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람실 구석에 쌓여있는 책과 개인 물품들(사진 = 정지우 기자)
1학기 수강신청이 한창이던 2월 12일 국제학사 1층 열람실. 방학임에도 적잖은 학생들이 취업 준비와 스펙을 위해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눈에 띈 것은 열람실 입/출구 옆에 위치한 정수기 쪽. 과거 기숙사 식당으로 활용되었기 때문에 식기건조기를 비롯해 일부 선반들이 아직 남아있었는데, 그 위로 수많은 책들이 쌓여 있었다. 심지어는 식기건조기 안에도 책이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기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책 위의 메모 한 장. “훔쳐 가면 3대가 탈모 걸림”이라는, 상상도 하기 싫은 어마 무시하게 끔찍한 말이 적혀 있었다. 사물함이 따로 없으니 개별적으로 경고문을 붙여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 도난의 위험이 얼마든지 존재하며 실제로 도난 사건이 일어났다.
식기 건조기 안에도 책이 쌓여 있다(사진 = 정지우 기자)
피해자가 붙인 경고문(좌), "훔쳐가면 3대가 탈모걸림"이라고 적힌 메모(우)
(사진 = 정지우 기자)
사건은 지난 2월 10일 오전 7시 40분경 발생했다.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사람이 열람실에 들어와 주변을 둘러보다가 전공서적을 훔친 장면이 CCTV에 잡혔다. 책을 훔친 사람은 외대 학생인지 외부인인지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며, 책을 도난당한 피해자는 CCTV를 보고 이 사실을 학내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알렸다. 또한 열람실 출입문에도 피해 사실과 함께 “책을 다시 가져다 두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해 끝까지 신원파악하겠다”는 내용을 적은 종이를 붙여 놓았다.
고장 난 채로 방치된 출입구… 학교 측 “즉시 수리하겠다”
이번 도난 사건이 발생한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출입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보안 문제와 책을 놓을 사물함이 없는 시설 문제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출입 시스템의 경우, 열람실로 들어가기 위해 학생증을 찍었지만 인증을 알리는 초록불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때문에 고장 난 입구 대신 출구 개찰구 옆으로 게걸음 하듯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서적을 훔친 사람 역시 이 같은 방법으로 열람실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출입 개찰구 옆으로 지나가는 모습(좌), 모바일 학생증이 찍히지 않는 상황(우)
(사진 = 정지우 기자)
입구가 고장 났어도 열람실 내에 사물함이 있었다면 도난 가능성은 매우 낮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식기건조기 주변을 비롯해 창틀과 벽면 등에 쌓인 책들은 언제든 도난당하기 쉽게 방치되어 있는 상황이다. 학생들이 책을 챙겨 다니면 예방할 수는 있겠지만 전공서적이 든 가방이 얼마나 무거운지 모르는 사람은 곧 입학할 새내기밖에 없을 것이다.
책을 훔친 사람이 외부인이든 외대학생이든 문제가 심각한 것은 마찬가지다. 만일 출입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훔친 사람이 외대생일 경우 열람실 내 CCTV를 통해 해당 시간대의 출입내역을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반대로 외부인이었다고 해도 학생증이 없는 만큼 무단으로 열람실에 들어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결국 고장 난 채 방치된 개찰구가 원인임은 분명하다.
도서관학생위원회(이하 도학위) 측은 도난 사건과 관련해 “해당사항은 도학위가 아닌 임시도서관 시설관리팀에 문의를 해야 할 것 같다”라고 답했다. 또한 국제학사 열람실 및 사이버관 2층 열람실이 도학위의 담당 구역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사이버관 2층 열람실과 임시도서관 열람실의 좌석을 예약하지 않고 무단으로 사용하는 이용자들을 단속하고 있다”면서 “보안 관련 부분은 관할하고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도서관 열람실 운영 관련 사항을 담당하는 학술정보팀 정보봉사파트(이하 학술팀)에 관련 내용을 문의했다. 학술팀은 도난 사건 제보를 받지 않았으며 출입구가 고장 난 상황 역시 인지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 바로 확인하고 고장이 났으면 즉시 수리하도록 조치하겠다”라고 말했다. 수리가 언제 완료될지 여부에 대해서는 “(해당 업체와) 유지보수 계약이 체결되어 있기 때문에 예산 관련 문제는 없으며, 부품만 수급되면 바로 처리할 수 있다”라고 하며 “다만 장비가 노후화되어 있기에 부품 수급이 늦어지면 1~2주 정도 걸릴 것”이라고 했다.
또한 고장을 확인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기존에는 도서관에 상주하면서 (문제를) 체크했는데, 지금은 별도의 공간이기 때문에 상주하는 직원이 없어서 자율로 운용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상주 인원 문제와 관련해 “학교 보안을 담당하는 경비인력을 배치하려 했으나 (인력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없어 자율 운용을 하게 됐다”라고 하면서 (학생들이) 개별적으로 도난에 조심할 것을 부탁드린다”라고 당부했다.
현재 출입 시스템으로는 도난 방지에 한계… 추가적인 개선방안 필요
예산 배정에 시일이 걸리거나 수리가 어려운 것은 아닌 만큼 열람실 출입구 문제는 이른 시일 내에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시 정상 작동이 된다고 해도 문제는 남아있다. 고장이 나기 이전에도 학생증을 찍지 않고 출구로 들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출구로 들어가려는 사람을 제재할 인력이나 감시 장비가 동원되지 않는 한 도난을 원천 봉쇄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사건이 발생한 이른 아침 시간대나, 혹은 24시간 개방되는 시험기간의 새벽 시간대는 도난은 물론 범죄의 가능성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제학사 열람실 (사진 = 외대알리)
결국 현재 환경에서는 학생 개개인이 물건을 잘 챙기고, 번거롭더라도 소속 단과대의 사물함을 활용하는 것 외에 도난을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추가적인 개선책이 필요한데,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현재 국제학사 열람실의 개찰구를 전면 교체해 무단출입을 할 수 없도록 막는 것이다. 하지만 임시로 사용되고 있는 열람실에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측면이 있다. 도서관 측이 당초 계획했던 경비 인력의 상주 역시 물리적 제약으로 사실상 불가능하나, 이용자가 많은 시험 기간에 한해 무단출입 감시 인원을 두는 것도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하지만 인원을 어디서 차출할지, 어떤 방식으로 무단출입을 막을지 고려해야 할 점이 많다.
인원과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도난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은 열람실 내에 사물함을 배치하는 것이다. 무단으로 책이 방치되어 있는 정수기 주변 선반과 식기 건조대를 다른 곳에 옮기고 해당 자리에 사물함을 놓거나, 국제학사 편의점 앞 등 여유공간이 있는 곳에 사물함을 배치해 필요로 하는 이용자에게 보증금을 받고 진행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전병수 서울캠퍼스 부총학생회장은 “공부할 수 있는 좌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열람실 내에 사물함을 두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는 입장을 밝히며 “고장 난 열람실 출입구 문제를 비롯해 도난이나 안전문제 등에 대해 여러 방안을 검토해보겠다”라고 말했다.
어떠한 대안이든 제약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면학 공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학생들의 학습권에 편의를 제공하고, 도난 문제를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방안이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새 도서관 완공까지 남은 시간은 1년. 정규학기 시험기간만 4번을 앞둔 상황에서 결코 짧지 않은 기한이기 때문이다.
한달수 기자(hds80228@naver.com)
정지우 기자(stardustji@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