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05 (금)

대학알리

인권·동물권

휠체어 타고 대학로 공연 보러가기②: 혼자 돌아다닐 수 없었던 극장

극장에 들어가서 나올 때까지 필요했던 직원 도움...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휠체어 바퀴도 평범한 발걸음이 될 수 있도록... '모두를 위한 공간' 필요해

* 지난 편에서 이어집니다.

 

 

STEP 5. 극장 안에서 : 좁은 통로와 객석 간 거리

 

“휠체어 관람객께서는 공연 시작 5분 전에 입장해 주세요”

 

예스24 극장의 매표소는 계단으로만 접근할 수 있는 지하에 있어 휠체어가 갈 수 없었다. 이 때문에 극장에서는 사전에 로비 내 티켓 수령이 가능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휠체어석은 통행이 수월하도록 공연장 출입구 바로 앞에 자리잡고 있었지만 객석 간 통로가 좁았다. 직원은 공연 시작 5분 전에 입장하길 부탁했다. 휠체어가 미리 착석해 있으면 통로가 더욱 비좁아져 다른 관객의 출입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공연장에 진입 후에도 혼자 휠체어를 회전시킬 만한 공간이 나오지 않아 계속 직원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휠체어 입장까지 30분가량 남아있었다. 장애인용 화장실은 지하 3층에 위치해 있었고, 다행히 엘리베이터를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화장실은 관리가 잘 돼있고 휠체어를 돌릴 수 있을 만큼 공간도 넓었다. 

 

그러나 협소한 중소극장의 특성상 로비가 작고 혼잡해 휠체어가 대기할 만한 자리를 찾지 못했다. 다른 관객들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을 자리를 찾다 보니 계단 아래 비상용 출입구 앞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예스24 지하에는 두 개의 공연장이 있는데, 이 두 공연의 관객들이 공연 시작 전에는 모두 한곳으로 몰려 일어난 일이었다. 공연 시작 5분 전까지 약 30분을 그곳에서 대기하며 이따금 지나가려는 관객들에게 길을 내줬다.
 

 

공연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두 개의 턱이 있어 혼자 힘으로 진입이 어려웠다. 직원의 도움을 받아 들어온 후에도 대여섯 명의 관객이 더 입장했는데, 길이 좁아 통행이 힘들었다. 결국 휠체어를 입구 쪽으로 돌린 후 모든 관객의 입장 완료를 기다려야만 했다. 직원은 휠체어를 끌며 몇 번이고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고 사과했지만, 불편을 준 건 직원이 아닌 극장의 구조였다. 

 

 

STEP 6. 공연 관람 : 장애인을 연기하는 배우, 장애인을 체험하는 기자, 장애인은 없는 객석

 

 

뮤지컬 ‘은하철도의 밤’은 주인공 조반니가 옛 친구 캄파넬라와 함께 모험을 하며 스스로를 치유해 나가는 ‘힐링극’이다. 조반니는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단 설정이지만 그건 중요치 않다. 뮤지컬의 핵심은 조반니가 가진 상처와 이를 회복하고 전진하는 과정에 있다. 배우들도 시각장애 연기 자체에 중심을 두진 않는다. 


이날 공연에서 휠체어석을 이용한 건 기자 한 명이 전부였다. 무대 위의 배우도, 휠체어에 탄 기자도 모두 장애인을 연기할 뿐이었다. 정말로 장애를 가진 관객은 극장에 오지 않았거나, 올 수 없었다. 물론 기자가 보지 못한 관객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동이 불편한 지체장애인은 없었다.  


공연이 끝난 후 극장을 나올 때도 직원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직원은 공연 전과 마찬가지로 연신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고 했다.


STEP 6. 장애인을 위한 공간, 결국 모두를 위한 공간이 된다

 

지난 1월 발목이 돌아가는 부상을 당했던 장예빈(22)씨는 다친 후에도 공연 관람과 레슨을 위해 자주 대학로를 방문했다. 장예빈씨는 약 4주간 깁스를 한 채 대학로를 오가며 “극장 통로가 좁고 계단이 많아 통행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엘리베이터 없이 계단만 있는 곳을 지나야 할 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거나 벽을 짚어야 했다”며 “객석 간의 거리가 너무 좁아서 움직일 때 자꾸 발목이 돌아가 통증이 심해졌다”고 말했다. 또 “요즘 극장은 거의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한성아트홀이나 예스24 극장 같은 곳은 엘리베이터가 방문객이 찾기 힘든 곳에 있다”고 말했다. 장씨는 “계단 옆에 오르내릴 수 있는 보조 기구를 설치하거나, 객석 간의 거리가 더 넓어지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1998년 중증 뇌변병 장애인 이규식씨는 지하철 리프트를 이용하다 휠체어 추락사고를 겪었다. 1년이 넘는 손해배상 소송은 이규식씨의 승리로 끝났고, 추락사고를 개인의 책임이라 주장했던 서울교통공사는 이규식씨에게 500만 원을 배상했다. 그리고 이듬해 혜화역에는 전국 최초로 양방향 엘리베이터가 설치됐다. 오늘날 모두가 편리하게 이용하는 엘리베이터는 이처럼 장애인들의 피와 투쟁으로 설치됐다. 


현재 서울시 지하철의 엘리베이터 설치율은 94%에 달하지만, 장애인들은 지나치게 긴 이동 동선과 엘리베이터의 잦은 고장, 리프트 이용에 필요한 인력 부족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금도 혜화역에는 시위를 막기 위한 바리케이드와 현수막이 설치돼 있다. 장씨는 “깁스가 불편해 친구에게 ‘차라리 휠체어를 탈까’ 농담 했더니 친구가 ‘그럼 혜화역에서 못 내릴걸’이라 답했다”고 말했다.

 

 

장씨는 현재는 깁스를 벗었으나 여전히 대학로의 인프라가 미비하다고 말한다. 그가 언급한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는 보조기구’나 ‘충분히 넓은 객석 간 거리’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필요한 시설이다. 25년 전, 장애인 ‘때문에’ 설치했던 엘리베이터가 현재는 모든 시민들의 발이 되어주는 것을 보면 말이다.

 

 

ROLL 0. 모두를 위한 공간을 위해

 

“눈앞에 생생하게 너도 누릴 자격 있어”
- 뮤지컬 ‘은하철도의 밤’ 중

 

‘Step’은 발걸음을 내디딘다는 뜻이다. 앞으로 전진한다는 느낌을 주기에 목차 표기법으로도 많이 활용된다. 누군가의 Step은 발을 앞으로 내밀어 걸어가는 것이고, 또 누군가의 Step은 휠체어의 바퀴를 힘차게 굴리는 일이다. 다만 우리 사회는 바퀴를 굴리는 행위도 Step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하다. 

 

시력이 나쁜 사람은 공연을 볼 때 안경을 쓰거나 렌즈를 낀다. 하지만 그런 물건들의 반입이 불편한 극장이 있다면 어떨까. 나아가 아예 그런 물건을 쓸 수조차 없는 극장이 있다면. 현재의 대학로 극장가가 휠체어 이용자에게 그런 공간이 아닐지 고민해 봐야 한다. 휠체어 하나 편히 들어오지 못하는 극장에서는 분명 다른 누군가도 불편함을 겪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대 위의 장애인 캐릭터들이 희망과 치유를 노래할 때, 불과 몇 미터 떨어진 혜화역의 장애인들은 입을 틀어막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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