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필수 앱 ‘에브리타임’을 떠나는 사람들
“에타 봤어?”라는 물음, 대학생이라면 흔히 듣는 말이다. 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 및 시간표 서비스인 ‘에브리타임(에타)’은 전국 대학생 450만 명 이상의 사용자를 가지고 있다. 다양한 게시판과 댓글 위주로 운영되는 에타는 대학교 필수 앱이라 불릴 정도로 대학사회 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에타를 삭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사람들이 에타를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에타를 왜 삭제했냐는 물음에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에타 게시물·댓글의 배타성과 공격성을 강조했다. 소통은커녕 싸움으로 번지기 일쑤라고 답했다. 발전적인 토론이란 불가능에 가깝고, 계속되는 설전에 지친 사람들은 떠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실제로 청년참여연대의 <‘에브리타임’ 내 혐오표현 관련 이용자 설문과 대학 정보공개청구 결과 분석> 이슈리포트는 이 같은 문제들을 정확히 짚고 있다. 이슈리포트에 따르면, 에타 이용 경험이 있는 응답자 중 79.1%가 이용 도중 불쾌했던 경험이 있으며 막말과 비방, 소수자 혐오 등의 이유로 불쾌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또한, 에타 이용규칙 개선에 동의하냐는 질문에 79.3%의 응답자들이 ‘그렇다’고 답했다. 이런 문제 상황은 ‘대학사회 내 최대 공론장’이라 불리는 에타의 사회적 효과에 의문을 들게 한다.
‘에브리타임=공론장’, 그 공식은 틀렸다
‘에브리타임=공론장’이라는 공식에 균열이 가고 있다. 공론장의 정의에 따르면 공론장은 사회 구성원들의 합리적 토론과 그에 따른 사회적 합의 도출로 구성되어야 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에타가 공론장의 능력을 상실했다고 주장한다. 에타는 이미 비방과 혐오로 점철되었기 때문에 합리적 토론과 사회적 합의가 결코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에타 속에서 난립하는 비방과 혐오가 대학사회의 문제들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이에 ‘오프라인 공론장의 확대’가 현 상황을 타개할 방안으로 주목되고 있다.
온라인이냐 오프라인이냐, 양자택일의 딜레마
오프라인 공론장을 확대하면 모든 문제들이 해결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지난 7월 성공회대 학우 30명이 참여한 회대알리 주관 ‘성공회대 공론장 인식조사’에서 오프라인 공론장의 단점은 △시간·공간적 제약 △다양한 의견 수렴의 어려움 △코로나19 위험성 △저조한 참여도 등으로 나타났다. 특히 설문조사 참여자 중 약 46.7%가 오프라인 공론장 참여 경험이 없다고 답하며 소극적인 참여수준을 드러냈다. 사실상 오프라인 공론장의 단점은 온라인 공론장의 문제점만큼 그 수가 많고 고질적인 셈이다.
또한, 에타가 사라질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로 대학사회 내 영향력을 고려해야 한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에타는 대학생의 의견이 가장 많이 집결된 공간이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학우들이 지속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된 상태다. 에타의 문제의식에는 동의하지만, 소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에타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현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온·오프라인 공론장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대학사회는 양자택일의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따라서 회대알리는 공론장 분야 전문가를 통해 기존 공론장의 문제점을 짚고 대안을 찾기로 했다. 디지털 민주주의 플랫폼을 구축하는 사회적 협동조합 ‘빠띠’의 김연수 이사를 만나보았다.
빠띠, 민주주의, 그리고 공론장들
▲지난 7월 16일 빠띠(사회적협동조합)와 니트생활자(비영리 스타트업)가 작은 공론장 "팔도강산 백수들의 먹고사니즘에 관하여"를 주최했다. 줌(ZOOM) 프로그램을 활용한 디지털 공론장의 형태다.
Q. 빠띠 플랫폼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무엇인가.
‘디지털 민주주의 플랫폼’이다. 디지털 플랫폼은 모든 것이 디지털 기술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될 수밖에 없는 디지털 전환의 시대에서의 소통의 매개 혹은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플랫폼은 누구나 접근 가능한 공공적 성격을 지닌 공간이어야 한다. 자본 소유의 플랫폼을 넘어 시민이 소유하는 커먼즈로서의 플랫폼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디지털 민주주의 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Q. 빠띠의 디지털 공론장과 에브리타임(대학생 커뮤니티), 온라인 커뮤니티와 같은 공론장의 차이는 무엇인가.
가장 큰 차이는 기업이 아닌 시민적 소유, 커먼즈로서의 플랫폼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빠띠의 디지털 공론장은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소통과 매개의 공간을 추구한다. 또한, 말 그대로 시민들이 숙의를 통해 공론을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리고 안전한 공론장을 추구한다. 안전한 공론장은 혐오표현이 제한되는 공론장을 의미한다. 빠띠의 디지털 공론장 플랫폼은 행동 강령을 제시하고 있다. 행동 강령에서 벗어나는 게시물은 신고에 따라 가려지거나 삭제된다. 안전한 공론장이라는 최소한의 틀 내에서만 개개인들의 자유롭고 평등한 숙의가 가능하다. 인터넷 공간에 숙의가 작동하지 않으니 자신의 감정적 표출로 끝나기 마련이다. 에타 같은 다른 공론장에도 최소한의 규제는 있지만 ‘숙의’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소통과 설득은 없고 감정표현만 있는 것이다.
Q. 온라인 공론장의 문제점이 화두에 오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오프라인 공론장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 디지털 공론장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공론장을 이분법으로 구분할 수 있다면, 오프라인 공론장의 장점은 현장에 모인 사람들의 고양감과 비언어적 소통의 확보 등을 제외하면 딱히 크지 않다. 반면 줌이나 구글 미트 등 온라인 실시간 공론장은 전국의 다양한 시민들이 순식간에 모이도록 하거나, 코로나 상황에서도 진행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디지털 공론장은 점점 더 구별하기 어려운 온·오프라인의 장단점을 모두 포착하여 장점을 극대화한다. 그리고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디지털 전환의 과정 속에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즉, 온라인 공간에서의 문제점은 온·오프라인을 연결하는 디지털 공론장의 양적·질적 발전을 통해 해결해야 하지, 온라인을 배제하는 오프라인으로의 환원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Q. 빠띠가 바라보는 한국사회 공론장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또한, 더 나은 디지털 공론장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종족주의, 또 다른 용어로는 진영론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는 확증편향 속에서 각자가 속한다고 생각하는 정당, 공동체, 지역, 정체성 등에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내며 유리한 정보만 취사선택하여 안정감을 얻고 상대편을 적대하는 것의 문제일 것 같다.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우리는 공론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른바 ‘공론장의 부재’가 한국사회 공론장의 문제인 셈이다. 핵심은 숙의가 없다는 것이다.
사회 곳곳에서, 국가 제도, 시민사회, 온라인 공간 등 다양한 층위의 다양한 영역에서 숙의의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 이는 이기기 위한 논리 싸움에 가까운 토론이 아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뤄지는 토의가 더욱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것이 공론장에서 기대하는 바이다. 지속적으로 숙의 문화 형성에 노력해야 한다.
Q. 청년들의 적극적인 사회적 논의를 위한 일상 속 공론장을 운영하고자 한다면, 어떤 형태일 때 현존하는 공론장의 문제점을 타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형식으로서, 혐오표현 규제와 참여자들 간의 동등한 조건 등이 있다. 한 사람이 독점적으로 말하지 않도록 막아야 하며, 운영자가 권력을 가져서는 안 된다. 발표자는 어디까지나 촉진자이자 서포터여야만 한다. 하지만 이런 형식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형식은 최소한의 조건으로서 필수적이지만, 형식을 마련해놓아도 규제와 문화가 형성되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공론장의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참여자든 기획자든, ‘민주시민으로서의 역량강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민주시민으로서 역량 강화된 개인이 최소한의 조건인 형식과 결합해 문제점들을 약화시킬 수 있다.
정리하자면, 빠띠의 공론장은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소통과 매개의 공간, 숙의의 공간, 안전한 공간을 지향한다. 김연수 이사는 “다양한 층위와 다양한 영역에서 숙의가 작동하는 공간”이 이상적 공론장이라 답했다. 하지만 현재 에타에는 숙의의 개념이 없다. 소통과 설득은 사라지고 감정표현만 남았다. 이것은 비단 에타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전반 공론장의 문제이며, 동시에 공론장의 부재를 몰고 온 원인이다. 따라서 숙의를 통한 민주시민으로서의 역량강화가 우선적인 숙제다. 몇몇의 일시적인 설전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의 다양한 주체들이 깊은 숙고를 거쳐 민주적 의사결정을 실행할 시점이다.
이상적 공론장으로 향하다
이쯤 되면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즉 이상적인 공론장은 어떤 모습이냐는 것이다. ‘성공회대 공론장 인식조사’에 따르면, 성공회대 학우들이 그리는 이상적 공론장의 형태는 다음 키워드로 대표될 수 있다.
또한, 지난 6월 개최된 총학생회 주관 오프라인 공론장 <수다판 하나: 모두의 화장실 얘기하고 싶은 사람 모여라!〉의 참여자 이나경(사회융합자율학부 18), 송석준(IT융합자율학부 21)는 본인에게 이상적인 공론장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다양한 의견의 사람들이 평등하게 토론하고 논쟁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논의해야 한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차별과 혐오를 용인해서는 안 된다. 그런 환경 속에서 평등한 논의는 불가능하다. 그 공론장은 차별과 혐오가 향하는 정체성이나 사회적 위치에 대한 억압을 용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가장 이상적인 공론장은 자유롭게 열려 있으면서도 차별과 혐오에는 단호하게 대처하는 공론장이다.”
-송석준(아이티융합자율학부 21)
“이상적인 공론장을 만들기 위한 장치들이 필요하다. 모아 놓고 자유롭게 말해보라고 하는 형식은 공론장이 아니다. 즉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내는 것은 이상적인 공론장의 형태가 아니다. 공론장을 통해 공유하는 가치들이 넓어지고, 촘촘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학교 공동체에서 내가 놓친 것은 무엇일지 우리가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확장해가는 공론장이 이상적이다.”
-이나경(사회융합자율학부 18)
성공회대 학우들이 바라는 이상적 공론장을 키워드와 구체적인 답변으로 만나보았다. 우리는 이상적인 공론장을 제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상적인 공론장을 위한 장치들을 만들어야 한다. 이나경 학우가 언급한 것처럼 ‘모아 놓고 자유롭게 말해보라고 하는 형식’은 공론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기의 대학 공론장, 대안을 바라보다
대학 공론장의 위기는 곧 대학사회의 위기와 직결된다. 공론장의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책을 고민하며, 결국 실행에 옮기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회대알리는 김연수 이사와 성공회대 학우들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공론장 제안서를 만들었다. 아래의 제안서는 숙의 문화 형성과 활용을 위한 네 가지 의견을 담고 있다. 첫째, 층위와 영역의 다양성을 고려해 공론장을 세분화한다. 둘째, 공론장 개최 전 관리자의 공론장 행동강령 제작이 우선되어야 한다. 셋째, 행동강령을 토대로 참가자들이 주체적인 합의를 통해 세부규칙을 설정한다. 넷째,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공론장을 형성한다.
제안서의 핵심은 숙의다. 회대알리는 숙의를 기반으로 한 소통의 토론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대학 공론장을 기대한다. 나아가 성공회대 학우들이 시민역량을 함양할 수 있는 공론장을 바란다. 지난 8월 성공회대 내 모든 학생회에 제안서를 전달했으며, 현재 이와 관련된 학생회 내부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제안서에 대한 학생회의 답변과 사업 진행 여부는 후속 기사에서 담을 예정이다.
취재=오은송, 최민서 기자
글=최민서 기자(zlxl7894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