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Me Too), 결코 비겁하지 않은 폭로
얼마 전, 교내 커뮤니티에 교수의 성추행을 폭로하는 글이 게시되었다. 피해자의 글은 과거 교수 A씨가 저지른 부적절한 행위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피해자는 앞으로의 학교생활에 대해 두려움을 느껴서 이 문제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 수 없었다고 했다. 더 이상의 피해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어렵게 용기 내 글을 남기게 되었다고 밝힌 피해자는 또 다른 피해자들에게 ‘결코 당신이 잘못한 게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글을 마무리 지었다. 길지 않은 글이었지만, 교내 구성원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교수의 성범죄는 비단 우리 학교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는 총 세 건의 성범죄가 폭로되었다. 그 중 아랍어과 교수의 성추행을 폭로한 피해자들은 ‘교수는 학과 내의 왕이나 다름없는 존재였기에 부적절한 발언과 행동에 대해 글을 쓰기까지 수없이 고민했다’고 밝혔다. 가해자로 지목된 L씨는 7년 전에도 성추행 혐의가 있었지만 제대로 된 조사가 진행되지 않았다. 그는 폭로 후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한국외국어대학교 측에서는 진상조사를 중단하기로 하였다.
한편, 세종대학교에서는 교수가 학생을 성폭행한 사실이 밝혀졌다. 피해자는 성폭행에 대해 ‘그의 요구를 거부하면 배우로 다시는 무대에 설 수 없을 것만 같았다’라고 말했다. 세종대학교는 사건이 알려지자 우선 교수 K씨의 직무를 정지하였다. 이후 해당 사건의 사실관계 확인을 거쳐 교수 직위 해제를 비롯한 중징계를 내릴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건이 폭로된 지 한 달 이상 지난 오늘(3일), 학교 측은 성폭행 사건의 사실관계를 확인하여 징계 수위 결정을 위해 K씨를 교원 인사위원회에 회부하기로 했다. 그러나 세종대학교 독립 언론 <세종알리>는 이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학칙에서 성폭력에 관한 규정을 살펴보면 징계 범위가 모호하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관련 기사) 그렇다면, 우리 학교의 성범죄 관련 규정은 과연 합리적일까?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로, 우리 학교에도 학칙 내부에 『성폭력 예방 및 처리에 관한 규정』이 존재한다. 그중 제21조는 징계 및 조치에 관한 규정으로, 징계에 대해서는 공식 사과, 교육 프로그램 이수 명령, 일정기간 봉사 명령 등의 구체적인 방안을 명시하고 있다. 그 외에도 제17조의 신고인 권리확보 및 비밀 유지의 의무에서는 피해자의 신변을 보호받을 권리를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 학교 학칙은 피해자 신변 보호 방안과 징계 등이 비교적 명확히 제시된 편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단순히 학칙이 다른 학교에 비해 잘 정리되어 있는가가 아니다. 비교적 합리적인 규정이 명확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피해자들은 ‘익명’으로,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폭로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는 결코 피해자가 비겁하기 때문이 아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인식하는 것과는 별개로, 권력은 관계 안에서 결코 외면하기 어려운 거대한 힘으로 작용한다. 학생이 느끼는 교수의 권력은 대단히 크고 막강하다. ‘피해자’ 학생이 ‘가해자’ 교수와 대등하게 맞서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최근 밝혀지고 있는 대학가의 성범죄들은 구조적 측면에서 우리 사회의 성범죄와 상당 부분 유사하다. 특히 구조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공통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대학가 미투 운동’을 통해 밝혀진 성범죄는 대체로 남성 교수와 여성 학생 사이에서 발생했다. 그렇다면 사회의 성범죄는 어떤 양상을 띠고 있을까? 여성가족부의 '2015 성희롱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행위자로 가장 많이 지목된 대상은 상급자(39.8%)였고, 행위자의 성별은 대부분 남성(88%)이었다.
한국 사회에는 수직적인 조직문화와 경직된 분위기가 만연해있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는 상급자가 곧 왕인 구조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상명하복의 구조 내에서 성범죄가 발생할 경우, 피해자는 가해자가 권력을 악용하여 자신에게 보복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기 쉽다. 그리고 비난의 화살이 오히려 피해자에게 향할 수 있다는 생각에 피해 사실을 쉽게 알리기 어려워진다. 즉, 피해자들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로 인해 또 다른 고통을 겪고 있는 상황에 처해있다.
어쩌면 가해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수 있다. 피해자 역시 자신이 피해를 당하였음을 인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피해자에 대한 의심이 폭로의 목소리를 막았을 수도 있다. 결국, 이러한 분위기들이 성범죄가 우리 사회에 깊은 뿌리를 내리도록 일조한 셈이다. 사실상 곪은 자리가 터진 것이라고 보는 게 적절할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쏟아지는 미투 운동의 폭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연일 쏟아지는 ‘미투 운동’의 폭로를 접할 때마다 단순히 가해자 개인의 일탈을 원인으로 짚거나, 기본적인 윤리의식의 부재 탓으로 돌리는 것만으로는 절대 충분하지 않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더는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권력자가 누군가를 대할 때, 상대방을 자신과 동등한 독립된 인격체로 여길 수 있도록 사회 조직 전반에 걸쳐있는 구태의연한 조직문화를 과감히 청산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교수 A씨 성추행 사건은 피해자의 의사에 따라 교수의 사과문을 학교 전 게시판에 게시하고, 교수 직위를 해제하는 것으로 사실상 종결되었다. 하지만 만약 또 다른 성범죄 폭로가 이어진다면, 그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우리는 피해자의 용기 있는 행동을 적극 지지해야 하고, 피해자와 연대해야 한다. 권력에 맞서야 한다는 사실에 두려워하고 있을지 모를 피해자의 손을, 당신이 꼭 잡아주길 바란다.
#Me_Too #With_You
취재, 글 : 시대알리 이지연 기자(jiyeon0187@uos.ac.kr), 임희주 기자(subin0320@uos.ac.kr)
교열 : 시대알리 서주용 기자(always417@uo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