 1만 1287달러를 투입한다. OECD 평균인 1만 7759달러에 대비했을 때 60%에 불과한 금액이다. 이 금액 중 61.7%는 민간이 채웠다. OECD 평균은 정부가 66%, 민간이 30.8%인 점과 대조적이다. 61.7%라는 숫자를 채우는 민간은 대학생과 각 가정이다.
일각에서는 초중등교육 예산 중 일부를 떼와 각 대학에 분배하자고 한다. 저출생으로 초중등학생 수가 줄었으니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교육재정은 학생이 아닌 학급과 교원의 수에 따라 편성된다. 학생 수가 줄더라도, 다양한 과목을 더 나은 방법으로 가르치려면 예산이 필요하다. 초중고 예산을 함부로 줄이기 어려운 이유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대학도 더 나은 교수법이 있다면 적용해야 한다. 그에 따른 예산도 분명 늘어야 한다. 등록금 인상을 통해 해결하자는 주장은 손에 가까이 잡힌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미 고등교육 예산 중 많은 부분을 채워주고 있다. 대학이 교육부에 다른 교육과정과의 형평성을 위해서라도 고등교육 예산을 늘려 달라고 말하는 게 더욱 합리적이다.
한편 각 대학이 갖고 있는 적립금을 풀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적립금을 교육에 투자해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는 취지다. 적립금은 사립학교법 제32조 2에 따라 학교법인 이사장이 필요에 따라 적립해놓을 수 있는 금액이다. 법에 의해 교직원 연구 지원, 학교 시설 건축 및 보수, 학생 장학금을 위해 마련할 수 있다. 이 중 학생 장학금 명목으로 마련한 금액을 풀어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줄일 수 있으며, 사학기관 재무·회계 규칙에 대한 특례규칙 제13조에 따라 총장 권한으로 과부족이 발생한 부분은 별도의 절차를 통해 예산 사용처를 바꿀 수 있다는 근거도 더해진다.
그러나 각 대학이 가진 적립금 규모가 다르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올해 9월 대학교육연구소가 발표한 <사립 대학 및 전문대학 적립금 현황>에 따르면 적립금을 100억 원 이상 가진 사립 종합대학은 84개, 사립 전문대학은 59개다. 이 중 1000억원 이상을 가진 대학은 21개다. 모든 대학이 이만큼 적립금을 확보한 건 아니다. 성공회대학교가 올해 5월에 공개한 2021회계연도 결산 공고에 따르면 성공회대는 적립금으로 27억 4730만 5624원을 갖고 있다. 이는 지난해부터 2022년 2월까지 학생 및 교직원 복지 차원에서 4억 6천여만원, 장학금으로 3억 6천여만원을 지급하고 남은 금액이다. 성공회대의 적립금은 지난해에 비해 4억 원이 줄었다. 모든 대학이 적립금을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쌓아 놓고 있지 않다. 적립금 활용 상황에 따라 대학의 적립금액 격차는 더욱 늘고 있다.
따라서 대학이 적립금을 풀어 적자를 메우더라도, 각 대학별 상황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적립금을 많이 가진 대학은 오래 버틸 수 있다. 규모가 작은 대학은 등록금을 낼 학생은 적은데 적립금은 부족한 이중고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지속되는 학령 인구 감소는 이를 부추길 수밖에 없다.
등록금을 올려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교육부는 학령 인구 감소 대책으로 대학의 적정규모화를 내세운다. 학령 인구가 줄고 있으니 그만큼 대학의 규모를 줄이는 게 요지다. 교육부는 2022년부터 3년간 96개 대학에서 입학 정원 16,197명을 줄이고, 대학의 적정규모화를 돕기 위해 14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적정규모화 대상 대학은 233곳이다. 이 중 참여한 대학은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학의 공존이라는 본래 목적 달성도 요원하다. 수도권 대학이 밝힌 입학 정원 감축 인원은 1,953명이다. 충청권 대학이 4,325명, 호남제주권 대학이 2,825명을 감축하겠다고 밝힌 것과 대조적이다.
수도권 대학에는 여전히 입학생들이 몰린다. 이들이 인원 감축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비수도권 대학들 중 신입생 수를 다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현재대로 적정규모화가 진행된다면 수도권 대학과 비수도권 대학의 균형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대학별 적립금 규모 차이가 늘었듯, 지역별 대학 발전도 불균형하게 이뤄질 수밖에 없다. 수도권 대학은 등록금 수입원인 학생을 꾸준히 맞이할 수 있지만, 비수도권 대학의 재정난은 강화된다. 적정규모화의 본 목적인 대학의 균형 발전이 요원해진다.
핵심은 정부의 고등교육재정 지원 강화다. 대학이 적립금을 활용해 학생들의 부담을 줄일 수 있고, 적정규모화가 이뤄져 불필요한 지출을 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대학 간 경쟁력 격차를 줄일 수 있어야 한다. 대학의 경쟁력 강화도 중요하지만 학생이라는 ‘파이’가 줄고 있다. 학생들이 선호하는 대학이기 때문에 등록금을 더 오래 받을 수 있거나, 적립금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더 긴 시간 버틸 수 있다는 점은 장기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가 더 많이 이뤄질 때 대학의 균형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등록금 인상부터 대통령의 “대학이 반도체 인력 양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문까지, 올해 대학을 두고 이뤄진 여러 논의는 오늘날 대학생이 갖는 이중적 지위를 드러낸다. 대학생은 대학에서 소양을 쌓는 개인이자, 향후 산업에 투입돼 국가에 이바지해야 하는 존재다. 국가가 대학생이 학문을 쌓는 개인, 대학에 교육 서비스를 요구하는 개인으로 본다면 그 서비스가 합리적인 금액에 이뤄지는지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생이 산업에 투입되어야 할 이들이라면, 국가 정책에 따라 산업에 투입되고 국가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존재다. 혜택만 챙겨갈 수는 없다. 투자는 국가의 몫이다.
이러한 논의 대신 이뤄진 등록금 인상 논의는 기만이다. 필요에 따라 대학생이라는 의미가 유동적으로 오간다. 등록금 인상 논의는 대학생이 대학의 위기를 해결할 금액을 지출하는 이들로 상정한다. 그 사이에 각 대학이 바라보는 등록금에 대한 시각 차이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어느 대학에게는 등록금 인상이 한 번 만져볼 만한 카드지만, 다른 대학에게는 규모적정화 속 기대해 볼 수 있는 재원 마련 방법이다. 등록금은 대학의 생존 방안이 아니다. 대학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동시에 ‘산업 예비군’을 길러내길 바란다면, 그에 따른 금액은 정부가 지출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