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30 (토)

대학알리

성공회대학교

[알권리] 둘리를 베풀었더니 호이로 갚아주다

둘리를 베풀었더니 호이로 갚아주다

소프트웨어공학과 시험지 유출 사건의 전말

“호이! 호이! 둘리는~ 초능력 내 친구~”

어렸을 때 본 둘리는 착한데 성격 더러운 고길동 아저씨에게 구박받는 불쌍한 캐릭터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둘리를 다시 보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고길동 아저씨의 편에 서게 된다. 불쌍하다고 거둬줬더니 허구한 날 집안 가구 부수고, 민폐끼치는 친구들을 허락 없이 불러오면서도 당당한 모습을 보면 화가 치밀 수밖에.

“호의가 계속되면 둘리인줄 안다.”

영화 부당거래의 대사를 패러디한 말이다. 호의를 받고 되려 민폐를 끼치는 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둘리는 초능력을 발휘해 TV를 뛰쳐나와 성공회대학교에 등장했다. 

 

“친구가 시험을 잘 봤으면 좋겠어서”

 

소프트웨어공학과 전공수업인 ‘고급웹2’ 수업은 교수가 제시한 문제를 코딩으로 구현하는 ‘구현시험’을 치른다. 수업은 75분 수업인데 시험을 치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3시간 이상. 때문에 합의를 통해 오후 6시에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수강생 중 몇 명이 수업담당교수인 이승진 교수에게 “아르바이트와 시험시간이 겹친다.”며 시험시간 이동을 요청했고, 원칙이 중요하다지만 생계유지 역시 중요하다고 판단한 담당교수는 해당 학생들만 시험 시간을 앞당겨 오후 3시에 교수실에서 시험을 치르도록 배려했다.

시험 당일, 학생들은 교수실에서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한 학생이 문제를 촬영해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에게 메신저로 전송하는 장면이 교수에게 발각됐다. 교수는 시험 문제를 유출한 학생을 붙잡아 유출 의도를 추궁했다. 학생은 “친구가 시험을 잘 보기를 바라서 유출했다. 다른 이유는 없다”라고 답했다. 황당한 이유지만 납득할 수밖에 없다. 커닝을 도와주는 친구의 목적이 시험의 공정성과 교수의 선의를 기만하며 학우들의 성적을 쥐락펴락 하려는 건 아닐테니. 그러나 본의는 선할지언정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부정행위를 저지른 것임에는 틀림없다.

학과가 할 수 있는 조치는 전부 취했다.

학생들은 시험의 공정성에 예민할 수 밖에 없다. 이를 인지하고 있는 교수는 수강생 대부분이 시험을 치르는 오후 6시에 시험문제 유출 사건을 공개하고, 문제를 변형해 문제 유출로 인한 추가 피해를 방지했다. 또한 추가로 시험문제를 전달받은 사람이 있는지, 이전 시험에서도 유출이 존재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유출자와 전달 받은 학생, 같은 수업을 듣는 친구들을 불러 심문했다. 그러나 그들은 추가 유출을 부인했고, 실제로 그들의 시험 답안 유형이 모두 달라 지속적이고 조직적인 유출 사건이라고 판단할 물증이 없었다. 결국 교수는 시험 문제 유출 사건을 단발성 부정행위로 간주하고 학칙에 의거하여 시험지를 전달한 사람과 받은 사람에게 F학점을 부여했다. 

-소프트웨어공학과 게시판에 올라온 사후방지대책

 

시험문제 유출 사건은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기 때문에 재발방지대책이 중요하다. 소프트웨어공학과 교수진은 학과 게시판에 ‘학과개설 과목의 시험 및 추가시험에 대한 원칙 공지’를 올리며 철저히 학칙에 의거하여 시험을 진행하고, 교수가 허용하지 않은 전자기기는 사용을 금지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시험문제 유출 사건에 대해 학과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조치는 전부 취했다.
 


-교무위원회에서 시험문제 유출 사건에 대한 추가 징계를 할 수 있다.

 

시험문제 유출자에게 F학점을 부여하는 처벌이 약하다는 의견도 있다. 시험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훼손하는 것은 물론이고, 교수와 학생 간의 신뢰를 저버린 행위임에도 재수강하면 그만인 F학점은 큰 손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학과에서도 이 사실을 알고 있으나 학과가 학칙에 의거하여 내릴 수 있는 징계는 F학점뿐이다. 더 강력한 처벌이 불가능하다. 또한 징계에 대한 공식적인 항의가 없어 추가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는 것이 학과의 입장이다. 보다 강력한 처벌을 위해서는 학교의 중요 직책들이 모여 징계를 논의할 수 있는 교무위원회를 열어야 한다. 교무위원회에서는 학칙을 위반한 자에게 근신, 정학, 제적 처분을 내릴 수 있고, 학과 차원에서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학칙을 변경할 수도 있다. 학생이 교무위원회 개회를 원한다면 총장에게 직접 건의하거나 학생복지처를 통해 의견을 전달해야 한다. 공이 학생에게 넘어갔다.

 

개인의 일탈로 학생과 교수 간 신뢰가 깨져 생기는 피해는 모두에게 돌아간다. 유상신 소프트웨어공학과 학과장은 회대알리와의 인터뷰에서 “갑자기 눈이 많이 내려 시험시간에 오기 어렵다는 학생이 있었다. 기존엔 교수 재량으로 따로 시험을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이승진 고급웹2 담당교수는 회대알리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내 수업의 시험은 핸드폰을 압수하며, 손글씨로 코딩을 작성하고, 교수가 지정한 자리에 앉게 할 것”이라 말했다. 학생의 편의를 봐주던 환경에서 모두가 불편해지는 환경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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