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국어대학교 박정운 총장이 지난 4일 저녁 글로벌캠퍼스 학생들을 대상으로 중복학과 구조조정 관련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날 박 총장은 현재 추진하고 있는 글로벌캠퍼스 유사중복학과 학제개편과 관련한 내용을 설명하고 학생들의 질문에 답했다.
박 총장은 간담회에 앞서 이번 학제개편 취지를 설명했다. “지금 진행하는 사업은 ‘폐과존치’”이며, “폐과의 기준은 대법원 판례에 따라 신입생과 재학생이 모두 0명이 되는 경우를 표현한다”고 운을 뗐다. 이어 “현 중복학과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현 상황을 설명한 박 총장은 학제개편 관련 학과들에 대한 향후 대책을 구체적으로 발표했다. 박 총장이 발표한 대책은 크게 8가지 사항으로 나뉘었다.
1. 재적생의 졸업 시까지 강의 및 학사 운영을 지원하고 폐강 기준의 완화 등을 통해 수업권을 보장한다.
2. 신입생의 모집 중단 이후에도 학과장의 보직을 유지하며 소속 재적생(유학생 포함)과 이중전공생의 규모를 고려하여 장학금 지원 및 조교 배정, 진로취업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3. 2개 이상 전공 취득 시, 학위증과 졸업증명서에 명기할 전공명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4. 구조조정 해당학과의 재적생 0명이 되는 시점 이후 졸업증명서는 서울캠퍼스 해당 학과명으로 발급한다.
5. 부전공 및 이중전공 이수자가 추가 학점(총54학점)을 취득할 경우, 또 하나의 제1전공으로 인정한다.
6. 4학기 수료 예정자에게도 전과 기회를 추가 1회 부여한다.
7. 구조조정 해당 학과는 2023학년도 이후 본 대학교 입학생을 대상으로 한 전과, 이중전공 및 부전공 모집에서 제외한다.
8. 위 사항은 현 아랍어통번역학과 학생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한다.
박 총장은 대책을 설명하기 위해 독일어통번역학과에 재학 중인 A 학생을 예시로 들었다. A 학생의 제1전공은 글로벌캠퍼스 독일어통번역학이며 이중전공은 서울캠퍼스 경영학이다. A 학생을 사례로, 이번 간담회에서 소개된 제도를 이해해보자.
이중전공 이상 취득 시 명기할 전공명 선택 가능… 원한다면 서울캠퍼스 전공 명기
이번 간담회에서는 ‘중복학과 학생이 2개 이상 전공을 취득할 경우(부전공 제외), 학위증과 졸업증명서에 명기할 전공명을 선택’하는 내용이 발표돼 논란이 불거졌다. 예컨대 제1전공이 독일어통번역학인 A 학생이 이중전공을 경영학으로 취득한 경우, 본인이 학위증과 졸업증명서에 명기할 전공명을 독일어통번역학과 경영학 중 선택할 수 있는 제도이다. 만약 중복학과 학생이 원한다면, 서울캠퍼스 경영학 전공을 졸업증명서에 명기할 수 있는 것이다. 박 총장은 “현재 우리 학교에서는 허용하고 있지 않은 제도이지만, 교육부는 허용하고 있다”고 말하며, “제2전공을 제1전공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이 제도는 현 구조조정 대상인 12개 중복학과에만 해당하는 특별제도”라고 언급했다.
졸업증명서에 3전공 역시 제1전공으로 표기 가능… 제한 없다
박 총장이 제시한 ‘3전공 제도’ 역시 논란을 키웠다. 3전공 제도는 부전공 및 이중전공 이수자가 제1전공에 준하는 54학점을 채울 경우, 해당 전공을 제1전공으로 인정해주는 제도이다. 교무처장에 따르면, “학점에 따라 이중전공(42학점) 기준 12학점을 더 듣는다면 또 하나의 전공이 생기는 것”이다. 박 총장은 “3전공을 원한다면 3전공 학점을 54학점까지 이수하고, 이를 제1전공으로 인정해주는 시스템을 만들 것”이라며 “이를 위해 한 학기 혹은 1년을 추가로 다녀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데, 학생들의 요구에 따라 3전공을 가지고 제1전공 그대로 졸업하거나 3전공을 제1전공으로 인정받아 졸업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결국 독일어통번역학과 A 학생은 현재 이중전공 하는 경영학과를 54학점까지 채운다면, 학교는 이중전공인 경영학을 제1전공인 독일어통번역학과 동일하게 인정해줄 수 있다. 관련하여 “졸업증명서에 명시할 전공명을 선택할 때, 3전공 역시 가능하냐”는 한 학우의 질문에, 박 총장은 “가능하다. 이것을 하기 위해 새로운 제도를 신설하겠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현재 교내 모든 학생 중 이중전공 학위를 제1전공으로 인정받는 경우는 없다. 위 두 제도에 따르면, A는 제1전공을 경영학과로 바꿀 수 있다. 또한 제1전공을 독일어통번역학과 경영학 두 개로 졸업할 수도 있다.
폐과되면 졸업증명서는 서울캠퍼스로… 중복학과 학생이 폐과 졸업증명서 원해도 불가
폐과존치는 중복학과의 마지막 재학생이 졸업하는 시점에 끝난다. 이후 A는 독일어통번역학과의 졸업증명서를 받을 수 없다. 따라서 A의 졸업증명서에는 통합 학과(독일어과)가 전공으로 표기된다. 박 총장은 “폐과된 과와 가장 유사한 학과로 변경되는 것”이라며 “과거 무역학과는 현재 경영대학과 국제통상학과로 분할되었기 때문에, 당시 졸업생이 지금 증명서를 뗀다면 경영대학으로 나오는 것과 유사하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졸업하고 학위를 받더라도 현재 재학 중인 학과로 학위를 받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있다”는 의견에 박 총장은 “폐과가 되면 학과 코드가 사라지기 때문에 어렵다고 보여진다”고 말했다.
폐과되는 중복학과 역시 갈팡질팡... 향후 대책은 아직 미흡
당장 자신의 과가 없어지는 중복학과 학생들의 처우 역시 준비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 총장은 중복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신이 언급했던 ‘특별장학금’ 질문에 대해, “학교의 기본적인 장학금 원칙에 따라 기존의 장학금을 특수한 제도로 돌리는 것은 기존 학생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라며 “학교 예산이 허용하는 범위와 모금활동을 통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타 학생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범위에서의구체적인 재원 마련까지는 아직 논의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폐과로 인한 인적 네트워크 붕괴를 우려하는 한 학우의 질문에, 박 총장은 “통폐합 학과들의 동문회 통합 추진을 시도하겠다”라며 “후배들이 없는 것은 안타깝게 생각하고 고민해보겠다” 정도의 답변만 내놓았다.
전과는 동일… 신입생에게는 1회 추가 부여
한국외대의 전과 제도는 2학기에서 3학기 사이 가능하다. 다만, 이번 구조조정 대상 중복학과 학생들의 경우 4학기에서 5학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추가 1회 부여된다. 따라서 올해 신입생은 총 2번의 전과 기회를 얻는다. 박 총장은 전과 제도와 관련해 “고학년이 전과하더라도 별도의 혜택은 없으며, 일부에서 제기한 전과 100%로 풀어달라는 제안에는 학교 시스템상 불가하다”고 밝혔다.
전략언어융합대학 논의는 진전… AI융합대학은 글쎄
글로벌캠퍼스 비중복학과에 대한 박 총장의 답변도 이어졌다. 지난 1일 공개된 학교 측 제시안에서 나온 서울캠퍼스 AI융합대학 설립과 관련해, 박 총장은 “준비가 불충분하기 때문에 확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며 “아직은 논할 단계가 아니”라고 말했다. 다만, “컴퓨터공학과처럼 컴퓨터가 중심인 과가 있다면, 고유 학문에서 AI와 빅데이터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과도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AI와의 연계를 통한 학문 발전을 위함”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반면 박 총장은 전략언어융합대학에 대한 논의는 꽤 이뤄졌다고 전했다. 박 총장에 따르면, 기존의 동유럽대학과 국제지역대학 비중복학과(아프리카학부, 한국학과, 그리스-불가리아학과, 중앙아시아학과) 4개가 합쳐지는 전략언어융합대학은 동유럽대학이 먼저 제의했다고 전해졌으며, 단과대학 내 학부 운영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박 총장은 “편입생도 동일한 조건에 해당”하는 점을 언급하며 “학과가 존재하는 한 재입학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한 “이미 융합인재대학 신설로 인해 신입생 모집을 받지 않는 아랍어통번역학과에도 해당 조치를 중복학과와 동일하게 적용할 것”이라고 전했다. 박 총장은 “구조조정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문서에 명시하여 공지할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글로벌캠퍼스 총학생회는 마지막 질문으로 “이후 설문조사 결과 반대 의사가 높을 경우, 결정이 바뀔 수도 있는지” 물었다. 이에 박 총장은 “이 사안은 20년 넘게 끌어온 이슈”라며 “학교 전체의 흐름에서는 이런 변화를 거쳐 빠르게 미래를 위해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의 설문조사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20년 넘게 논의하며 준비해왔고 큰 변수가 없다면 추진될 것”이라면서 구조조정 의지를 강력히 내비쳤다.
박 총장의 발언이 끝나고 통번역대학 학생회장은 “개편이 진행되더라도 학생들에게 대안을 마련해 달라”고 촉구했으며 국제지역대학 학생회장 역시 “학교 측이 현명한 방안을 마련해달라”며 “비중복학과 4개 학과와 동유럽대학과의 통합 과정에서 처음부터 학생의 의견을 수렴해달라”고 발언했다.
간담회 이후 에브리타임(교내 익명 커뮤니티)에서는 학생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박 총장과 학교 행정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한편 박 총장은 6일 서울캠퍼스 학생들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가질 계획이다. 서울캠퍼스 총학생회 측은 의견 수렴을 위한 긴급 설문조사와 간담회 현장 참석 신청을 받고 있다. 간담회는 저녁 6시부터 진행될 예정이며 ‘한국외대교육지원팀’ 유튜브에서도 생중계될 예정이다.
오기영 기자 (oky98@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