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9 (토)

대학알리

한국외국어대학교

광화문엔 사람들이 참 많았다 - 사람들의 생각에 대한 아주 사소한 생각

대학생 대오의 행진은 혜화에서 종각까지, 종각에서 광화문까지 이어졌다. 외대 사람들은 대오를 이끄는 트럭 바로 앞에 있어, 행진의 선두가 되었다. 길을 걷던 행인들은 걸음을 멈추고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는 대학생들을 향해 핸드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대학생들은 서둘러 종이 피켓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거나, 마스크를 썼다.

문득 인도에 있는 사람들이 왜 우리를 찍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지인에게 광화문이 난리가 났다며 호들갑을 떨기 위해서일까. 단순히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는 사실이 신기해서일까. 나는 그때쯤 행진대오 틈에서 구호를 외칠 수 있다는 것에 안심하고 있었다. 행진하는 모두가 그렇게 하고 있었으니까. 심적으로 그곳에 모인 많은 사람들과 하나가 되려던 순간에, 행인들의 셔터는 순간 하나였던 우리에게도 타자가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낯설었다. 우리는 걷고 있었지만 그들은 우리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 동안 거리에 나섰던 사람들과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의 괴리는 이런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사이의 지점에서 작용하는 현격한 거리감이 이 두 집단간의 사이를 갈라놓고, 집회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변수일 수도 있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런데도 참 신기한 것은, 사람들의 생각이 어느 수준에서는 비슷하다는 사실이었다. 오후 5시쯤 혜화에서 광화문까지 걸어와 무척이나 지쳐, 동행한 형과 함께 광화문 변두리 지하에 있는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먹었다. 이른 저녁밥이었다. 엄청나게 많은 인파로 걸음을 옮기기조차 힘들었던 광화문 거리에서 한 블록만 빠져 나와도 거리는 한산한 편이었다.

시간이 지나 비로소 저녁때가 되자 사람들이 광화문 변두리로 식당을 찾아 몰리기 시작했다. 정해진 시간인양 밥을 먹으러 들어가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광화문으로 돌아가는데, 새삼스럽게도 밥 먹는 시간에서만큼은 사람들의 생각이 비슷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집회 취재를 마치고 밤늦게 종각에 술을 마시러 갈 때도 많은 사람들이 술집 이곳 저곳에 앉아 박근혜 하야하라면서 나라에 대한 넋두리를 늘어놓는 것을 보았다. 고된 일을 겪고 뒤풀이를 하자는 생각은 사람들이 모두 똑같이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광화문에 사람이 많았던 까닭은 투표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의 의사 결정이 아무런 권한도 가지지 않은 비선의 ‘실세’에 의해 행해졌다는 사실이 크나큰 오류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밥 시간이나 뒤풀이를 가자는 생각만큼이나 비슷하게 공감한다는 데에 있었다. 그렇다면 어떠한 일이든 사람들이 비슷하게 생각할 정도로 생각의 층위를 당연한 것으로 낮춰놓는다면,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사분란하게 그것을 수행할 것이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렇게 되는 것이 참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늘 집회의 불가능성을 고민했다. 뜻을 함께하는 여려 명의 사람이 한 장소에 모이지 못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많았다. 노선과 생각, 관심도의 차이, 그리고 개인의 수많은 일정들과 헤아릴 수도 없는 수많은 변수들은 집회의 규모를 자꾸만 작게 만들고, 그 성과 역시 지지부진한 것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라는 “역대급 자극”은 태어나 집회에 나가본 적 없는 내 친구가, 선배와 후배가 집회에 나갔다. 사람들은 따라나갔다. 큰 뜻 없이도, 운동권이 아니어도, 나라가 돌아가는 꼴이 참 볼만해서 집회에 나갔다. 그래서, 광화문 그곳엔, 사람들이 참 많았다.

사람 생각이란 게, 새삼스럽게도, 참 신기하다. 근래에는 정부의 ‘뻘짓’도 많았고, 시민들을 조직하려고 했던 시도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 정도의 인파를 동원하게 한 자극은 유래가 없었다. 다를 수 밖에 없는 사람의 생각들이 한곳에 모여 같은 것을 외치게 만드는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아직도 얼떨떨하고 신기하다. 물론 이야기해봐야 할 지점도 많다. 어떤 방법으로 원하는 것을 성취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이견들이 존재한다. 사람이 많이 모였으니 다른 방법으로 성과를 빨리 내야 한다는 사람도 존재하고, 현재의 방식과 성과에 충분히 만족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방법론에 대한 입장이 어떻든 간에,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다시 기본적으로 일치해야 하는 지점은 “이렇게 하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라는 생각이다.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집 안에 웅크려 있는 비관과 싸워 이기고 밖으로 나왔지만, 급하게 바뀌지 않는 세상과 정부의 무신경한 태도는 집회에 나가봤자 세상은 바뀌지도 않는다는 생각을 다시 일으킬 것이다. 조급해하지 말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집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집 밖으로 나온 이유를 계속 상기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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