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일)

대학알리

오피니언

[연재] 마와리 후기 11화

[편집자주] 해당 기고문은 필자의 요청에 따라 가명으로 게재됩니다. 

 

 

좀비

 

지시의 요지는 취재 지원이었다. 당시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과 서울교통공사가 날 선 갈등을 빚을 때였다. 전장연은 S 역의 역사 내에 지속적으로 이동권 권리주장 포스터를 부착해 왔는데, 당일 서울교통공사는 이를 일괄 제거할 것임을 알렸다. 내 역할은 그 현장을 스케치해 오는 일이었다. 내가 있는 곳에서 S 역은 멀었다. 어떤 모습을 어떻게 담을지 계획을 세울 시간이 없었다. 부랴부랴 짐을 챙겨 경찰서를 뛰쳐나왔다.

 

S역은 기자들로 북적거렸다. 그들이 이마에 명함을 붙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대개 기자는 기자를 알아보기 마련이다. 기자들은 포스터를 철거하는 환경미화원들의 뒷모습을 핸드폰 카메라로 찍고 있었다. 현장에 전장연 구성원은 없었는데, 따라서 포스터 철거를 제지하거나 말리는 목소리 또한 없었다. 나는 그들이 끌개와 약품을 사용해 포스터를 긁어내는 모습을 멍하게 지켜보다가, 문득 정신을 차린 후에야 사진을 찍어대는 기자 대열에 합류했다.

 

철거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자 한 중년의 여성이 플랫폼 중간에 섰다. 기자회견임을 감지한 기자들이 금세 여성의 주위에 모였다. 그녀는 자신을 환경미화 노동자라고 소개했는데, 포스터 제거에 여러 어려움이 수반되며, 초과 업무도 힘들지만 무엇보다 만성 관절염과 손목 시큰거림이 가장 큰 고통이라고 털어놓았다. 해도 해도 너무 심하다, 고 그녀는 말했는데, 그녀의 말은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다고 느끼는 사람의 그것으로 보였다. 여성의 몸은 작고 다부졌고 주름이 많았는데, 노동과 삶이 한 몸이라 세월의 흐름을 그대로 혹은 남들보다 더욱 많이 받아들인 사람처럼 보였다.

 

역사란 원래 소리가 울리는 장소인 데다가,  기자회견을 위해 준비된 마이크 등의 장비가 없었기에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가 내 등을 톡톡 쳤다. 방금 오셨죠. 처음 뵙는 얼굴인데. 그는 자신이 모 언론사 기자인데. 나를 이번 취재 풀(pool)에 초대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단톡방에서 서로가 받아적은 기자회견 내용을 보충하고, 추가 취재 내용을 나누기 위한 목적이었다. 아무래도 그 역시 기자회견 내용을 제대로 받아적지 못한 듯했다. 그래요, 그럽시다, 라고 말하려는데 그의 등 뒤로 비교적 말쑥하게 차려입은 여성이 타사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그녀가 책임자이고, 이 사태에 대해 말해줄 공적 언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보다 일목요연한 입장을 들을 수 있었고, 운이 좋으면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을 취재할 수 있는 기회였다.

 

전화번호를 묻는 그를 뒤로한 채 나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둘 사이로 끼어들었다. 과연 기자와 이야기하고 있는 여성은 해당 역사의 환경미화 팀장이었는데, 억울한 일투성이라는 듯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그때 그녀의 말 한 마디가 내 귀에 꽂혔다. 우리는 이걸, 이 포스터들을 좀비 스티커라고 부릅니다. 포스터의 접착력이 강해 쉽게 제거되지 않는 것을 좀비에 빗댄 표현이었다.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받아 적었다. 표현이 워낙 자극적이라 헤드로 적당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는데, 표현의 올바름에 대해 고민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것은 변명일 것이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좀비 스티커’ 내용을 필두로 한 현장 스케치를 캡에게 전송했다.

 

스케치는 혹평이었다. 기본을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었다. 내 조급한 마음, 긴장으로 좁아진 시야가 묘사에 그대로 드러난 탓이었다. 낙담하고 있었으나 당일 기사에는 내 바이라인이 함께 들어가 있었고, 기사 헤드에도 내가 받아적은 표현이 포함되어 있었다. 전장연에서 해당 기사 헤드에 대해 성명을 내고 규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나중의 일이며, 그곳에 여성주의 교지 시절 나와 함께 공부했던 동료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보다도 조금 더 나중의 일이었다. 

 

나는 지금도 때때로 좀비 스티커라는 워딩에 대해 생각한다. 예전의 내가 경악했을 그 표현을, 어째서 아무런 의심 없이 수첩에 옮기게 된 것일까를 생각한다. 또 기사를 통해 그 표현을 접한 사람들의 기분을 상상한다. 그 일은 괴롭지만 벗어날 수 없다. 나는 카르마나 업보에 대해 생각하고, 내게 좀 더 뻔뻔해지라고 했던 사람들과 너무했다고 말했던 사람들의 얼굴을 생각한다. 또 나는 이 글을 읽는 당신의 표정을 상상한다. 어떤 일을 하는 당신이, 당신이 언제 어디에서 이 글을 읽을지에 대해서.

 

돌아보는 일

 

퇴사를 결심한 건 그 무렵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아직도 내가 어째서 일을 그만두었는지 명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주변의 숱한 물음에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껏 적고 보니 나는 그 이유를 일과 삶의 불균형, 수직적인 조직 체계, 저널리즘에 대한 회의감 등에서 찾고 있는 것 같다. 모두 퇴사의 이유 중 하나이긴 했지만, 동시에 그 무엇도 퇴사의 주된 이유는 아니었다. 어쩌면 무서워서 도망갔다는 것이 적절한 표현일 것인데, 한편으로 나는 먹고사는 일의 섬뜩함을 느꼈던 것 같다. 언제나 한 발짝 옆에서 타인의 삶과 고통, 때로는 기쁨을 기록하는 일, 그 일을 하게 되면서 필연적으로 고장 나게 될 마음의 어떤 소중한 부분을 나는 더 이상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건 다정함이나 상냥함이라기보다는 누군가가 여기에 있었음을 기억하고 상상하는 일에 가까웠다. 나는 끝내 건조해지지 못했고, 또 축축하고 질척한 마음을 버리지 못했다.

 

내가 기자였던 마지막 주말, 퇴사하겠다는 내용의 연락을 동기들에게, 그리고 선배들에게, 마지막으로 캡에게 보냈다. 모두 진심으로 걱정했고, 몇몇은 진심으로 내 마음을 돌리려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어떤 일로 밥벌이를 할지 대해서는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당장 다음 달 생활비가 없었고, 기자 일 외에 다른 일은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더욱 불안했다. 결국 나는 마지막까지 고민을 이어갔다.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 말이 있으니  장고가 되기 전에 결정하고 싶었다. 애인에게 이런저런 고민을 털어놓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웃음이 터졌는데 애인은 네가 웃는 모습을 오랜만에 본다, 고 말했다. 그 말을 듣자 비로소 내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분명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직서를 내러 가는 길은 언진재를 수료한 그날처럼 화창했다. 또 그날만큼 두근거렸고, 설렜고, 한편으로 불안했다. 부장과는 이미 전화 통화를 끝낸 상태였고, 사직서 제출은 의례적인 절차였다. 그가 내게 무엇을 할 생각이냐고 물었다. 나는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조금 더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부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그걸로는 세상을 바꾸지 못할 텐데, 라고 혼잣말하듯 말했다. 나는 노트북을 반납했고, 반납확인서에 사인을 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입사 절차와 달리 퇴사 절차는 속전속결로 이루어졌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양복을 차려입은 직장인들이 바쁘게 거리를 오가고 있었는데, 아무도 아닌 채 여의도 한복판에 서 있으려니 기분이 묘했다. 

 

유일한 짐이었던 노트북을 반납하고 나니 몸이 가벼웠다. 집 방향으로 뛰어보기로 결심했다. 쉬지 않고 뛰기에는 체력이 부족해 오 분 뛰고 이 분 쉬기를 반복했다. 마포대교의 한중간쯤에서 뒤를 돌아보았는데, 회사 간판이 선명했다. 그 선명함이 내가 박차고 나온 것의 의미를 역설하는 것 같아 쓰렸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리고 싶었지만, 결국 언젠가는 돌아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래야만 한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알고 있어서 달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곳에서 아주 멀어져야만 뒤돌아볼 때  덜 선명해 보일 것이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와리 후기의 후기

 

누군가 이 글을 보고 있다면, 길고 재미없는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긴 글을 쓰는 것이 오랜만인데다 천성이 게으른 탓에 좋지 않은 문장들이 많이 섞여 있습니다. 송구합니다. 몇 번쯤은 고쳤고, 몇 번인가는 고치지 않고 넘겼는데, 무엇이 되었던 겪고 느꼈던 것을 기록하는 일에 의미를 두고 싶었다고 변명하겠습니다.

 

제목을 마와리 후기라고 한 것은 마와리를 돌게 될 누군가가 가장 쉽게 이 글을 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저도 마와리 후기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했었고, 그렇게 찾아낸 몇몇 후기를 보고 위안받곤 했었습니다. 애당초 의도는 그러했는데 쓰고 보니 순 괴담집인데다 초년 기자들을 겁박할 내용투성이니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종종 이야기의 뒷이야기를 상상하는데, 우울한 이야기일수록 주인공이 잘 살고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니 나도 잘 살고 있는 것으로 결론짓고 싶습니다. 좋아하는 일이 잘 풀려 몰두하며 살고 있습니다. 삶에서 일을 모조리 뺐을 때 일이 아닌 것이 남을 수 있을 만큼, 딱 그만큼만 몰두하며 삽니다. 일을 점차 줄여 나가 결론적으로는 뭘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게 제 목표입니다. 삶을 온전히 살아낸다는 것은 결국 포착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이 아닐까를 종종 생각합니다.

 

쓰고 쓰다가 끝장나기를 소망합니다. 나는 요즘 고속도로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합니다. 차가 없는 고속도로를 계속, 계속 걷고 또 걷다가 만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디쯤에서 만날 수 있을까요.

 

나는 끝끝내 엇나간 것들의 파편에서 개별성을 찾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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