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권센터가 13일 오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고 김 이병의 부친이 참석한 가운데 육군 12사단 GOP 사망사고 관련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8일 육군 군사경찰은 유족을 대상으로 수사 설명회를 열어 김 이병이 소속 부대원들의 괴롭힘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설명했다. 군인권센터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군의 부대관리 소홀, 미흡한 대처 및 수사 과정의 부실함을 지적했다.
김 이병의 부친은 지난 12월 외대알리와 인터뷰를 통해 “명명백백하게 사실 그대로 밝혀달라"고 말하며 사건의 진상 규명을 호소했다. 또 “무리한 수사로 남아있는 병사들에게 억울한 일이 생기지 않게끔 해달라”고도 전했다. 그러나 군 수사 결과, 아들의 사망은 부대 내 괴롭힘으로 인한 극단적 선택임이 밝혀졌다.
(이전기사 보기) “명명백백하게 사실 그대로 밝혀야죠” 외대생 12사단 GP 사망사고 유가족 인터뷰
“집단 괴롭힘이 극단적 선택을 불렀다”...간부까지 가담해 김 이병 괴롭혀
소속 부대원들은 이제 막 전입 온 김 이병에게 한 달 내내 괴롭힘을 일삼았다. 가해자들은 김 이병에게 A4용지 29페이지 분량의 노트와 전투 편성표를 암기하라고 강요했다. 근무에 필요한 내용을 숙지하는 것이 필요할지라도, 암기 강요는 엄격히 금지된 군의 악⋅폐습이다. 또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가해자들은 “총으로 쏴버리겠다”라거나 “다른 부대로 쫓아 버리겠다”며 협박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이병은 생전, 가족 간 채팅에서 특정 병사가 자신을 이유 없이 괴롭힌다고 말했다. 유족 역시 지난 외대알리와 인터뷰를 통해 “유독 한 놈이 괴롭힌다고 했지만, 본인도 ‘시간 지나면 나아지겠지’ 정도로 넘겼다”고 전했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김 이병을 주로 괴롭힌 인물은 상황병 A 상병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A 상병 뿐만 아니라 다수의 병사들이 김 이병을 괴롭힌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부대 내 부조리를 통제해야 할 B 하사 또한 괴롭힘에 가담한 것으로 밝혀졌다. 소수의 인원들만 생활하는 감시초소 내에서 고립된 김 이병은 군생활에 적응할 수 없었다. 지속적인 괴롭힘에 시달린 김 이병은 결국 입대 세 달 만에 사망했다.
“부대 관리만 제대로 했어도…”
지난해 9월 5일 입대 후 10월 27일 소속대로 전입한 김 이병은 ‘전입신병집체교육’과 ‘적성검사’, 그리고 GOP 경계근무를 위한 ‘경계작전교육’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김 이병은 이러한 교육과 검사를 받지 못한 채, 전입 열흘 만인 11월 7일 근무에 투입됐다. 투입 전 필수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이유는 ‘소속 여단의 관리 부실’로 드러났다. 해당 부대는 지속적으로 최전방 근무에 투입되는 신병 대상 교육을 제대로 진행해오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안이한 부대⋅병력 관리도 사건의 불씨를 지폈다. 부대 내 병영 부조리와 악⋅폐습이 근절되지 않았고 이를 관리해야 할 간부까지 괴롭힘에 합세했다. 군인권센터는 “부대 관리의 총체적 부실을 방증하는 단면”이라며 “전⋅현 여단장 뿐 아니라 군 수뇌부 전반의 책임 소재를 보다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응당한 처분이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판초우의에 총기가 걸려 격발됐다”... 간부의 허위보고가 가렸던 사망 원인
사고 직후 이뤄진 군 간부의 허위 보고가 김 이병의 사망 원인을 파악하는데 혼선을 줬다. 사건 당일(28일) 20시 44분경 총기 발사를 최초로 목격한 C 일병은 즉각 상황실에 보고했다. 보고를 받은 B 하사는 20시 47분에 열린 대대 화상보고(VTC)에서 “김 이병이 C 일병에게 라이트를 받고 방탄조끼에 넣을 때 판초우의가 총기에 걸려서 한 발이 격발됐다”며 사건을 단순 오발 사고인 양 허위보고했다. 이후 육군전술지휘정보체계(ATCIS)를 통해 상급 부대에도 허위보고가 이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B 하사는 초동 보고를 정정하여 사실대로 보고했으나, 이미 지휘 계통과 부대 곳곳에 허위사실이 퍼져버린 뒤였다.
B 하사는 C 일병을 통해 보고받은 내용을 허위로 짜깁기했다. C 일병은 최초 보고에서 20시 41분 김 이병에게 라이트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를 토대로 B 하사는 라이트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판초우의에 총이 걸려 격발됐다는 구체적인 거짓말을 덧붙여 허위보고했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사건 이후 B 하사는 군사경찰에 ‘두려운 마음에 허위보고를 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병영 부조리에 의한 총기 사망 사건을 총기 오발 사건으로 둔갑시키려 한 것은 범죄행위나 다름 없었지만, 육군 군사경찰은 「군형법」 상 허위보고죄로 B 하사를 입건하지 않았으며 입건 계획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유가족은 B 하사를 허위보고죄로 고발할 예정이다.
“군의관이 CPR 진행했지만…군이 민간 구급활동 투입 지연시켜”
군 구급일지에 따르면 김 이병이 쓰러지고 3분 뒤인 20시 47분, 대대 화상보고와 동시에 환자 발생 보고가 이뤄졌다. 보고 당시 김 이병은 심장 하단부 관통상을 입었고 맥박은 뛰고 있었다. 군의관은 20시 53분에 출발해 6분 뒤인 20시 59분 소초에 도착했다. 중대장이 21시 정각에 요청한 응급후송헬기는 우천으로 출동하지 못했다. 군의관은 21시 02분에 의식이 없고 맥박이 뛰지 않는 김 이병의 상태를 확인한 후, 21시 57분까지 약 1시간가량 CPR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후 대처에서 허점이 드러났다. 군의관이 조치하는 사이, 부중대장은 21시 09분 119에 신고했다. 2분 뒤인 21시 11분 양구소방서 해안119지역대와 양구경찰서 해안파출소 순찰차가 동시에 출동했다. 구급차와 순찰차는 21시 13-14분경 소초로 진입하기 위한 군사 보호 지역 앞(양구 통일관)에 도착했다. 그러나 구급차와 순찰차는 군부대의 통제로 인해 소초 내로 진입하지 못했다. 군 안내 차량은 21시 26분에서야 인솔을 시작했으며, 부대 앞에서 13분가량 서있던 구급차와 순찰차는 사고 발생 50분이 지난 21시 33분에 현장에 도착했다. 뒤늦게 도착한 119 대원이 응급처치에 동참했으나 김 이병은 끝내 사망했다.
지난해 12월 유가족에게 접수된 익명 제보에 따르면, 급박했던 당시 부대 내에서는 “누가 마음대로 민간 앰뷸런스를 불렀느냐?”며 내부 설전이 이뤄졌다. 이를 두고 군인권센터는 “군은 사람의 생사가 달린 순간에도 민간과 군을 나눴다”며, “무슨 이유로 구급 인력의 부대 출입이 통제된 것인지 명명백백히 밝혀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전했다.
군 “구급차 막지 않았다”...한국외대 총학생회 “가담한 인원에게 엄중한 처벌” 촉구
사건 직후 늦장 대응에 관해 육군은 “사고 장소는 소방대원이 안내 없이 찾아오기 어려워 군이 함께 이동했고, 구급차를 막은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B 하사의 허위 보고 의혹에 대해 "해당 간부가 임의로 추정해 상황을 보고한 것이고, 최초 보고 이후 23분 뒤 상급 부대로 정정 보고가 이뤄졌다"고 해명했다.
더불어 군 당국은 김 이병이 근무하던 부대의 중대장과 소초장에게 지휘 책임을 물어 이들을 직무유기죄로 입건했다. 김 이병을 괴롭혔던 병사 6명 등에게는 협박죄와 모욕죄 등 혐의를 적용해 민간경찰로 이첩했다.
수사 결과 발표 이후 한국외대 양캠퍼스 총학생회는 입장문을 냈다. 총학생회는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을 통해 "이번 사건은 절대 묻혀서는 안 된다”라며, “군 당국이 합당한 처벌을 내릴 때까지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전했다.
기하늘 기자(sky41100@naver.com)
박원주 기자(dnjswn0320@gmail.com)
오기영 기자(oky98@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