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4 (화)

대학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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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마와리 후기 3화

질문, 그리고 마와리 전날 밤

[편집자주] 해당 기고문은 필자의 요청에 따라 가명으로 게재됩니다.

 

대면식, 그리고 질문


“네 음악 가사, 사내에서 말 많은 거 알아?”


질문은 조용한 분위기를 찢고 불쑥 튀어나왔다. 당황스러웠다. 모골이 송연하다는 표현은 이럴 때 써야 할 것 같다. 나는 언시 준비 전부터 취미로 음반 녹음과 발매를 해 왔지만, 면접은 물론 대면식 이전까지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었다. 또 나는 예명으로 활동해 왔기에, 내 이름을 안다고 해도 내 음악을 찾을 수는 없어야만 했다. 그의 질문은 이미 우리들 신입 기자에 대한 기본적인 뒷조사가 모두 끝나 있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자세히는 못 쓰지만, 당연하게도 나만 뒷조사를 당한 것은 아니었다) 정보를 찾는 게 직업인 이들인 만큼, 신입의 과거를 캐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내가 발매한 노래 열 몇 개의 제목과 가사들이 머릿속에 나열됐다. 몇몇 곡의 다소(?) 거친 표현들이 문제였나, 아니면 생활고로 임상실험에 참여한 경험을 쓴 가사가 너무 자극적이었나. 혹은 퀴어를 주제로 했던 곡이 보수적인 이 회사의 논조와 맞지 않았던 것일까. 전부일 수도 있었고, 그중 무엇도 아닐 수 있었다. 남에게 보여주지 못할 가사를 쓴 적은 없었지만, 차마 어떤 곡의 어떤 부분이 문제냐고 물을 용기는 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기자 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꼬였다는 생각이 들어 눈앞이 캄캄했다.


 “아... 예, 몰랐습니다. 그게.....”
“왜 그래? 나도 들었는데, 노래 좋던데. 그리고 어디에서 그런 말이 나와?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긴데...”


얼굴이 새빨개져 우물쭈물대던 사이, 옆자리에서 얌전히 피자를 먹던 B 선배가 고개를 불쑥 들이밀며 말했다. 그 역시 내 노래를 들었다는 사실이 상당히 유감스럽긴 했지만, 나는 내심 안도했다. 전혀 의외라는 옆자리 선배의 반응은, 다시 말해 ‘논란’이  적어도 회사 사람 모두가 공유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뜻이니까. 그건 그저 내게 질문을 한 선배 머릿속의 망상일 수도 있었다. 예상은 반쯤 적중했다. 선배는 당황했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아니, 논란이라는 게 아니고. 그냥 내 생각이야. 우리 부서 선배들이... 아무튼 조심해. 이제 대면식 시작인데, 선배들이 너한테 관심이 많아. 무슨 말인지 알지?”


척추 아래쪽에서 묘한 짜릿함이 느껴졌다. 곧 있을 마와리도 감당하기 쉽지 않을 텐데, 주에 한 번 있을 대면식에서는 선배에게 집중포화를 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표정 관리가 안 됐다. 근심이 고랑을 맨 듯 이마는 찌푸려졌고 눈이 촉촉해졌다. 억지 미소를 지은 채, 상대방이 말할 때마다 경청한다는 듯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선배의 충고가 끝나자 나는 예의 그 기묘한 표정을 지은 채 먹먹한 ‘솔’ 음으로 말했다.


“네 선배. 명심하겠습니다.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의하겠습니다.”


그때의 기분은 별로 다시 상기하고 싶지 않다. 굳이 쓰자면 곧 들이닥칠 거대한 고난에 대한 인트로를 미리 듣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후술하겠지만 나를 괴롭힌 이 질문은 퇴사의 원인도, 혹은 그 비슷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 가십거리야 시간이 지나면 점차 수그러든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집중해야 할 건 눈앞에 닥친 마와리였다. 우선 이 관문을 통과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투자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와리 전날 밤


마와리 전날 늦은 오후, 나와 동기들에게는 돌아야 할 마와리 구역과 담당 일진이 배정됐다. 나는 서울 중구와 남대문구, 용산구 라인에 배치됐다. 다행히 세 구역 모두 집에서 그렇게 멀지 않았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내 담당 일진은 바이스였다. 사회부 바이스는 캡 다음가는 사회부의 2인자며, 말하자면 부팀장 정도의 직위다.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그의 무서움과 빡셈(?)은 전날 대면식 자리에서 알음알음 들어 알고 있었다. 동기들은 나를 걱정했지만, 사실 그 누구도 남 걱정할 처지는 아니었다. 벌벌 떨며 그에게 내일 출근 시간과 장소를 물어보는 카톡을 남겼다. 답장은 금방 왔다. 반갑다는 짧은 인사말과 함께, 오전 7시까지 용산경찰서로 출근해 전화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마와리 전날에 나는 밤을 새웠다. 긴장과 흥분, 그리고 불안과 걱정으로 잠이 오지 않았다. 대신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담담히 받아들이고, 상처받지 않기로 다짐했다. 결의에 가득 찬 나는 첫날부터 늦는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차라리 아주 일찍 가서 기다리기로 하고 새벽 다섯 시부터 나갈 준비를 했다. 입사 직후 급하게 이사 온 집은 모든 것이 낯설었다. 씻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보일러 작동법을 몰라 찬물과 더운물이 번갈아 나왔다. 


여자친구가 입사 기념으로 사 준 가방에 보조배터리와 노트북, 공책과 펜, 핫팩 다섯 개, 집에서 보내 준 홍삼 여러 팩을 쑤셔 넣고, 두꺼운 더플코트를 입은 채 집을 나왔다. 가로등 하나 없는 낯선 달동네의 골목은 상상 이상으로 어두웠고 추웠다. 곧 골목의 끝에서 환한 불빛을 밝히며 택시가 도착했다. 한겨울 새벽의 도로는 적막했는데, 그 탓에 예정보다 훨씬 일찍 경찰서에 도착했다. 

 

기자가 되기 전까지 경찰서에 가 본 적이 거의 없는 탓에,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알지 못했다. 경찰서는 파출소나 지구대와 달리 작은 학교만큼이나 컸다. 정문이 열려있긴 했지만 불빛이나 인기척은 없었고 적막했다. 이 시간에 경찰서가 여는지 알 수도 없거니와, 혹여 경찰이 출입증을 요구하거나 수상한 사람으로 오해할까 싶어 들어가기 망설여졌다. 결과적으로 약 한 시간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나는 핫팩을 꼭 쥔 채 경찰서 앞을 불안하게 서성였다. 일곱 시 십오 분 전이 되어서야 겨우 용기를 내 눈을 질끈 감고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의 좁은 언덕을 올라 왼쪽으로 꺾자 환한 불빛이 비치는 본관이 등장했다. 예상과는 달리 아무도 나를 막지 않았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자, 생각보다 넓은 로비가 나를 맞이했다. 서른 평쯤 되는 로비 중앙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자동문이 있었고, 로비의 맨 끝 좌우측에는 각각 형사계와 지능팀으로 가는 복도가 자리해 있었다. 입구 바로 왼쪽 자판기 옆에는 아마도 민원인을 위한 것으로 보이는 동그란 나무 책상과 테이블이 여러 개 있었다. 그곳에는 기자처럼 생긴 내 또래 남자애가 앉아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어쩐지 반가운 마음에 엉거주춤 그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나를 힐끔 보더니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하던 일을 계속했다. 해가 밝아오기 시작하자 사복을 입은 경찰들이 바쁘게 로비를 오갔다. 죄지은 것도 없는데 괜히 주눅이 들었다. 가방을 품에 꼭 안은 채 일곱 시 정각이 되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시간이 되자마자 바이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벨은 몇 번 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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