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해당 기고문은 필자의 요청에 따라 가명으로 게재됩니다.
모든 부서의 모든 문
카톡으로 보고 내용을 전송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바이스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누구를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에 대해 소상히 물어봤다. 더불어 보고 형식을 어떻게 하면 더욱 구체적으로 쓸 수 있는지 간단하게 조언을 해 주기도 했다. 그의 말에는 사적인 감정이 들어 있지 않았다. 분명 욕설이 날아올 것이라 각오하고 있었기에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신입 기자가 첫 보고에서 무언가를 알아낼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은 듯했다.
어느덧 점심시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나는 A 경찰서 로비에 앉아 멍하니 남은 시간을 보냈다. 과한 긴장에 지친 상태였다. 점심시간이 끝나자마자 바이스에게 전화해 위치 보고를 했다.
“OO기 수습기자 OOO입니다. 현재 A 경찰서 로비입니다”
“응, 그래. 경찰서에 열려있는 모든 문에 들어가 만나는 모든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와라.”
파출소나 지구대와 달리, 경찰서에는 수십 개의 부서가 있다. 개중에는 마약 수사팀, 교통 범죄수사팀 등 사회부 기자의 일과 밀접히 닿아 있는 곳도 있지만, 청문감사실, 경비계 등 그렇지 않은 곳도 많다. 바이스의 지시는 그 모든 부서에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고 오라는 것이었다. 내가 원하는 부서만 골라 방문하는 것은 선택지에 없었다.
당시 나는 신입 기자가 선배와 데스크의 명령에 익숙해지는 훈련 과정의 일환으로서 바이스의 지시를 이해했고, 지시의 부당함이나 비효율성을 되물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훗날 알게 된 일이지만 수습기자가 경찰서 부서에 찾아가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 아니었다. 그만의 독특한 교육방식이었을 뿐이다. 훗날 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선배는 ‘와, 그거 진짜로 하는 거구나’라며 감탄(?)하기도 했다.
이후 나는 여섯 시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부서들의 문을 두드리고 다녔다.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생활질서계였다. 무작정 문을 두드리자 20대 중반의 여성이 나왔다. 명함을 건네며 신입 기자인데 인사차 왔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녀는 당황스러워했다. 말 그대로, ‘그래서 네가 왜 여기에’라는 눈빛이었다.
“제가 오늘 처음 출입해서요.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네... 그런데 여기는 왜 오셨어요? 여기는 기자님이랑 아무 상관 없는 곳인데요.”
나는 내 방문의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가라고 해서 간 것일 뿐이니, 방문 목적을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강력계라면 뻔뻔하게 사건이라도 물어볼 수 있지만, 경찰 행정을 담당하는 부서에 가서는 대체 무엇을 물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어색하게 웃다가 그러게요 수고하세요, 라는 의미도 소리도 앙상한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첫 퇴짜 이후, 나는 좀 더 뻔뻔해지기로 마음먹었다.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다짜고짜 명함을 건네며 큰 목소리로 인사했다. 그 모습은 흡사 대학 신입 때 선배들 앞에서 하는 FM 구호와 비슷했는데, 내가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내 수치심을 배가시킨 것은 상대방의 태도였다. 그들은 나를 보며 크게 당혹스러워했다. 당혹스러움은 곧 불청객에 대한 날카로운 짜증, 혹은 철저한 무시로 이어졌다.
내 뻔뻔함의 연약한 속살은 그러한 반응 앞에서 사정없이 까발려졌다. 짜증과 무시를 견뎌내며, 어색한 웃음으로 가만히 서 있는 것이 내 최선이었다. 보다 못한 누군가가 나가시라고요, 라고 타박하면 그제야 나는 죄송합니다, 라고 작게 말한 후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빙글빙글 닳아가는
몇 시간 동안 그런 식으로 퇴짜를 맞았다. 정신을 차려 보니 강력 5팀 앞이었다. 문고리를 열어야 하는데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관용적인 표현이라기보다는 정말 물리적으로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내 안의 무언가가 부서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도저히 그 일들을 다시 겪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수치심과 분노, 억울함, 부끄러움이 뒤섞여 갑작스레 눈물이 흘렀다. 한번 터진 눈물은 수습하기 쉽지 않았다. 로비로 돌아와 더플코트의 후드를 뒤집어쓰고 마저 울었다. 부서지고 사라진 것들을 애도하며 슬퍼했다. 울 시간조차 많지 않았다. 나는 동선을 5분 단위로 기록해 제출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동선에 10분 이상 공백이 생긴다면 추궁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밀려왔다. 어느덧 저녁이었다. 밤의 경찰서는 어둡고 춥고 쓸쓸했다.
나는 무작정 가장 가까운 부서로 향했다. 아마도 청문감사실이었던 것 같다. 두말할 것 없이 기자의 일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곳이다. 과장은 50대 여성으로 보였는데, 사무실 난방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지 깔깔이 비슷하게 생긴 초록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오래된 학교 교무실과 닮은 사무실은 어둡고 서늘했다. 문을 두드리고 들어온 나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내게 대뜸 커피나 한잔 마시고 가겠냐고 물어봤다. 눈물이 터질 뻔했지만 겨우 참았다.
녹차를 내어 온 과장은 여기를 찾아온 기자가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여기는 별일도 없는 부서인데 왜 찾아온 것이냐고도 물었다. 나는 그저 시켜서 왔을 따름이며, 그저 인사만 하러 왔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알 만하다는 표정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는 약 한 시간 동안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겨울밤, 사람이 모두 빠져나간 경찰서의 어두운 사무실에서 차를 마시던 스산한 장면이 기억난다. 나이를 먹어 키오스크 쓰기가 힘들다면서 그녀가 자신이 타온 녹차처럼 옅게 웃었다. 다 잊었는데 이상하게 그 말만큼은 기억에 남아 있다.
못 들어가면 죽습니다
보고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내가 겪은 일과 나눈 이야기들을 소상히 보고하려 애썼다. 바이스는 요점만 말하라고 일갈했다. 곧이어 기사화할 만한 것들은 없냐고도 물었다. 나는 그런 것은 없다고 했다. 바이스가 그럼 지금까지 정말 이야기만 나누다 온 것이냐, 고 다그쳤다. 나는 할 말이 없어 죄송하다고만 했다. 밤 10시였다. 동기들은 이미 모두 퇴근한 뒤였다. 나는 퇴근 대신 B 경찰서로 이동해 마찬가지로 모든 문을 열고 이야기를 나누고 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B 경찰서는 오전에 이미 한번 쫓겨난 곳이었다. 심호흡한 뒤, 핫팩을 더플코트의 후드와 목 사이에 넣은 뒤 경찰서로 출발했다.
오후 10시 15분, 나는 B 경찰서 로비 앞에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서 있었다. 퇴근이고 나발이고, 오늘 내가 이곳에 들어가지 못하면 들어갈 수 있을 때까지 노숙하겠다는 오기마저 생긴 상태였다. B 경찰서 로비 입구 초소 문을 두드렸다. 내 나이 또래쯤 되어 보이는 남자 순경이 핸드폰 게임을 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가 내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나는 내가 기자이며, 늦은 시간 죄송하오나 간단히 인사만 드리고 오겠다고 구구절절 설명했다. 그가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거절했다. 기자의 일은 누군가를 곤경에 빠트리거나 곤란하게 만드는 일임을 나는 새삼 깨닫는다.
“안 됩니다. 너무 늦어서 형사분들이 싫어하세요.”
“못 들어가면 저 죽습니다. 부탁드릴게요”
“안 된다니까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럼 들여보내 주실 때까지 여기 앉아 있겠습니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