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09 (화)

대학알리

오피니언

[연재] 마와리 후기 6화

[편집자주] 해당 기고문은 필자의 요청에 따라 가명으로 게재됩니다.

 

서울역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결국 B 경찰서에 들어가지 못했다. 내 또래의 그는 나의 생떼에 무척이나 곤란해했다. 그러나 곤란하기로는 나 역시 피차 마찬가지였다. 결국 나는 들여보내 줄 때까지 로비에 머무르기로 했다. 기다리기를 10분, 이 일을 한 지 얼마나 됐냐고 그가 말을 걸었다. 하루 됐다, 고 대답하자 고생이 많습니다. 라고 화답했다. 나는 그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였어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고, 누군가를 곤경에 빠트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도 말했다. 그는 등을 돌린 채 대답하지 않았다.

 

늦은 야근을 마친 경찰들이 하나둘 본관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나오는 족족 붙잡고 간곡한 자기소개와 함께 명함을 돌렸다. 안면을 틀 수 있다면 내부에 진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가능성에 매달린 것이었다. 그러나 그중 누구도 명함을 받지 않았다. 보고 시간은 속절없이 다가왔다. 바이스에게 전화를 해 현재 위치와 행적을 보고했다.

 

“바이스, 죄송합니다. B 경찰서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들어갈 수 있을 때까지 버티겠습니다”

“아냐, 됐어. 어쩔 수 없지. 오늘은 이만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라”

 

바이스는 질책도, 위로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그중 무엇도 듣고 싶지 않았다. 밤 11시가 조금 넘은 한겨울의 서울역이었다. 버스는 이미 끊긴 상태였고 택시도 잡히지 않았다. 나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역사 방면으로 걸었다. 몹시 추운 탓에 더플코트의 후드를 덮어썼음에도 코와 귀가 얼얼했다. 길 맞은편에 서울역이 보였다. 문득 몇백 킬로미터가 떨어진 고향의 날씨가 궁금해졌다. 나는 내가 두고 온 것과 끝내 맞이한 것의 간극을 생각하며 울었다. 상실감이 낳은 울음은 태초처럼 슬펐다. 그건 환승역에 도착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미라클 모닝 루틴

 

다음날부터 내 생활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됐다. 일과를 끝내면 오후 열한 시, 집에 도착하면 열두 시 정도였다. 집에 오면 근무했던 16시간의 일정을 촘촘히 기록해 보고서 형식으로 만든 후 다음 날 출근 전까지 보고해야 했다. 자세할수록, 또 양이 많을수록 좋다는 선배의 조언에 나는 매일 A4용지 10장 정도를 채워서 냈고, 내 행적의 기록 간격은 약 오 분에서 십 분 사이였다. 그 작업을 끝마치면 대략 새벽 두 시쯤 됐다. 여섯 시에는 일어나 출근해야 늦지 않았으니 약 네 시간 정도를 잘 수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네 시간을 꽉 채워 자기는 쉽지 않았다. 출근 전까지 일지 보고서뿐 아니라 당일 새벽에 나오는 10대 일간지의 1면 헤드 및 사회면 기사 총 스무 개를 요약한 ‘타사 보고’를 제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매일의 주요 집회 일정도 정리해야 했다. 아무리 손이 빨라도 한 시간 이상 걸리는 작업이었다. 조간신문은 새벽 다섯 시에 나오기 때문에, 아무리 늦어도 그즈음에는 일어나 일을 시작해야 했다.

 

출근 보고가 1분이라도 늦으면 그건 ‘사고’였다. 이러한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나와 내 동기들은 새벽부터 서로의 기상 여부를 확인했다. 혹 연락이 닿지 않으면 직접 전화해 깨워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몹시 피곤했던 어느 날을 제외하고, 대부분 새벽 다섯 시가 되면 저절로 눈이 떠졌다. 긴장한 채로 잠에 들고 깬 탓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내게는 씻을 시간과 여력이 없었다. 대게는 택시 안에서 조간신문을 훑어보며 노트북으로 기사를 정리했다. 금방 지독한 멀미가 찾아왔지만 멀미를 느낄 여유 따위는 없었다.

 

나는 더 이상 경찰서의 모든 문을 열며 돌아다니지는 않았다. 대신 내가 담당한 구역의 모든 지구대와 파출소(줄여서 지파라고 부른다)를 돌아다니게 됐다. 아침에 일지와 타사 보고를 제출하고 나면 나는 핫팩을 두 개 까서 주머니에 넣고 가장 가까운 지파에 갔다. 사건 비슷한 것이라도, 혹은 사건의 실마리라도 건져서 보고 거리를 만드는 것이 내 일이었다. 대개 경찰들은 기자를 귀찮아했고 또 빨리 내보내고 싶어 했다. 문전박대가 많으면 많을수록 보고 거리는 줄어들었다. 빈약한 보고 내용은 고스란히  내 능력에 대한 질책으로  돌아왔다.

 

반대로, 무언가 유의미한 보고 거리가 있다면 단독기사를 쓰는 것도 가능했다. 마와리 때 기사를 쓰지 못한 선배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는 최대한 빨리 단독기사를 쓰고 내 쓸모를 증명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쓰고 보니 내 동기부여는 뒤틀린 인정욕구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당시에는 이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내가 생각한 포인트는 두 가지였다. 방문한 지파에서 최대한 질척거릴 것, 동시에 제한된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지파를 돌아다닐 것. 두 시간 남짓한 보고 시간 사이에 방문할 수 있는 지파는 최대 일곱 곳 정도였다. 그중 이야기가 길어지는 곳이 있다면 다섯 곳 아래로 줄어들 수도 있지만, 이야기가 길어진다는 것은 사건의 실마리가 잡힐 확률이 높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내 의욕과는 반대로 문전박대에는 각양각색의 이유가 붙었다. 팀장이 지금 부재중이라거나(사무실 안쪽에 숨어서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보이는데도!), 바빠서 응대해 줄 수 없다거나, 반대로 아무 사건도 없어 말해줄 게 없다는 것이 단골 레퍼토리였다. 따라서 아무 생각 없이 지파에 가서는 아무런 소득도 얻을 수 없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발제’를 하고 경찰서에 가는 방법이었다. 가상의 문젯거리를 만든 후, 가설을 세우고, 경찰들에게 물어 문제의 실체를 검증하는 방식이었다. 이를테면 PTSD에 시달리는 경찰들의 심리치료 지원이 빈약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운 후, 경찰서에 돌아다니며 물어보면 몇몇 경찰들은 반기며 대답을 해 주기도 했다. 그렇게 나온 “야마”와 경찰들의 멘트는 고스란히 보고 거리에 포함됐다.

 

물론 보고 시간인 두 시간마다 기사화할 만한 발제 거리를 물어 갈 수는 없었다. 면피조차 되지 않는 사건을 보고하면(우리는 이것을 ‘개똥 발제’라고 불렀다) 따끔한 선배의 질책이 뒤따랐다. 발제 찾기란 흐름을 타는 것이어서 되는 날에는 계속되는 대신, 없는 날에는 끔찍하게도 한 건의 발제 거리조차 찾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사시미 앞에서

 

그날은 유난히 잘 풀리지 않는 날이었다. 진이 빠지고, 머리는 떡져 있었고, 말할 힘조차 없었다. 퇴근 시간을 오 분 남기고 한 지구대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퇴근하라는 선배의 지시가 카톡으로 날아왔다. 입구의 순경은 팀장이 지금 없으니, 다음에 다시 오라고 이야기했다. 예전 같았으면 그대로 떠났을 테지만, 나는 조금 더 질척대기로 하고 순경의 맞은편에 짐을 풀고 눌러앉았다. 퇴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팀장은 오지 않았다. 한숨을 쉬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리를 떠나려던 그 순간 팀장이 복귀했다.

 

 마침 이전에 지파를 돌 때 한 번 마주친 적 있는 자였다. 그는 다른 경찰과 달리 기자들을 반기는 것으로 유명했다. 또 기자들에게 소싯적 무용담을 털어놓는 것을 좋아했는데, 질색하는 다른 기자들과 달리 나는 어린아이처럼 신나 이야기를 쏟아내는 그의 모습이 싫지 않았다. 그는 내게 커피를 한 잔 주더니 예의 그 무용담을 시작했다. 내가 아무리 그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해도 그의 별명이 왜 ‘사시미’인지에 대한 이유를 30분 동안 듣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점점 눈이 감겼다. 그의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던 중, 그가 내뱉은 말 한마디가 너무나 선명히 내 귀에 박혔다. 눈이 번쩍 떠졌다.

 

“그런데 말이야, 참 희한한 일이 하나 있었는데... 아직 아무한테도 말 안 했는데, 이걸 말해도 될지 모르겠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전율이 척추를 타고 짜릿하게 흘렀다. 사건이 눈앞에 왔음을 직감했다. 나도 모르게 손을 주머니에 넣어 녹음기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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