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07 (수)

대학알리

성공회대학교

[본격 수업 탈주 권장하는 기사] ② 내가 이 수업만 듣는 게 아닌데

철회 기간이 시작되었다. 정정 기간에 못 고친 듣기 싫은 수업이나 그때는 몰랐지만 괴로운 수업 등 한시라도 빨리 아름다운 이별을 고하고 싶은 수업들과 헤어질 좋은 기회가 다가왔다는 얘기다. 수업을 철회하는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다. 교수가 입만 열면 빻은 소리를 해서일 수도 있고, 수업이 너무 핵노잼이라 그럴 수도 있고, 그 수업을 넣으면 시간표가 너무 포스트모던 미술작품처럼 난해해져서일 수도 있다. 당연히 교수의 출석 패턴이 너무 변태 같아서 일 수도 있는데, 이번에는 그 이유로 여러분의 수업 탈주를 권장해보려고 한다.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지만, 손자병법의 36계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후퇴는 꼭 필요한 전술 중 하나다.

 

과제 어마무시형

사회과학부 전공자 사이에서 소문이 무성한 수업, 바로 경제학개론이다. 힘들다고 소문이 난 이유는 세 가지 정도다. 첫째, 경제학이 어려워서. 둘째, 경제학이 뭔지 모르겠는데 해야 하는 과제는 자꾸 생겨서. 셋째, 해야 하는 과제 대부분이 조별과제여서.

먼저 교재인 ‘맨큐의 경제학’의 챕터별로 있는 문제를 매주 조별로 풀이해서 제출해야 한다. 진도에 따라 문제풀이가 갑자기 쏟아지면 대략 난감. 이렇다 보니 교수님이 가장 멋진 순간은 이번 챕터 문제풀이를 하라는 말씀이 없으실 때, 그리고 홀수 번만 문제풀이 하라고 하실 때이다. 맨큐의 경제학을 받아들이기도 벅차지만, 우리는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도 읽고 토론해야 한다. 그리고 보너스로 틈틈이 돌발 조별토론 과제를 준다.

유철규 교수가 학생들에게 과제 내는 걸 즐기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 과제를 많이 내기도 하고, 교수가 과제 얘기할 때 특유의 미소로 씩 웃어서이기도 하다. 아마 경제학개론을 다 듣고 난 다음에는 맨큐와 스미스, x축과 y축의 그래프 모양, 그리고 유철규 교수의 그 웃음이 기억에 남을 거다. 무엇보다 한 학기 동안 조원들과 매주 치열한(?) 토론을 했던 아름다운(?) 추억만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사회과학부 전공 필수 수업이기 때문에 이번 학기에 탈주해도 내년이든, 내후년이든 언젠가 들어야 한다. 잘 부탁한다 내년 2학기의 나. 아마 내년 2학기의 나는 지금의 나를 죽이고 싶겠지만...

 

짜릿해! 늘 새로워 과제의 양이!

3학년은 사망년이라는 말을 몸소 느끼게 해준 수업이었다. 내가 마케팅이라는 수업에 수강신청 버튼을 누르기 전, 그 수업을 먼저 들었던 친구는 충고했다. 한 학기는 죽었다고 생각해야 할 거라고. 조모임을 하루에 한 번씩 해야 할 거라고. 그러나 별수 없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수업은 문화기획연계전공의 ‘전공필수’ 과목이었다.

긴장하며 들어갔던 오리엔테이션부터 압권이었다. 선생님은 영어 원서 한 권과 번역서 한 권을 들이밀었다. 원서는 전부 우리가 번역해야 한다고 했다. 매주 조별 발제를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발표할 사람은 당일에 가서야 알 수 있다고도 했다. 서평을 여섯 개 써야 했고, 개인 과제도 2주에 한 번꼴로 주어진다고 했다. 시험은 책 두 권과 수업용 피피티를 달달 외워야 할 정도랬다. 문제 수는 300개에 가깝다고 했다. 다음 주에 가보니 수강인원은 반도 안 되는 수로 줄어 있었다. 이 수업 때문에 문화기획을 포기했다는 이의 일화도 전해졌다. 두려웠다. 나 이대로... 괜찮은 걸까?

괜찮지 않았다. 전혀. 매주가 새롭고 놀랍고 짜릿한 과제와 발제와 조모임의 연속이었다. 파워포인트는 발표 당일 완성되기가 부지기수였고 발표 전, 다른 수업 시간에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외우고 외워 겨우 발표 준비를 할 정도였다. 내가 못하는 건 그렇다고 치고, 조에 피해를 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조모임만 아니면 진작 때려… 아… 아닙니다. 뭐, 이런 말을 할 수도 있다. 이렇게 고생했으니 분명 배운 게 있지 않겠냐고.

있지, 물론. 이이이이이이렇게 고생하는데 배우는 게 없으면 할 이유가 없지. 하지만 다시 한 번 그 고통과 배움을 등가 교환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절대 예라고 대답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이상훈 선생님. 성적… 저한테 왜 그랬어요. 말해봐요. 저 진짜로 C+ 주신 겁니까. 한 학기 동안 선생님 밑에서 개처럼 발표해 온 날! 말해봐요! 에이, 아니다. 이미 받은 성적은 됐고요. 다음에 이 수업을 들을 가여운 이들을 위해서라도, 조금만 살살해주시면 안 될까요… 제발…

 

뭘 배우냐면, 음 그건 랜덤이야.

(수업은 아니지만) 성공회대에 워크샵은 꽤 특별한 행사다. 학생들이 주체가 되는 장. 다른 학교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성공회대만의 독특한 문화다. 그런데 신문방송학과의 워크샵은 쪼끔 더 독특하다. 뮤지컬, 연극, 뮤직비디오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만들어 발표하는데, 이를 위해 학생들은 어마무시한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는다. 큰 노력을 들여야 하지만 여기서 무언가를 얻어갈 수 있는가 하면 글쎄.

케바케고, 사바사다. 누굴 만나 뭘 하냐에 따라 이 두 달 남짓한 시간이 천국일 수도 지옥일 수도 있단 얘기. 3회를 채워야 졸업을 인정받을 수 있어, 참여하지 않을 수 없음에도 그렇다. 누군가는 팀워크와 한 장르에 대한 기본을 배울 수 있다. 반면 누군가는 고생만 쌔빠지게 하고, 조원 간의 불화와 사람에 대한 불신만 얻어갈 수도 있다.

영상이라도 찍으려면 밤샘촬영과 밤샘편집은 필수 코스, 무대에 서기 위해선 끝없는 연습이 요구된다. 다른 수업에 지장이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없다. 그렇다고 워크샵에서 학점을 받아가는 것도 아니고. 행여 워크샵을 앞두고 알바라도 하는 날엔 조원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해야 한다. 일도 힘든데 수업 준비는 또 그대로 못하고, 미안하기만 해야 한다면 글쎄, 어느 순간 이걸 내가 왜 하고 있나 싶다. 구조적 문제다.

다른 거 다 신경 쓰지 말고 워크샵만 신경 쓰라기엔 흠, 세상은 워크샵이 신방과에 처음 생겼을 때와 크게 달라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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