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03 (수)

대학알리

성공회대학교

신입생이 바라보는 대학내 민주주의①

신입생이 바라보는 대학 민주주의

우리는 과연 언제쯤 학교를 믿을 수 있을까?

 

 

별다른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작년까지 고등학생이었던 나도, 음주와 1교시의 환상적인 조합에 찌들어가는 대학생이 된 지 두 달여째다. 입학 전부터 이 기사를 쓰고있는 지금까지, 대학 생활에 대해 큰 기대감을 가져본 적이 없다. 물론 아예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관념적이고 틀에 박혀 있음직한 캠퍼스의 로망보다는 입대와 취업문제가 더 크고 현실감 있지 않은가.

그런데, 입대와 취업 못지않은 문제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심각했다.

 

설명 없는 설명회, 인권과 평화의 대학?

3월 15일, 메시지 한 통이 왔다.

 

ⓒ박재연 기자

당일 오전에 발송된 문자를 읽으며 문득 학보에서 관련된 내용을 본 것을 기억했다. 가방에서 학보를 꺼내 펴들었다. 18학번부터 과 없이 입학한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설명회에 참석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선배가 녹음해온 파일을 들었다.

설명회에는 설명이 없었다. 18학번부터 적용될 예정이라는 단일학부제 제도는 4학년까지의 커리큘럼 조차 채 완성되어있지 않았다. 2학년까지 학교에서 내세우는 인권, 평화, 민주주의, 생태 가치를 배운 뒤 3학년부터 트랙을 결정해 학생이 자유롭게 전공 21학점을 채운다는 개략적인 계획뿐이었다. 이날 설명을 맡았던 혁신평가지원단 소속 박상선 교수는 말을 끊지 말아달라는 학생의 말조차 끊었으며,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한 학생들의 질문에는 재학생에게 피해가지 않도록 진행하겠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문제에 대한 대비나 해결책은 없었다. 답답했다. “재학생에게 피해가 안 간다.”는 말이 계속 되풀이 되자, 중반부터 이 말이 “너희랑 상관없다. 조용히 해라.”로 들리기 시작했다. 나에게 오는 피해가 없다고 침묵하는 것은 내가 배워온 민주주의와 달랐으며, 이제껏 봐온 정의와도 맞지 않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인권과 평화의 대학이라는 문구는 빛이 바랜지 오랜 것 같았다.

학교가 특정 사안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내가 입학하기도 전에 시행된 75분 분할수업제도는 도입 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 학생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성의있는 절차는 없었다. 학생들의 항의 집회는 학교 측에 여론으로도 취급받지 못했다. 총장이 자신이 몸담고 있는 학교의 학생에게 “차라리 방통대에 진학했어야 했다.”는 말을 했다는 사실을 안 뒤에는 어이가 없었다. 학생총투표까지 진행했고, 다수 학생들의 의견이 시행 반대로 모아졌지만 소용없었다. 학생의 의견은 어느 한 곳에도 반영되지 못했다. 학교는 그냥 귀를 막았던 것 같았다.

소통의 측면과 실질적 문제 해결의 측면 모두에서 답답했던 설명회가 끝나고 며칠 뒤, 학칙이 개정됐다. 그러나 개정된 학칙은 설명회에서 안내된 것과 전혀 달랐다. 기존 학과를 4개의 범주로 나누어 각각을 자율전공학부로 구성한다는 내용은 단일학부제보다 학과통폐합에 더 가까웠다. 설명회에서 부총장이 직접 “학생과 더욱 소통하려 노력할 것이고 소통의 장 또한 마련하겠다”고 말했음에도 학생들에게 일언반구 없이 5일 만에 학칙 개정을 승인한 것이다.

 

 

민주 시대를 역행하는 학교들

학교 측이 학생의 의견을 묵살하는 경우는 다른 학교에도 많다. 등록금과 대학구조조정을 둘러싸고 학생들이 대학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대학은 학칙을 적용해 학생들의 발언을 막거나 징계하고 있다. 징계의 근거가 되는 학칙은 대부분 1970~80년대에 제정된 것으로, 인권 침해적 요소가 크다. 이는 1975년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시절 학생들의 유신 철폐 투쟁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조직된 학도호국단의 학칙에 기반하고 있다. 그 후 80년대 학생운동을 거치며 사실상 사문화되었지만, 최근 들어 학생들이 문제를 제기하거나 정책에 대한 의견을 개진할 때 학교 측이 은근슬쩍 꺼내들어 무기로 써먹는 것이다. 우리 학교도 학칙에서 이런 독소조항이 남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학칙 제18장 학생활동 제60조(학생단체) 총학생회에 속하지 아니하는 학생단체를 조직할 경우 총장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분류

내용

해당 대학

(개)

비율

(%)

조직 승인

학생단체 조직 시 사전 승인

118

59.6

금지 활동

정당 및 정치적 목적 사회 단체 가입 불가

67

33.8

집단적 행위, 농성 등 정치활동 금지

108

54.5

학교 운영 관여 불가

22

11.1

사전 승인

집회

162

81.8

게시물, 광고 등 게시

159

80.3

기관 또는 개인에 대한 학생활동 후원 요청, 시상 의뢰 

102

51.5

외부인 사학 내 초청

110

55.6

간행물

간행물 간행 시 지도 교수 지도, 배포 전 사전 학장 승인 

183

92.4

징계

징계 제적된 자는 재·편입학(타학교 징계자 포함)불가 

118

59.6

현재 대학 학칙에 남아있는 학도호국단 학칙 독소조항 현황 (출처 :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실).

집회와 간행에 사전 승인 조항이 있는 학교가 가장 많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학교 측이 언제든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독소조항을 이용해 학교 측이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사례는 여럿 존재한다. 2008년 중앙대학교가 두산그룹에 인수된 뒤, 두산그룹은 학교에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이에 반대하는 학생들은 집회를 열었고, 중앙대학교 교지 ‘중앙문화’는 비판기사를 실었다. 중앙대학교는 사문화된 학칙 규정을 꺼내들어 집회를 불허했고, 반대 학생들에게 징계를 가하는 한편 인쇄물에 사전검열을 실시했다. 학교는 학칙을 ‘정당한 진압’ 방법으로 사용했다. 현재 중앙대학교 학보는 학교 측으로부터 받는 지원이 없다. 이들을 응원하는 학생과 동문의 지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건국대학교 총학생회는 학과통폐합에 반대하며 유인물을 배포해 문제를 알리려했지만, 학교 측의 요청을 받은 보안업체가 유인물 배포를 중단시켰다. 최근에는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 설립을 반대하며 학생들이 본부 점거 농성을 했지만, 학교 측은 사다리차와 물대포를 동원해 학생들을 진압했다. 서울대학교 학보 ‘대학신문’은 3월 13일 신문을 호외로 내는 동시에 1면을 백지로 발행했다. 학교 당국의 태도에 항의하는 의미였다.

지금 우리 사회는 시민들의 힘으로 대통령이 탄핵 될 정도로 민주적인데, 대학은 아직 유신 시절에 머물러있었다.

 

이 기사는 신입생이 바라보는 대학 내 민주주의②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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