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08 (일)

대학알리

한국외국어대학교

[공동기획] 학내 성폭력, 지금, 여기

외대알리 김종혁 기자 hwaseen@hanmail.net

지난 3월 26일, 우리 학교 독일어과에서 성희롱 사건이 발생했다. 독일어과 집행부 MT에서 성적인 질문이 오가는 진실게임이 진행되었고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면 벌주를 마셔야 했다. 그리고 과 학생회장은 피해 여학생의 남자친구에게 피해자와의 성관계에 대한 질문을 했다. 피해자는 이후 4월 11일에 있었던 독일어과 정기총회 자리에서 게임에 참가한 모든 집행부원들의 사퇴와 사과를 요구했다. 외대알리는 사건에 대한 공동체 차원의 대처를 되짚어보고, 앞으로 학생 사회가 성폭행 사건의 올바른 해결을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공동체적 해결의 실패

사건은 4월 24일 독일어과 집행부 전체의 사퇴로 일단락되었지만, 독일어과라는 공동체 내부에서의 대처는 완전히 실패했다. 그들은 방법을 몰랐다. 가해자는 사건을 덮기에 급급했고, 일부 학생들은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는 발언으로 피해자에게 또 다른 상처를 입혔다.

성폭력 사건에 있어 공동체적 해결은 필수적이다. 피해자가 속해 있는 공동체가 문제 해결에 무관심하거나, 피해자를 지지해주지 않으면 피해자는 공동체로부터 또 다른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단법인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외대알리와의 인터뷰에서 “성폭력 사건이 해결되려면 사건이 발생한 공동체 안의 모든 구성원이 제 3자 피해자의 입장에 귀 기울여야 한다. 공동체는 집단 권력을 행사하여 문제를 제기한 피해자를 공동체에서 배제시키거나, 사건을 축소시키는 방식으로 피해자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며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데 공동체 차원의 노력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공동체적 해결의 실패원인: 1) 공론화, 공론장의 부재

“진실게임은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이 모였고 그 사람들이 불쾌감을 느끼지 않았으니 게임에 참여한 모두가 사퇴 할 필요 없다.”
“20살이 넘은 성인으로써 충분히 분위기를 좋게 하려고 할 수 있는 게임이다.”

위는 피해자가 처음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독일어과 정기총회에서 있었던 일반 학우들의 발언이다. 정기총회는 공동체가 피해자를 배려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이는 문제 공론화에 소극적이었던 독일어과 학생회장단 때문이었다. 피해자는 정기총회에 앞서, 가해자였던 과 학생회장을 찾아가 먼저 문제를 제기했으나 학생회장은 사과 대자보 작성을 거부하며 문제를 제대로 학생들에게 공론화시키지 않았다. 심지어 부학생회장은 “말 세어나가지 않게 하자”며 피해자를 설득해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다. 결국 사건과 피해자의 요구사항을 이해하지 못한 학생들의 발언이 이루어졌다. 독일어과는 문제 해결 의지를 상실한 채 피해자에게 또 다른 상처를 입힌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성폭력상담소는 피해자를 배려하는 열린 공론장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피해자가 신뢰할만한 자리에서 자신이 당했던 피해에 대해 충분히 발언할 자리를 제공받았다면 사건의 양상이 달라졌을 것이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피해자 중심으로 해당 사건이 공론화되고, 공동체가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배제되지 않게끔 최대한 배려해야 궁극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

공동체적 해결의 실패원인: 2) 실종된 피해자 중심주의

서울대 사회대 반성폭력 학생회칙에서는 “어떤 행위가 성폭력인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행위자의 의도가 아니라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되었는지의 여부이다.” 라고 명시하고 있다. 성폭력은 피해자의 판단으로 성립한다. 따라서 공동체는 반드시 피해자가 호소하는 피해에 귀를 기울이며, 피해자 중심으로 사건을 해결하려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독일어과의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한 무지는 사건의 공동체적 해결 실패에 또 다른 원인이 되었다.. 가해자인 학생회장이 피해자의 요구사항을 공동체 차원에서 논의하지 않고, 본인이 판단할 때 진실게임에 직접적으로 연루된 사람만을 집행부에서 퇴출시켰던 행위는 명백히 성폭력 문제 해결에 있어 피해자를 배제시키는 행위이다. 또한 과 학생회장이 4월 15일에 최초로 올린 사과문은 피해자에 대한 직접적인 사과가 들어가있지 않았고, 피해자가 성적인 수치심이 느껴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피해를 가능성으로 치부해버리는 행태를 보이며 피해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

 



정리하자면, 독일어과 성희롱 사건의 공동체적 해결이 실패한 궁극적인 이유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사건 대처에 필요한 사항들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이다. 현 외대 총학생회 비대위는 5월 9일 발표한 성명문에서 학교 집행부원 전체의 성폭력 대응 관련 교육 이수를 약속했다. 물론 교육은 중요하지만, 대처 방안을 알고 있다고 해서 공동체적 해결이 실현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올바른 대처 방안을 인지하는 것을 넘어서 구성원들이 피해자를 진심으로 배려하고 지지해주는 태도는 성폭력 사건의 공동체적 해결에 꼭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과를 넘어 학교라는 공동체 차원에서도 성폭력 사건이 잘 해결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우리 학교는 학생 행정 규정에 성희롱 조사위의 발족과 성문화상담실에 대한 규정이 있다. 조사위가 따라야 할 규정에는 피해자 보호 규정 등 피해자 중심주의적 해결 방안이 잘 보장되어 있다. 하지만 사건의 접수처가 교내 상담센터 하나뿐이라 신속한 사건 접수가 힘들 수도 있다는 점, 성희롱 조사위를 꾸리는 위원들 중 성폭력 사건 전문가는 상담센터장 한 명밖에 없어 전문성이 떨어지는 점 등이 여전히 보완되어야 한다.

 

성폭력 사건과 피해자중심주의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면 피해자는 성폭력 피해뿐만 아니라 ‘그런 뜻이 아니었다’는 가해자의 변명, 성폭력을 가해자와 피해자 간 개인적 문제로 치부하고 피해자의 잘못이라 비난하는 시선에도 고통 받아야 했다.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성폭력 사건을 피해자 중심으로 이해하고, 해결하는 원칙을 ‘피해자중심주의’라고 한다.

실제 사례를 통해 피해자중심주의를 자세히 이해해보자. 2013년 3월, 성균관대학교 ROTC 합격자인 가해자는 같은 학과인 피해자를 성추행했다.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하자 가해자는 도리어 “피해자가 나를 먼저 유혹했다”고 비난했다. 이처럼 피해 사실을 호도하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것, 피해자를 협박하거나 압박하는 행동이 바로 ‘2차가해’다.

2015년 여름, 피해자는 문과대학 여학생위원회(이하 여학생위원회)에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렸다, 여학생위원회는 대책위원회를 꾸려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학군단과 사건 대응을 논의했다.

성폭력 사건의 사실관계를 파악할 때는 사건을 가해자나 제삼자의 입장이 아니라 피해자의 입장과 경험을 중심으로 이해해야 한다.

또, 당연한 말이지만 피해자는 ‘나’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에 대해 이해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 피해자는 이러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다. 우선 학군단은 피해자의 대리인을 맡았던 여성위원회가 징계 절차 등에 대해 물었음에도 답하지 않았다. 가해자가 학교에서 휴학 1년과 사회봉사 100시간의 징계를 받은 이후에는 학군단 관계자가 “같이 학교를 안 다니는 걸로 충분하지 않냐.”는 말로 피해자를 조롱하기까지 했다.

이에 여성위원회는 학군단에 2차 가해를 하지 않을 것과 반(反) 성폭력 내규 제정, 피해자를 위한 공개 사과자보 작성을 요구하는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언론에도 사건이 알려졌다. 지난 3월 16일에는 더는 비슷한 피해자가 없기를 바란다는 피해자의 뜻에 따라 여성위원회가 경과보고 대자보를 붙이기도 했다.

가해자만 사라지면 돼?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다. 피해자가 대자보, 페이스북, 혹은 OO대학교 대나무숲으로 이 사실을 공개했다. 가해자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그놈은 나쁜 놈이다. 삼삼오오 수군거리며 욕을 한다. 어떤 사람들은 피해자가 '주작질'하는 거 아니냐고 의심한다. 이상한 소문이 퍼진다. 학교는 뭘 하고 있는지 몇 달 뒤에야 가해자 놈을 징계했단다.

그다음에 일어나는 일은 무엇이 될까? 피해자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다 잘된 일일까? 가해자가 벌을 받았으니 우리 학교는 다시 성폭력에 서 안전한 곳이 됐을까? 피해자의 요구를 다 들어주고 가해자를 쫓아내기만 하면 학교 안의 성폭력 문제에 대해 더는 신경 쓸 필요가 없을까?

아니, 그렇지 않다. 성폭력 사건은 단순히 가해자가 '나쁜 놈'이라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성폭력 사건과 이에 대한 문제 제기는 그동안의 조직문화에 대한 문제 제기이기도 하다. 교수가, 선배가, 후배가, 동기가, 남자가, 여자가, 수업 시간에, MT에서, 술자리에서… 구성원에게 허용 되는 행동과 강요되는 행동은 모두 대학 내 문화에 의해 정해지고, 대학 내 문화는 사회 전반의 젠더 권력의 영향을 받는다.

성폭력 사건의 제도적 해결 절차는 ‘피해자 보호’를 이유로 공동체에 공개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도 모르게 처리될 수는 없다. 소문은 쉽게 퍼진다. 가해자나 그의 편들이 조직적으로 왜곡된 사실관계를 퍼트릴 수도 있다. 피해자는 낯선 사람의 수군거림에도 상처받지만, 주변 사람들이 나를 지지하지 않거나 의심하는 경험으로 더 크게 상처받는다.

피해자는 상처받아 약해진 상태이고, 혼란과 고통을 겪는다. 상황에 따라 주장이나 요구사항을 바꿀 수 있다. 피해자의 고통과 혼란은 충분히 존중받고 배려 받아야 한다. 또 ‘어떤 사건으로 어떤 피해를 봤다’고 알리고 ‘그러므로 어떻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담을 피해자 혼자 감당하게 내버려둬서도 안 된다. 서울대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피해자 중심주의의 대안을 찾는 모임 담쟁이'는 이런 부담이 "성폭력을 당하고도 침묵"하는 원인이라고 지적하며 "피해자 편에서 입증을 위해 힘쓸 지지자"를 마련해줄 책임이 공동체에 있다고 말한다.

여러 전문가와 연구자들이 대학이나 공동체 내부의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필요하다고 입 모아 말하는 것은 한 가지다. 무슨 일이 왜 일어났는지, 이런 일이 다시 생기지 않게 하려면 우리가 어떻게 변해야 할지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다. 피해자를 위해 비밀을 지키는 것보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가 확인하고 앞으로의 변화에 관해 토론 하는 것이 더 중요할 때도 있다.

성폭력은 사람이 사람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성적 대상으로 격하되는 경험이다. 공동체 안에서 토론과 성찰이 이루어질 때 피해자는 인격을 침해당한 경험을 극복하고 '학내 문화'에 문제를 제기한 사람으로 변화한다.

학과, 동아리, 학회는 우리 안에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경험과 힘을 얻는다. 이런 토론과 변화는 피해자의 회복에도 큰 도움이 된다. 학생회, 학생회 내부 의 별도 기구, 대학 내 성폭력 상담 기구 등에서 이런 기회를 만들고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학의 노력도 중요하다. 교수가 학생에게 "여자가 말이야~" 따위의 발언을 하지 못하도록 예방교육을 하고 강의 내용이 여성혐오나 소수자 혐오를 담고 있지는 않은지 관리하는 것은 대학본부의 역할이다.

2012년을 기준으로 대학 상담기구의 59%는 1년 예산 1천만 원을 쪼개고 쪼개 상담, 사건 접수 및 조사, 피해자 지원, 예방교육 등을 진행해야 하는 처지다. 성희롱·성폭력 상담에 전담 인원을 배정한 학교는 겨우 7%뿐이다. 대학 차원에서 상담기구에 전문 인력을 배치하고 그 전문인력의 고용안정을 보장해야 한다. 쉽게 말해, 대학은 성폭력 상담실에 더 많은 예산과 더 많은 인건비를 아낌없이 투자해야 한다.

또, 성폭력 대책위원회나 조사위원회(이하 '위원회')에 학생처장 등의 교수나 교직원이 반드시 들어가도록 규정한 학교가 많다. 하지만 이들이 성폭력 문제의 해결과 피해자의 회복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보장은 없다. 위원회에 참가하는 대학 관계자들의 자질을 높일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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