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전부터 티저만 몇 번을 돌려보며 오매불망 택배 기다리듯 기대한 영화가 있다.
10월 23일(목) 개봉한 데이비드 핀처의 ‘나를 찾아줘’.
감상평은 당장 포털 사이트에도 넘쳐날 테고 스포일러도 피할 겸,
데이비드 핀처 신작 개봉 기념 퍼스트 네임이 ‘데이비드’ 인 영화감독 3인을 소개한다.
#오덕_댓츠노노 #10덕주의
THRILL ME _ 데이비드 핀처
최근 개봉한 <나를 찾아줘> (원제: Gone Girl)를 포함해 핀처의 필모그래피에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 많은 편이다. 그만큼 핀처는 원작의 훌륭한 재료를 그만의 방식으로 요리하는 데 능한 감독이다.
그는 이미 평단과 관객을 모두 만족시킬 줄 아는 스릴러계의 마스터. 광고와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인정받은 이력이 있는 만큼 독특하고 미끈한 영상미에 탄탄한 각본, 연출력이 여러 작품들의 오프닝들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스타일’에 심취해 있는지 알 수 있다.
<밀레니엄>의 오프닝은 그 중에서도 인상적인데, 검은 타르가 뒤덮은 주인공의 기괴한 이미지에 음산한 트렌트 레즈너의 선율, 거기에 카렌 오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더해진 타이틀 시퀀스는 모든 영화를 통틀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오프닝 중 하나.
벽과 기둥은 물론이고 사람의 내장까지도 마음대로 넘나드는 핀처의 카메라 워크는 이미 ‘전지적 작가 시점’을 벗어난 수준인데 이처럼 그는 자신만의 독특하고 새로운 영상을 위해 CG 등 최신 기술을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이미 영상 자체가 감독 자신의 철학을 존재로써 증명하는 셈이다.
핀처는 상업 영화를 만들지만, 관객의 기호를 위해 자신을 굽히지는 않는다. 주류인 동시에 개인적인 영화를 지향한다는 그는 “나는 내가 원치 않는 것은 결코 한 적이 없다”라고 당당히 말한다.
그런 자세와 감독의 완벽주의가 만나 다수의 관객을 사로잡고, 소수에게서는 열광에 가까운 찬사를 이끌어 냈다. 이번 신작 역시 명치 끝까지 조여오는 스릴러의 묘미를 느끼고 싶다면 최고의 선택이 될 것이다.
<세븐> (1995)
인간의 7가지 죄악을 모티브로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마가 주인공. 살인마는 항상 무표정이지만 그래서 더 무섭다. 케빈 스페이시의 연기와 십년 전 영화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세련된 화면으로 유명하다. 이 영화 최고의 명대사는 결말의 ‘헤밍웨이는 세상이 아름답고 싸울 가치가 있다 했다. 그 중 후자에는 공감한다’인데, 엔딩이 꽤 찜찜한 편. 일반적 범죄물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데이비드 핀처 판 묵시록이라고 부르는 이도 있다.
<파이트 클럽> (1999)
모든 장면에서 데이비드 핀처의 스타일리스트적 면모가 드러나는 작품으로 액션 영화를 가장한 심리 스릴러. 특히 보통 영화보다 3배나 더 많은 필름을 써가며 연출한 ‘의식의 흐름’ 이 압권이다. 에드워드 노튼과 브래드 피트의 연기도 훌륭하며 영화 후반부에 다 보고 난 후 곧바로 돌려보게 되는 반전이 있다.
예상 못한 전개. 예상한 감격. _ 데이비드 린치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를 지극히 개인적으로 정의하자면 -
잠에서 꺤 뒤에도 꿈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할 정도로 생생한,
그러나 딱히 기억해내고 싶지는 않은 기괴한 꿈, 이라고 하겠다.
린치의 데뷔작인 <이레이저 헤드>는 77년 개봉 당시 첫날에 관객이 단 24명 들었을 정도로 외면받았으나 81년도까지 꾸준히 상영되었고 아직까지도 심야 극장의 단골 상영작. 데이비드 린치는 1970년대부터 2000년대 미국 영화의 흐름을 상징하는데, 강렬한 데뷔작을 필두로 ‘악취미’라고까지 취급받던 컬트 문화를 주류로 끌어올린 장본인이다.
그의 영화는 대다수 할리우드 영화가 말하는, 모로 가든 서울이면 된다 식의 해피엔딩과는 명백히 다르다. 꿈과 현실, 시공간이 마음대로 뒤틀린 그의 영화는 쉽게 말해 이렇다 할 결말이 부재한다. 인물 설정, 상황 모든 것이 독특한 미스터리의 일부이지만 그 미스터리를 푸는 데 집중하지는 않는다는 것. 칸에서 대상을 받는 등 찬사를 받기도 하지만 너무 어렵고 난해하다며 비판받기도.
사실 난해하다는 의견에 반박할 생각은 없다. 그의 모든 작품들 중 가장 호불호가 갈린다는 <로스트 하이웨이>만 봐도 2시간의 러닝 타임 이후에 뇌의 신경계가 마비되어 사고를 거부하는 듯한 기분이었으니까.
그러므로 어떤 영화 보다 난해하고 좌절감까지도 일으키는 린치의 영화를 즐기려면 스토리를 이해하고, 파편적 이미지를 짜맞추려는 노력 대신 추상화를 감상하듯 ‘체험’하는 게 제일 좋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감독이 창조한 몽롱한 미로 속을 자발적으로 헤메는 자신을 발견할 것. 개인적으로는 2001년작 <멀홀랜드 드라이브>가 그의 악몽에 동참할 초대장이었다.
cf. 컬트 영화 : 일반 대중에게는 알려질 틈도 없이 조용히 묻히거나 혹평 받았지만 소수의 열광적 팬에게 지속적으로 사랑받는 영화. 컬트 영화의 시초는 짐 셔먼 감독의 <록키 호러 픽쳐스>로 본다. 딱히 장르가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일반적 취향을 거스르는 B급 영화가 대부분이다.
<로스트 하이웨이>(1997)
이 영화가 21세기에 영화 보는 법을 바꿔놓았다고 평할 만큼 영화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작품. 린치 특유의 몽환적인 화면에 데이비드 보위, 마릴린 맨슨, 나인 인치 네일스 등 걸출한 뮤지션들의 사운드가 잘 사용되었다. 기괴한 음악과 어두운 고속도로의 이미지만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이다. 영화 자체는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편이나 OST의 훌륭함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멀홀랜드 드라이브> (2001)
줄거리를 간략히 소개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어차피 영화를 보고 나면 알고 있던 줄거리 때문에 머리가 더 복잡해질 테니까. 애초에 완벽히 이해하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시작하면 정신건강에 이롭다. 집중해서 보고 나더라도 이 영화가 마음에 들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데이비드 린치는 이 작품으로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고 많은 이들을 열광시켰다.
광기와 고찰 사이 _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도 데이비드 린치 만큼이나 극단적 그로테스크함으로 유명한 감독이다. 특히 70년대의 초기작들은 기괴한 신체 변형 이미지 때문에 애초에 볼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 테크놀로지, 특히 기계 문명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비판에 더불어 충격적인 비주얼이 특징으로 평론계의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스파이더>를 기점으로 영화의 분위기가 상당히 바뀌는데, 전작들이 육체의 변형과 초월적 세계를 다루었다면(그리고 다 보고 난 뒤에도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면) 이후에는 인간의 정신적 변형과 폭력성, 섹슈얼리티에 집중해서 한결 지적인 영화를 선보였다. 2005년 작인 <폭력의 역사>부터는 광기어린 스타일에서 벗어나서 리얼한 스토리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방식으로 바뀌어서 ‘거장’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러나 역시 사람이 죽는 등 유혈이 낭자한 장면의 디테일을 보면 감독의 화끈한 스타일을 알아차릴 수 있다.
군더더기는 찾아볼 수 없으며 등장 인물은 불필요한 대사를 거의 하지 않고 역할을 다 하면 어느새 사라진다. 또 그의 영화에서는 폭력이 다뤄지지만, 싸구려 감성 따위로 포장하지 않는데다 관객의 예상보다 폭력 묘사의 강도가 높기 때문에 신선한 충격을 준다. 그저 그런 느와르 영화가 미화하는 과시적이고 감상주의적인 폭력과는 달리 그의 영화 속에서 폭력은 속전속결로 이뤄지며 날카로운 긴장감을 동반한다. 냉정한 그의 방식이 속시원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폭력을 향한 동경이나 판타지 충족에 앞서 감독의 냉소와 마주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폭력의 역사>
아무 정보 없이 보는 것이 가장 좋은 영화들이 있다. 이 작품도 그 중 하나다. 일반적인 범죄 영화들과 비슷해 보이는 스토리와 설정이지만, 크로넨버그 특유의 진지한 고찰이 영화 전체에 녹아있으며 생각보다 훨씬 다층적으로 ‘폭력’을 다루고 있다. ‘저지 드레드’의 작가인 존 와그너의 그래픽 노블이 원작이다.
<이스턴 프라미스>
<폭력의 역사>의 후속작으로 주연도 전작의 주연인 비고 모텐슨(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아라곤)이 맡았다. 시작한 지 3분만에 사람 목을 면도칼로 긋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에 (...) 주의 요함. 문신을 소재로 사용한 것으로도 유명하며 주연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가 아주 훌륭하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적나라하고 잔혹한 클라이맥스가 극적 재미의 정점을 찍는다. 연기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볼 가치가 있는 작품.
김하림 기자 skylak0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