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청년층을 설명하는 통계 속 단어 하나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그냥 쉼.” 통계청에 따르면 구직활동도, 학업도, 직장생활도 하지 않는 이른바 ‘쉬는 청년‘이 꾸준히 늘고 있다.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방향을 잃은 멈춤이다. 사회는 이를 “청년의 무기력”이라 부르지만, 나는 그것이 청년 개인의 나태가 아니라 구조의 피로가 만든 멈춤이라고 본다.
“그냥 쉰다”는 말에는 체념이 있다.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했지만 돌아오는 건 불합격 통보, 끝없는 경쟁, 불안정한 미래다. 대기업의 공개채용은 사라졌고, 남은 자리는 대부분 단기계약직과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이다. 중앙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청년층 비경제활동인구 중 “그냥 쉰다”고 응답한 비율은 10년 전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일자리 충격이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고, 청년층 체감실업률은 20% 안팎에서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다.
청년들은 이제 “노력하면 된다”는 말에 웃지 않는다. 열심히 살아도 사회는 그 열심을 보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불안정 노동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 청년의 ’쉼‘은 게으름이 아니라 생존 본능의 신호다. 그러나 이 멈춤이 개인 차원에서만 머문다면, 사회는 이를 “관리”해야 할 문제로만 대할 것이다. 그때 등장하는 해법은 늘 똑같다. 청년 수당, 단기 공공일자리, 심리상담 지원. 시혜적이고, 비주체적인 대책. 청년을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시선 말이다.하지만 청년은 보호받을 대상이 아니라, 사회를 바꿀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그냥 쉬자”에서 “정치적으로 쉬자”로 나아가자.
MZ세대라 불리는 청년층은 ’워라밸 세대‘로 불리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쉬지 못하는 세대다. 과도한 노동, 불안한 계약, 감정노동, 고객 갑질, 성과 압박, 플랫폼 평점에 따른 생존 경쟁 그 속에서 청년은 사람이라기보다 시스템의 부속품으로 존재한다. 그 대표적 사례가 런던베이글뮤지엄(런베뮤)이다. 최근 매일노동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곳의 한 20대 직원이 과로로 숨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의 죽음은 우연이 아니다. 한겨례가 보도한 전직 직원들의 증언은 참혹하다.“우린 사람이 아니라 매장을 빛내줄 ’오브제‘였어요.”
이들은 웃는 표정, 인사하는 높낮이, 걸음걸이, 말투까지 통제받았다. 지각 1분이면 시말서, 연장근로 수당은 사실상 불가능, “고객 앞에서는 늘 발랄하게, 밝게, 아름답게.” 누구도 감정이 있는 인간으로서의 청년을 보지 않았다. 한 전직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16시간씩 4일 연속 일한 적이 있어요.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노동을 인간의 존엄이 아니라 브랜드의 이미지로 소비하는 구조 속에서 청년은 ’사람‘이 아니라 ’소품‘이 되었다. 그들의 미소, 친절, 감정까지 상품의 일부로 포장되었다.
나는 이 사건을 보며 청년이 쉬지 못하는 이유를 다시 떠올린다. 청년은 ’게으름‘ 때문에 쉬는 게 아니다. 너무 지쳐서, 더는 버틸 힘이 없어서, 그리고 싸워도 이길 수 없다고 느껴서 멈춘다. “그냥 쉰다”는 말은 사실상 패배의 선언이 아니라 절망의 증언이다.
과로가 의심되는 환경 속에서 세상을 떠난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 이상 어떤 청년도 이런 식으로 소모되지 않기를 바란다.
청년이 단지 ’쉬는 존재‘로만 머문다면, 그 쉼은 곧 침묵이 된다. 그리고 그 침묵 위에서 또다시 누군가의 고된 노동이 반복된다. 이제 청년의 쉼은 정치적 쉼이 되어야 한다. 정치적 쉼이란, 단순히 일을 멈추는 게 아니라 ’멈춤‘을 통해 세상을 다시 보는 것이다. 내가 왜 쉬고 있는지, 왜 버틸 수 없는지를 함께 묻고 토론하는 과정이다.
혼자서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게 아니라, 여러 명이 모여 현실적인 혁신의 요구를 만들어내는 것. 개인 천 명이 “좋은 일자리를 달라”고 외쳐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직된 청년 천 명이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하라“고 요구하면, 사회는 무시하지 못한다. 그 순간 청년은 수혜자가 아니라 정치의 주체가 된다.
청년이 쉬어야 하는 이유를 사회 구조 속에서 찾고, 그 구조를 바꾸기 위해 연대하는 것이 바로 정치다. 우리가 바라는 건 단순히 일자리가 아니다. 불안정 노동이 사라지는 일터, 연장수당이 ’허락받는 권리‘가 아닌 ’당연한 권리‘가 되는 일터, 인간으로 존중받는 노동의 조건의 일터, 이것이 청년이 ’정치적으로 쉬며‘ 만들어야 할 현실이다.
함께 쉬고, 함께 요구하자. 처음부터 완벽할 필요는 없다. 투박한 언어로라도 우리의 바람을 모아보자. 그 바람이 모여 요구가 되고, 요구가 모여 정책이 되고, 정책이 모여 세상을 바꾼다. 청년이 조직될 때, 사회는 청년을 다르게 본다. 청년이 연대할 때, 세상은 그들의 목소리를 지워버리지 못한다.
나는 오늘도 청년·대학생 모임에 간다. 대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는 대학생들과, 과로로 생을 마감한 청년들을 기억하며 정치하기 위해 나선 청년들과 함께한다.
최재봉 진보당 인천청년진보당(준) 운영위원(jbong9966@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