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13 (목)

대학알리

성공회대학교

이상한 '여혐' 나라의 강의실 - 수업시간 교수의 여성혐오 발언 짚어보기

우리 사회에는 혐오가 넘친다. 장애인혐오, 여성혐오, 성소수자혐오, 외국인혐오. 우리는 ‘디폴트’, ‘정상’ 바깥의 온갖 것을 혐오한다. 이 혐오사회에 대한 객관화와 성찰은 지금까지 ‘정상’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남성중심적 사회 에 익숙해진 만큼 불편과 불쾌감을 동반한다. ‘변방’을 자 처하는 성공회대라고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건강한 변화 의 가능성을 품기 위해서, 우리가 변방에서 오는 미래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서는 남성중심적 사회에 물든 우리 자신에 대한 객관화와 성찰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취지에서 본 기사에서는 학내 수업시간 중에 이루어지는 여성혐오발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여성혐오는 무엇인가? 대표적으로 알려진 여성혐오의 정의는 “여성에 대한 증오, 불호 혹은 불신”이다. “당신은 여성혐오자다”라는 비난에 “나는 엄마와 여자형제와 애인을 사랑한다. 나는 여성혐오자가 아니다”라는 대답은 언뜻 이상하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이 대답에 사람들은 더 분노한다. 대체 왜?

영어로 ‘미소지니(misosiny)’, 우리말로 번역해 ‘여성혐오.’ 이 단어의 뜻은 단순히 “여성을 증오하고 불신한다”는 뜻이 아니다. 여성에 대한 편견을 바탕으로 여성을 일반화하고 규정하고 평가하는 모든 것이 여성혐오다. 그래서 여성혐오는 단순히 개인적인 영역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남성중심주의 속에서 만 들어진 법과 제도, 예술 등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더욱 나아가 학문과 교육 속에 여성에 대한 확고한 편견을 심어놓았다.

여성혐오의 의도가 없다고 해도 여성혐오적 발언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여성혐오를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여성혐오 발언을 했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여성혐오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는 것 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증명한다.

여성혐오는 우리 사회 깊숙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에 우리의 수업시간 또한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다. 더욱이 수업시간에 교수가 이러한 발언을 한다면 문제는 더욱 커진다. 학술적 권위 를 가진 교수라는 지위와 강의라는 전달 방식의 특성상 교수 의 발언은 다른 상황보다 우리의 학습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문방송학과는 최근 페이스북 여성주의 교양 페이지 ‘멈춰, 봐-3분교양’을 통해 수업시간에 일어난 여성혐오적 발화를 제보 받았다. 회대알리는 신문방송학과와 제보 학생의 동의를 구 해 해당 교수에게 발언의 맥락을 확인하고 의도를 묻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수업1. 커뮤니케이션 개론(최진봉 교수)
"남성의 커뮤니케이션은 대체적으로 문제해결적으로 이루어지고, 여성의 커뮤니케이션은 대체적으로 감성 중심적으로 이루어진다."

회대알리는 이 강의에서 '성별에 따른 커뮤니케이션 차이'로 제시된 내용이 남성은 이성적이고 여성은 감성적이며, 남성은 문제 해결을 중요시하고 여성은 소통과 공감을 중요시한다는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내용이었다는 점을 확인했다.

젠더를 남성과 여성으로 한정하여 구분했을 때 양쪽의 커뮤니케이션 양상의 차이를 연구한 연구결과 중에는 최진봉 교수가 제시한 내용과 반대되는 연구도 많았고, 이중 다수는 최신 연구결과가 아니라 1970년대에 이미 발표된 내용이었다. 회대알리가 이러한 연구결과를 제시하자 최진봉 교수는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 들이 아는 내용을 소개한 것 뿐"이라며 "모든 연구는 하나가 완벽히 옳다고 할 수 없다. 그 연구(다른 결과의 연구를 말하는 것)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런 연구가 있었는지 몰랐고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설명에 포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회대알리는 해당 내용이 젠더이분법적 사고방식에 기초해 젠더 플루이드, 바이젠더 등 다양한 젠더퀴어를 배제하고, “대체적”이 라고 지칭되는 범주에 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낙인을 찍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최진봉 교수는 “대체적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표현이었다. 성적 자기정체성을 부인하려는 내용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최진봉 교수는 “여성혐오 발언은 워딩보다 의도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냐”고 강조하며 “여성혐오의 의도는 없었으나 그것에 대해 불편한 사람이 있었다면 그 점 에 대해서는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수업2. 국제 질서의 이해(김재명 교수)
한 여학우에게 “‘만나는 오빠 있지?’라고 묻고는 여학우가 없다고 대답하자 ‘아니 일단 있다고 해봐’라고 말 했고, 국제 분쟁에 관한 내용을 이성애 연애관계에 빗대어 설명했다.

김재명 교수는 “쉽게 이해를 돕기 위해 짧게 비유를 들었던 것인데 큰 오해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이스라엘이 미국의 뒷심을 믿고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정책을 펼치는 것을 알기 쉽게 설명하면서 그런 비슷한 내용의 말을 한 것으로 기억되지만, 그 말이 여성 혐오나 성소수자 혐오 발언으로 오해돼 잘못 받아들여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또한 “더구나 나는 남녀관계를 소유관계로 나는 생각하지도 않는다. 일부 학생이 그런 내 비유 에 불쾌감을 느꼈다면 성평등에 대한 내 평소 소신과는 관계없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문제를 제기한 학생은 "여학우가 이성애자일 것이라고 단정 지은 것, '만나는 오빠'라는 언행에서 여자가 남자보다 나이가 어리다는(권력 차이)설정을 당연하게 했다는 것, 연애관계를 소 유관계에 빗대어 표현 한 것들은 혐오적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수업3. 문화정치론(이남석 교수)
아버지가 가지는 사회적 의미에 대해 설명하며 “여자의 모성은 본능이지만 부성애는 기적 같은 일이다.”

회대알리는 학생의 문제제기가 있었던 교수 네 명에게 이메일을 보내 인터뷰를 요청했다. '만나서 인터뷰하자'거나 수업에 사용한 PT 자료를 제공한 교수도 있었지만 이남석 교수로부터는 아무 응답도 받지 못했다. 전후 자세한 맥락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여자의 모성은 본능이고, 남자의 부성이 기적이라는 말은 여성의 자식에 대한 양육과 사랑을 강제하고, 성 역할을 고정시켜버리는 것이다. 또한 남성이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에 면책권을 줄 수 있다. 교수의 발언대로라면 남성의 부성 과 여성의 모성의 차이점은 행하는 주체의 성별 차이밖에 없으나, “기적”인 부성이 “본능”인 모성보다 우월한 것이 된다. 또한 여성은 모성을 당연히 지녀야하고 없으면 지탄받지만, 남성은 부성이 없어도 지탄받지 않고 있다면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 된다. 교수의 이러한 발언은 남성과 여성의 성 역할을 고정하고, 부성과 모성의 가치에 차등을 두는 여성혐오적 발언이다.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 했는데 난 그 사실을 몰랐어

교수들이 남성과 여성은 평등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저런 발언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내재된 의미와 맥락이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포지셔닝 하거나 타 자화하고 규격화하는 발언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발언에 대해 “나는 그런 의도로 말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라는 답변은 충분 한 대답이라고 보기 어렵다.

한국다양성연구소의 김지학 소장은 “남성중심적인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우리 중 어느 누구도 남성중심적인 사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자신이 특권그룹에 속한 경우에는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기까지도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라고 설명 했다. 근본적인 문제는 교수가, 또 우리가 아무리 진보적이고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오랫동안 유지된 가부장제와 남성중심적 시각으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것이다. 김지학 소장은 교수, 교사, 정치인, 종교인 등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할 수 있는 ‘권위’를 부여받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에 의해서 자신들의 발언이 청중들에 의해서 모니터링 될 수 있으며 부적절한 발언은 지적받거나 도전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이상한 세계에서 탈출해야겠어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것,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지는 것에 도전하고 의심하고 옳고 그름을 합리적으로 판별하는 것이야말로 과학적인 자세다. 이 ‘과학적 자세’의 필요성은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가리지 않는다. 박사 학위를 받고 연구자·학자로서 연구윤리와 연구 성과에 대해 인정받은 교수들조차 '여성혐오'를 피해가지 못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 자 신은 더더욱 여성혐오적 편견을 피해갈 수 없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흔한 말로 '세상의 절반은 여자'라고들 한다. 세상의 절반을 각자 개별적인 인격으로 존중하면 참 좋겠지만, 아쉽게도 이 세상은 아직 여성을 매 순간 숨 쉬듯 자연스럽게 수단화하고 대상화하는 세상이다. 우리가 '정상'이 라고 믿는 이 이상한 세계는 어디에서부터 왔을까. 이 이상한 세계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정말 없을까.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앨리스는 내내 기묘한 고양이 체셔캣의 기묘한 질문을 받는다. 앨리스는 체셔캣의 기묘한 질문에 갸우뚱하지만, 체셔캣의 질문은 하트여왕과 이상한 나라의 모순을 폭로한다. 우리의 이 이상한 나라에도 체셔캣이 있을까? 김지학 소장은 “‘표준’이나 ‘평균’에 해당하는 이야기만 중요한 것은 아니”라며 사회적, 구조적 외면 속에 그동안 우리사회 속 에서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를 표면 위로 올리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 했다. 이런 작업을 하는 것을 굳이 분과학문으로 이름 붙인다면 그것이 페미니즘이고 젠더학이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타인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만이 우리 앨리스들을 ‘이상한 나라’에서 벗어나게 한다면, 우리의 체셔캣은 어쩌면 페미니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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