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가 들어왔다. 2017년 3월 28일 열린 제 33대 상경대 학생회장 재선거가 선거세칙을 위반한 부정선거이며, 이 부정선거에 대한 재선거 진행을 상경대 학생들이 만장일치로 반대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부정선거와 만장일치. 궁금했다. 이 사건이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번 들여다보기로 했다.
1. 브리핑
지난 4월 10일. 한국외대 총학생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중앙선관위)는 상경대의 제 33대 학생회장 재선거 결과를 부정선거로 선언했다. 상경대 선거관리위원회가 효력이 만료된 선거세칙을 가지고 선거를 시행했으며, 이는 선거법을 위반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중앙선관위는 당시 상경대 학생회장 후보 손인하의 당선을 무효화 할 것을 상경대학생회에 ‘권고’하였다. 이에 상경대 학생회는 임시 학생총회를 열어 권고 조치에 대해서 상경대 학생들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4월 25일 이 사건에 대해 당시 상경대 학생회장 당선인이었던 손 씨를 의장으로 하는 상경대 임시총회가 열렸다. 안건에 대한 투표 결과 중앙선관위의 권고를 수용하자에 찬성0표, 반대86표, 기권 16표가 나왔다. 상경대에서는 압도적인 표 차이로 중앙선관위의 권고를 수용하지 않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2. 세칙 적용의 문제
중앙선관위의 조사결과 2014년 11월 28일 상경대학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상경대 선관위)에서 선거시행세칙을 개정했다. 그리고 약 일주일 후인 2014년 12월 6일 이 세칙은 상경대학 학생대표자회의에서 한 번 더 개정되었다.
이번 제33대 상경대 선관위에서 사용된 것은 2014년 11월 28일 개정 전 세칙이었다. 상경대학 학생회칙 상 세칙 개정안이 통과되면 의장의 공포와 동시에 효력이 발생한다. 하지만 손 씨는 2014년 11월 28일자의 효력이 없는 세칙 하에 선거를 진행하게 된 것이다.
현재 효력이 있는 2014년 12월 6일의 선거시행세칙에 따르면 상경대 선거기간 중 투표 업무와 개표소 출입은 상경대 선거관리위원과 선거운동본부장만 입장이 가능하다. 상경대 선거관리위원회의 집행위원에게는 권한이 없다. 그러나 이전 시행세칙으로 진행된 이번 선거에서는 상경대 선관위 집행위원들이 투표용지 교부, 선거인명부 확인, 개표소 출입을 했다. 이에 대해서 중앙선관위는 “선거의 공정성을 심히 훼손”한 부정선거라고 규정하였다. 당시 중앙선관위장으로 조사를 진행했던 윤무영 총학 부비상대책위원장은 알리와의 인터뷰에서 상경대의 결정에 대해 “중앙선관위는 학우들의 의견과 선택을 존중하지만 명백한 부정선거에 있어서 중선관위의 권고문에 대한 압도적인 반대는 유감스럽다.”고 전했다.
3. 선거에 얼마나 영향을 주었을까?
효력이 없는 선거 세칙으로 선거를 진행한 것은 선거법을 위반한 것이기 때문에 부정선거가 맞다. 그러나 이전 세칙으로 선거가 진행되었을 때 선거의 당략을 결정할 정도로 영향을 끼쳤는지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두 세칙의 차이점은 상경대 선관위에서 모집한 집행위원의 역할에 있다. 현 시행 세칙에서는 집행위원이 투표용지 교부, 선거인명부 확인, 개표소 출입을 할 수 없다. 이는 투표관리업무 권한이 여러 사람에게 공유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함으로 판단된다. 예를 들어 투표용지, 선거인 명부, 개표소를 관리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누군가 선거인명부를 조작해서 대리투표가 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중운위의 선거 조사에서는 이전 세칙 적용으로 인해서 선거 결과를 왜곡할만한 부정행위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현 선거세칙기준으로는 선거에 문제가 있었지만 실질적인 선거과정에서의 비밀투표권 침해, 투표조작 등의 행위는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4. 그냥 실수일까? 고질적인 인수인계 문제
상경대 집행부원 A씨에 따르면 상경대는 고질적으로 전대와 후대 사이의 인수인계가 잘 안 되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 친분에 의존하여 상경대에 행사가 있을 때마다 그때그때 물어보면서 일이 진행되었다. 이번 상경대 학생회장 선거에서 이 문제가 여실히 드러났다. 제33대 상경대 선관위와 이전 상경대 비대위 사이에서는 12월 6일자로 개정된 회칙을 인수인계하는 과정이 없었다. 또한 현 상경대에서 선거에 적용한 11월 26일 버전 회칙을 얻은 경로 역시 아는 선배를 통해서 입수했으며, 이것이 효력 없는 세칙인 것은 누군가 중앙선관위에 신고를 한 이후에 알게 되었다고 A씨는 밝혔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번 선거와 동일하게 12월 6일자 세칙의 적용을 받는 2015년 11월 25일 치러진 제 32대 상경대학생회장 선거에서는 이러한 세칙 적용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박지호 32대 상경대 총학생회장이 공금횡령으로 탄핵된다. 이를 이어서 당시 배문진 국제통상학과회장이 상경대 비상대책위원장을 급작스럽게 맡으면서 인수인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전임자의 횡령, 잠적 이후 탄핵 등으로 기록물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손인하 상경대학생회장이 알리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단순히 이러한 설명으로 인수인계의 미숙함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어 보인다.
5. 잘 모르겠다. 다소 의아한 입장표명.
미숙한 인수인계로 이전 세칙을 적용한 것과 더불어서, 중앙선관위의 권고를 거부했던 임시총회 결과 입장표명에 있어서도 의문이 생긴다. 지난 4월 10일 SNS를 통해서 공개된 중앙선관위의의 권고 이후 같은 달 26일 상경대는 임시총회 결과를 보고했다. 그러나 임시총회 결과 공고문에는 이번 선거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과실을 저질렀는지 대한 언급이 없다. 또한 당시 임시총회 내용에 대한 글을 SNS에 업로드 할 때 손 씨가 단대 집행부 구성원들과의 의논 없이 작성한 내용을 독단적으로 올렸다고 익명의 상경대 집행부 관계자는 밝혔다.
무엇보다도 당시 상황의 중심인물이며, 상경대 회장으로서 누구보다도 이 상황을 파악하고 있어야 할 손 씨는 사실상 이 상황에 대해 아는 게 없다고 한다. 임시총회가 약 한달 가량 지난 6월 4일 일요일. 상경대 임시총회결과에 관한 알리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손씨는 이전 세칙으로 선거를 진행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본인이 사정을 모두 알지 못하며, 당시 상경대 총회에서도 ‘본인의 거취에 관한 문제의 경우 의장은 사회권을 가지지 못한다는 회칙이 있는 점과 원활한 논의를 위해 논의가 진행되는 도중 잠시 퇴장한 이유로 본인의 기억이 완전하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임시총회 결과에 관한 글을 손씨가 작성하여 올린 바 있다.
6. 0:86, 거수투표 다 해봐서 알잖아?
한 상경대 학생에 따르면 손 씨는 권고 이후 ‘선관위의 권고를 받아들여서 재선거를 하면 1학기 모든 행사 일정이 마비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밝혀왔다. 단대를 운영하는 대표자 입장에서는 가능한 재선거를 하지 않고 1학기 행사들을 잘 마무리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처사이다. 그러나 문제는 임시총회의 의사결정 투표 진행방식이 거수투표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현재 과학생회부터 총학 전학대회 까지 대부분의 의사 결정 방식이 거수투표로 진행된다. 다양한 안건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누가 안건에 대해서 찬성하는지 또는 반대하는지도 알 수 있게 된다. 같은 과 선배,동기,후배인 ‘상경대장의 거취에 관한 문제를 다루는 데에 있어서’ 남들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반대86표라는 압도적인 투표 결과 자체만 보고는 문제 삼을 수 없다. 사안과 맥락에 따라서 그런 수치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를 문제라고 말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7. 권고만 가능한 부정선거 무효, 자체적인 개선 노력의 필요
현재 학생회 회칙 상 중앙선관위는 부정선거 의혹에 대한 조사와 해당 선거에 대한 선거 무효 권고조치만 할 수 있다. 권고조치는 강제적인 명력이 아니다. 이번 사건을 제외하고 올해만 해도 동아리연합회, 스페인어과 그리고 국제통상학과에서도 부정선거가 발생했다. 작년에는 아랍어과 그리고 프랑스어교육과에서도 부정선거가 발생했다. 올해 스페인어과, 작년 아랍어과가 권고를 받아들여서 다음 선거까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간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중앙선관위의 권고를 수용하지 않았다.
이처럼 총학생회의 중앙선관위는 회칙 상 각 선거가 절차상으로 정당성이 있는 지에 대해서만 밝혀줄 수 있다. 최종적인 결과 수용은 각 과 혹은 선거 단위에서 결정해야 한다, 즉, 해당 단위의 자치권행사를 따라야한다. 한편, 올해 중앙선관위원장을 맡았던 현 총학 부비대위원장 윤무열은 “강제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생긴다면 중앙선관위의 권한이 악용될 여지가 충분히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중앙선거관위의 권고를 통해 각 단위의 구성원들이 직접 결정을 내려주시는 것이 더욱 권위 있고 강제적인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말했다. 이러한 점에서 각 단위의 선거가 절차적으로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선거 운영에서 자체적으로 실수를 줄이고 그러한 노력에도 발생하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의지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개선해나가는 방법 밖에 없다.
8. 근데 왜 자꾸 이런 일이 일어날까.....자치와 책임의 관계
학생회 선거에서 선거세칙 위반이 일어날 수 있다. 미숙함에 대한 잘못은 인정하고 개선을 해나가면 된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나갈지 각 단위가 자체적으로 자정작용을 해나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에 있어서 마냥 학생들이라고 느슨하게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선거제도에 대한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실수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인정해줘야 할 부분일 수 있다.
다만 실수를 할 수도 있음을 인정해주는 것은, 그 실수를 정확히 알고 책임지고 개선해나가겠다는 약속이 전제가 되어야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상경대에서 보여준 모습은 대표자가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을 못할 정도로 모르고 있었다는 점에서 개선에 대한 진정성 여부에 의심이 생긴다. 또한 그것에 대한 실수를 인정하는지에 대한 진정성 의심도 생긴다. 86:0이라는 숫자는 개운하지 않다.
9.
글을 마무리하면서 학생회를 하고, 학생회를 하면서 의도치 않은 실수를 저질러서 욕을 먹어도, 학생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이들이 무조건적으로 비난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이 있기에 우리가 알지 못하게 학내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다양한 혜택을 받고 있음은 틀림없다. 그러나 일부 학생회에서 그들이 가진 자치권에 대한 책임 의식이 약해지는 모습이 보인다. 그 극단적인 사례가 남한결과 이슬이었다. 이들에 비해서 상경대의 경우는 비교적 심각한 사태가 아닐 수는 있다. 그럼에도 손 씨가 이 상황에 대해 잘 모른다고 답변한 모습은 그의 진정성과 책임 의식에 대해 의심을 던지게 만든다.
현재 상경대는 지속적으로 재정 상태를 공개하면서, 학생사회의 신뢰를 얻고자 하는 모습이 보인다. 시작은 미숙했지만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
인보근 기자(coriendo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