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못 주제에]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섣불리 기사를 쓰지 말자는 마음에서 기획했습니다. 저희는 어설픈 '잘알'보다는 '알못'이 되기로 했습니다. 한 번의 경험에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겠지만, 한 번의 취재로도 당사자와 외부인의 어려움은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알못 주제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놓쳤던 것들을 만나고 체험합니다. 이 기사를 통해 지금까지는 몰랐지만 조금이나마 알아가며 공감할 수 있도록 저희가 느낀 현장 그대로를 전달하겠습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서울캠퍼스(이하 서울캠)가 지난 2020년 국립특수교육원이 발표한 「2020 장애대학생 교육복지지원 실태평가 결과」에서 보통 등급을 받았다. 과연 휠체어 이용자에게 서울캠은 시설을 이용하기에 충분한 수준인가. 휠체어 이동을 위한 시설을 점검하기 위해 외대알리가 직접 수동 휠체어를 타고 캠퍼스를 돌아봤다.
도서관 장애인 화장실이 청소도구함으로 쓰이고 있었다
사이버관, 도서관, 국제학사, 본관, 교수학습개발원은 1층에만 장애인 화장실을 설치했다. 인문과학관은 1층에 여자 장애인 화장실, 2층에 남자 장애인 화장실이 있다.
휠체어가 인문과학관 장애인 화장실에서는 진입하기조차 힘들었다. 국제학사의 경우, 회전 반경이 충분하지 않아 좌변기로 몸을 옮길 수 없었다.
사이버관 장애인 화장실은 비교적 편리했다. 화장실 진입로에 턱이 없고 입구에는 자동문을 설치했으며, 좌변기로 몸을 옮길 수 있는 공간이 충분했다.
도서관은 충격적이었다. 도서관 1층 남녀 장애인 화장실은 청소도구함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각종 청소도구가 변기를 둘러싼 채 휠체어를 가로막았다. 이와 관련해 도서관 학술정보팀에 문의한 결과, 관계자는 "바로 조치해 장애인 이용에 불편이 없도록 하겠다"라고 답했다.
캠퍼스 어디에도 자동문이 없다
건물 입구에서 난관에 봉착했다. 겨울이라 닫혀있던 문 앞에서 휠체어를 멈췄다. 수동문을 휠체어에 앉아 밀고 당기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수동문을 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도움을 받아 건물 내부로 들어오자 식당 쪽으로 향하는 복도에 굳게 닫힌 문이 보였다. "추워요! 문은 꼭 닫아 주세요!"라는 안내 문구가 야속했다. 작은 휠체어가 통과하기에 좁은 복도는 덤이었다. 이를 두고 한 교내 관계자는 "휠체어가 지나가기에 너무 좁아, 휠체어 바퀴를 잡은 손이 쓸려 다칠 수도 있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국제학사 출입문에서도 휠체어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었다. 평소 열고 닫을 때에도 무거웠던 문이지만, 오늘은 무게조차 느낄 수 없었다. 휠체어로는 혼자 기숙사를 드나들 수 없다.
도서관 입구 중앙에 위치한 회전문도 무용지물이었다. 휠체어 크기와 회전 속도를 감안하면 진입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비장애인 도서관 이용자의 출입문은 회전문과 수동문까지 두 개이지만, 휠체어 이용자에겐 단 한 개도 없다. 휠체어 이용자에게는 센서가 부착된 슬라이드 자동문이 필요하다.
가파른 경사로와 안심할 수 없는 도로
경사로가 있으니 들어가기 쉽겠다는 생각이 인문과학관 앞에서 사라졌다. 휠체어 바퀴를 손으로 굴려서 올라갈 생각을 하니 경사로 초입부터 한숨이 나왔다. 겨우 올라왔더니 눈앞에 있는 수동문이 문제였다. 문을 열면서 뒤로 계속 미끄러지는 휠체어를 고정할 방도가 없었다. 그렇다고 브레이크를 걸면 문을 열 수 없었다.
본관 경사로는 완만해 보였다. 천천히 내려갈 수 있겠다고 기대했지만, 경사로에 진입하자마자 수동 브레이크를 당기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서였다. 눈대중으로는 경사도를 판단할 수 없었다.
도서관 쪽문에서 잔디광장으로 가기 위해 언덕진 길 앞에 섰다. 도저히 못 내려갈 것 같았다. 제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속도가 붙을까 겁이 났다. 눈앞에 펼쳐진 경사로와 왼쪽 너머에 보이는 사회과학관 방향 언덕을 보니 바퀴가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툭'. 배수로 덮개에 바퀴가 걸렸다. 곳곳에서 허점이 보였다. 군데군데 움푹 파인 도로와 장애물이 휠체어를 가로막았다. 어디서든 눈을 부릅뜨고 땅을 보며 움직여야 했다.
제 시간에 강의실에 도착했지만...착석에만 5분
강의실 문은 건물 출입문보다 열기 쉬웠다. 문이 가벼워 어렵지 않게 당길 수 있었다. 물론 입실 후 문을 닫는 것은 여전히 어려웠다.
들어온 강의실은 책상이 고정된 PC 학습실. 스스로 의자를 빼고 자리 잡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다. 특히 앞뒤 줄의 책상이 고정된 상태에서, 휠체어를 돌리기가 버거웠다. 학교에서 누릴 수 있는 기본 중에 기본인 강의를 듣는 것조차 어려웠다.
사이버관 소강당 의자는 부착식으로 설치됐다. 휠체어가 들어갈 공간이 부재한 것이다. 책상에 표시된 그려진 휠체어 그림은 말그대로 '그림의 떡'이었다.
엘리베이터가 교개원에는 "없어요"
'엘리베이터 없음'이라고 적힌 종이 한 장이 자랑처럼 붙어있었다. 6층까지 강의실로 꽉 찬 교수학습개발원(이하 교개원)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휠체어 이용자가 교개원 입구로 들어가 사용 가능한 공간은 1층뿐이다.
도서관의 경우 1층 로비에서 바로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었다. 다만, 원한다고 바로 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담당자의 도움이 필요했다. 우선 담당자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한다. 담당자가 오면, 신분을 확인한 후 엘리베이터 잠금을 풀어준다. 이후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있다.
"이 정도면 거의 최고다"
도서관 학술정보팀의 명형택 팀장은 도서관 장애인 이용 시설 평가에서 이 같은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도서관을 포함해 캠퍼스 내 대부분의 시설이 휠체어 이용자에게 열악한 현실이다.
한편 캠퍼스 곳곳을 누비며 휠체어에 앉은 기자를 위해 학우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수동문을 잡고 기다려주거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주는 등 휠체어를 보자마자 누구 하나 지나치지 않았다. 휠체어에 앉아 조금은 낮은 위치에서 도움을 받는 순간 아직 살 만한 세상이라고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휠체어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도움을 주는 시선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배려의 시선이 없어도 휠체어를 타고 아무렇지 않게 누빌 수 있는 캠퍼스가 필요하다. 알못 주제에, 외대에서 휠체어를 타봤다.
기하늘 기자(sky41100@naver.com)
류효림 기자(andoctober@naver.com)
오기영 기자(oky98@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