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22 (수)

대학알리

성공회대학교

성폭력 예방교육은 한 번이면 돼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학생들은 1학기에 그렇게 학교가 뒤집어지고 나서도 여전히 커뮤니티 앱 ‘에브리타임’에서 벌어지는 익명의 2차 가해 대잔치에 화가 난다. 페미니즘이고 뭐고 관심 없는 학생들은 그냥 페미니스트라는 애들이 뭔 말 하는지 알지도 못하겠고 관심도 없고 빨리 조용해 졌으면 좋겠다 싶어 짜증이 난다.

학교에 성평등 문화, 특히 반성폭력적 문화를 확산하는 1차적 책임은 무엇보다 대학본부에 있다. 여기는 대학이다. 교육기관이고 재사회화 기관이다. 배우러 모인 사람들이니 무언가 모르는 것이 있다고 그들의 무지에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그냥 방치 하면 우리 모두의 대학생활이 위험하다.

다행히 학교에는 이런 역할을 담당하는 부서가 따로 있다. 역량강화처 산하 성폭력상담소(소장 허성우 교수)다. 그래서 회대알리는 현재 성폭력상담소가 진행하고 있는 성폭력 예방교육의 현황을 확인하기로 했다.

 

1학년 때만 한 번 듣고 마는 성폭력 예방교육

성폭력 사건은 학년을 구분하지 않고 발생한다. 그러나 학교에서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성폭력 예방교육은 신입생 때만 진행된다. 1학년 1학기를 지나고 나면 일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예방교육은 해외봉사활동이나 농촌봉사활동 전에 시행되는 정도가 전부다. 신입생 때에 잠깐 들은 교육이 졸업할 때까지 기억에 남아 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게다가 일회적인 성폭력 예방교육이 학교 구성원들의 의식을 한 번에 개선시켜줄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 한국 사회는 아직 여성혐오에 대한 경계와 성평등 문화가 사회에 완전히 자리잡지 못했다. 대학 입학 전까지 한 번도 페미니즘을 배우지 못한 학생들이 갑자기 페미니스트가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신입생 때, 혹은 특정 행사 이전에 으레 거쳐 가듯이 잠깐 듣는 성폭력 교육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추가로 필요한 교육과 논의를 학교 구성원들에게, 특히 학생 상호간의 활동에 떠맡기는 상황이다.

 

‘출튀’하거나, 반발심만 들거나

회대알리는 지난 1학기 ‘대학생활세미나’에서 성폭력 예방교육을 받은 신입생들을 통해 이러한 일회적 교육이 이제까지 차별적 사회에 대해 고민한 적 없었던 학생들에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학생들이 성폭력 예방교육을 성실하게 듣는지 확인할 수가 없다. ‘출석만 확인하고 튄 다’, 이른바 ‘출튀’를 시전한 학생이 상당수이다. 그렇다면 실제 강의를 들은 1학년들의 느낌은 어땠을까? 한 학생은 “실제 사례를 토대로 설명해서 괜찮았다”고 평하며 “주변 친구들한테 물어보니 친구들도 괜찮았다고 한다”고 전했다. 반대로 강한 불쾌감을 표시한 학생도 있었다. 이 학생은 ‘잠재적 가해자’ 취급을 받았다며 “남자애들 반감을 많이 샀다”고 평했다. 이는 성평등의 문제를 처음 인식하는 학생들에게는 한 번의 교육으로 인식의 변화를 일으키기 대단히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어떤 학생이 왜곡된 성 관념과 자기도 모르게 내면화한 차별적시각을 극복하지 못한 채 졸업할 때까지 학교를 다닌다고 해도, 이를 적절히 재사회화할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다. 그가 성폭력 가해자가 되지는 않더라도, 어느 날 학교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 2차 가해자가 될 확률은 슬프지만 대단히 높다. 그가 2차 가해자가 되지 않고 적절한 의견을 제시하길 바라느니 차라리 그가 사건을 모른 채 지나가거나 관심이 없어 입을 다물기를 기대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공동체에 이런 구성원들이 남아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성폭력 가해나 2차 가해의 위험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감수해야 한다.

지난 4월 25일, 연이어 쏟아지는 대자보와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고발에 제1대 인권위원회 (위원장 이상희)는 성명을 발표해 학교에 “학내구성원 전체를 대상으로 정기적인 반성폭력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 것”을 요구했다. 인권위원회는 “반성폭력 교육은 성폭력 예방을 위해 필수적”이지만 성폭력의 밑바닥에 쌓여있는 차별적 시선을 벗어나는 일은 일회성 교양 프로그램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인권위원회는 학교에 “반성폭력 수업 이수를 필수로 지정”하라고 요구했다. 다시 말하면 교양필수 과목에 반성폭력 교육을 추가하라는 이야기다. 들어야 할 교양필수가 하나 늘다니 언뜻 들으면 귀찮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교양과목 하나 듣는 시늉이라도 해보는 편 이 너, 나 없이 차별적 시선을 내면화한 채 캠퍼스를 활보하는 것보단 백배 낫다.

인권위원회는 “학교본부는 학내 구성원들이 안전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전체 대상의 반성폭력 교육은 학교가 부담해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성폭력 전담 상담사를 채용하고 반성폭력 교양과목을 운영하는 것은 학교의 의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성폭력상담소는 인력과 조직의 개편을 준비하는 중이다. 학생들이 안전한 대학생활을 누리며 내면의 차별적 시각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성폭력상담소의 인력과 기능이 강화 되고 대학본부의 예산 지원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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