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3 (일)

대학알리

가톨릭대학교

[가대생의 소리] 유신시대에 사는 학칙과 민주시대에 사는 우리

가대생의 소리
가톨릭대학교 정경대학 법학과 18학번 박재연

[편집자주] ‘가대생의 소리’는 가톨릭대 구성원(학생,  교수, 직원)의 목소리를 칼럼으로 담아낼 수 있도록 기획한 가대알리의 가톨릭대 구성원 참여 칼럼 코너입니다. 본 칼럼은 가대알리의 편집방향과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안녕하세요. 2024년 근조화환 시위 총대, 법학과 18학번 박재연입니다. 가대알리를 통해 글을 전달하게 되었습니다. 2024년 5월 14일 18시, 학교와 학생이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그동안 학교에 갖고있던 불만과 의문들을 직접 말하고 전달할 수 있는, 뜻깊은 자리가 ‘간만에’ 생겼습니다.

 

간담회에 활발히 참여해주심을 부탁드림과 동시에, 우리가 왜 분노할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왜 분노할 수 없었는지를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이 문제는 학칙과 관련된 문제이기도 합니다. 마침 학생들이 학칙에 관심을 갖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혹자는 학칙이 유신헌법을 연상케 한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자, 학칙은 왜 이런 모습을 갖게 되었을까요?

 

이왜진? 실제로 유신 때 만들어졌습니다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실제로 유신시대에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활동을 제한하거나, 활동을 징계하는 근거가 되는 학칙은 대부분 1970-80년대에 제정되었습니다.

 

우리나라가 갓 독립한 후, 우리나라 각급학교에는 ‘학도호국단’이 설치됩니다. 학도호국단의 설치근거가 된 법률은 1960년대에 한 번 폐지되지만, 유신헌정기 박정희 정부에 의해 부활했다가 1975년부터 1985년까지 약 10년간 다시 설치되었습니다. 민주화운동, 유신투쟁 등을 막기위해 조직된 학도호국단과 그 학칙은 민주화 이후 각 대학이 학칙을 제정하며 큰 고려없이 새로운 학칙으로 계수됩니다.

 

아니 그래도 이 나라가 민주화된 지 한세월인데, 이게 유지되는 게 말이 되냐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해당 규정들은 학생운동이 활발하던 시대를 기점으로 사문화되었습니다. 즉, 해당 규정이 남아있는 이유는, 누구도 이를 개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이 학칙들은 2010년대에 부활합니다. 학생들이 학교에 문제를 제기할 때, 학교가 해당 학칙규정을 대응의 근거로 삼은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청산하지 못한 잔재들이 다시 발병한 것입니다.

 

권리인 듯 권리아닌 권리같은

 

이런 학칙은 엄연히 살아있습니다. 학교는 학칙을 근거로 대자보를 회수하고, 학생은 학칙을 근거로 활동을 두려워합니다. 학칙은 대학의 민주적 운영을 위한 원칙이지만, 유신의 흔적이 남아 독소조항이자 학교의 무기가 된 것이지요. ‘민주가대’에 이름에, 김수환 추기경님의 정신에 부끄러워지는 지점입니다.


가장 흔한 독소조항이 ‘게시물의 사전허가’입니다. 그런데 국가인권위원회는 대학 대자보에 대한 사전승인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이니, 관련 규정을 개정하라고 권고했습니다. 해당 사건의 당사자는 명지대와 명지대 총학생회로 우리가 받은 권고는 아니지만, 시사하는 점이 큽니다. [국가인권위원회 결정, 21진정0740600・0742300・0756300(병합)]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예술, 학문 등에서의 자유, 즉 ‘표현의 자유’는 엄연히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고 대학 측이 침해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민주주의의 기본이 되는 기본권 중 하나지만요. 

 

'대학식’ 민주주의?

 

영화 <서울의 봄>에서 전두광(배우 황정민 분)은 기자의 질문에 답합니다. ‘우리가 언제는 민주주의 안했냐’고요. 그래요, 가톨릭대도, 우리도, 민주주의를 하긴 했습니다.

 

그런데 민주주의의 기본이 되는 권리는 학칙에 의해 반쪽이 되었습니다. 학생이 참여하는 기구가 있지만, 그닥 실효적이지는 않습니다. 등록금심의위원회나 대학평의원회 등 고등교육법상 법정기구에 학생 참여가 보장되지만, 대학평의원회는 자문 및 심의기구라서 학교가 언제든 의결내용을 무시할 수 있고, 등록금심의위원회는 등록금 심의만 가능합니다. 학생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되리라는 기대를 하기 힘듭니다.


비록 사립대학이라 할지라도, 대학을 자주적으로 운영함에 있어서는 직원, 학생, 교원 등이 모두 주체입니다. 학생은 학내 현안에 대해 다툴 자격이 있고, 운영에 참여해 목소리를 낼 권리가 있습니다.[대법원 2012두19496·19502 판결, 헌법재판소 2005헌마1047·1048(병합) 등]

 

맺음말

 

대학을 의미하는 University는 ‘사람의 집합체’를 뜻하는 라틴어 ‘Universitas’에서 유래했습니다. 대학은 ‘교수와 학생의 연합체’로 시작했습니다. 대학은 설립형태와 무관히, 본질적으로 자치적 학문 공동체임은 여전합니다. 공동체로서의 대학은 함께 목소리를 내며 외부의 압력을 이겨내기도 했고, 스스로 자정작용을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이 자정작용의 한 가운데에 있습니다.

 

모두가 함께하는 공동체, 집단지성의 공동체는 변화합니다. 물론 이 변화가 항상 좋은 쪽으로 향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러나 평등과 존중으로 운영되는 공동체는 시대의 가치와 합치하는 공동선을 추구할 수밖에 없을겁니다.

 

지금 우리가 분노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입학전형, 포화상태인 복수전공생, 부족한 교수, 미흡한 실습 기자재, 낙후된 강의실. 저마다의 이유가 모두 다를 겁니다. 그런데 이 문제의 원인은 하나로 수렴합니다. 비민주적 운영, 비민주적 운영을 뒷받침하는 학칙, 필연적으로 독선적 운영을 낳는 현재의 총장 선임 구조 등이 그것입니다.


어렵게 얻은 자리이니만큼, 간담회에 참여해주실 수 있는 모든 분들이 참여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더 나은 가톨릭대를 만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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