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3월에 발행한 회대알리 16호 지면에 수록한 기사입니다.
대입을 거치면 누릴 수 있는 게 많다고 약속한 이들이 여럿 있었다. 그만큼 대학생이 차지할 수 있는 지위도 다양하다. 사회는 대학생이 노동하고 소비하는 젊은이이길 바란다. 대학은 학생이 취업률 지표 성과를 개선하는 이들이라 말한다. 이 모든 게 대학생이어야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그러나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이해에 대학생을 대치시킨다.
대학생에게 기대하는 바는 모두 다르지만, 대학생 개인은 자신을 향한 모든 기대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대학생만의 자유를 원해 대학생이 된 사람들이 있다. 대학에 학적을 걸어둔 채 다른 곳에 관심을 쏟는 이들도 있다. 강의실에서 마주한 동료 학우들이 젊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고, 취업을 염두에 두고 살지 않는 학생도 있다. 서로 통하지 않는 지위를 중첩한 오늘날의 교집합은 대학생이다. 대학생에게 기대하는 지위와 대학생 당사자가 바라는 지위는 같을 수 없다. 대학생을 향한 이해관계를 걷어내며 대학생의 본질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대학생, 노동하는 사람
대학생이어야만 할 수 있는 노동이 있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대외 활동은 대학생의 참여를 독려한다. 기업이나 공공기관, 사회복지단체 등 학교 바깥의 단체들이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만든다. 교육 기회를 마련하기도 하지만, 대학생에게 노동자의 지위를 부여하는 사업이 대부분이다.
'대학생 서포터즈'라는 이름을 단 사업이 대표적이다. 기업이나 공공기관은 자신들을 홍보하는 콘텐츠를 만들 대학생을 모집한다. 서포터즈가 된 대학생은 모집 단체의 사업 내용을 카드 뉴스로 제작하거나, 관련 현장을 취재한다. 근래에는 많은 대학생이 영상 콘텐츠 제작 역량을 갖추고 있다. 이전과 달리 대학생이 기획부터 편집까지 맡는다. 대외 활동에 들이는 품은 더욱 커졌고, 여러 단체들은 이를 수행할 능력을 우대역량이라 표기한다. 우대역량을 근거로 각종 편집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알거나 대외 활동을 해본 이들을 먼저 선발한다. 사회 초년생인 대학생들은 경력을 쌓기 위해 서포터즈에 지원한다. 반대로 모집 주체는 경력을 쌓으러 온 대학생에게 전문성을 요구한다.
대부분의 모집 단위는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 혜택으로 활동 관련 교육, 수료증과 이력서, 네트워킹 기회 등 대가를 제공한다. 서포터즈 활동이나 콘텐츠 제작 노동에 따른 급여를 약속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활동비를 지급하는 경우가 있지만, 교통비에 한하거나 '소정의 활동비'라 적는 등 정확히 명시한 경우는 거의 없다. 공공기관이나 사회복지기관은 단체 특성 및 사업 목적에 따라 봉사활동 시간을 제공한다. 반면 사기업은 대학생 서포터즈가 만든 콘텐츠를 마케팅에 활용한다. 그러나 콘텐츠를 활용한 대가를 제공하지 않는다.
서포터즈 활동에 여러 차례 참여한 대학생 이 아무개 씨(25)는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는 뚜렷한데, 무얼 지원해주는지 정확히 알려주는 게 없다.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는 절차가 아주 복잡하거나, 지원 여부가 기관마다 달라 보통은 자기 돈과 시간을 쓰며 일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대학생 서포터즈를 희망하는 대학생은 많다. 수료증 때문이다. 이력서에 서포터즈 경력을 추가하면 면접 때 조금이나마 얘기할 거리가 늘어난다. 수많은 대학생이 급여를 받을 수 없는 디지털 노동에 뛰어드는 이유다. 대학생들이 임금 대신 찾은 콘텐츠 제작 노동의 보상은 다름 아닌 사람이다. 서포터즈 활동을 통해 같은 목표를 가진 청년들과 어울린다. 모집 단체는 사회에 먼저 진출한 청년들을 멘토로 내세운다. 학교를 다니며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된다. 그러나 동료 청년들 또한 함께 급여를 못 받으며 함께 일하는 노동자이며, 모여서는 결국 어느 집단을 홍보하는데 자신의 젊음을 동원한다.
대학생 = '젊은' 사람?
모든 대학생이 젊음을 내세울 수 있는 사람들은 아니다. 대학생이 모두 젊은이는 아니며, 청년이 모두 대학생은 아니다. 그럼에도 청년 담론의 큰 축은 대학생이다. 앞으로 받을 기회가 많으니 실패해도 된다는 추상적인 메시지를 대학생에게 던지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실패를 마주한 대학생에게 우리 사회는 관대하지 않으며, 젊은이가 아닌 대학생에게도 마찬가지다.
대학생이 젊은 사람일 수 있도록 규정할 근거는 없다. 입학 규정에 나이를 명시한 학교는 군 사관학교뿐이다. 오히려 국가에서는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장려한다.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은 2017년부터 대학의 평생교육체제 지원사업 라이프LiFE 사업(이하 라이프 사업)을 주관한다. 라이프 사업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사회에 진출한 성인이 원하는 시기에 대학에 입학해 노동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한국성인계속교육학회에서 펴낸 <중장년 대학생의 학업 어려움과 극복 경험에 관한 질적 연구: LiFE 사업 참여 4년제 대학 진학자를 중심으로>(2022)는 라이프 사업에 참여한 중장년 성인이 학업을 진행하며 경험한 어려움과 극복 사례를 담고 있다. 나이가 많을수록 교육 만족도는 높아지는 반면, 나이가 많아 학업 진행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학업을 수행하기에 너무 늦은 것 아니냐는 주변 사람들의 편견에 마주하기도 하고, 젊은 학우들과 세대 차이로 인해 대화가 어렵다고 말하기도 한다. 수업에 참여하거나 학내 시설을 이용할 때 주변 사람들이 이들을 학생이라 인식하지 못하기도 한다. 대학생은 반드시 젊은 사람일 거라는 편견에서 비롯한 사례들이다.
대학생이 아닌 젊은이들이 지워지기도 한다.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청년인 대학생을 대상으로 여러 사업을 진행한다.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가 발표한 창업중심대학 사업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3월 22일, 중기부는 한양대학교에서 창업중심대학 비전을 선포하며, 창업중심대학으로 선정한 6개 대학과 업무협약식을 가졌다. 중기부가 내세운 비전은 '도전하는 청년, 꿈을 이뤄주는 창업중심대학'이다. 지역별 대학을 거점 삼아 청년의 창업을 독려하고, 단계별로 지원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중기부는 대학을 우수한 청년 창업자를 발굴할 거점으로 삼았다.
그러나 대학을 거점으로 삼을 수 없는 청년들이 있다. 대학에 학적을 올린 적 없는 청년들부터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까지, 많은 청년들이 대학 바깥에 있다. 대학생들은 대학의 인프라와 지원을 활용할 수 있으나, 대학생이 아닌 청년들은 그렇지 않다. 고등학교 졸업을 요건으로 내세운 청년 정책과 같은 문제를 공유한다. 학력과 무관하게 대부분의 청년이 취업과 미래라는 고민을 공유하지만, 지원 범위는 학력에 따라 달라진다. 정부가 학력을 비롯한 개인의 지위마다 다른 지원책을 내놓는다면 이는 맞춤형 지원이다. 그러나 학력 칸에 기재하는 내용에 따라 누릴 수 없는 게 있다면 이는 차별이다.
대학생은 젊다는 편견 아래 논의를 진행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부분은 멘토를 자처하며, 청년 대학생의 실패 아래 자신의 사업을 전개한다. 청년 대학생의 실패를 말하는 출판 시장과 강연 업계는 청년과 대학생이 흔들릴 때 오히려 자리를 굳건히 한다. 멘토를 자처하는 이들이 주는 도움이란 자신이 저술한 책과 '팩트 폭격'이다. 대학생인 청년에게는 자신의 대학생 시절을 대비시키고, 대학생이 아닌 청년에게는 대책을 찾으라 타박한 뒤 타박하고 자신이 하는 말이 답이라 말한다.
대학생, 산업예비군?
흔히들 말하길 대학은 진리의 상아탑이다. 상아탑은 동물의 생명권과 윤리를 뒤로 한 채, 코끼리의 상아가 아주 비싼 값에 거래되던 시기에 사람들의 의식 속에만 존재하는 대상을 칭하는 표현이다. 19세기 프랑스의 비평가 생트 뵈브는 현실과 괴리된 작품들을 상아탑에 비유했다. 대학을 말할 때 상아탑이라는 말을 쓴다면, 현실과 거리를 둔 채 진리를 탐구하는 대학의 역할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오늘날 대학의 역할은 학문 탐구가 아닌 취업으로 굳어가고 있다. 호황을 맞이한 산업으로 진출하기 어려운 학과는 비인기 학과로 전락한다. 교육부가 2016년에 시행한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사업, 일명 프라임 사업(이하 프라임 사업)은 이를 부추겼다. 교육부 지방대학육성과가 2015년 12월에 작성한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PRIME)사업 기본계획'에는 '취업·진로 중심 학과로 대학을 전면 개편하고, 학사제도를 학생 중심으로 개선'하고, 사업에 참여할 기회를 얻은 대학에게 평균 50억 원에서 최대 300억 원까지 지원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대학들은 억 단위의 금액을 지원받기 위해 기업의 수요에 맞춰 학과를 재편하겠다는 계획을 앞다퉈 내놓았다.
프라임 사업은 2018년에 끝났지만, 교육부는 여전히 취업을 대학의 가치로 보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2021년에 진행한 3주기 대학 기본역량 진단의 평가 기준 중 하나는 졸업생 취업률이다. 2020년 12월 31일을 기준으로 얼마나 많은 졸업생이 취업했는지가 하나의 지표가 되었다. 종교와 예체능 계열 졸업생은 취업률 지표에서 제외하지만, 다른 모든 계열의 졸업생들 중 취업자의 숫자가 대학의 교육 성과를 증명하는 데 쓰인다.
정부는 대학이 산업예비군을 육성하도록 부추긴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였던 2021년 9월, 안동대학교를 찾아 공학, 자연과학 분야가 취업에 유리하고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인문학은 "그런 거(이공계 전공) 공부하며 병행해도 된다"고 발언했다. 교육보다는 기업의 수요와 산업계 진출을 염두에 둔 시각은 당선 이후에도 드러난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취임 100일을 맞아 연 기자회견에서 반도체 산업에 종사할 인력 15만 명을 양성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교육부는 대학이 필요한 교원만 확보하면 첨단학과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대학설립·운영 규정' 개정안을 내놓았다. 이 개정안대로면, 반도체 사업을 국가 차원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하는데 인력은 대학이 충당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대학은 취업사관학교가 아니다. 대학생은 학문을 탐구해 다양한 가치를 논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대학에게 산업계에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을 키워낼 만큼 충분한 지원을 하는 것도 아니다. (2022년 11월 18일 기사 '등록금 올리면 해결될까? '등록금 인상론'의 함정' 참고) 윤 대통령이 반도체 인력 양성을 논하며 말한 핵심 정책은 교원만 있으면 관련 학과를 만들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를 위해 민관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말을 덧붙였지만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대학이 반도체 교육에 필요한 장비를 제대로 갖췄는지, 그만한 역량을 가졌는지는 대학 기본역량 진단에서 취업률 따지듯 논하지 않았다.
적절한 지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대학은 산업에 투입할 인재를 기르는 곳이 아니다. 대학생이 내는 등록금은 교육 서비스에 따른 비용일 수 있지만, 취업을 위해 맡기는 계약금이 아니다. 대학법인이 영리를 추구할 수 없는 건 상업성이 교육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학이 취업역량을 길러주고, 대학생이 취업을 간절히 바라는 건 어디까지나 취업이 어렵다는 문제에 따른 결과다. 그렇다면 정부가 나서서 할 일은 실효성 있는 청년 일자리 정책 마련이다.
대학생이 대학생다우려면
자기 이력서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쓸 이름이 출신 대학이라면, 대학에 다니는 스스로를 자조하는 것에 불과하다. 경력 칸을 채우기 위해 무급노동을 하는 건 대학생의 기회일 수 없다. 학적 칸에 쓰인 학교 이름 한 꺼풀 벗겨내면 모두가 똑같다. 강의실에 앉은 학생들의 생년월일을 지워도 다들 똑같은 대학생이다. 현 정부가 모든 대학생을 같은 위치로 바라보아 다들 산업계에 진출할 인재로 여기고 있을지 모르나, 대학이 그 역할을 수행한다면 대학이 먼저 나서 해결할 만큼 취업난이 심각하기 때문이지 그게 대학이 당연히 제공해야 할 서비스는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대학생의 본질에서 멀어진 논의가 오늘날 대학생의 삶을 차지하고 있다. 대학생이 청년이고, 젊으며,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게 보편적인 대학생의 삶이 되었다. 대학생은 우리 사회가 청년에게 기대하는 바인 '젊음'을 대상화하며, 노동의 대가를 인정하지 않은 결과를 온몸으로 맞이한다. 그러니 대학생의 본질을 말하고 싶다면 이러한 논의를 그만두는 게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