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성공회대학교 제38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는 "학우들 동의와 의견 없는 학제 개편은 누구를 위한 개편입니까"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올렸다. 학생들은 이를 통해 처음 학제 개편 소식을 접해야 했다. 학생기구들은 총학 비대위의 입장문을 공유했고, 학생들은 대자보를 붙이고 있다. 현재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학제 개편 과정이다. 총학 비대위의 입장문 역시 "찬성과 반대를 떠나 학우들의 충분한 의견 수렴 과정이 없는" 점을 짚는다.
최영묵 교무처장은 13일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나 자료 한 장 없이 개편안을 구두로 전달했다. 이후 성공회대학교 미디어센터의 24일 보도를 통해 2안이 있다는 사실도 전해졌다. 학생에게 전달된 공식 자료는 현재까지도 없다. 전공 교수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제 개편 설명회는 3월 15일에 열렸다. 하지만 학생들에게는 설명회도, 개편안을 설명하는 자료도 없었다. 현재 개편안에 관한 논의는 공허하다. 공식 자료 없이 개편안은 시차를 두고 전해지는 등, 각 안에 대한 찬반보다 개편안들의 출처와 진위를 판단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현행 학제 진단, 참여 단위, 일정, 개편안과 시행 목적 등 기초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결정까지 불과 한 달 남은 시점에서 학생에게 전달한 이유가 담긴 충분한 설명은 어디에도 없었다.
*자세한 내용은 3월 23일 보도된 회대알리 '우리는 왜 학제 개편 소식을 알지 못했나'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통보에도 격이 있다
학생이 배제된 논의와 통보는 이제 익숙하다. 학교 당국은 이미 2019년 4월에 열린 전공신청설명회에서 글로컬IT전공 폐지를 일방적으로 통보한 바 있다. 충분한 설명과 논의 없이 통보하는 운영 방식이 특히 문제가 됐다. 2022년에는 혁신융합전공을 폐지했다. 제3전공 신청 안내 공지에서 '혁신융합전공'이라는 6글자를 슬그머니 삭제했다. 이후 수강신청 안내책자의 문구 한 줄로 폐지를 알리는 게 전부였다. 별도의 공지나 안내는 없었다. 통보에도 격이 있다.
혁신융합전공 폐지를 전한 회대알리 '닫혀버린 모두에게 열린 전공' 기사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기존에 존재하던 과정에서 미비했던 운영제도와 행정지원을 보충해보지 않고 논의도 없이 폐지한 후 통보조차 없었다. 이런 과정 끝에 마련하는 새로운 제3 전공이나 대안이라고 해서 학생들이 믿고 선택할 수 있을지 의문이 남는다. 과거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없는 대안을 우리의 미래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미래는 또다시 밀실에서 마련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성공회대학교는 지난해 대학 기본역량 진단 재선정의 기회를 얻었지만, 결국 일반 재정지원 대학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김기석 전 성공회대학교 총장은 지난해 회대알리와의 인터뷰에서 정성 평가 중 소통 부문에서 감정 당했다고 밝혔다. 과거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없는 대안과 밀실에서 마련된 미래는 오늘도 반복됐다.
소통? 소통!
"얼마 전에 '여럿이 함께'라는 붓글씨를 썼습니다. 그런데 주위에서 제 글씨를 보고 방법만 있고 목표가 없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요즘에는 밑에 '여럿이 함께 가면 그 뒤에 길은 생긴다'라는 말을 써놓았습니다."
2006년 9월에 열린 프레시안 창간 5주년 기념 강연회에서 故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가 한 말이다. 그는 이해관계의 대립을 뛰어넘는 소통의 장과 과정 그 자체가 존중되는 사회를 말한다. "목표의 달성으로 모든 수단이 합리화되는 사회"는 관계성이 아닌 배타성을 강화하고 진정한 소통을 이루기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리고 "오래가기 위해서는 목표로부터 동력을 얻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는 길에서 동력을 찾아야 합니다"라는 말로 강연을 마친다.
학교는 이제 와서 소통을 하자고 한다. 소통은 논의 과정에서부터 해야 했다. 모든 걸 정해놓고 정확한 정보도 전달하지 않은 채 내미는 소통은 다른 이름으로 쓰여야 하지 않을까. 최영묵 교무처장은 24일 미디어센터와의 인터뷰에서 오는 4월 5일 학제 개편을 확정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한 달도 남지 않은 기간에 학생에게 통보했다. 이제야 논의하자고 하지만,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짜임이다. 신영복 교수에게 배운 소통은 "시급"한 사정으로 밀릴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 동력은 목표가 아닌 우리가 가는 길에서 찾아야 한다. 학생이 없는 학교 행정으로 달성할 수 있는 목표는 어디에도 없다. 학생과 함께 가는 길은 그 자체로 학교가 진정으로 달성해야 하는 목표다. 길은 그 뒤에야 생길 수 있다.
학과제 개편, 비인기 전공 폐지 시사 및 글로컬 IT 전공 폐지, 혁신융합전공 폐지, 이번 학부제 개편까지 일련의 사건들의 핵심은 모든 일이 밀실에서 준비되어 학생에게 통보되었다는 점에 있다. 밀실 논의, 통보, 불통으로 이어지는 학교 당국의 의사결정과정을 고쳐놓지 않는다면 이런 일은 반드시 반복된다. 굴레를 끊어야 할 때다.
글=권동원 기자
디자인=강성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