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관 15층, 찬 레스토랑에 붙은 플래카드
찬은 계속 영업하나요?
“세종대는 투명한 공개입찰로 시설 투자금 보상하라.”, “계약 기간 안 끝났다. 동원건설은 명도를 즉각 중단하라.” 6월 6일, 광개토관 찬 레스토랑(이하 ‘찬’)에 붙은 플래카드 문구이다. 곧 교내식당 찬과 동원건설 간의 계약 기간이 만료될 예정이다. 계약이 끝났으니 나가라는 건데 무슨 문제가 있냐고? 결코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2011년 있었던 초기 계약부터 지금까지 찬은 전전세(전대) 방식으로 운영됐는데 이때 전전세란 전세권 위에 다시 전세권을 설정하는 것을 일컫는다. 세종대학교는 동원건설(이하 ‘동원’)과 *임대인-임차인 관계였다. 여기에 동원 측이 임대인으로서 또다시 찬에 임차권을 주었는데, 이게 바로 전전세이다.
*임대인 : 임대차 계약에 따라 돈을 받고 다른 사람에게 물건을 빌려주는 사람.
임차인 : 임대차 계약에서, 돈을 내고 물건을 빌려 쓰는 사람.
2016년 3월, 곧 있을 5년 계약 만료에 따라 찬은 동원과의 재계약 협상을 시작한다. 재계약 조건으로 동원 측은 월 620만 원의 임대료를 요구하였으나 4개월간의 긴 조정 끝에 찬이 매월 임대료 289만 원을 납부하는 것으로 1년의 재계약이 시작된다. 또한, 이 재계약을 기점으로 찬은 식당 운영방식의 개선과 획기적인 시설 재투자를 약속한다. 7천 원짜리 한상차림 등 메뉴개선, 탕, 찌개를 위한 직화 레인지 구입, 낡은 식기 및 기기 교체. 다음 재계약을 염두에 둔 찬은 약속대로 약 2천만 원 선의 투자를 하여 운영방법을 변경한다.
1년의 재계약이 끝나갈 2017년 3월 무렵, 동원 김혜원 주임은 찬에 재계약은 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공개입찰을 통해서 들어오는 새 임차인에게 시설 투자비를 받아줄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동원은 일주일 사이에 돌연 태도를 바꾸었고 공개입찰은 없으니 계약 기간이 종료됨과 동시에 그냥 나가라는 의사를 전달한다. 이에 찬은 재계약 의사가 없다면 투명한 공개입찰을 진행하여 후임 업체에 시설 및 기기 투자 금액의 잔존가를 보상받게 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한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찬은 권리금을 보장받기 위해 새 임차인과 협상할 자격을 가진다. 그러나 동원과 학교 측은 모두 계약만료라는 이유를 들며 찬이 조용히 나가기만을 종용하고 있다. 이는 찬의 권리를 무시하는 태도이다. 찬은 그들의 일방적인 모습을 그저 가만히 받아들일 수만은 없다고 호소한다. 법적으로는 완벽한 계약서, 증거라고는 전혀 없는 구두계약, 확답 없는 공개입찰. 이번 사건이 안타까울 이유는 충분하다.
갑과 을, 불공정계약과 화해조서
찬과 동원 간의 계약서 제24조에 ‘본 계약이 종료 또는 해지될 경우 전차인은 계약종료일 이내 전차인의 소유물 및 재산을 반출하여야 하며, 전대인의 재산 및 열쇠를 원상 복구 하여야 한다.‘라는 규정이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동시에 계약서 제27조에는 '전대인과 전차인의 계약이 종료 또는 해지될 경우, 전차인이 시설 투자한 총인테리어 등 별도의 부담 없이 무상으로 임대인(학교)에게 귀속되기로 한다.'라는 조항이 존재한다. 계약이 종료되면 전차인의 재산을 반출하라는 것인지, 귀속하라는 것인지. 두 내용이 서로 상충하는 것이다. 심지어 제27조는 1년 전 재계약 당시 양자 간의 원만한 합의 없이 동원 측에서 일방적으로 추가한 조항이다. 찬에서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을 피력하자, 동원 측은 ‘다른 매장들도 다 같은 계약서를 쓴다. 더 협의하려 하다간 계약을 못 할 것이다.’ 등의 부정적 이야기를 하며 재계약을 부추기기도 했다.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에서 협상 시 임대인이 더 강한 힘을 가질 때가 많으므로 임대인의 요구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이 계약을 체결하는 임차인들의 안타까운 사례가 종종 있다. 이는 찬 앞에 놓인 현실이다. 제27조는 명백한 ‘불공정계약’이다.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서 일했던 김선진 변호사는 불공정계약을 강요받는 사람들에게 불공정계약과 관련된 소송을 예로 들면서 법적 조치를 취해 자신의 권리를 보호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러나 현실과 이상에는 늘 괴리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찬은 그럴 수 없었다. 갑을관계에서 당연히 보호받아야 할 자신의 권리를 당연히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존재할까.
안타까운 것은, 찬이 오히려 제30조 [제소 전 화해조서]에 동의함으로써 법적으로는 이 불공정계약의 부당함을 주장할 수 없어졌다는 것이다. 화해 조서란 당사자 쌍방이 확인하고 합의한 화해의 내용을 기록한 문서를 칭하는 것으로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가지기 때문에 계약서상의 문젯거리를 없애는 문서이다. 제30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전차인이 화해조서 신청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본 계약은 해지된 것으로 본다는 조항에 따라 찬은 화해조서를 작성할 수밖에 없었다.
제30조 [제소 전 화해조서] 1) 전대인과 전차인은 본 계약의 이행을 위하여 전대인이 제소 전 화해조서 신청을 요청할 경우 전차인은 이에 협조하기로 한다. 이에 소요되는 비용은 전대인과 전차인의 공동부담으로 한다. 2) 전대인이 요청할 경우 전차인은 계약 체결 후 15일 이내에 계약 주요내용에 대한 제소 전 화해조서 신청과 관련된 서류 일체를 전대인에게 제출하여야 하며, 이를 위반하여 신청을 게을리하거나 응하지 않을 경우 본 계약은 해지된 것으로 본다. |
증거 없는 구두계약
▴초기 시설공사 전, 후 찬의 모습
초기 계약 당시 동원 측이 고급 레스토랑과 같은 수준의 인테리어를 요구했던 만큼, 찬 이경아 사장은 레스토랑에 8억 원가량의 투자를 하여 최고수준의 식당을 만들었다. 막상 가게를 오픈하고 보니 15층이라는 위치적 문제 때문이었을까. 매출은 예상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이에 가게운영의 어려움을 겪게 된 찬은 학교에 초기 투자금 회수를 위한 10년 계약을 거듭 요청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당시 동원건설 양치섭 팀장은 식중독 사고 등의 큰 문제가 없는 한 재계약은 당연하다고 답변했다. 박우희 세종대 전 총장 또한 재계약은 걱정하지 말라고 당부했기에 찬은 별다른 계약 없이 그냥 그 말을 믿기로 한다. 그러나 현재 학교는 당시 상황을 기록한 정확한 문서가 없으므로 그 말을 용인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학교가 설마 그러겠어?’ 아니, 지금까지 봐 온 우리 학교는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찬은 모든 것을 사전에 방지해 놓았어야 했다. 이제 와서 여기저기 소리쳐봤자 답 없는 메아리일 뿐이다.
끝없는 갑의 횡포
앞에서 다룬 계약서, 구두계약만 봐도 이 계약의 갑이 누군지 너무나 명확하다. 갑의 횡포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찬은 가게 오픈 하루 만에 동원으로부터 이미 합의되었던 중식 가격을 5,000원에서 4,500원으로 인하하라는 통보를 받기도 했다. 심지어 6년간의 가격 동결.
또한 계약 전, 15층이라는 위치적 문제로 찬이 부정적 입장을 드러내자 학교와 동원 측 모두 식당 운영이 어려울 것을 인정하며, 교내행사와 세종 컨벤션이 주관하는 외부행사가 개최될 때 모든 식사를 찬에 맡길 것을 약속 했었다. 심지어 박우희 세종대 전 총장은 찬이 오픈한 후에도 컨벤션운영지원팀 최재인 과장과 찬 이경아 사장을 총무과에 불러 행사의 식사를 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다시금 언급하기도 했다. 컨벤션 유치행사 계획표를 보여주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현 세종대 총장 신구 취임 후 2013년부터 컨벤션 행사의 식사는 거의 세종호텔이 도맡아 진행하게 되었다. 아, 이것도 계약서에 적어놨어야 했나 보다. 시간이 지나 2015년, 모든 학내 생협이 철수한 그 자리에 (주)아라마크가 새 식당을 오픈 했는데 이 때문에 그동안 찬 레스토랑에 맡겨졌던 식사의 상당 부분이 (주)아라마크로 옮겨지며 찬의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다.
세종대, 이거 실화냐?
똑똑한 학교의 못난 모습은 끝이 없다.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전대, 공개입찰 등과 관련된 문제를 살펴볼 것이다. 과연 법으로만 이기면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일까? ‘갑질’은 요즘 사회에서 뜨거운 문젯거리이다. 뉴스에서 종종 접하는 ‘갑질’은 대중의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지성의 공간인 대학 안에서, 그것도 우리가 재학 중인 세종대학교 안에서 이러한 갑, 을, 병, 정이 끝없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세종대야 이거 실화니?
*본 기사는 두 편으로 나눠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