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금)

대학알리

성공회대학교

[한글날 특집] 한글 눈보신 ① 옛 한글 글꼴 편

올해도 아-재 꼰-대들이 한글과 한국어도 구분 못 하고 "니네 내가 못 알아먹는 은어 쓰지 말라능!" 광광 우는 한글날이 돌아왔다.  이런 것만 보면 한글날은 "은어 쓰지 마" 빼면 할 말이 없는 날 같다. 사회적 방언의 생성과 유통을 포함한 언어의 변화는 아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인데도 그렇다.

한글날인데 "은어 쓰지 마" 말고는 할 말이 없는 아저씨들, 한글의 멋짐을 모르는 아저씨들은 불쌍해요. 예쁜 한글, 멋진 한글, 보기 좋은 한글은 우리 사는 데 생각보다 훨씬 많은 영향을 미치고, 생각보다 엄청 중요하다. 글꼴 없는 현대인의 생활이 가능한 이야기일까? 도로의 교통표지판 글씨도 글꼴이며, 책에 쓰인 문자의 모양도 글꼴이다. 문자 없는 현대문명을 상상할 수 없듯 손으로 쓴 것을 제외한 모든 문자는 글꼴에 기대어있고, 글꼴 없는 현대 문명도 불가능하다. 이런 거대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수업시간 교수님이 만들어온 PT의 앞장과 뒷장이 다른 두서 없는 글꼴과 구린 '굴림체' 글꼴은 우리의 안구와 정신건강을 해친다.

그래서 광광 우는 아-재, 꼰-대들을 제쳐두고, 한글날 눈보신이나 좀 해보려고 한다. 한글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온갖 예쁜 것들, 멋진 것들이나 구경하자 이거다. 한글날이라면 마땅히 한글의 멋짐과 예쁨을 느껴야 한다. 그래서 준비했다. '예쁜 한글' 특집, 한글 눈보신 특집 첫 번째는 옛 한글 글꼴이다.

 

*이 기사에는 기자의 주관이 다수 개입되어있습니다.
 


PART1. 한글 활자체

한글은 "어린 백성이 이르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제 뜻을 쉽게 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만들어진 문자요, 창제와 동시에 활자화된 문자다. 즉, 민주적 특성을 의도하고 만들어낸 문자라는 얘기다. 탄생의 목적부터 매스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하려는 것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하의 내용은 한문 서예의 다섯가지 글꼴을 자주 언급한다. 만약 한문 글꼴을 전혀 모른다고 해도 감상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겠지만, 궁금하면 읽고 오자.

1. 최초의 한글 글꼴, <훈민정음 해례본>의 판본체


ⓒ문화유산채널(K-HERITAGE)

<훈민정음 해례본>의 '정인지 후서'에는 한글이 "형태를 본뜨되 글자는 고전을 본떴다"고 설명한다. 이 문장을 많은 학자들은 한자의 가장 오래된 형태인 전서체를 따른 것이라고 해석한다. 도장 팔 때 흔히 쓰는 그 꼬불꼬불한 글자가 전서체다. 아니 그 꼬불꼬불한 글자가 대체 어디가 <훈민정음>의 한글 모양과 닮았는지 이상하게 생각될 것 같다. 조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훈민정음>의 판본체 글꼴은 글자의 모든 획을 일정한 굵기로 쓰는 방식이 전서체와 유사하다.

여기에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창제원리를 형상화하여 반영했다. 한글 자모 중 자음은 '천, 지, 인(天, 地, 人)'을 ㅣ, ㅡ, ·, 세 개 획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 원리가 <훈민정음 해례본>의 글꼴에는 그대로 드러난다. 이 모양이 당대에 유행했던 조맹부의 송설체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보단 한글의 창제원리를 표현하는데 전서체와 같이 글자의 획이 균일한 편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쪽에 좀 더 무게가 실린다.


2. 붓글씨를 닮아간다, <두시언해>(1481)

ⓒwikipedia, 1481년 간행된 분류두공부시언해(分類杜工部詩諺解)

정식 풀네임은 <분류두공부시언해>다. '분류'는 말 그대로 분류했다는 것이고, '두공부'는 두보를 말한다. 두보의 관직이 공부였기 때문이다. 언해는 한글로 풀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분류두공부시언해>는 '두보의 시를 분류하고 번역하여 한글로 옮겼다'는 뜻이다.

성종대의 <두시언해> 초간본을 보면 활자로 찍어내는 글자의 모양이 점점 더 붓으로 쓰는 글씨와 닮아간다는 걸 눈치챌 수 있다. 전서체를 본따 획의 굵기가 일정하고 끝이 둥글게 똑 떨어지는 모양이었던 한글은 점점 해서나 행서에서 보이는 붓획의 삐침모양을 닮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손으로 한글을 썼고, 그 손으로 쓴 글자 모양이 다시 한글의 활자체에 영향을 준 것이다. 한글 활자체는 시대가 거듭하고 한글 출판물이 늘어날수록 점점 손으로 쓰는 한문 붓글씨의 영향을 받아 변해갔다.

1. 한글 활자 글꼴의 완성, 오륜행실도(1797)

ⓒ거창박물관, <오륜행실도>


이 와중에 빵! 임진왜란이 터진다. 임진왜란의 혼란이 가시기도 전에 빵! 병자호란도 터진다. 전쟁은 사회, 특히 신분과 계급 체제를 완전히 뒤흔들어버렸고, 전쟁의 상흔이 어느정도 수습되자 국가와 기득권층은 전쟁이 혼란시킨 계급체계를 안정시키기 위해 프로파간다를 강화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출판물이 특히 많이 이용되었다. 숙종대에 국가가 사용하는 새로운 활자를 만들었고, 정조대에 이르면 한글 활자체가 어느 정도 완성된 모습을 보인다. 그 상징적인 사례가 바로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을 맞아 야심차게 제작한 <오륜행실도>다. 

명색 국가간행물인데도 숨길 수 없었던 균형미 없는 글자 모양과 삐뚤빼뚤한 줄맞춤에서 벗어나 글자가 우아하고 힘있고 균형감있으며 글자의 배열이 가지런한 국가간행물이다. 내용은 충효를 강조하는 <이륜행실도>와 <삼강행실도>의 통합본이라 할 수 있고, 간행 시기는 왕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환갑이다. 그림은 누가 그렸는지 전해지지 않지만 정조 당대에 명성을 떨쳤던 단원 김홍도(1745~1806)의 분위기가 난다. 프로파간다의 정점인 동시에 예술적으로도 한 시대의 정점에 오른 작품이다.



PART2. 여성들이 쓰던 한글 궁체


궁중의 여성이 서예를 취미 삼은 경우는 흔치 않다. 글씨를 쓰는 것은 수양의 영역이라 이해되었고 이런 '수양'은 남성의 영역이었다. 그래서 여성들의 한글 육필은 남성의 서예와는 아주 다른 식으로 전개됐다. 조선 중후기로 흘러갈수록 여성들의 한글 글씨체도 발달했는데, 그게 우리가 흔히 "나 지금 진지하다"고 쓸 때 쓰는 궁체, 궁서체다. 흔히 촌스럽고 안 예쁘다고 생각들 하지만, 궁체는 억울하다. 한글 손글씨로 궁체만큼 세련되고 우아한 멋을 지닌 글씨도 없는데 말이다.

궁서체는 크게 정체, 반흘림, 진흘림 세 가지로 구분한다. 반흘림은 해서, 진흘림은 초서에 대비된다. 현재 디지털 글꼴로 구현된 궁체는 사실 정체불명이다. 정체와 반흘림 사이의 요오상한 글씨인데, 정체라고 보기엔 획의 폭이 너무 극적으로 변해서 반흘림이나 진흘림 같고, 반흘림으로 보기엔 흘림이 없다. 결론은 이도저도 아니고 안 예쁘다. 지금부터 알리가 진짜 우아하고 섹시하기까지 한 한글 궁체를 구경시켜드릴 것이다.


1. <남계연담>


ⓒ산돌커뮤니케이션


<남계연담>은 명나라 초기를 배경으로 한 연의체 소설이며, 주인공의 정치역정을 그린다. 조선 중후기로 갈수록 긴긴 밤 심심함을 달래는 필사본 소설이 유행했는데, <남계연담>과 <옥연중회연>은 이 필사본 소설 중 하나다. <남계연담>의 필사본은 누가 썼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단정한 글씨체 덕에 지금도 한글 궁체 서예 교본으로 널리 쓰이고, 글꼴 업체인 산돌커뮤니케이션이 이 글꼴을 디지털화해 '남계연담' 글꼴을 내놓았다. 정체로 반듯하게 쓴 글꼴은 균형감이 있고 우아하며, 필획이 일정한 편이라 긴 소설을 읽기에 가독성이 좋다.

2. <옥원중회연>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소장, <옥원중회연>

<옥원중회연>은 작자 미상의 연애소설 <옥원재합기연>의 이본이다. 궁중의 봉서상궁이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재미있게도 앞부분은 정체로 또박또박 쓰다가 뒷부분은 흘림체로 빠르게 써내려가 책의 앞과 뒤의 글꼴이 다르다. 사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옥원중회연>이 그 시절의 할리퀸 로맨스 쯤 되는 이야기라서, 아마 받아 읽는 독자의 성화를 못이겨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것 아닐까, 하는 상상만 할 뿐이다. 역시 산돌커뮤니케이션이 이 필사본의 앞부분 정체를 디지털화하여 '옥원중회연'이라는 글꼴을 내놓았다.
앞부분 정체는 단정한 글씨로, 뒷부분 반흘림체는 춤추듯 우아한 흘림으로 양쪽 모두 한글 서예 교본으로 널리 쓰인다.

 


3. 서기 이 씨 봉서

ⓒ타이포그라피 서울, 서기 이 씨 봉서ⓒ타이포그라피 서울, 서기 이 씨 봉서


이번엔 궁체 진흘림 글씨다. 조선조 500년을 통틀어 최고의 한글 명필이라 평가받는 봉서상궁 서기 이 씨의 글씨다. 서기 이 씨는 원래 궁중의 나인으로 효명세자의 아내이자 헌종의 어머니였던 신정왕후 조씨(1808~1890)를 섬겼다.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몰라도 궁인이었던 이 씨는 혼인하여 궁 밖으로 나갔다. 문제는 이 씨의 결혼생활이 배드엔딩, 다시 혼자가 되었다는 거였다. 신정왕후는 이 씨를 자신의 나인으로 거둬들이고 싶었지만 원래 궁인은 혼인을 할 수 없고 혼인한 자는 궁인이 될 수 없는 것이 조선의 법. 신정왕후는 끝내 '서기(書記)'라는 직책을 만들어서 이 씨가 궁중에서 글씨 쓰는 일을 맡아보게 했다.

이 씨가 이처럼 신정왕후의 총애를 받은 까닭은 아마 글씨를 대단히 잘 썼기 때문 아니었을까 싶다. 남아있는 이 씨의 봉서는 궁체 진흘림 글씨의 진수를 보여준다. 그 느낌이 궁중의 춤이라기엔 활달하고 힘차고, 날아가는 새라고 하기엔 우아하고 멋스럽다. 마냥 하늘하늘하지도 않고 마냥 뻣세지도 않다. 글씨가 이 정도면 섹시하다고 표현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참고: <타이포그래피 천일야화>, 원유홍 서승연 송명민, 2012

       타이포그라피 서울 http://hangul.typography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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