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05 (금)

대학알리

'Be 인간'이 될 것인가 '비인간'이 될 것인가, 연극 ‘B BE BEE(비비비)'

“이 공연에 진짜 꿀벌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제가 꿀벌이 등장한다고 말하면 꿀벌이 등장하지만, 그것은 보이지 않는 꿀벌입니다. 그럼 공연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꿀벌이 등장한다.”

 

 

여기, 꿀벌을 연기하려는 한 명의 인간 배우가 있다. 이 인간 배우는 서울시민이자 누군가의 딸이며, 불혹의 비혼 여성이다. 이제 곧 꿀벌을 연기해야 하는 인간 배우의 사방에는 트램펄린과 플레잉 요가를 위한 해먹, 공중에 달린 마이크, 꿀벌 무늬를 연상시키는 프릴치마와 날개옷 같은 것들이 비치돼 있다. 배우는 어떻게 하면 인간인 내가 인간이 아닌 꿀벌을 연기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중력을 거스르는 연습을 하기 위해 트램펄린 위를 방방 뛰며 마이크에 대고 대사를 외치기도 하고, 해먹에 매달려 꿀벌 자세를 취해보기도 한다. 벽에 걸려있는 와이어를 몸에 연결해 극장 천장까지 붕 뜨며 ‘비(Bee)-’ 하고 울기도 한다. 인간인 이 배우는 왜 굳이 비인간인 꿀벌을 연기하려고 하는 것일까.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배우의 질문과 사유를 그린 실험극, ‘B BE BEE(비비비)’가 배우 성수연과 함께 서울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에서 8월 9일부터 19일까지 공연된다.

 

‘인간 중심적’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연습’


‘인간 중심적’ 사고란 세상을 이루는 모든 구성물을 인간을 중심으로 이해하려는 사고방식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를 쉽게 대상화하곤 한다. 성별이나 인종, 나이 등이 다른 인간을 대상화하기도 하지만, 아예 종이 다른 무언가를 대상화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꿀벌은 그저 꿀을 좋아하기 때문에 쉴 새 없이 꿀을 모으지만, 인간은 그 모습을 보고 ‘부지런함의 대명사’라고 일컫는다. 배우가 인터넷 검색창에 ‘꿀벌’을 검색하면 뜨는 기사 헤드라인을 나열하는 장면도 있다. 헤드라인에 쓰인 단어들은 모두 인간이 꿀벌에게 어떤 일을 했는지, 꿀벌이 사라지면 인간은 어떻게 될 지 등을 설명하고 있었다. 이처럼 모든 존재는 각자의 주체성과 당사자성을 지니고 살아가지만, 인간은 그런 점을 망각하고 쉽게 누군가를 타자화, 약자화한다. 배우는 이런 ‘인간 중심적’ 사고가 만들어 낸 생각의 틀 안에 서서, 어떻게 하면 그 틀을 깨고 앞으로의 세계를 살아갈 수 있을지를 관객 앞에서 ‘연습’하기 시작한다.

 

“너는 세상의 중심이 아니야”


무대 위에 등장하는 인간 배우는 오직 한 명이다. 그러나 그 인간 배우에게 조언하거나 야유를 보내고, 연기에 필요한 음향을 내보내 주는 비인간 배우들이 있다. 바로 ‘코러스’와 ‘코러스장’이다. 6개의 스피커와 1개의 확성기는 무대 위를 채우는 또 다른 배우가 돼, 인간 배우가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코러스들은 꿀벌을 연기하려는 인간에게 끊임없이 ‘이동’할 것을 요구한다. 몸의 중심을 이동하라, 무대의 중심에서 이동하라, 생각의 중심에서 너 자신을 이동시켜라. 이 비인간 코러스들은 인간 배우에게 계속하여 “너는 세상의 중심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각인시킨다. 코러스는 배우에게 ‘너에게 가장 중요한 이가 누구인가’를 물은 다음, 지금 그 옆에 있을 것 같은 누군가를 말하라고 한다. 그리곤 지금부터 그가 너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런 식으로 계속하여 ‘소중한 사람의 곁에 있는 사람의 곁에 있는 것…’을 말하게 한다. 처음 시작할 때 배우의 가장 소중한 사람은 ‘엄마’였지만, 일련의 과정을 거쳐 어느새 배우의 가장 소중한 사람은 ‘미역을 따는 해녀’가 돼 있다.

 

또한 공연의 대사는 관객이 기존의 사고체계를 벗어나도록 유도한다. 코러스에서 랜덤한 단어들이 빠르게 쏟아져 나오면, 배우는 그 단어를 듣고 속도에 맞춰 생각나는 대로 말을 내뱉는다. 빠른 템포의 배경음악과 정신없이 점프하며 대사를 외치는 배우의 몸짓은, 우선 관객들의 머릿속을 분주하게 만든다. 그에 더해 배우는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나를 중심으로 말하지 않기’ 연습을 한다.


“나는 물을 마신다”
“물이 나에 의해 마셔진다”
“물이 텀블러에서 한 인간의 몸속으로 이동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배우는 스스로를 타자화하는 방법을 연습한다. 이 모습을 보던 관객들은 자연스레 공연을 보고 있는 자신의 행동 역시 타자화 시켜보기 시작한다. 어쩌면 그 시도는 무대가 끝나고 공연장을 나온 후에도 계속될지 모른다.

 

연습의 전시


이 연극은 관객과 배우가 함께하는 하나의 연습이다. 극장 밖을 나가 한 명의 인간, 혹은 '한 인간의 군락'으로서 어떻게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연습 말이다. 배우는 “꿀벌을 세는 단위는 한 마리가 아닌 한 군락”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한 개인인가, 한 군락인가. 군락이라면 그 규모는 어디까지 넓혀질 수 있는가. 배우는 무대에서, 관객은 객석에서 공연이 주는 무수히 많은 질문들을 앞에 두고 함께 고민한다.


배우는 1막 초반에서 “이 공연에서는 연습을 ‘뿌비뽕’이라 칭하겠다”고 선언한다. ‘연습’은 어렵고 지겨운데, 지겨울 때는 환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공연에서 ‘꿀벌’과 ‘비(Bee)’ 다음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뿌비뽕’이 됐다.


인권 문제나 환경 문제, 개인의 가치관이나 윤리, 도덕이 끊임없이 충돌하는 복잡한 시대에 ‘질문’은 어렵고 지겹다. 우리는 모두 이 시대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살아가는 것이기에, 질문을 깊이 생각할 시간도, 이 시대를 ‘연습’ 삼아 살아볼 수도 없다. 이에 연극은 연습의 장소로 무대를 선택했다. 무대는 공연 시간 동안 외부로부터 단절되며, 오롯이 독립된 하나의 세계가 되기 때문이다. 그 세계 안에서 배우와 관객은 잠시나마 세상을 살기 위한 연습을 해본다. 75분 동안 존재하는 이 세계의 이름은 ‘뿌비뽕’이다.

 

또한 배우는 이 무대 위에서 캐릭터로 존재하지 않는다. 배우 겸 창작자인 성수연은 배우로서, 창작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자신이 가진 생각과 질문을 관객 앞에 내놓는다. 성수연 배우는 공연 팸플릿에 실린 인터뷰에서 ‘척추동물이 아닌 존재, 인간과는 다른 구성 방식의 몸을 갖고 있는 존재를 연기함으로써 인간을 바라볼 수 있는 다른 관점을 가져보고 싶었다’며 꿀벌 연기를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공연 중 죽은 꿀벌 사체를 무대에 가지고 나올까 고민했던 이야기를 하며, ‘고양이나 인간의 시체는 당연히 가지고 나오면 안 되는데, 꿀벌 사체로는 이런 고민을 했던 것 자체가 이상했다’라고도 털어놓는다. 이 공연이 ‘뿌비뽕’인 또 하나의 이유이다.

 

이날 공연을 관람했던 무대예술가 지망생 A씨(20)는 인간이 ‘인간 중심적’이지 않아야 할 이유에 대해 “지구에는 인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린 모두 거대한 생태계에 속해있다. 그런데 인간 중심적 사고는 인간이 유추하고,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것들로만 세상을 재단한다.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면, 더욱 넓게 사고할 수 있을 것”이라 답했다. 이어 “실험 연극을 본 건 처음인데, 배우의 행동 지문을 관객에게 직접 언어로 전달하는 게 새로웠다. 배역이 아닌 배우 그 자체가 연극에 나온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그 배우의 인생과 가치관이 연극에서 그대로 보인다”며 공연의 전체적인 소감을 밝혔다.

 

한편 연극 ‘B BE BEE’는 우란문화재단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 예매 페이지에 ‘접근성 안내’ 영상을 게시해 두고 있다. 휠체어 이용 관객이 원활하게 공연장을 다닐 수 있도록 1층 로비에 ‘접근성 매니저’를 배치해 두었으며, 시청각 장애인을 위한 음성 및 수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공연 시작 전 주의사항과 배우의 대사, 배경음악에 대한 설명은 모두 자막이 동반 제공되며, 배우의 복장이나 무대의 풍경 같은 모습도 배우가 직접 대사를 통해 설명한다.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느끼는 마음과 달리 몸은 에어컨을 틀게 되는 요즘, 인간으로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 알고 싶다면 이 연극 ‘B BE BEE’를 추천한다. ‘B BE BEE’는 우란문화재단과 인터파크 홈페이지를 통해 예매할 수 있다.


“나는 꿀벌을 바라본다. 꿀벌이 어떤 인간의 눈에 한순간 존재한다. 만남이 진동이 되어, 새로운 길! B! BE! BEE! 꿀벌이, 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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