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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말하는 모두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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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용어 설명★

2016년에 제정된 한국수화언어법은 한국수화언어가 국어(한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임을 밝힌다. 기본적으로 수화는 손동작을 의미, 수어는 수화언어를 줄인 말로 언어임을 의미하는 단어라는 점에서 차이점을 가진다. ‘농인’이란 청각장애인 중 농문화 속에서 한국수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사람을 말하며 농인의 반대말은 ‘청인’이다. 즉 한국어는 대한민국 국민이 사용하는 음성, 문자 등의 복합적 언어이며 한국수어는 대한민국 농인이 사용하는 시각적 언어를 가리킨다.

 

 2019년 12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가장 큰 일상의 변화는 단연 마스크 착용이다. 사람들은 코로나19로부터 ‘나’와 ‘우리’를 지키기 위해 마스크를 착용한다. 하지만 우리의 몸을 지키기 위한 예방책이 누군가의 소통을 가로막고 있다.

 

 한국수어를 사용하는 농인들은 코로나19로 인한 사람들의 마스크 착용으로 인해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농인들이 사용하는 언어인 수어는 시각적 요소들을 최대한 이용하여 소통하는 시각언어이다. 표정을 통해 의문문과 감탄문 등을 표현하고, 화자의 몸의 방향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기도 한다. 결국 수어는 손짓과 함께 상대방의 얼굴에 드러나는 표정과 입 모양처럼 손을 사용하지 않는 비수지(非手指) 기호도 수반하여야만 제대로 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상대방이 수어를 모른다면 필담 혹은 독화(음성언어를 쓰는 화자의 표정과 입 모양을 통해 의미를 이해하는 방법)를 할 수 있는 농인의 경우만이 소통할 수 있다. 하지만 수어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거나, 독화를 할 수 있는 농인의 경우에도 마스크 착용으로 인해 소통이 어려워진 상황이다.

 

“한 나라에서 함께 살아가는 청인과 농인인데 서로를 외국인 대하듯 합니다. 같은 국민이 언어의 장벽을 갖고 있습니다. 궁금하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서로 물어보고 답변해 줄 수 있는 기본적인 회화는 모두가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수어는 ‘농인’들의 언어가 아니라 모두의 언어일 수 있습니다.”

-청소년 수어 동아리 “나비효과” 대학생 단원(전 단장) 심지현(사회융합자율학부 19)

 

 그러나 이러한 소통 단절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존재해왔다. 음성언어가 주류인 한국 사회에서 농인들은 엄연히 배제되고 있다. 수어 통역사를 동반하지 않고 남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농인들이 밖으로 나오면 소통해야 할 사람들은 대부분이 청인들인데 그들은 수어를 모르기 때문이다. 청인들은 주류 언어인 한국어만 배웠고 지금도 공교육에서는 한국어만 가르치고 있다. 코로나19로 농인들의 어려움이 드러난 사례는 더 있었다.

 

"뉴스를 볼 때 가장 많이 수어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뉴스를 통해 정보를 얻고 살아가는데 농인들은 TV 뉴스를 통해 정보를 얻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청소년 수어 동아리 “나비효과” 대학생 단원(전 단장) 심지현(사회융합자율학부 19)

 

 농인들은 재난 상황 정보 전달에 있어서도 소외당하고 있다. 초기 코로나19가 퍼지고 약 2주 동안은 어느 뉴스에서도 수어를 통역하는 화면을 볼 수 없었다.  농인들은 코로나19에 대한 심각성에 대해 제대로 인지할 수 없었고, 수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주변인들에게 의지해야만 했다. 이들은 소수라는 이유로 정보 전달이 늦어져 코로나19에 더욱더 쉽게 노출되는 환경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 사스와 메르스가 퍼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마다 방송사들은 화면 구성상 수어 통역이 들어갈 수 없다거나 예산 문제, 청인들의 항의 우려를 걱정하며 이러한 문제들을 미뤄뒀었다.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막을 내보내면 되잖아?”

 

 청각장애인 중 일부는 한국어를 배운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농인들도 있다. 한국 수어는 한국어와 전혀 다른 독립적인 문법체계를 가지고 있다. 수어는 품사를 중요시하지 않기 때문에 ‘은, 는, 이, 가’와 같은 조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수어를 쓰는 농인에게 있어 한국어는 외국어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어를 배워본 적 없거나 배우기 힘든 농인에게 한국어(음성언어)를 글로 표현한 자막은 의미가 없다.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어딘가 문장이 어색하고, 정확한 말투나 확실한 의미를 모두 전달받기 힘들 때가 있다. 한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에는 그 집단만의 언어문화가 만들어진다. 이처럼 수어를 사용하는 집단에는 그들만의 수어문화가 따로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재난 상황과 같이 중요한 때에는 더더욱 수어 통역이 필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로서 우리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회대알리는 취재 과정 중 2019년 구로마을대학이 수어교실 프로그램을 진행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관련 기사: https://univalli.com/mobile/article.html?no=828) 이에 해당 프로그램 참여자 박상은(미디어컨텐츠융합자율학부 18), 허지원(미디어컨텐츠융합자율학부 18)학우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해당 인터뷰는 서면으로 이루어졌음을 알려드립니다.

 

Q. 처음 수어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박상은: 한 가지 이유는 새로운 언어에 대한 호기심이었고, 다른 하나는 주류의 음성언어로부터 제한되는 사람들과의 소통이 필요하다는 당위성이었어요. 저와 연결되어 있을, 혹은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또 다른 사람들의 ‘불편함’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수어를 배우며 새로운 언어를 쓰는 집단과의 대화를 상상하게 되고, 사회적으로 끊겨왔던 사람들과의 만남을 한층 가까이할 수 있다는 기대로 배움을 즐겁게 할 수 있었어요.

허지원: 특별한 계기가 있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수업이 시작된 후, 수어와 농인 문화를 배우면서 수어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 같아요.

 

 

Q. 일상 속에서 수어의 필요성을 느낀 경험이 있으신가요?

박상은: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손님으로 농인 분이 오신 적이 있었어요. 그때 그 자체로 긴장을 했던 기억이 있어요. 저는 농인을 긴장하는 한 가게의 직원(노동자)이었고, 그 긴장이 전해졌을까 죄송했어요. ‘한글’을 국어로 쓰고 있는 시민 중 실질적으로 언어의 교환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의 존재를 다시 한번 인식할 수 있었어요. 그때 수어가 필수(의무) 교육이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허지원: 사실 수어의 필요성을 직접 목격한 경험은 없는 것 같아요. 그 자체가 오히려 수어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 계기라고 생각해요. 수어 통역사가 모든 공간에 보편적으로 존재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보니 농인이 청인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으며 사회에서 배제되는 일이 발생하고, 그 결과로 수어가 쓰이는 상황을 보고 느끼는 일이 더욱 드물어지게 되지 않았을까요?

 

Q. 사회구성원 모두가 수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박상은: 모두에게 접근하는 언어를 배워야 하기 때문이에요. 장혜영(장애인권운동가) 님은 한 강연에서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은 ‘불행’이 아니라 ‘불평등’이다.”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자신이 감지하지 못하는 ‘일상에서의 불편함을 느끼는 누군가의 존재’는 불평등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해요. 불평등은 문화적인 해결방법뿐만이 아닌 구조적인 해결방법 역시 제시되어야 하고요. 청각장애인의 불편함은 수어의 의무교육과 비음성 언어의 도입만으로도 많이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허지원: 솔직히 저도 수어를 배우고 나서 반년 넘게 쓰지 않다 보니 대부분 잊어버리게 되었어요. 아무래도 수어교육이 흔하게 이뤄지지도 않고 접근성이 많이 떨어지다 보니 (사람들에게) 각인되는 게 어려운 것 같아요. 또 지금은 ‘수어=언어’라는 인식부터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필수교과과정으로 수어를 배운다면 지금보다 보편적인 감각으로 대할 수 있으니까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이 바뀌는 시작점이 될 것 같아요. 지금은 수어가 굉장히 부가적이고 배려적 차원처럼 여겨지면서 의료산업, 문화산업, 심지어 관공서에서조차 수어를 ‘옵션’으로 생각하는데 이러한 생각이 틀어지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그렇다면 수어를 배우고 난 후, 삶에서 달라진 점이 있으신가요?

박상은: 삶에서 다르게 인식하거나 알게 된 점이 있다면, 크게는 농문화(농인 문화)를 알게 되었다는 거예요. 수어는 언어라 수어를 쓰는 농인만의 문화가 존재해요. 나라별로 수어가 다르지만 세계 공통수어가 있고, 수어에는 비언어적 요소인 표정이 중요하죠. 요즘은 수어에서 트랜스젠더와 같은 성별 표현의 수정들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요. 언어는 단순히 대화를 넘어 배움이자 한 개인이 사회를 살아갈 수 있는 권리에요. 그리고 권리를 연대하고 공유할 수 있는 확장이기도 하죠. 위에서 말한 장혜영 님의 강연에서는 마지막쯤 이런 말씀을 해요. “불평등을 자각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지금 내 자리에 있는 너를 상상하기.” 나의 일상에서 ‘너’를 조금 더 가까이 상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허지원: 제가 수어를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이전에는 저 역시 수어를 같은 언어의 선상에 놓지 않았던 것 같아요. 수어를 배우기 전에는 ‘아름다운 소통, 수어’, ‘따뜻한 수어교실’ 등등 이런 포장된 문구에 크게 문제의식을 갖지 않았었는데 그게 잘못된 시선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수어는 그냥 언어이자 권리인데, 마치 ‘배려’인 것처럼 왜곡시키는 표현이더라고요.

 

 코로나19는 우리의 평범했던 일상들을 완전히 뒤엎어 버렸다. 동시에 비가시화되어 있던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들이 국가적 재난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드디어 민낯이 드러났다. 뒤늦게나마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9월부터 지상파 방송사는 메인뉴스에 수어 통역을 도입했으며, 아직은 물량이 부족하고 비싸지만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립뷰(lip-view) 마스크가 개발되었다.

 

 

이는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재난상황 속에서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왔던 이들을 위해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작지만 소중한 움직임이다. 우리는 모두의 권리와 자유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사회 속 농인들의 소통 배제는 단순히 코로나19로부터 기인된 것이 아니다. 아주 오랫동안 우리 속에 가려져 있던 ‘불편한 불평등’이 드러난 것이다. 이 ‘불편함’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그리고 ‘평등’을 위한 노력 역시 우리 모두의 몫이다.

 

취재에 도움을 주신 박상은, 심지현, 허지원, 영등포구수어통역센터 담당자분께 감사드립니다.

 

글=이서영 기자 lsy1680@naver.com

취재=오은송 기자, 이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