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28 (화)

대학알리

성공회대학교

[4월의 종이배] #. 3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


지난 3월 31일, 나눔관 앞에서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가 진행되었다. 과제로 한창 바쁠 시기에 치러졌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우들이 찾아주었다. 데크 뿐만 아니라 자연드림 카페 앞 테이블, 데크 위까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모습은 입학 이후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간담회는 영상 상영으로 시작했다. 앉아있는 참가자들은 참사 당시의 모습과 추모행진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보며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켰다. 이후 유가족 두 분과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 제안자인 용혜인 씨를 모시고 간담회와 질문이 이어졌다. 시간이 흐르며 점점 이야기의 농도는 짙어졌고, 현장의 분위기는 무거워지는 듯 보였다. 슬픈 기억을 떠올리며 유가족 분들도 눈물을 지으며 말을 잇기도 하셨고, 거기에 응하듯 몇몇 학우들도 함께 눈물을 보였다. 다음은 간담회의 질의응답 내용이다.


권기봉

 

세월호 참사 이후, 지금까지 개인의 삶은 어떻게 변했나?

창현 아버지: 참사가 일어나기 전에는 대리운전 사업을 조그맣게 하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광우병 때문에 서울시청에 많은 사람들이 모일 때에도 저는 그냥 뉴스만 보고 말았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엔 그 전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팠기 때문에, 요즘은 아픔의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러 다닌다.

민성 아버지: 사회라는 것은 내가 잘되려면 누군가를 밟고 지나가야 하는 것인데, 결국엔 우리 아이들 또한 거기에 희생양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너무 안타까운 것은 이전에 천안함 사건이 있었다는 것이다. 사건 당시 정부의 발표를 쉽게 믿지는 못했지만 그냥 넘겨버렸었다. 그 때의 ‘나만 아니면 돼.’ 라는 생각에 내 아이를 잃게 된 것 만 같다. 내 권리는 누가 찾아주는 것이 아니다. 결국 스스로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 주장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깨닫지 못한 것 같다. 세월호 사건 이후로 다시는 그런 끔찍한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한다.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방식에 온도 차이가 있겠지만, 세월호가 왜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용혜인: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직후 언론에 진도에 헬기가 몇 대가 떴다 잠수부가 몇 백 명 투입됐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는데 ‘왜 유가족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려 하는 것일까?’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밤 SNS를 통해 소식을 들었는데 난리도 아니었다. 언론에 보도되었던 것은 모두 거짓이었던 것이다. 또 세월호 참사 이후 밝혀진 것 이었는데, 청해진 해운이 일 년에 광고비와 접대비엔 1억을 사용했지만 안전비용에는 56만원을 사용했다는 점과 낡은 배를 헐값에 사와 규제를 완화하면서까지 무리하게 운행한 점, 선장과 선원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한 점 등의 일들은 이번에만 있었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전에도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무너진 삼풍백화점 사건이나 대구 지하철 참사 등의 사건에도 불구하고, 기업은 아직까지도 안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끔찍한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세월호 사건은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창현 아버지: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고 느낀다. 우리 세대까지는 그럭저럭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대학생 세대는 더 힘들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대구 지하철 참사가 났었을 때 제대로 싸워서 사건의 경위가 밝혀져 안전사회를 만들었었다면 지금의 세월호 사건은 없었을 거라고 본다.

참사가 있고 나서 많은 이슈들이 생겼다. 그 중 단원고 기억 교실 존치 문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민성 아버지: 교실을 존치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유가족들의 입장이지만, 재학생 부모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소수의 재학생 부모는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흔적이 사라지면 기억도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언론에선 기억 교실을 폐쇄한다고 보도되고 있지만, 그 부분은 사실이 아니다. 최소한 아직도 배 안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기억 교실은 존치되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세월호 2주기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우리는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묻고 싶다.

용혜인: 사실 별거 아닌 것들도 세월호를 기억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지하철에서 가방에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는 사람과 마주치면 반가운 것처럼 말이다. 이런 아주 작은 변화부터 세월호 집회에 참석하는 것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같이 찾아보고 ‘나 한 명 더한다고 달라지겠어?’ 라는 마음보다는 작은 힘들이 모여 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성공회대 학우들에게 할 마지막 말씀 부탁 드린다.

민성 아버지: 내 권리는 누가 찾아 주는 것이 아니고 나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 이다. 예를 들어 반값등록금 시행을 왜 하지 않는 거냐 불평만 하지 말고 내 스스로의 권리를 세워 적극적으로 항의해야 한다. 세월호 선장은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했는데 절대로 국민들은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부당한 것은 부당하다 얘기 할 수 있어야 한다.


임예현

 

[4월의 종이배] 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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