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2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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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를 禁하다] 전태일과 홍세화의 꿈, 그 뒷이야기를 그려보며

[금서를 禁하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유효한 전태일의 외침
갈라치기의 해결책, 홍세화의 똘레랑스

국가나 자본, 종교 등 지배세력에 의해 금지된 책들을 금(禁)한다는 의미의 [금서를 禁하다]는

해로운 걸작, 불온서적 등을 다룹니다. 금지된 책이 왜 금지됐는지 그 역사를 통해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를 둘러봅니다.

 


 

13년 전 국방부에서 지정한 불온도서 리스트가 세상에 등장했다. 총 42권의 도서 중 21권이 자본주의를 거스른다는 이유로 금지됐다. 책 '청년 노동자 전태일'도 그중 하나였다. 이 책은 1970년 당시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근로기준법 준수를 주장한 노동 운동가 전태일의 생애를 담고 있다. 

 

당시 의류 제조업으로 번성했던 평화시장은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청계천에 모여든 피난민들의 저렴한 노동력을 기반으로 이뤄졌다. 평화시장의 노동자는 1.5m도 안 되는 낮은 천장의 좁은 공장에서 하루 16시간 가까이 일했다. 전태일 또한 평화시장에서 일하던 노동자였는데, 그는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고 난 후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고자 노력했다. 

 

故홍세화씨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가 금서로 지정된 배경도 반자본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책은 20년간 프랑스로 망명해 그곳에서 택시운전사로 생활했던 홍세화의 에세이다. 그는 박정희 정권의 유신 체제에 항거할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 '남조선민족해방전선'(이하 남민전) 사건에 연루돼 국내를 떠나 프랑스로 향했다.

 

남민전은 공산주의 이념에 기반해 자본주의와 군사독재를 타도한다는 목표를 가진 단체다. 홍세화는 자신의 책에 남민전에 대한 언급과 함께 프랑스에서 경험한 자본주의의 모순을 담았다. 책이 발간된 1990년대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대립적인 이념으로 인식하고 공산주의에 대한 경계가 심했던 시대로, 자본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담긴 책은 국가에 의해 검열될 가능성이 높았다.  

 

'반자본주의' 너머의 이야기들

 

중요한 점은 단순히 '반자본주의' 다섯 글자로 두 책이 담고 있는 방대한 내용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전태일의 자살은 우리나라의 첫 노동조합인 '청계피복노조'의 탄생을 이끌어냈다. 의류 노동자 500명으로 시작한 청계피복노조는 노동조합 교육, 노조 연대 투쟁 등 범위를 넓혀나가며 한국 노동운동의 토대를 만들었다. 단순히 의류산업 노동자들의 근로권 보장을 넘어 모든 분야의 노동자 권리를 보장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홍세화는 당시 시대를 지배했던 '자본주의는 선, 공산주의는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해결할 수 있는 '똘레랑스'를 제시한다. 똘레랑스란 한국어로 '용인'에 가까운 뜻으로, 차이를 차별과 배제의 이유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나온 개념이다. 

 

홍세화는 이를 한국 사회의 획일성과 프랑스 사회의 다양성을 예시로 들어 설명한다. 차이를 곧 '틀린 것'이라고 규정하는 탓에 하나의 생각만이 존중되는 한국 사회, 즉 자본주의 외의 사상은 틀렸다고 규정하는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꼬집은 것이다. 똘레랑스는 자본주의는 맞고, 공산주의는 틀렸다 식의 이념 간 논쟁이 아니라, 이념 자체를 초월해 서로가 공감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해결책이다.

 

세대 간 갈라치기노조 탄압... 오늘날 이들이 전하는 메시지

 

전태일의 노동조합과 홍세화의 똘레랑스는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후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며 분신하는 '전태일'들이 나타난다. 업체의 임금체불 해결을 요구하며 지난해 9월 분신한 해성운수 택시노동자 故방영환씨가 그중 하나다. 방씨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에야 고용노동부는 회사가 최저임금법을 비롯한 5개 법을 위반한 사실을 발견했다.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외치며 법전의 문구대로 사회가 행동할 것을 강조한 전태일 정신이 되새겨져야 할 때다.

 

'노 시니어 존', '노키즈 존'으로 대표되는 혐오의 일상화도 똘레랑스의 정신으로 해결할 수 있다. 혐오는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들을 타자화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타자화는 차별의 근거로 사용된다. 세대별 갈라치기는 나이가 다르다는 것을, 나이에 따른 행동양식이 다르다는 것을 차별과 배제의 근거로 삼은 결과다. 차이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똘레랑스를 기억한다면, 우리 사회에 만연하게 퍼진 혐오도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안겸비 기자 (gyeombi11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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