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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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권리] 속초 사람들도 프랜차이즈 치킨 먹습니다

속초 사람들도 프랜차이즈 치킨 먹습니다

속초에 먹으러 가는 학우들을 위한 속초 토박이의 가이드

 나는 속초 사람이다. 상경하고 만난 사람들이 이를 알게 되면 다들 똑같이 말한다. “거기 만석닭강정으로 유명한 곳 아니야?”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당황스러웠다. 만석닭강정이 잘 팔리기는 했지만, 속초 현지인들에게 두루 사랑받는 닭집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름방학이라 여행을 떠나려는 학우들도 많고, 만석닭강정의 위생 상태도 논란이 되고 있으니 4대째 속초 토박이인 본 기자가 속초의 음식에 대해 이야기 해 볼까 한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음식들, 현지인으로서 바라보는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이 기사는 속초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라고 여기는 수준에서 작성되었다. 음식에 대한 호불호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닭강정

 현재 속초에서 판매되는 닭강정은 원래 먹던 것과 조금 다르다. 원래의 속초 닭강정은 고추를 많이 썰어 넣어 훨씬 매콤한 맛이 났다. 이름도 중앙시장 상인들이 튀겨 팔던 닭이라 ‘시장닭’으로 불렸다. 속초 사람들은 이 시장닭을 결혼식이나 야유회 때 즐겨먹었다. 200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결혼식장에서는 이 닭강정을 쉽게 맛볼 수 있었다.

 이러한 ‘시장닭’이 최근의 닭강정으로 변화한 건 2010년대부터다. 양념에 썰어넣던 고추가 적어졌다. 대신 소스는 달콤한 맛이 강해졌다. 포장도 평범한 노란 택배상자에서 전용 포장 용기로 바뀌었다. 달콤한 닭강정으로 바뀐 셈이다. 이때를 기점으로 양도 줄었다. 프랜차이즈 치킨의 두 세배 즈음 되는 양이 평범한 치킨 한 마리 양으로 바뀌었다.

 속초 사람들이 사랑하던 ‘시장닭’은 몇몇 집에서만 맛 볼 수 있게 되었다. 시장닭이 차지하던 자리는 프랜차이즈 치킨이 대신하게 되었다. 속초 사람들에게 오늘날의 닭강정은 외지인들이 사먹는 조금은 낯선 음식이다. 속초에서 누가 관광객이고 현지인인지 알고 싶다면, 손에 들려 있는 게 무엇인지 보라. 만석닭강정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속초 사람일 확률은 굉장히 희박하다.

 

속초의 명물이라 할 수 있는 오징어순대.

오징어 몸통을 사용해 만든 오징어순대. © 2018. 설악닷컴

진짜 맛있는 속초순대 찾기

 속초에는 아바이 마을이라는 곳이 있다, 현재 행정구역 기준으로 청호동이라는 동네다. 청호동은 한국전쟁이 끝난 뒤 함경도 출신의 실향민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었다. 속초의 음식 문화는 자연스레 함경도 음식의 영향을 받았다. 그 중 대표적인 음식이 오징어순대와 아바이순대다.

 오징어순대는 처음부터 이 모습이 아니었다. 원래 함경도에서는 설날에 명태의 속을 빼낸 후, 그 안에 돼지고기나 두부, 녹두와 같은 재료를 넣은 “통심이”라는 이름의 명태순대를 만들어 먹었다. 명태 대신 오징어가 쓰인 건 오징어잡이 어부들이 먹을 것이 없어 오징어순대를 만들어먹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또한 1980년대 명태 어획량이 급격히 줄어들며 오징어순대가 통심이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만약 명태순대를 먹어볼 기회가 있다면 꼭 먹어보라. 필자도 19년을 속초에 살면서 두 세 번 밖에 먹어보지 못했다.

 오늘날 오징어순대는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되어 속초의 식당들로 납품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순대를 해동하는 과정에서 재료들의 찰기가 사라졌다. 그래서 식당들은 해동한 오징어순대에 계란을 묻혀서 부쳐준다. 하지만 이 경우 식재료의 신선도를 보장하기 어려우며, 재료 고유의 맛이 사라진다. 오징어순대보다는 기름과 계란의 맛이 더 강하게 느껴질 뿐이다.

 필자는 오징어순대를 ‘진양횟집’이라는 곳에서 먹는다. 이 식당은 속초에서 가장 오래된 횟집 중 하나이며, 공장이 아닌 식당에서 직접 오징어순대를 만들어 파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이곳의 오징어순대는 다른 곳과 달리 찜통에 쪄서 내놓아 본연의 맛을 가장 잘 살린다.

 아바이순대는 서울에서 먼저 상업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1990년대 함경도 실향민들이 실제 함경도식으로 아바이순대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고,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속초만의 음식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아바이순대는 일반 순대와 달리 대창을 사용해 크기가 크고, 다양한 속 재료가 들어간다.

 아바이순대를 넣고 끓인 순대국도 좋지만, 본연의 맛을 느껴보고자 한다면 그냥 아바이순대를 따로 시켜 먹는 걸 추천한다. 다만 선지를 넣고 만들기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속초의 아바이순대. 대창을 사용해 일반적인 순대보다 큼직하다

대창을 사용해 일반 순대보다 큼직한 아바이순대 © 2018. 설악닷컴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명태순대

지금은 맛보기 힘들어진 명태순대. © 2018. 설악닷컴

 

속초의 함흥냉면. 고구마전분으로 만든 면에 명태회무침을 고명으로 올리고, 육수를 약간만 부어주는 것이 특징이다. 그 다음부턴 먹는 사람의 기호에 따라 육수의 양을 조절하고 원한다면 설탕도 넣어 먹는다. © 2018. 설악닷컴

설탕을 넣어 먹는 속초냉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박근혜 정부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하게 밀어붙이던 때였다. 반대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에 오게 되었다. 그 때 처음으로 속초가 아닌 곳에서 냉면을 먹었다. 굉장히 당황했었다. 냉면 위에 명태회무침이 없었다. 국물은 다 부어져 있었다. 그리고 냉면에 설탕을 뿌려먹으려 했는데 설탕조차 없었다!

 그 날 속초에서 먹는 냉면과 다른 지역에서 말하는 냉면이 아예 다른 음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속초에서 말하는 “냉면”은 함흥냉면이다. 고구마전분으로 만든 면에 명태회무침을 고명으로 올려준다. 육수는 아주 조금만 부어서 내놓는다. 그 다음부턴 먹는 사람 마음대로 육수의 양을 조절하고, 겨자나 식초, 원한다면 설탕도 넣어서 먹는다. 속초에 있는 냉면집을 가서 그냥 “냉면 주세요”라고 하면 함흥냉면이 나온다.

 속초냉면은 사실 어느 집을 가든 맛있다. 함경도를 떠나온 실향민들이나 그 자식들이 대를 이어 운영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함흥냉면의 맛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다. 현재 속초에 남아있는 냉면집 중 가장 오래된 곳은 함흥냉면옥이다. 이 곳은 1951년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단천면옥이나 원산면옥처럼 함경도 지명에서 따온 냉면집들은 보통 주인의 고향인 경우가 많다. 속초에서 냉면을 먹으며 역사성을 경험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끝으로...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에 다양한 속초 먹거리들이 나온다. 만석닭강정부터 씨앗호떡, 회오리 감자까지. 물론 다 맛있다. 하지만 속초가 아닌 곳에서도 충분히 먹을 수 있다. 만석닭강정은 서울의 백화점에도 입주했다. 굳이 속초에 와서 먹는 것은 큰 메리트가 없다. (물론 먹어보고 싶다면 먹어야 한다. 치느님은 옳으니까.)

 그래서 필자는 앞서 소개한 오징어순대와 함흥냉면을 먹어보길 권한다. 두 음식은 속초가 아니면 맛보기 힘든 음식들이며, 속초가 갖는 역사성 또한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맛있다. 서울 친구들에게 여러 속초 음식들을 먹였지만 이 두 음식만큼은 맛없다고 한 사람이 없었다. 속초에 와서 이 음식들을 맛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여행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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