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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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에서 떠나보자! 영화로 떠나는 세계 여행 [유럽 편]

누구나 한번쯤 낭만적인 유럽 여행을 꿈꾸곤 한다. 유럽의 아름다운 경치와 건물을 즐기고 고풍스러운 유적지를 찾아가며 멋진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지만, 큰 맘 먹고 떠나버리기엔 돈도 시간도 여유도 없다. 하지만 영화를 통해 유럽을 만나볼 수 있다면 어떨까? 태양이 작열하는 이탈리아부터 정열의 나라 스페인, 매력적인 프랑스까지. 유럽의 향취를 영화 속에서 찾아보자.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1. 챠오! 이탈리아

파리넬리(1994)

카스트라토의 비극적인 삶

 

STORY!

‘파리넬리’는 신이 내린 목소리로 트럼펫 주자와의 대결에서 승리하며 이름을 떨친다. ‘파리넬리’의아름다운 목소리와 화려한 기교에 여기저기서 탄성을 지르고 픽픽 쓰러지기까지 하는 사람들. 온 유럽을 순회하며 가창력을 뽐내는 ‘파리넬리’는 오페라 역사상 최고의 카스트라토로 자리매김한다. 그런 그에게 자신의 곡을 부르게 하며 모든 것을 함께 하는 형 ‘리카르도’. 그가 쉬쉬하던 거세의 비밀을 ‘파리넬리’가 알게 되며 형제의 사이는 돌이킬 수 없이 멀어지는데…

 

POINT?

아름다운 목소리를 위해 거세까지 감행해야 했던 카스트라토들의 슬픈 운명. 남자 테너와 여자 소프라노의 목소리를 합성하여 재현한 환상적인 ‘파리넬리’의 목소리. 1995년 골든글로브 최우수외국어영화 수상작.


이탈리아 문화 들여다보기: 카스트라토


라틴어 ‘castrare(거세하다)’에서 유래한 ‘카스트라토’는 말 그대로 변성기가 오기 전에 고환을 제거하여 미성을 내는 남성 소프라노 가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카스트라토의 비극은 16세기 교회가 “여자는 교회 안에서 잠잠할지어다”라는 성경 구절을 토대로 여성의 노래를 금지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여성 대신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하던 카스트라토는 18세기 오페라 무대에서 활동하며 오페라의 역사에도 한 획을 긋게 된다.

 

여성의 높은 음역대를 소화하기 위해 카스트라토는 변성기가 오기 전 어린 나이에 거세를 해야만했다. 카스트라토의 거세 방법은 물리적 거세가 아니라 고환에 상처를 내 양잿물에 담그는 화학적 거세였다. 거세로 인해 2차 성징 없이 신체 발육을 마친 카스트라토는 음역이 넓을 뿐만 아니라 맑으면서도 힘 있는 소리를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영화 속 파리넬리 또한 탄탄한 미성으로 관객들을 매혹하며 부와 명예를 누렸다.

 

그러나 화려한 카스트라토의 이면에는 비극이 숨어있었다. 카스트라토를 가장 많이 배출했던 이탈리아에서는 가난한 농민들이 돈 때문에 아들에게 거세를 강요했다. 호르몬 이상과 감염으로 일찍 죽는 소년들이 넘쳐났고, 살아남았다 해도 파리넬리처럼 성공하기는커녕 평생을 불행하게 살며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모두가 우러러보는 부와 명예를 거머쥔 영화 속 파리넬리조차도 거세로 인한 열등감과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에 허덕이며 괴로워한다.

 

카스트라토의 명맥이 끊긴 것은 19세기에 접어들면서부터였다. 1806년 11월 27일 이탈리아를 점령한 나폴레옹 황제는 카스트라토의 오페라극장 출연과 거세한 소년의 나폴리음악원 입학을 금지했다. 이후 카스트라토는 서서히 모습을 감춰 1883년부터 1913년까지 시스틴 성당의 합창단원으로 활동했던 알렉산드로 모레스키를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마지막 카스트라토 모레스키의 노래는 전세계에 유일무이한 레코딩으로 남아있으니 영화와 함께 감상해도 좋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2. 올라! 스페인

그녀에게(2002)

헌신적인 사랑과 추악한 집착 사이에서

 
STORY!

부상으로 혼수상태에 빠진 투우사 ‘리디아’의 연인 ‘마르코’와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무용수 ‘알리샤’를 짝사랑하는 ‘베니그노’. 아무리 말을 걸어봐도 의식이 없는 두 여인은 대답이 없다. ‘마르코’는 더 이상 ‘리디아’와 사랑을 나눌 수 없다며 절망하고, ‘베니그노’는 ‘알리샤’와 교감하고 있다고 믿고 간호에 헌신한다. 두 남자가 ‘그녀에게’ 말을 건네는 건 무슨 의미일까?

 

POINT?

사랑일까, 아닐까? 모호한 감정의 경계에서 사랑의 방식에 대해 한번쯤 숙고해볼 기회. 영화 속 무성영화 <애인이 줄었어요>는 1989년도작 <애들이 줄었어요(Honey, I Shrunk The Kids)>를 패러디한 것. 오스카 각본상 수상작.
 
스페인 문화 들여다보기: 투우

투우는 흥분한 소와 인간이 싸우는 경기이다. 711년경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한 아랍계 이슬람교도인 무어인이 전파한 것이 그 처음이라고 한다. 이후 이베리아 반도에서 전통으로 전해 내려왔으며 특히 스페인에서 인기가 많아 국기(國技)로 지정됐다. 17세기까지는 궁정에서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었으나 18세기를 지나며 서민들도 구경거리로 즐길 수 있었다.

 

투우 경기는 각기 다른 투우사가 차례로 등장하며 진행된다. 맨 처음 ‘피카도르’가 말을 타고 나와 소의 목에 단창을 꽂아 힘이 빠지게 한 다음 ‘반데릴레로’ 세 명이 총 여섯 개의 작살을 소의 어깨에 꽂는다. 마지막으로 ‘마타도르’가 ‘물레타’라는 붉은 천으로 소를 유인하다가 절정에 이르면 소의 심장에 칼을 찔러 죽이며 끝을 장식한다. 이때 마타도르가 유연하고도 정교한 동작으로 마치 춤을 추듯 소를 요리조리 피하면 관중들은 환호한다.

 

그러나 동물보호단체에서는 투우가 동물학대라고 비판한다. 투우 경기의 소는 경기가 시작되기 전 날 하루 종일 어두운 방에 갇혀있다 갑자기 눈부신 투우장 한 가운데에 내몰려 불안감에 휩싸이고, 관중들의 환호성과 급격한 환경 변화에 흥분해 눈 앞에서 흔들리는 붉은 천을 뿔로 받으려 한다. 목에는 단창이, 어깨에는 작살이 꽂히며 소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벼랑 끝에 내몰리고 한껏 농락당하다 죽음을 맞는 것이다.

 

이러한 논란 속에 스페인의 카탈루냐 지방과 카나리아제도는 각각 2012년과 1991년에 투우를 금지했다. 그러나 스페인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6년 스페인 의회가 투우를 전통이라고 규정한 것이 투우금지법보다 앞선다는 이유로 투우금지법을 위헌이라고 결정해 법적 효력이 사라졌다. 하지만 법과는 관계없이 투우가 동물학대라는 동물보호론자들과 투우는 인생철학의 의식이며 뿌리 깊은 전통이라는 보수주의자들은 여전히 대립하고 있다.

 

한편 2016년에는 31년 만에 투우 경기 중 투우사가 사망해 안전 문제에도 논란이 일고 있다. 영화 속 투우사 ‘리디아’ 또한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곡예를 펼치다 부상을 당해 혼수상태에 빠진다. 과연 전통과 인습, 삶과 죽음, 사랑과 집착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그녀에게>를 감상하며 곰곰이 생각해보자.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3. 봉쥬르! 프랑스

네 멋대로 해라(1960)
밀고자는 밀고하고, 도둑들은 도둑질하고, 연인들은 사랑을 하지.


STORY!

미셸은 자동차를 훔친 것이 발각되자 경찰을 그만 총으로 살해하고 쫓기는 신세가 된다. 도망친 파리에서 재회한 미국 여자 패트리샤. 미셸은 그녀에게 끊임없이 구애하지만 패트리샤는 아직 자신의 마음을 잘 모르겠다. 함께 로마로 떠나자는 제안도 거절하는 그녀. 둘은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

 

POINT?

‘소격효과’라고 들어는 봤나?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고 이야기하는 주인공. 뚝뚝 끊기는 영화의 흐름. 마치 시퀀스처럼 하염없이 지속되는 단일 숏. 이 모든 것이 관객이 영화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의도된 기법.


프랑스 문화 들여다보기: 누벨바그 운동

2차 세계대전 이후 보수적이었던 프랑스 사회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영화계 또한 폐쇄적이었다. 자신의 작품을 만들고 싶은 젊은 이들은 기성 감독 밑에서 오랜 시간 허드렛일을 해야 했고, 기성 감독들은 거대 자본을 투자해 문학을 영화화하는 데에만 급급하여 신선함이 없었다. 이에 1950년대 후반 젊은 비평가들은 “기성세대의 영화는 그저 잘 만들어지기만 했을 뿐 개인적 특성이 묻어나오지 않는다”라며 비판한다. 당시 보수적이었던 프랑스 사회와 영화계를 전면적으로 거부한 것이다.

 

비평가들은 자리에 앉아 비판하는 글만 쓰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거리에 나가 영화를 찍었다. 이들이 원했던 것은 오직 하나, 신선함! 조명도 쓰지 않고, 손으로만 촬영하는 핸드 헬드 카메라를 사용하고, 잘 마련된 스튜디오 촬영을 거부하는 등 그 동안 고착된 영화적 관습을 벗어나려고 했다. 이렇게 감독이 된 비평가들은 영화 감독 또한 작품을 창의적으로 발전시키고자 노력하는 작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창했다. 그들을 보고 사람들은 외쳤다. “누벨바그가 나타났다!”

 

‘누벨바그’란 프랑스어로 ‘새로운 물결’이라는 뜻이다. 어느 날 물결이 되어 신선하고 파격적으로흘러 온 누벨바그 작가들의 대표적인 인물은 <네 멋대로 해라>의 감독 ‘장 뤽 고다르’이다. 고다르는 <네 멋대로 해라>에서 급격한 장면전환으로 연속성을 해체하는 점프 컷을 최초로 시도하는데, 사실 이는 최종 편집본의 러닝타임이 너무 길자 어쩔 수 없이 중간 중간 필요 없는 움직임을 도려낸 것이었다. 의도한 것과는 다르게 <네 멋대로 해라>가 선보인 파격적인 편집기법은 영화계에서 두고두고 회자되게 된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영화의 불연속적인 흐름을 통해 불안정하고 파편화된 현대의 청년을 잘 보여주었던 <네 멋대로 해라>를 감상하며 프랑스를 넘어 세계 영화사의 한 획을 긋고 고전영화와 현대영화의 기준을 제시했던 누벨버그 운동을 알아보자.

 

지금까지 영화를 통해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세 나라의 문화를 살펴보았다. 이 글을 팝콘처럼 곁들이며 영화를 더욱 유익하고 재미있게 감상하길 바란다. 자, 모두 방구석에서 멋진 유럽 여행을 떠나보자!

 


최재윤 기자(jae.rang.cho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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