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이하 중앙대) 새내기 새로 배움터(이하 새터)에 참여하기 위해 지방에서 서울로 온 신입생이 ‘구글 폼 오류’로 참여자 명단에 등재돼있지 않아 입장을 거부당했다. 학내에선 ‘융통성 없는 대처’였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 경영경제대학(이하 경경대) 학생 A씨는 학내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진짜 인생 뭐 같습니다’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올렸다. A씨는 게시물을 통해 “새터에 가려고 일부러 지방에서 서울로 왔는데 구글 폼 오류로 이름이 등록되지 않아 새터에 참석할 수 없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그는 “새터에 참여하기 위해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기차표와 뒤풀이 비용을 모았는데 헛고생한 거 같아 감정이 복받친다”고 전했다. 해당 게시물엔 600건 이상의 공감과 200건 이상의 댓글이 달렸다. A씨는 같은 날에 추가 게시물을 올려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게시물에 따르면, A씨는 새터 참여를 위해 인솔 담당자에게 이름과 소속 학부를 말했지만 ‘미신청자’로 분류돼 행사 장소에 들어갈 수 없었다. 다른 담당자들이 명단을 재차 확인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A씨는 신청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SNS상에서 새터 참여에 투표한 기록을 보여줬지만, 담당자는 “가끔 구글 폼 오류가 난다”며 “(구글 폼으로 신청한) 명단에 이름이 없으면 집으로 돌아가야 할 거 같다”고 말했다. A씨는 새터에 참여하지 않고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이미 수십 차례 구글 폼을 확인했고 (명단에) 이름이 없다고 할 게 뻔했다”며 집으로 돌아간 이유를 설명했다. 구글 폼 오류로 새터 신청자 명단에서 제외된 학생은 더 있다. A씨와 같은 단과대에 재학 중인 B씨도 신청 내역이 확인되지 않아 새터에 참여할 수 없었다. 게시물에는 A씨와 유사한 상황을 겪었다는 댓글이 여러 개 달렸다. 소식을 접한 학생들은 “신입생을 위해 마련된 새터인데 신입생이 참여하지 못하는 게 황당하다”, “신청과정에서 오류가 생길 수 있지만 주최 측의 대처가 미흡했다”며 경경대 새터를 주최한 경경대 새내기 새로 배움터 기획단(이하 새기단)과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비판했다. 한편 경경대 새터 주최 측은 행사 초기엔 새터 참여자 명단을 확인했지만 이후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신입생을 입장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단과대는 새터 미신청자를 대상으로 당일 현장 신청을 받는 등의 조치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논란이 거세지자 지난 6일에 경경대 새기단과 비대위는 단과대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사과문을 게시했다. 주최 측은 “추가 신청자나 당일 현장 접수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했다”며 “미숙한 운영 방식으로 인해 큰 기대를 하고 있었을 신입생에게 깊이 사과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동덕여자대학교(이하 동덕여대)가 신입생을 대상으로 설립자의 친일 행위를 미화해 학내 구성원으로부터 반발을 사고 있다. 동덕여대는 지난달 28일에 열린 2023학년도 입학식 연혁 보고에서 설립자 조동식의 친일 행위를 미화했다. 학교는 조 씨의 창학 목적을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구하려는 애국계몽운동이 활발하던 시기에 여성교육을 통한 구국운동이라는 시대적 소명에 입각”한 것으로 표현했다. 같은 달 21일 동덕여대 새내기 배움터에서 배부된 ‘2023 학교생활 가이드북’ 창학정신에는 학교가 “일제의 가혹한 탄압과 질곡 속에서도, 조국과 민족을 위난으로부터 구제하여 국가의 사업과 민족적 과업에 기여했다”는 내용이 수록됐다. 조 씨는 친일 인명사전과 친일반민족행위 704인에 올라가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2009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조 씨는 일제 침략전쟁 협력을 위한 여성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대표적으로 동덕고등여학교 교장으로 재임 중이던 1942년 3월, 『매일신보』에 징병제도 실시에 부응해 조선의 여성들이 ‘군국의 어머니’가 돼야 한다는 내용을 게재했다. 1944년 1월에는 같은 매체를 통해 내선일체와 일제의 침략전쟁에 협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덕여대 제56대 총학생회 '파동'(이하 총학)은 대학 측에 ‘2023 학교생활 가이드북’에 실린 설립자의 친일 행위 미화 내용을 삭제해 달라고 요구했다. 학교 측은 무응답으로 일관하다가 제작 직전에 총학생회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은 완성본을 전달했다. 총학이 반발하자 이미 업체에 제작을 의뢰해 내용 변경이 어렵다고 통보했다. 이에 지난달 7일, 총학은 학교 측의 설립자 친일 행위 미화를 비판하는 입장문을 발표하고 조 씨의 동상과 학교 본관에 ‘친일 미화 규탄한다’, ‘역사를 잊은 동덕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적힌 피켓을 부착했다. 학교 측은 설립자 친일 행위 미화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동덕여대 김서원 총학생회장은 “(설립자의 친일 행위 미화가) 이번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며 “올해 안에 최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전기차 화재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환경을 고려한 미래 산업이라는 수식어를 갖고 출시됐지만 ‘운전자와 탑승자의 안전을 고려하기엔 이른 출시가 아니었는가’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7일 서울 성수동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 사고에 65명의 인력과 차량 27대가 동원됐다. 화재 현장 근처에 있던 시민들이 창문을 깨고 운전자를 구출해 인명 피해는 없었다. 전기차 1대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소방대원 52명 △경찰 11명 △구청 직원 2명과 △펌프 6대 △탱크 7대 △구조대 2대 △구급차 2대 △기타 차량 7대가 투입돼 수십 대의 장비와 수십 명의 인력이 동원됐다. 이외에도 전기차를 보유한 차주들은 차체 결함을 경험한다. 전기차 차주 박현진(55⋅오산) 씨는 “설에 서울로 올라가다 시동 오류가 생겨 보험 회사를 불렀지만 바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해 택시를 타고 집에 온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서울에서 견인 조치 후 본사에서 수리를 했는데, 수리기사가 사람으로 치면 심장마비가 온 상태라고 설명했다”며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전기차 배터리 화재의 경우 일반 차와 차이가 있다. 전기차 화재의 평균적 통계를 보면 일반 차에 비해 화재 진압 시간은 5배 정도이고 필요한 물의 양은 최소 10배에서 최대 100배까지 차이가 난다. 이유는 전기차 배터리의 특수성 때문이다. 차세대 전지로 알려진 리튬 이온을 사용해 충격이 발생하면 터지듯 폭발하기에 다 탈 때까지 쉽게 꺼지지 않는다. 배터리에 불이 붙어 폭발하는 일명 열폭주 현상으로 화재 진압에 많은 시간과 인원이 필요하다. 소방청은 “최근 3년 사이 전기차 화재 사고가 3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전기차를 보유 중인 박 씨는 “화재가 나면 차가 열리지 않는다는 글을 보고 유리창을 부수는 요령을 찾아보기도 했다”며 전기차 화재 사고를 접한 심정을 밝혔다. 서울소방재난본부는 지난 해 11월 전기차 화재 재연 실험을 통해 지난 1월, 새로운 ‘이동형 냉각수조’를 개발했다. 이동형 냉각수조는 바닥과 4면이 막힌 수조 안에 화재가 난 전기차를 넣고 물을 채워 리튬 이온 배터리가 물에 잠기게 하는 장치이다. 수조 윗부분이 개방돼 있고, 물을 가득 채우면 무게가 많이 나가 터널이나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사용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아직 모든 소방서에 보급되지 않았다. 서울 소방재난 본부 홍보기획팀 이수민 주임은 “수조 한 개당 비용이 약 2천만 원에 달해 모든 소방서에 ‘이동형 냉각수조’를 보급할 예산 확보가 쉽지 않다”고 밝혔다. 소방당국은 현재 국내에 있는 이동식 수조는 44개이며 올해 72개의 수조를 추가 확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기차를 보유 중인 김유진(47⋅용인) 씨는 “화재 진압 시 필요한 수조도 부족하지만 충전 인프라도 부족하다”며 “전기차를 운전하고 있지만 아직 미흡한 점이 많다고 느낀다”고 밝혔다. 연이은 전기차 화재 사고는 소비 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 윤채원(24⋅서울) 씨는 “전기차 화재 사고 소식을 접한 후 전기차 구매를 보류하게 됐다”며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로 출시한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어 “전기차 외에도 LPG 등 다른 친환경 차량을 알아볼 것 같다”고 밝혔다. 박정옥(47⋅용인) 씨 역시 “화재 사고 등 문제가 지속된다면 출시를 중단해야 한다”며 “전기차의 모든 결함이 보완될 때 구매를 다시 생각해 볼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한편 문하은(25⋅하남) 씨는 “화재 발생 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전기차 관련 제도가 마련된다면 전기차 구입을 희망한다”며 “환경을 생각해서는 꼭 필요한 산업이라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 [알못 주제에]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섣불리 기사를 쓰지 말자는 마음에서 기획했습니다. 저희는 어설픈 '잘알'보다는 '알못'이 되기로 했습니다. 한 번의 경험에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겠지만, 한 번의 취재로도 당사자와 외부인의 어려움은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알못 주제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놓쳤던 것들을 만나고 체험합니다. 이 기사를 통해 지금까지는 몰랐지만 조금이나마 알아가며 공감할 수 있도록 저희가 느낀 현장 그대로를 전달하겠습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서울캠퍼스(이하 서울캠)가 지난 2020년 국립특수교육원이 발표한 「2020 장애대학생 교육복지지원 실태평가 결과」에서 보통 등급을 받았다. 과연 휠체어 이용자에게 서울캠은 시설을 이용하기에 충분한 수준인가. 휠체어 이동을 위한 시설을 점검하기 위해 외대알리가 직접 수동 휠체어를 타고 캠퍼스를 돌아봤다. 도서관 장애인 화장실이 청소도구함으로 쓰이고 있었다 사이버관, 도서관, 국제학사, 본관, 교수학습개발원은 1층에만 장애인 화장실을 설치했다. 인문과학관은 1층에 여자 장애인 화장실, 2층에 남자 장애인 화장실이 있다. 휠체어가 인문과학관 장애인 화장실에서는 진입하기조차 힘들었다. 국제학사의 경우, 회전 반경이 충분하지 않아 좌변기로 몸을 옮길 수 없었다. 사이버관 장애인 화장실은 비교적 편리했다. 화장실 진입로에 턱이 없고 입구에는 자동문을 설치했으며, 좌변기로 몸을 옮길 수 있는 공간이 충분했다. 도서관은 충격적이었다. 도서관 1층 남녀 장애인 화장실은 청소도구함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각종 청소도구가 변기를 둘러싼 채 휠체어를 가로막았다. 이와 관련해 도서관 학술정보팀에 문의한 결과, 관계자는 "바로 조치해 장애인 이용에 불편이 없도록 하겠다"라고 답했다. 캠퍼스 어디에도 자동문이 없다 건물 입구에서 난관에 봉착했다. 겨울이라 닫혀있던 문 앞에서 휠체어를 멈췄다. 수동문을 휠체어에 앉아 밀고 당기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수동문을 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도움을 받아 건물 내부로 들어오자 식당 쪽으로 향하는 복도에 굳게 닫힌 문이 보였다. "추워요! 문은 꼭 닫아 주세요!"라는 안내 문구가 야속했다. 작은 휠체어가 통과하기에 좁은 복도는 덤이었다. 이를 두고 한 교내 관계자는 "휠체어가 지나가기에 너무 좁아, 휠체어 바퀴를 잡은 손이 쓸려 다칠 수도 있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국제학사 출입문에서도 휠체어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었다. 평소 열고 닫을 때에도 무거웠던 문이지만, 오늘은 무게조차 느낄 수 없었다. 휠체어로는 혼자 기숙사를 드나들 수 없다. 도서관 입구 중앙에 위치한 회전문도 무용지물이었다. 휠체어 크기와 회전 속도를 감안하면 진입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비장애인 도서관 이용자의 출입문은 회전문과 수동문까지 두 개이지만, 휠체어 이용자에겐 단 한 개도 없다. 휠체어 이용자에게는 센서가 부착된 슬라이드 자동문이 필요하다. 가파른 경사로와 안심할 수 없는 도로 경사로가 있으니 들어가기 쉽겠다는 생각이 인문과학관 앞에서 사라졌다. 휠체어 바퀴를 손으로 굴려서 올라갈 생각을 하니 경사로 초입부터 한숨이 나왔다. 겨우 올라왔더니 눈앞에 있는 수동문이 문제였다. 문을 열면서 뒤로 계속 미끄러지는 휠체어를 고정할 방도가 없었다. 그렇다고 브레이크를 걸면 문을 열 수 없었다. 본관 경사로는 완만해 보였다. 천천히 내려갈 수 있겠다고 기대했지만, 경사로에 진입하자마자 수동 브레이크를 당기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서였다. 눈대중으로는 경사도를 판단할 수 없었다. 도서관 쪽문에서 잔디광장으로 가기 위해 언덕진 길 앞에 섰다. 도저히 못 내려갈 것 같았다. 제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속도가 붙을까 겁이 났다. 눈앞에 펼쳐진 경사로와 왼쪽 너머에 보이는 사회과학관 방향 언덕을 보니 바퀴가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툭'. 배수로 덮개에 바퀴가 걸렸다. 곳곳에서 허점이 보였다. 군데군데 움푹 파인 도로와 장애물이 휠체어를 가로막았다. 어디서든 눈을 부릅뜨고 땅을 보며 움직여야 했다. 제 시간에 강의실에 도착했지만...착석에만 5분 강의실 문은 건물 출입문보다 열기 쉬웠다. 문이 가벼워 어렵지 않게 당길 수 있었다. 물론 입실 후 문을 닫는 것은 여전히 어려웠다. 들어온 강의실은 책상이 고정된 PC 학습실. 스스로 의자를 빼고 자리 잡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다. 특히 앞뒤 줄의 책상이 고정된 상태에서, 휠체어를 돌리기가 버거웠다. 학교에서 누릴 수 있는 기본 중에 기본인 강의를 듣는 것조차 어려웠다. 사이버관 소강당 의자는 부착식으로 설치됐다. 휠체어가 들어갈 공간이 부재한 것이다. 책상에 표시된 그려진 휠체어 그림은 말그대로 '그림의 떡'이었다. 엘리베이터가 교개원에는 "없어요" '엘리베이터 없음'이라고 적힌 종이 한 장이 자랑처럼 붙어있었다. 6층까지 강의실로 꽉 찬 교수학습개발원(이하 교개원)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휠체어 이용자가 교개원 입구로 들어가 사용 가능한 공간은 1층뿐이다. 도서관의 경우 1층 로비에서 바로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었다. 다만, 원한다고 바로 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담당자의 도움이 필요했다. 우선 담당자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한다. 담당자가 오면, 신분을 확인한 후 엘리베이터 잠금을 풀어준다. 이후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있다. "이 정도면 거의 최고다" 도서관 학술정보팀의 명형택 팀장은 도서관 장애인 이용 시설 평가에서 이 같은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도서관을 포함해 캠퍼스 내 대부분의 시설이 휠체어 이용자에게 열악한 현실이다. 한편 캠퍼스 곳곳을 누비며 휠체어에 앉은 기자를 위해 학우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수동문을 잡고 기다려주거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주는 등 휠체어를 보자마자 누구 하나 지나치지 않았다. 휠체어에 앉아 조금은 낮은 위치에서 도움을 받는 순간 아직 살 만한 세상이라고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휠체어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도움을 주는 시선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배려의 시선이 없어도 휠체어를 타고 아무렇지 않게 누빌 수 있는 캠퍼스가 필요하다. 알못 주제에, 외대에서 휠체어를 타봤다. 기하늘 기자(sky41100@naver.com) 류효림 기자(andoctober@naver.com) 오기영 기자(oky98@daum.net)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가 4일 오후 2시 세종대로에서 10.29 이태원 참사 100일 시민추모대회를 열었다. 주최 측은 본래 광화문 북광장에서 시민추모대회(이하 시민추모대회)를 열기로 했으나, 서울시가 같은 날 오전 광화문광장 남측에서 KBS가 촬영한다는 이유로 사용을 불허해 장소를 옮겼다고 밝혔다. 시민추모대회의 진행을 맡은 장유진 진보대학생넷 대표가 참가자들에게 인사를 하며 시민추모대회의 시작을 알렸다. 본래 일정대로 오후 2시 광화문 북광장에 주최 측과 일부 참가자들이 집결해 있었으나, 서울시가 장소 이용을 허가하지 않아 한국프레스센터 옆 세종대로로 자리를 옮겼다. 장 집행위원장의 발언 이후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등 6개 정당 대표가 연단에 올라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추모의 뜻을 전달했다. 한편 신자유연대를 비롯한 보수단체가 시민추모대회 인근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세종대로에 집결해 시민추모대회 참가자들에게 폭력적인 언행을 행하여 여러 차례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작년 10월 29일, 이태원에는 정부가 없었습니다. 참사 100일이 가까운 지금까지, 유가족에게도 정부는 없습니다. 왜 저희들을 이다지도 모멸차게 외면하시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국민들에게 더 가까이 저희들의 목소리를 알리기 위해 광화문, 시청 광장 앞으로 나오기로 결심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려 합니다. 이상민 장관의 파면을 요구하려 합니다. 특수본과 국정조사에서 밝혀지지 않은 많은 사실들이 있기에, 독립된 진상조사 기구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려 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희가 반정부 단체입니까? 윤석열 대통령은 왜 저희를 외면하십니까?" "지금 엄마 옆엔, 엄마 같이 소중한 아이를 갑자기 잃어버린 유가족 분들이 엄마의 손을 잡아주고 계셔. 여기 엄마들은, 서로의 존재만으로, 서로에게 때론 위로가 되기도 해. 엄마는 여기서 비록 우리 재현이가 짧은 생이었지만 많은 사람에게 웃음을 준 밝고 예쁜 아이라는 걸, 그런데 너무 억울하게 죽었다는 걸 사람들에게 말해주려 해. 엄마 힘낼게 재현아." "두 친구를 알고 지낸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우리 인생에서 메이와 티샤는 영원히 기억될 거야. 너희들의 미소, 얼굴, 웃음 소리를 우리가 기억하고, 우리를 보던 너희들의 목소리도 아직 생생하게 들려. 하지만 우리가 지켜주지 못해 정말 미안해." "중간에 경찰 분들이 계속 서있습니다. 뒷쪽이 안 그래도 보이지 않는데, 중간에 껴있는 경찰들은 바로 자리를 비켜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아까 전, 분향소를 설치하던 과정에서 경찰의 과도한 진압으로 유족 분 한 분이 실신하기도 했습니다. 더 이상 우리 시민들의 추모대회를 방해하지 말고, 자리에서 나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지금도 딸에게 카톡 문자를 보내고 있다는 어머니, 꿈에서라도 자식을 보고 싶어 영정을 끌어안고 주무시는 아버지도 계십니다. 유족들에게 온 세상은 까만 잿빛으로 변했습니다. 그러나 국가 권력은, 유족들의 상처를 철저히 짓밟았습니다. 대통령의 사과, 성역 없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유족들의 강렬하고 간절한 바람을 철저하게 묵살해왔습니다. 참사 이전에도, 참사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국가의 책임은 실종됐습니다. 심지어 오늘, 희생자들을 기릴 자그마할 공간을 내달라는 유족들의 작은 염원조차, 서울시는 매몰차게 거절했습니다. 평범한 유족을 투사로 만든 이 정권의 무책임하고 비정한 태도에 분노합니다." "윤석열 대통령님, 오세훈 서울시장님, 이곳을 가득 메운 경찰기동대를 보십시오. 이들은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에 있었어야 했습니다. 조금의 양심이라도 남아있다면, 바로 이곳에 꽃 한 송이 들고 와서 유족들에게 사죄하십시오. 저는 오늘 유가족들에게, 진심 어린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159명의 목숨이 사라진지 100일이 지났는데도 책임자들의 교활한 변명과 발뺌은 여전하고, 대통령은 단 한 차례도 유족을 만나지 않고 사과조차 없습니다. 강자들은 너무 쉽게 위기를 모면하려 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이 추모제도, 오세훈 서울시장은 단 하나의 공간도 내어줄 수 없다며 광화문광장의 사용을 불허했습니다. 그리고 유가족들과 우리 국민들은, 이곳 서울시청 앞에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비는 분향소를 설치했습니다. 서울시의 턱밑에서, 정부서울청사의 바로 코 앞에서, 우리 국민들은 이태원참사의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추모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어떻게든 이태원참사를 지우고 가리려 하는 윤석열 정부와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시청의 유가족들과 국민들이 설치한 분향소를 보며 제발, 단 한 줄의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끼면 좋겠습니다." "저는 100일을 맞아, 백 마디의 말보다 여러분께 100초간의 침묵과 기억을 제안드립니다. 온전한 침묵과 추모조차 허락되지 않은 시대지만, 여러분 우리 100초 동안만 그분들을 기억해봅시다." "100초의 시간이 이렇게 긴데, 100일 동안 유가족들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304명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 약속했지만 또 한 번의 대규모 인명 피해를 막지 못했습니다. 참사 100일을 앞둔 지금, 갈 수록 엄혹해지는 현실 속이지만 그저 안타까워 하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죽음을 대하는 자세는 곧 인간과 생명을 대하는 자세입니다. 159명의 청년을, 그들의 죽음을, 그들의 가족을 대하는 정부와 여당의 태도는 어땠습니까? 경찰의 강제 수사와 별도의 국회 국정조사가 55일간 이뤄졌지만 원인 파악에 닿지 못했습니다." "유가족이 정부와 서울시에 추모 분향소를 설치하고 싶다고, 광화문광장에 장소를 내달라 했는데 서울시는 열린 광장 운영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불허했습니다. 열린 광장 같은 소리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 가장 간절하고 고통스러운 국민들을 향해 열리지 않은 광장, 대통령실이 왜 필요합니까? 우리에겐 닫힌 광장, 닫힌 대통령실 아닙니까? 역사 이래 단 한 번도 권력이 스스로 광장을 열었던 적이 없습니다. 누구의 힘으로 열었습니까? 우리의 힘으로 열었습니다." "두 차례의 경고 방송과 자진 해산 요청에도 불구하고, (중략)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7조 4항에 따라 많은 시민들의 불편이 야기되고, 공공의 안전 질서에 대한 위험이 제기되고 있으나 집회자들이 이에 조치를 취하지 않아 더 이상 질서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경찰이 보수단체가 시민추모대회 현장 근처에서 주최한 집회에 해산 명령을 내리며 전달한 내용) 5일 오전, 서울시는 유족들에게 서울시청 앞에 설치한 합동 분향소를 철거해달라 요청했다. 유족들은 광화문광장에 임시 분향소를 설치하려 했으나 서울시가 이를 거부했다. 이에 유족들은 4일 오후 1시에 시청 인근에 위치한 서울도서관 앞에 분향소를 만들어 참사 희생자들의 영정 사진을 올려두었다. 유가족들과 시민들, 정치인들이 서울시가 광화문광장에 분향소도 설치할 수 없게 했다며 분노했던 날, 서울시는 출입기자단에 "분향소를 기습적으로 설치한 것에 유감을 표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취재, 사진: 강성진 기자, 권동원 기자, 유지은 기자, 황혜영 기자 글: 강성진 기자
용인시는 지난 4일 ‘용인시 폐기물처리시설(소각장) 입지선정계획’을 결정·공고했다. 본 공고는 1월 4일부터 1월 31일까지 총 28일간 이루어졌으며, 처인구 초부4·5리와 덕성리 총 두 곳이 유치 신청서를 냈다. 용인시가 새 소각시설 건립을 추진하는 이유는 일일 70t 규모의 수지구 환경센터와 300t 규모의 처인구 환경센터 2·3호기 사용기한이 2025년으로 거의 임박했기 때문이다. 현재 관내 생활폐기물 발생량은 연간 9만t 규모이며, 이를 처리하기 위해 2만㎡ 부지에 일일 소각량 300t 규모의 소각장을 설치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입지 결정 지역에는 150억 원 내외의 주민편익시설 설치를 지원하고, 시설 사용이 끝날 때까지 해마다 5억 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해 주민 소득 증가 및 복리 증진을 지원하는 사업에 활용할 계획이다. 한편 소각시설 입지 공고는 2019년 7월과 2020년 5월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이며, 2020년의 경우 당시 백군기 전 시장이 폐기물처리시설 설치 계획 백지화를 발표한 바 있다. 공고문에 명시된 입지 선정 기준은 ▶해당 지역 주민들의 적극 유치 희망 ▶민원 발생 최소화될 수 있는 지역 ▶토지이용계획에 제한받지 않는 지역 ▶기존 환경기초시설과 연계가 가능한 자원회수시설 건설 및 운영과정에서 경제성이 우수한 지역 ▶토지 매입과 협의 보상이 용이한 지역이다. 관련 소식을 접한 초부리 주민들은 곧바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 25일 용인특례시의회 홈페이지에 “처인구 모현읍 초부리의 일일처리량 300톤 규모의 소각장 추진을 반대합니다”라는 청원이 게재됐으며, 31일에는 초부리 주민 20여 명이 시청에 방문해 “소각장 설치를 절대 반대한다”라고 항의하며 신청서 자체에 대한 전면 취소·반려를 요구했다. 주민들은 ▶초부리에 자연휴양림 위치 ▶인근 금어리 소각장과 함께 일일 600t 규모의 막대한 소각량 ▶모현포곡관광밸리 방치될 것 ▶외대와 외대부고의 학생 유치의 어려움 ▶지역상권 존립에 위협 ▶주민생존권이 달린 문제 ▶3km 반경 내 소각장 3곳이 위치한 청주 북이면 주민들의 건강 상태 등을 청원 근거로 삼았다. 한국외대 글로벌캠퍼스 총학생회(이하 총학) 역시 31일 SNS를 통해 학우들에게 소각장 소식을 알렸다. 총학은 유해 물질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용인시의 입장에 반박하며 글로벌캠퍼스가 소각장 부지에서 약 3km 인근에 있다는 점을 들었다. 또한 “일반적으로 소각장의 영향권은 7km이지만 초부4·5리 전 세대의 의견은 배제된 채 부당하게 진행 중이다”라고 밝히며 학우들의 청원 참여를 독려했다. 총학의 글을 접한 한국외대 학우들은 학교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청원을 독려하는 게시물을 올리기도 했다. 이를 본 한 학우는 '폐기물 소각장 지하화 및 공원 설립'과 같은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으며, “서울캠퍼스 학생들도 같이 나서서 반대하자”는 독려의 댓글도 있었다. 반면에 “그러면 소각장은 어디로 가야 하느냐”는 의견과 “소각장이 생기면 입결이 떨어질 것이다”라는 추측, “제발 소각장 들어서게 해달라”는 비방적인 글까지 등장했다. 한편 용인시는 공고 마감 이후 입지 선정위원회를 구성한 뒤 후보지 타당성 조사와 전략환경영향평가 절차를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주민설명회와 공청회도 진행할 계획이며, 최종 입지 선정까지는 1년 정도 걸릴 예정이다. 이지석 기자(dlwltjr1214@naver.com)
2일 오전 10시 한국외국어대학교 본관 2층에서 양 캠퍼스 총학생회 주최로 등록금심의위원회(이하 등심위) 규탄 피케팅이 열렸다. 이날 피케팅에는 양캠퍼스 중앙운영위원회를 비롯해 외국인유학생회 GSA(이하 유학생회), 일반 학우들까지 동참했다. 10시 30분부터 진행한 이날 등심위에서는 외국인 유학생⋅대학원 등록금 인상에 관한 논의가 이뤄졌다. 회의 전후로 학우들의 피케팅에도 불구하고, 결국 등록금 인상안은 가결됐다. 피케팅에 앞서 배귀주(국제통상 20) 서울캠퍼스 총학생회장은 "등심위 회의는 학생위원 4명과 교수 5명으로 구성된 비민주적인 구조로, 학생들이 모두 반대해도 안건이 가결될 수밖에 없다"라며 "구성원 동의 없는 등록금 인상 반대한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더불어 회의를 불과 8일 앞두고 사전 논의와 의견 수렴 없이 외국인 유학생과 대학원생 등록금 인상 안건이 상정된 것에 대해 "학교의 통보식 행정"이라며 "학교는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는 게 아니라 의견을 듣지도 않았다"라고 밝혔다. 현장에 참석한 김연경(영미문학⋅문화 21) 유학생회장은 학부생 중 유학생 등록금만 인상하는 것을 두고 "외국인 유학생들이 굉장히 가혹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라며 "무엇보다 유학생 등록금 인상에 대해 유학생회에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전했다. 더불어 외국인 유학생들이 정보 접근에 뒤처지지 않도록 힘쓰겠다는 말을 남겼다. 배 회장은 지난 2020년 2학기 외국인 유학생 등록금이 6% 인상됐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등록금 체감률은 낮았음을 언급하며 이번 등록금 인상 이후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부족할 것을 우려했다. 더불어 이번 외국인 유학생⋅대학원생 등록금 인상 이후 한국인 재학생의 등록금 인상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학교의 재정 책무 회피가 유학생과 대학원생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내국인 등록금 인상에 대한 얘기도 충분히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며 "내부에서 등록금을 인상시킬 것이라는 입장이 나오기 시작했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외대의 재정 악화는 이미 수년간 지속되고 있다. 이번 등록금 인상이 학교의 재정 부족을 충당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이어 배 회장은 학교의 재정 상황에 대해 "학교 측의 '운영 자체가 어렵다'는 말에 공감하며 모두가 부담해야 하는 긴축 재정 상태"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학교의 교비 사용에 대해 투명한 공개를 요구했다. 그는 "현재 업무추진비 내역 공개 대상은 기관장인 총장만 해당하는데, 처장의 업무추진비 지출 내역 공개나 명확한 사용 내역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또 "이제 학교가 더 적극적으로 학교법인에게 재정 충당을 요구해야 하는 시점"라고 덧붙였다. 회의 이후 배 회장은 "다음 주 중에 각 주체별 규탄문 게시를 계획 중"이라며 "모든 대응은 해당 단위의 니즈에 맞춰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전에 학생 단위와 의견 수렴 없이 등록금 인상을 통보한 학교는 또다시 지난해 학제개편에서의 불통행정을 답습하는 모습을 보였다. 피케팅을 마무리하며 한 참가자가 "포기하지 말자"라는 말을 남긴 것처럼, 추후 인상된 등록금이 외국인 유학생과 대학원생을 위해 효과적으로 사용되는지 지켜봐야 한다. 재정 악화가 극심해진 상황 속에서 재학생들의 추가적인 경제적 부담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학교의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기하늘 기자(sky41100@naver.com) 오기영 기자(oky98@daum.net)
지난해 11월 말 한국외국어대학교 재학생인 김 이병(21)이 강원도 인제군에 위치한 GP 초소서 사망했다. 이달 12일에는 태백시의 한 군부대 연병장서 내한 훈련(혹한기에 앞서 추운 날씨에 적응하는 훈련) 중 이등병이 사망한 채 발견됐다. 나라를 지키고자 입대한 이들이 정작 자신들은 지켜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경우는 수두룩하다. 故 윤승주 일병, 변희수 하사, 이예람 중사 등 지난 2011년부터 2021년까지 10년간 사망한 군 장병 수는 1,050명이다. 2014년 이후 사망사고가 두 자릿수를 기록하며 감소하는 듯 보였으나 2021년에 102건을 기록하며 크게 증가했다. 군에서는 왜 지속적인 사망사고가 일어날까. 군은 왜 나라를 지키고자 부른 이들을 지켜내지 못할까. <군, 인권열외>의 저자인 군인권센터 김형남 사무국장을 만났다. <군, 인권열외> Q. 어떤 계기로 <군, 인권열외>를 집필하셨나요? A. 2016년부터 군인권센터에서 군 인권 관련 활동을 해왔지만 '군 인권'이라는 단어가 생소하다고 생각했어요. 군인과 인권이 잘 매치되지 않죠. 우리에게 군대는 멀게 느껴져요. 물리적으로 그렇고 심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어요. 군은 일상적으로 마주하기 어렵고 사건 사고가 나면 가끔 뉴스에서나 볼 수 있는 공간이죠. 사실 군인이라는 존재는 그렇게 멀리 있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주변을 보면 군인이거나 군인이었거나 군인이 될 사람이잖아요. 군대는 멀지만 군인은 가까운 존재죠. 그러니까 군대를 이야기하는 것은 낯설지라도 군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가까운 사람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멀게만 느껴지는 군대와 군 인권을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로 풀어서 공감을 불어일으키고자 책을 쓰기 시작했어요. Q. 군인과 인권은 잘 매치가 되지 않는데, 군 인권 인식 제고를 위한 국가나 개인적 차원의 노력은 무엇이 있을까요? A. 국가 입장에서 군인은 국민을 방어하기 위한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내부에서 매일같이 때리고 욕하고 성폭력하는 것이 용인된다면 유사시에 군인으로서 제대로 역할 할 수 있을까요. 아무도 자신을 지켜주지 않고 고통의 구렁텅이 안에 집어넣었는데,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나의 목숨을 건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죠. 존중받는 사람이 다른 생명도 존중하고 지킬 생각을 하는 거지, 푸대접을 받고 있는데 열심히 싸우겠습니까. 당연히 도망가죠.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해요. 군대를 지켜야 할 책임은 국민에게 있는 것이죠. 군대가 온전하게 기능하려면 국민이 그 역할을 해줘야 하는 것이고, 저절로 둔다고 제 역할을 하는 곳은 없어요. Q. 책을 쓰시면서 독자층을 미리 생각해두셨나요? A. 다양한 분들이 읽으시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군대에 가야 할 사람, 군대를 다녀 온 사람, 군에 자식을 보내는 것을 앞두고 있는 사람, 또 사랑하는 이를 군대에 보내야 하는 사람일 수도 있죠. Q. 부제가 '지켜야 하지만 지켜지지 못한 사람, 군인'인데, 어떤 의미인가요? A. 군인 하면 강인한 사람이 아주 춥거나 더운 곳에서 총을 옆으로 차고 나라를 지키고 있는 모습을 떠올려요. 반면에 군인이 두들겨 맞고 있거나 울고 있는 모습은 상상이 잘 안가죠. 이러한 군인의 모습을 떠올리는 이유는 우리가 군인에게 기대하고 있는 모습이 있기 때문이에요. 즉, 군인은 나라와 국민들을 지키는 사람인 거죠. 사실 누군가를 목숨 걸고 지키는 일은 굉장히 높은 수준의 희생이잖아요. 왕조 시대에는 왕이 군인에게 밥도 주고 잠도 재워줘요. 군인은 왕을 지키죠. 그래서 봉급을 제대로 주지 못했던 1882년 임오군란 때에는 군인들이 모두 왕궁으로 몰려가요. 우리의 주인이 왕이니까 왕궁으로 가는 거죠. 자신을 배고픔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한 분노가 왕에게 향했죠. 그럼 민주공화국에서 군인을 지켜야 하는 주체는 누구일까요. 국민이죠. 자신을 지켜주는 일을 국가에 맡겨놨다면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을 지킬 의무도 국가의 주인인 국민에게 있다는 거예요. 지키는 사람과 지켜지는 사람을 분리하지 않는 것이 민주공화국의 군대여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오랜 세월 동안 그렇지 못했어요. 군인들은 우리를 지켜주고 있지만 아무도 그들을 지켜주지 않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해서 '지켜야 하지만 지켜지지 못한 사람'이라는 부제로 군인을 정의했어요. Q. 책에 "군대 가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사람'이 군대를 간다"라는 표현을 적으셨는데, 어떤 의미를 담으신 건가요? A. 흔히 '군대를 가야 사람이 된다'고 하잖아요. 반대로 '사람이 군대를 간다'는 말은 아직 들어본 적이 없어서 여러 의미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군대라는 공간을 잘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고, 군대에 가서 되는 사람이라는 게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이기도 해요. 즉, 군대를 갔다 온 사람들이 침해와 차별을 내재화하고 우리 사회에서 그러한 사람을 요구하는 거죠. 예를 들어, 내 말을 잘 안 듣는 사람이 있어요. 그래서 앉혀 놓고 설득해요. 달래고 밥도 사줘요. 돈이랑 시간, 에너지까지 들고도 어려운 일이에요. 그런데 그 사람 뺨을 한 대 때려요. 또 때려요. 발로 차고, 말을 안 들을 때마다 묶어놓고 막 때려요. 그러면 안 맞으려고 말을 듣긴 하겠죠. 이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10분이면 할 수 있어요. 심적인 에너지도 별로 쓰지 않고 상대방도 아주 말을 잘 들어요. 효율적이지만 바른 방법이 아니에요. 문명사회에서 '서로 때리면 안 된다'라는 것이 합의된 규칙이고, 노예 제도를 운용하면 안 되는 것과 같은 거예요. 그런데 군대는 여기가 군대라는 이유만으로 그 방법을 효율적이라고 가르쳐온 거죠. 사회에 나가서 그 효율을 경험해 본 사람은 본인이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때리는 것을 선택지에 올려요. 영화나 드라마 보면 나이 많은 어른들이 "진짜 한대 때릴 수도 없고" 이런 말을 하잖아요. 이게 선택지에 있다는 거죠. 그 선택지를 만들어주는 공간이 어딘가 생각해 보면, 군대처럼 폭력이 용인되는 공간들이에요. 그런 것들을 배우고 나오면 아주 효율적이고 사회가 바라는 인재상이 된다는 말은 잘못된 것이죠. 그런 사람은 사회에 있으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군 인권을 이야기하는 게 단순히 군대라는 공간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군대를 경험하고 나온 사람들이 살아가는 우리 사회 전체를 이야기하는 개념이 될 수밖에 없어요. 군과 사회 Q. 우리 사회에서 군 인권은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 A. 특정 누군가가 특별한 인권을 가지는 것은 아니에요. 누구나 삶의 주인으로서, 삶의 주체로 살아가죠.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군인의 인권은 조금 더 특별한 의미를 가져요.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징병제 국가고 전 국민의 절반이 군대에 가야 하거나 갔다 온 사람들이에요. 짧게는 1년 반에서 길게는 2년 정도의 시간을 군대라는 공간에서 보내고 나오는데, 이 공간이 인권침해나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는 곳이면 그것들을 다 체험하고 나오는 거예요. 전역 후에 군에서 겪은 인권침해나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살아가게 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 이중적이죠. 군에서 침해와 차별을 받은 피해자이지만 어느 순간에는 침해와 차별의 주체가 돼있을 수도 있어요. 이러한 위험성을 복합적이고 양면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간이 군대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국 사회에서 군대를 바꾸고 군인의 인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 절반의 인권에 대한 인식을 이야기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생각해요. Q. 우리나라의 후진적인 군 인권 보호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군인은 그 정도 참아야지", "군인이니까"라는 말이 군인의 특수성, 군대의 특수성이라고 생각해요. 이러한 특수성이 용인되는 사회가 어떻게 만들어졌나 생각해 보면 광복 이후 단기간 내 겪은 한국전쟁과 나라가 못 살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요.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마무리됐는데 나라는 지켜야 해요. 이런 상황에 사람을 데려다 쓰니까 싼값으로 소모품처럼 써요. 그런데 사람을 이렇게 싸게 데려다 쓰려면 명분이 있어야 해요. 그래서 "군인이라면 이 정도 참아야 돼" 같이 말도 안 되는 대우를 받고 살아가는 것을 세뇌시켜요. "너는 싼값에 와도 되고 너는 좀 맞아도 돼. 그래야 말을 들으니까" 이런 것들이 하나하나 쌓이면서 군이라는 공간을 인권침해나 차별이 용인되는 공간으로 만들어 왔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군대는 폐쇄적이에요. 물론 사람들이 계속 들어왔다 나가지만, 들어가면 폐쇄적인 사회이고 나가면 나와 관계없는 공간이죠.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죠. 우스갯소리로 남자들이 제일 많이 꾸는 꿈이 군대 다시 가는 꿈이라고 하는데, 얼마나 싫으면 꿈을 꾸겠어요. 그래서 군이 섬 같은 공간이 돼버려요. 전역하고 나면 잊어버리고 가기 전에는 사각지대로 남아버리죠. Q. 군 내⋅외에서 군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시스템이나 시설이 언제부터 갖춰졌나요? A. 우리나라는 민주화 이후부터 인권이라는 개념이 사회 운동의 형태로 나타났어요. 그리고 김대중 정부 때 국가인권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인권이 국가 차원에서 제도화돼요. 이후 노무현 정부 때부터 사회 다양한 부분에서 인권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죠. 군인의 인권 문제가 대두된 건 노무현 정부 때가 처음이 아닐 거예요. 이전에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참여정부 때부터 제도권에서 토의하기 시작한 거죠. 그런데 토의가 시작되는 변곡점이 항상 누가 죽었을 때예요. 군 인권이 폭발적으로 이야기되기 시작된 것이 2014년도 윤 일병 사망 사건이에요. '군대에서 사람이 맞아 죽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냐'는 공감대가 생겨서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졌어요. "상명하복 좋고 효율적인 것도 좋지만, 사람이 죽는 건 좀 그렇지 않아?"라는 인식이 있었죠. 아주 기초적인 생각인데, 인권 개념에 있어서는 2014년에 와서야 제도화됐어요. Q. 군이 병사를 사람이 아니라 무기나 도구 정도로 여긴다는 생각도 있어요. 군대가 사람을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는 이유가 있을까요? A. 보통 사람의 생명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어요. 군대는 사람의 생명이나 삶보다 더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이 자연스럽고, 사건 처리 방식도 이에 맞춰 돌아가요. 진실을 규명하고 원인을 찾아내기보다는 어떻게 잘 덮고 이 파도를 지나갈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지는 이유죠. 단기적으로는 죽음이나 피해의 진상을 파헤치는 것이 여러 사람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죠.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되니까요. 그런데 어떤 것이 더 조직에 도움이 되는 일일까요. 지금 잘못한 사람 5명의 책임을 밝혀서 처벌하고 진상 규명해서 대책을 세우면, 이후에는 한 명의 피해자도 없을 것이고 처벌받는 5명도 없을 거예요. 처벌받는 5명을 보면 누군가는 '아 저런 일은 하면 안 되구나'하고 생각하겠죠. '5명 산 사람은 살아야지'하고 대충 처리하면 대책도 땜질 식으로 나올 수밖에 없어요. 내가 중대장이라면 매일 안전 점검하고 병사들 잘 지내는지 확인하는 것들을 굳이 할 필요가 없어요. 굳이 안 해도 재수 없으면 사고 나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죠. 재수 없어서 사고가 나도 군에서 조직을 위해 나를 보호해 줄 텐데 그냥 적당히 지나가겠지 정도예요. 이에 맞춰서 결정을 내리고 행동하는 것이 조직 구성원의 가이드라인이 되는 거예요. 군이 바뀌지 않는 고질적인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봐요. Q. "요즘 군대 좋아졌지"라는 말처럼 스마트폰 사용이나 시설의 개선 등 군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은 표면적으로 보이는데, 군 인권이 정말 보호받고 개선되고 있다고 볼 수 있나요? A. "요즘 군대 좋아졌지"라는 말은 60년대부터 지금까지 계속 나오는 말이고 완전히 상대적이에요. 책에 인권도 작전처럼이라는 파트가 있어요. 우리 군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군에 대한 인식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우리 군대는 많이 좋아졌다"거나 "요즘 군대는 인권을 존중하는 군대로 탈바꿈됐다"라고 하죠. 이건 인권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오독한 거예요. 인권은 작전이 아니거든요. 달성 가능한 목표가 아니라는 거죠. 세상이 계속 바뀌듯이 인권의 모양도 계속 바뀌어요.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기 때문에 끊임없이 체크해야죠. 인권이 달성 가능한 목표라면 국가인권위원회 같은 상시 조직이 왜 마련되어 있을까요. 군은 구타⋅가혹 행위 사건이 10건이었다가 3건으로 줄어들면 "우리는 인권 친화적인 군대로 드디어 탈바꿈 됐습니다"라고 말해요. 몇 년 뒤에 보면 그런 말을 비웃듯이 지표가 확 늘어나 있어요. 그만큼 군이 인권을 목표로 보고 달성했다고 생각하면 신경을 안 쓴다는 거예요. Q. 책 말미에 포퓰리스트의 징병 문제를 언급하셨는데, 정치와 군대의 상관관계가 군 인권에 크게 작용하나요? A. 병역의 형평성이나 군 사망사건이 나면 사회적으로 이슈가 돼요. 그럼 여기에 숟가락을 얹으려는 사람이 있어요. 대표적으로 정치인이 그렇죠. 우리 군과 병역제도를 발전적인 방향으로 바꾸어 나갈 수 있는 논의를 하면 좋을 텐데, 그저 어떻게 하면 나의 인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는 거죠. 와서 밥을 먹었으면 밥도 지어놓고 가야 하는데 먹기만 하고 튄다는 거예요. BTS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해요. 멤버 중 진이 얼마 전에 군대를 갔죠. 그전까지 약 2년 동안 BTS의 병역 문제 논란이 있었어요. 그런데 진이 군대에 가니까 모든 논의가 사라졌죠. 이 이슈는 정치인에게 끝난 이슈거든요. 폭을 넓히면 아이돌 혹은 문화예술인의 병역 문제, 우리 청년 세대의 병역 문제, 병역 제도 전반에 대한 논의가 될 수 있어요. 국회에서 국민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 나가야 하는 사람들이 BTS 몇 사람의 병역 면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우스운 일이죠. 그래서 BTS가 입대를 앞두고 있었을 때, 전성기여서 몇 년 더 활동을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때문에 어떤 국회의원 한 명이 입법을 해요. 탁월한 문화⋅예술적인 성과를 낸 사람들은 만 30세까지 병역을 미룰 수 있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그 성과의 근거는 문화훈장이에요. 그리고 우리나라 20대 중에 문화훈장을 수훈한 남성은 BTS밖에 없어요. 맞춤형 입법인 거죠. 거꾸로 생각해 보면 군대를 가야 하는 모든 남성이 만 30세까지 가고 싶은 시기에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런 말을 하면 꼭 "모두가 병역을 면탈하려고 30살까지 군대 안 갈 거 아니냐"라고 해요. 누가 그럴까요. BTS는 병역을 면탈하려고 30살까지 군대를 안 간 건가요? 대부분이 20대 초반에 빨리 군대 갔다 와서 취직을 하지, 직장에 다니다가 군대를 가려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BTS가 늦출 수 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늦출 수 있게 제도를 포괄적이고 일반적으로 설계해야죠. 군인권센터 Q. 사무국장님은 어떤 연유로 군인권센터에서 근무하시게 되셨나요? A. 제가 군 복무하던 곳은 간부들의 폭언이나 위협적인 행동이 일상적이었어요. 동료들이 많이 겪었고요. 그런데 그 간부들이 병사들이랑 처음부터 원수지간이거나 싫어서 그런 건 아니에요. 같이 앉아서 밥을 먹을 때는 화기애애하고 너무 좋아요. 맛있는 것도 챙겨주는데 일하는 시간만 되면 그러는 거예요. 그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병사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말을 잘 듣게 하려면 소리도 지르고, 욕도 좀 하고, 물건도 좀 집어던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게 일상화되기 시작하면 수위가 계속 올라가요.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정말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칼을 집어던지는 등의 상황을 보면서 제가 전역을 앞두고 있을 때쯤 후임들이 신고하고 싶다고 얘기를 해요. 그래서 신고를 도와주고 고소장이랑 탄원서도 썼어요. 군은 저희를 회유하고 협박하며 불이익을 주거나 중재안을 내놓기도 했어요. 결국 간부들을 다른 곳으로 보냈죠. 그런데 간부들이 저희를 조직을 망가뜨린 별난 애들로 치부하더라고요. 후임이 "괜히 이런 짓을 했다. 참고 살 때가 좋았다"라고 말하기도 했고요. 군에서 사회에 나가면 부당하고 부조리한 것은 참고 그냥 눈 감고 사는 것이 현명하고 장기적으로 더 편하다는 것을 깨닫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사회가 너무 암담하잖아요. 그래서 대학 시절부터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고, 군대를 바꾸는 일이 사회를 바꾸는 일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전역 열흘 후부터 군인권센터에서 상근 활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Q. 군인권센터는 어떤 역할을 하나요? A. 군대에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 사건들을 상담하고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어요. 상담은 연간 1,500에서 2,000건 사이 정도로, 언론에 나는 사건들은 극히 일부에요. 저희가 국방부나 군이랑 소통해서 해결되는 문제들이 훨씬 많아요. 사실 군도 외부에서 문제 지적하는 것을 군을 망가뜨리려고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요. 군대를 더 나은 공간으로 만들어서 피해자들이 나오지 않도록 만들어보자는 거고 군도 좋은 거죠. 때때로 사건 처리 이상의 제도적 변화가 필요한 문제들을 맞닥뜨리게 돼요. 그래서 입법 관련이나 정책 개선 활동도 하고,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 사업도 진행해요. Q. 과거와 비교해서 군인이나 가족분들의 도움 요청이 많아졌나요? A. 제가 근무를 시작한 2016년에 상담 수가 6-700건인 것과 비교하면 3배 이상 늘었죠. 과거보다 인권 침해가 많이 발생해서 수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에요. 객관적으로 10년 전 군대보다 지금의 군대가 더 인권친화적이겠죠. 구타나 가혹 행위는 현저히 줄어들었어요. 그럼에도 사건 수가 늘어난 것은 과거에는 참고 지나갔던 일들을 이제는 군인이라는 이유로 참지 않는다는 거예요. 여러 열악한 처우에도 불구하고 군인의 직업을 선택해서 군에서 복무하는데 "왜 내가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아야 해? 왜 내가 이런 부당한 일을 참아야 해? 이건 나라를 지키는 일이랑 상관이 없잖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거죠. Q.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으신 말씀 있으신가요? A. 제가 책을 쓴 가장 큰 목적은 군 문제에 대한 관심을 넘어 군대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에요. 책을 읽은 뒤 "어떻게 바꿀 건데? 어떤 공간이 되어야 하지?"라는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었으면 해요. 제일 중요한 점은 군인 당사자의 권리 의식 성장이에요. 지금은 외부에서 지속적으로 변화를 요구하고 이에 호응해서 내부의 권리 의식도 올라가는 건데, 군인 당사자들이 권리의 주체로 나설 토대나 플랫폼이 부족해요. 관련해서 윤석열 정부가 직업 군인 간부들 처우를 개선하겠다고 당직 근무를 하면 받는 1만 5천 원을 올리기로 공약을 했었어요. 그런데 올해 예산안에서 기획재정부 반대로 다 무산됐어요. 군인은 특수직 공무원이어서 안된다는 거예요. 일반 공무원이었으면 노조에서 난리가 났을 거예요. 더불어서 간부 지원율도 계속 떨어지고 있어요. 군대가 직장으로서 매력이 없다는 거죠. 군대를 유지하고, 잘 싸우는 군대를 만들고, 우리가 안전하게 살기 위해서는 군인의 처우나 인권을 보장하는 방법이 유일한 수단이에요. 지켜야 하는 사람을 잘 지켜주는 것도 우리 스스로 잘 지킴을 받기 위한 과정이에요. 기하늘 기자(sky41100@naver.com)